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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도시 여행
박탄호 지음 / 플래닝북스 / 201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영어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유럽이나 영어권 나라가 관심의 대상이 되듯이 일본어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일본 여행에 관심을 갖게 된다. 한 나라의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의 속내까지 알아야 진정한 언어 공부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몇 년째 일본어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어서 이 책과의 만남은 가히 감동의 도가니라고 할 수 있다! 매여 있는 직장인의 여건상 항상 여행에 갈증을 느끼는데, 직접 떠나지 못하더라도 여행서적을 만나 어느 정도 해소 할 수 있다는 것은 책이 가진 훌륭한 장점이다. 그 동안 내 손에 들어 온 여행서적이 거의 전단지 수준의 책자였다면 출판사에서 서운하다고 할까나. 하지만 사실이다. 이 책은 그간의 나의 허탈함을 모두 만회할 수 있는, 내가 원했던 요소가 충분히 들어있어서 정말 마음에 들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많이 알려진 관광지나 유적지, 대형 쇼핑센터의 나들이, 맛집 방문의 순서로 단순히 보고, 먹고, 즐기는 것으로 여행을 했다고 자부하곤 한다. 그러한 ‘수박 겉 핧기 식’ 여행으로는 한 나라의 문화나 생활습관, 현지인들의 사고방식을 깊이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지금까지 다섯 차례의 나의 일본 여행도 거의 가족들과 함께 했던 만큼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그래서 언젠가 혼자서 여행을 하게 되면 테마를 정해서 여행을 해보리라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를테면 좋아하는 작가의 발자취를 느껴보는 여행이라든가, 약간 한적한 지역을 여행하면서 현지인들과 이야기도 하며 사람 사는 냄새를 맡고 싶었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나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기에 충분하다. 화려하고 번화한 곳은 아니지만, 소박하고 인정미가 넘치며 그들의 정서를 잘 알 수 있고, 그 지역의 역사에 관한 정보도 함께 어울려 몰랐던 부분을 세세하게 알 수 있다.
<일본 소도시 여행>은 1장 추고쿠 동부, 2장 추고쿠 서부, 3장 시코쿠, 4장 규슈 북부, 5장 규슈 남부 로 구성되어 있다. 박탄호 작가는 교환학생으로 일본에서 공부한 인연으로 워킹홀리데이를 거쳐 대학원 진학, 취업까지 5년을 넘게 살면서 틈나는대로 여행을 하고 그 기록을 이렇게 책으로 엮어냈다. 뭐랄까, 우선 풍부한 그 지역의 역사나 특색 있는 산물, 축제 등을 잘 알려준다. 확실히 소도시만의 개성을 잘 담고 있다. 직접 가보고 맛 본 그 여정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그저 단순히 여행의 경로만이 아니라 그의 감성적인 글맛도 일품이어서 더욱 좋았다. 나도 어서 가보고 싶다, 하면서 읽는 내내 감탄을 하며 행복한 마음이었다. 일본어의 듣기 공부용으로 가끔 일드를 보게 되는데, 빼어난 경치와 맛있는 음식으로 소문난 곳이 나오면 정말 꼭 한 번 가고 싶어진다. 또 내가 좋아하는 일본 작가 중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을 읽으면서 그 자취를 느껴보고 싶었다. 어느 책에서 마쓰야마가 그의 발자취가 어린 곳이라는 것을 알았고 꼭 가보고 싶은 곳의 리스트에 두었는데, 이 책에서 만나게 되어 무척 반가운 마음이다.
마쓰야마 성.
오른쪽 하단의 사진 -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에 등장하는 봇짱 열차.
규슈 북부의 조선인 도공의 발자취가 있는 이마리 지역을 소개할 때는 작가의 마음처럼 나도 불편하고 살짝 화가 난다. 전에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규슈 편을 읽고 알게 된 역사적 사실을 다시 접하고 분한 마음이 되살아났다. 도공을 천시하던 조선의 역사, 이들을 강제로 끌고 가 살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주고 그들의 도자기 기술이 세계만방에 알려지며 유럽 도자기 문화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고흐와 모네 등 유명한 화가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니, 그것이 우리 것일 수도 있었는데 빼앗긴 건 아닌가 싶어 더 안타깝다. 이런 마음과 함께 몇 번의 일본 여행을 통해서 느끼게 되는 거지만, 그들의 전통 문화 사랑은 어쩌면 우리보다 더 진한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전통 문화뿐만 아니라 가업(家業)도 그렇다. 몇 백 년 대대로 가문의 전통을 지키는 장인정신이 부럽기도 하다. 그 고장의 만화가의 작품이 그 지역을 대표하는 캐릭터로 되살아나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예는 더더욱. 과연 애니매이션이 발달한 나라답다고 해야 할까. 뭐든지 개발하겠다고 부수고 새로 높이 만들어내는 우리와 달리 골목골목 오래된 옛 집이나, 가정집 분위기가 나는 가게들이 즐비한 것을 보고 놀라웠던 기억이 있다.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며 스토리텔링을 끌어들이고, 관광자원을 개발하여 마케팅으로 연결시키는 그들의 근성이 관광객들을 불러들이는 내공임에 틀림없다.
이 책에서 소개한 서일본 지역은 비교적 우리나라에서 가까운 쪽에 있는 여행지다. 숨은 보석처럼 반짝이는 서일본의 33개 소도시 중 내가 여행한 지역은 고작 딱 한 군데. 바로 2장에서 처음 다루는 부분의 모지코다. 작년 뜨거운 여름의 한 복판 8월 중순, 작은 아들과 함께 후쿠오카의 하카타역에서 고쿠라 행 소닉을 타고 한 번 환승하여 모지코역에서 내렸다. 바깥 날씨가 엄청 뜨거워서 열차 안은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도착지에 다 왔는데도, 내리기 싫을 정도였다. 그곳 모지코에서만 만들어 판매하는 맥주가 있었고, 먹거리로는 야키카레가 명물이다. 시원한 식당 안에서 처음 먹어 본, 치즈가 듬뿍 녹아있던 감미로운 야키카레의 그 맛 잊을 수 없다. 그 때의 추억을 되새겨 보면서 사진을 올려본다.
위의 사진 식당에서 먹었던 야키카레.
지금 생각해 보니, 여름보다 지금처럼 추운 날씨에 제격일 것 같다.
여행이란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산소 같은 희망이다. 원래 여행은 집 나가면 고생이라고 하듯이 어려움이 많긴 하다. 떠나기 전에 짐을 꾸리고 계획을 세우고 무엇을 먹을까 생각해보고 하는 과정이 더 행복한 시간일 수도 있다. 돌아오기 위해서 떠나는 여행일 수 도 있다. 그렇더라도 돌아와서는 그 추억으로 또 한동안을 살아간다. 어쨌든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떠난다. 너무 복잡한 대도시 여행에 식상했다면 소박한 풍광과 현지인의 정서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떠나보면 어떨까. 각종 축제가 펼쳐지는 곳, 그 지역만의 특색이 살아 있는 곳, 일본 서부의 소도시로 떠나보자. 가는 방법, 둘러 볼 곳, 볼거리, 먹거리에 대한 정보가 상세하게 나와 있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수다를 떨며 외로움을 털어낸다. 얼마나 일본어가 능숙했기에 한국인이라고 자기소개를 했더니 소스라치게 놀랐다는 여기자와의 만남 장면은 재미있고 감동적이다. 아, 나도 얼른 능숙해져서 이런 여행하고 싶은데. 일본어 공부를 좀 더 계획적으로 꾸준하게 해야지 다짐해 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일본어 공부와 일본 여행에 관심 있는 사람이 읽으면 동기부여와 함께 소박하고 행복한 차원 높은 여행을 선사해 줄 것이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제작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