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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참선 1~2 세트 - 전2권 ㅣ 참선
테오도르 준 박 지음, 구미화 옮김 / 나무의마음 / 2019년 12월
평점 :
고즈넉한 산사의 풍경을 좋아한다. 그곳에서는 급할 것도 없고 서둘러야 할 것도 없고 시간의 흐름도 다르게 느껴진다. 반복되는 일상생활에서 지친 마음을 좀 내려놓고 평온한 시간을 가져보라고 산사의 바람도 속삭여주는 듯하다.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스님의 낭랑한 염불 소리나 목탁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불교를 소재로 한 영화를 보는 것도 그렇다. 무엇이 그렇게 산사의 풍경 속으로 이끄는 걸까. 오래 전에 읽은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를 쓴 현각 스님이 떠올랐다. 오직 진리, 즉 베리타스(Veritas)를 찾기 위해 애쓰던 벽안의 외국인이 숭산 스님을 만나 불교에 입문하고 수행하는 과정의 이야기가 무척이나 인상적이고 흥미로웠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그곳도 끊이지 않은 마음의 번뇌가 일렁이는 다른 모습의 사회라는 것을 비로소 느끼게 되었다.
참선을 주제로 이 책을 쓴 저자 테오도르 준은 미국으로 유학한 한국인 부모님의 아들로 태어난 재미교포 2세이다. 그는 환산 스님으로, 방송에서 오랫동안 참선을 가르치기도 했다는데 TV와 담을 쌓고 살아서인지 나는 처음 알게 되었다. 앞서 현각 스님의 경우와는 불교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좀 달라서 왠지 무거운 마음이 들었다. 진리를 찾다가 숭산 스님의 설법을 듣고 스님이 되고 싶었다는 경우에 비하면, 그는 마음속에 들끓던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이나 어렸을 때부터 쌓여온 온갖 마음의 고통이 대학생이 될 때까지 계속되어, 자신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송담 스님을 만난 것이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질풍노도와 같은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마음속을 꽉 채우고 있던 질문들의 답을 찾을 수 있을까. 마치 한 편의 성장 소설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람은 항상 자신의 관점으로 타인들을 바라보기 마련이어서 그럴까. 화려한 스펙과 안정된 진로가 약속되었을지도 모르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의 의지대로 나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호기심을 갖게 된다. 다른 분야보다 종교계에 대한 입문은 더욱 그런 것 같다. 그는 학교를 졸업하면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는 보통사람들의 삶에 회의적이었다. 또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아웃사이더로서 정체성을 고민했고, 풀리지 않는 인간 존재의 목적과 본성에 관한 의문으로 고통 받고 있던 듯하다. 이민자인 부모님이 열심히 일한 덕분에 안전한 보금자리에서 살아갈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었지만 당혹감을 느꼈다는 것을 보면 보통 사람들보다 예민한 감수성과 이타심도 보였고 강한 것 같으면서 여린 마음으로 내면의 고통이 컸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인간으로 살면서 무엇을 해야 할까?
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인간은 정말 피와 살로 이루어진 물질적 존재에 불과할까?
그렇지 않다면 우리에게 그 이상의 것이 있을까?
육신이 죽은 뒤 우리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그냥 영원히 사라지는 것일까?
우리 몸이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했던 어떤 것이 있을까?
인간은 정말로 어떤 존재일까?(1권 p40~41)
그의 내면에는 항상 이런 질문들이 들끓었다고 한다. 보통 사람들도 한번 쯤 마음속에 품을 수 있는 생각이지만 대개는 더 이상 빠져들지는 않을 것이다. 처음부터 승려가 될 생각은 전혀 없었고 깨달음을 얻고자 노력할 생각도 아니었다고 한다. 대학시절 선불교 모임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송담 스님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고 졸업하기만을 기다린다. 송담 스님을 만나고 싶었던 이유는 자신의 ‘건강하지 못한’ 정신을 치료할 방법을 찾기 위한 절박함 이었다.
10년간 묵언 수행을 하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송담 스님을 향한 저자의 마음은 마치 인기 아이돌을 향한 소년의 마음처럼 느껴졌다. 2년을 기다린 끝에 친견하던 날, 스님의 아우라에 완전히 압도되고 이후 출가하여 수행자 생활을 하는 내내 마음속을 지배하게 된다. 스님을 향한 존경심과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당시 미국에서는 선불교 모임에 참여한 부류에 세련된 젊은 대학생들이 많았던 것을 생각할 때 딱히 종교라는 이미지보다는 ‘문화’로서 향유하지 않았나 싶다. 내면의 고통을 치유하겠다는 일념으로 송담 스님을 만났지만 스님은 그것을 말이나 개념으로 전달할 수 없고 참선 수행을 통해서 알 수 있도록 도와 줄 수는 있다는 말을 듣는다. 어차피 세상의 어떤 공식 같은 삶에는 관심이 없었던 그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참선이라는 생각에 이르러 제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분의 법문을 듣기 위해서 한국어를 배워야 한다. 삭발을 하고 절에서 ‘발우 공양’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불경을 소리 내어 일고 각종 의례를 진행하는 방법을 배워나간다. 한국어도 한자(漢子)도 몰랐던 상황에서 스님의 법문이나 전문적인 불교용어를 어떻게 다 익혀나갔을까. 배움에 대한 지원이 없어서 혼자서 터득해야 했기에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일상의 활동들을 해나가면서도 종종 낯선 자신을 발견한다. 권위와 복종을 보았고 폭력적인 기운 속에 숨겨진 두려움과 절망을 발견하면서 동료애를 느끼기도 한다. 그들과 자신의 공통점이 있다면 세상이나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해 아파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 밖에도 전통적인 종교 문화의 측면에서 ‘알지 못하는 것’과 ‘믿는 것’ 사이의 혼란으로 힘들어 하며 연극적으로 보이는 종교에 위선을 느낀다. 한 달에 한번밖에 볼 수 없는 송담 스님을 학수고대하며 보낸 순수한 마음이 그렇게 오랜 세월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송담 스님에게 ‘홀딱 반했’기 때문이었다고 회상하는 부분에서 묘한 연민이 느껴졌다.
참선, 하면 고요한 법당에 정좌하고 있는 수행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수계를 받은 지 2,3년이 지난 어느 날 방송실에 망연하게 앉아 있다가 송담 스님과 마주친다. 반갑기도 하고 내면의 갈등을 들킨 것 같아 복잡한 마음이 된 환산 스님은 자신을 바라보는 송담 스님의 표정을 감지한다. 흐뭇한 애정, 염려와 연민, 약간의 슬픔까지 깃들어 있는 그 표정을. 항상 제자의 내면을 꿰뚫는 듯이 간파하고 있던 송담 스님은, 뭐든지 배울 수 있는 세상이지만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것이 있다며 이야기를 꺼낸다.
“속상할 때나 화가 날 때나 슬플 때나 두려울 때 그리고 마음이 아플 때는 어떻게 해야 해?”
(1권 p158)
참선이 필요한 이유를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 참선은 수행자만이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왔다. 정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말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남들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며 살아오지 않았는가. 속상해도 화가 나도 아닌 것처럼 위장하고 그것을 풀지 못해 앙금을 쌓으며 세월을 보내지 않았는가. 인간관계의 울타리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는 감정의 상처를 수도 없이 받는다. 그때그때 바로 밀어낼 수 있다면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정신의 건강을 온전히 지켜내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우리가 “이뭣고?”를 읊조리며 정신을 맑게 하는 것은 마치 자동차를 타고 흙먼지 속을 달릴 때 먼지로 뒤덮인 유리창을 와이퍼로 한 번 닦아내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하고 있다. 정말 간단한 한 번의 작동으로 앞이 환해지듯이 깊은 수렁에 빠져드는 것을 참선으로 막을 수 있다니 얼마나 놀라운가.
참선에는 요중선(움직이는 참선)과 정중선(앉아서 하는 참선)이 있다고 하는데 일상생활에서도 참선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워 놓으면 스트레스, 충격 등 정신적인 안정을 빨리 되찾고 평화로운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명상법은 참선 밖에 없다는 것이다.
참선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올바른 자세, 올바른 호흡, 올바른 생각 이렇게 세 가지면 어디서든지 적용할 수 있다고 한다. 원래 참선의 기본자세는 가부좌 자세지만 현대인이 실천하기에는 어려운 자세이므로 의자에 앉아 참선하는 법을 배우는 것을 권한다. 이 자세는 학교, 직장은 물론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도 스트레스와 불안한 마음을 제거할 수 있는 실시간 참선이며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참선법이라는 것이다.
그 방법은, 준비단계로 감정 치유를 위한 호흡을 먼저 하고나서 본 호흡으로 들어가는데 복식호흡을 하면서 ‘이뭣고’라는 화두를 들어 질문하면 된다. ‘이뭣고’는 ‘이것이 무엇인가?’ 라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라고 한다. 이 화두를 던지는 이유는 알고 싶어도 알 수 없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내면의 ‘이것’에 대해 알고 싶고 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 상태로 만들기 위해서란다. 짧은 말의 ‘이뭣고’가 리듬감 있고 재미있게 느껴졌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도 모르게 ‘이뭣고’를 읊조리곤 했는데 뭔지 모를 붕 떠있는 듯한 불안한 마음들이 사라지고 평온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마음챙김 명상[ mindfulness meditation ] 이 떠오르기도 했다. 자신의 속마음이 변화되어가는 상황을 지켜보는 것으로 일상생활에서 적용할 수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이뭣고’는 지금 이 순간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화두’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정적인 생각에 빠지기 전에 그러지 않도록 막아주는 ‘경고등’처럼 말이다. 감정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순간에 ‘이뭣고’를 말하며 현실로 돌아와 집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 참선을 활용하면 좋을까.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커다란 문명의 혜택 속에 살고 있지만 그에 비해 행복하지 않다고 말한다. 누구보다 많은 업적을 올려야 대우 받는 세상이다. 삶이라는 과정 자체에서 마주하는 외로움, 우울, 불안, 중독적인 생활습관, 갈망과 혐오, 화와 집착 등 온갖 감정을 마음속에서 물리치는데 사용할 수 있다. 부정적인 생각이 더 커지기 전에 서둘러 없애버릴 수 있는 ‘예방 차원의 개인 맞춤형 정신 건강 프로그램’이라고 하니 배워서 활용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마음에 남는 문장들>
“우리는 건강을 위해 몸을 깨끗이 유지해야 한다는 건 알면서 왜 마음에 대해서는 그리지 않을까?”(P182)
'참선은 살아가는 방식이다.’(P248)
“양동이가 새는 것을 발견했을 때 올바른 해결책은 안에서 구멍을 막는 것이다. 바깥에서 막으려고 해서는 소용이 없다.”(P315)
'참선은 죽음에 대한 불안을 억누르는 대신에 그 불안의 에너지를 연료처럼 이용한다. 죽음에 대한 불안을 억지로 밀어내지 않고 받아들이면 “이뭣고?” 화두에 더 강렬하게 집중할 수 있다. 사실 이 죽음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해 참선이 정말로 생명력을 갖게 된다.’(P320)
-이상은 1권 中-
‘참선으로 각자의 기분이 좋아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참선을 통해 우리 모두가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2권 P257)
맑고 건강한 마음을 유지하기 위한 참선부터 사는 동안 두렵게 여겨지는 죽음에 대한 불안을 참선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일상생활에서 조용한 참선과 활동적인 참선이 균형 있게 이루어지면 우리의 몸과 마음 정신은 평화롭고 맑은 상태가 될 것이고, 세상이 조화롭고 나아가서 우주와도 조화를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참선을 접하게 된 초심자라면 인내심을 갖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매일 매 순간을 새로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수시로 자신의 내면과 대화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마음의 평온을 유지 할 수 있으며 좀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이 행복하면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생기는 것이다. 이런 긍정적인 작용으로 인해 베푸는 사람이 많아지는 사회, 국가, 세계로 넓혀갈 수 있다면 조금이라도 더 평화로운 세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참선이 추구하는 미래상이었다.
대학을 갓 졸업한 스물 두 살의 청년은 송담 스님을 만나 영감과 감동을 받고 그분처럼 되고 싶었던 환산 스님은 어떻게 되었을까. 30년 가까이 수행자 생활을 하는 중 7년 전에 활구 참선을 가르치라는 송담 스님의 권유로 TV방송을 시작하며 유명세를 얻고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느끼지만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보다 앞서 이미 환산 스님의 마음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출가하게 되면 사회적 관습으로부터 벗어날 거라고 생각했지만, 절의 운영방식에서 군대라는 조직의 모습을 보았고 비영리 중소기업에 취직한 것처럼 느껴졌단다. 자신이 싫어했던 세상의 모습을 피해서 왔는데 절에 와서 다시 만났다고 할까. 계파와 파벌이 생겼다 흩어지고 불만과 갈등, 경쟁과 논쟁, 동정과 연민의 감정들, 일반 사회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하다는 것을 깨닫지 않았나 싶다.
TV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광대’라 여기며 환멸을 느끼고 이전에는 상상하지도 못 했던, 원래의 자신의 삶으로 돌아 갈 결심을 한다. 당시 척추전방전위증이라는 질환으로 고통을 받고 있던 터라 여러 보직에서 물러날 이유도 타당했지만 심경은 복잡해 보인다. ‘물과 산소’ 같은 존재였던 스님에 대한 애착과 ‘추종자’ 노릇을 그만 두고 떠나야 한다는 확신 사이에 감정의 동요를 일으킨다. 불교를 믿어서가 아니라 스님을 믿기 때문에 스님이 되었고 자신은 언제나 ‘송담 교도’였다는데. 믿었던 사람, 믿었던 세계에서 빠져 나오며 무엇을 보았을까. 마치 환상에서 깨어난 것처럼 황망하게 느껴져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슬프면 이상하게 그 슬픔 한가운데서 기쁨이 느껴진다. 온 힘을 다해 꽉 붙들고 있던 뭔가를 잃어버리고 나니 아니, 놓아버리고 나니 비로소 주위의 모든 것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그렇게 나쁜 곳이 아니었다.(2권-p57)
그 정원에서 마침내 깨달았다. 성인이 된 후로 줄곧 엉뚱한 곳을 들여다보고 잘못된 기준과 관점에 연연해왔다는 것을. 더 나은 무언가가 되려고 노력하다가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렸다. 땅속에서 금을 찾다가 결국 그 땅을 놓쳐버린 꼴이다.(2권-p75)
한때 무관심했던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삶, 살아가기 위해 가게를 열고 출근을 하기 위해 서두르는 사람들을 보며 ‘진짜 살아가는 모습’을 느끼게 된다. 무언가에 흠뻑 빠져있을 때는 주위의 사정이 눈에 들어오지 않듯이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평범함에서 새로움을 발견한 것이다. 절을 떠나온 것을 후회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거기서 대부분의 청춘을 보냈으니 그 감회도 남다를 법하다. 요가를 배워 참선에 접목하기 위해 발리와 우붓을 여행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면서 지난날의 자신을 떠올린다. 혼자서 모든 일을 하는데 익숙해졌기 때문에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오래 걸렸고 편하게 지내지 못하는 것 등,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부모를 두고 떠난 긴 세월을 뒤늦게 안타까워하고 승려로 살았던 30년을 놓아버린 후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수치심을 느끼기도 한다. 이 여행의 과정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삶을 맞이하여 앞으로의 삶을 새롭게 맞이하기 위해 치르는 통과의례의 과정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저자는 다소 평범하지 않은 인생을 살면서 배운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자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종교에 귀의해야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고통에서 빠르게 회복하도록 돕는 참선을 우리의 삶에 포함시키는 방법을 나누며,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혁신과 자기 진화의 혜택을 누리도록 돕는데 목적이 있다고 했다. 우리는 고도의 경쟁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도 없다. 다양하고 복잡한 감정상태에 처했을 때 참선을 배워서 실천한다면 위기도 극복할 수 있고 좀 더 행복하고 편안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진정한 참선은 일상생활을 벗어나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하는 것이다.”
-본문 중-
나는 1년 반 전부터 108배 운동을 하고 있다. 무릎에 무리가 오지 않을까 염려가 되기도 했지만, 심신 건강에 탁월하다는 한의사의 체험 이야기를 읽고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 시작했던 때는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7월이었는데 약 100일 정도를 하루도 쉬지 않고 했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내 스스로가 대견하게 느껴진다. 요즘은 의식적으로 일주일에 세 번 정도를 지키려고 노력한다. 횟수는 세지 않고 15분 내외로 몸을 굽혔다 펴는 동작을 반복 하다보면 몸도 따뜻해지고 감사의 마음으로 충만해진다. 마음의 평온은 물론 근육 단련에도 좋은 효과를 보았다. 참선은 복식호흡을 하며 내면과 대화하는 방식으로 생각되는데, 두 가지를 적절히 활용한다면 심신의 건강에 더욱 긍정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30년 가까이 한 사람과 한 세계를 믿고 따르며 살아가다가 그 세계에서 떠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믿고 사랑했던 스님을 떠나는 것이 그렇게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그의 끝과 시작을 아름답다고 혹은 아름답지 못하다고 가볍게 평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한 사람이 인생의 과정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선택 중 하나를 선택한 것이고 각자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에게도 커다란 용기가 필요했을 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추종자로서 살아왔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지만 그 곳에서 살아가는 시간 동안 많은 것을 배웠고 깨달았을 것이다. 참선을 화두로 이 책을 쓴 것도 자신의 지난날을 통해서 변화된 삶을 제대로 바라보고자 계획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커다란 영감과 사랑을 받았던 스승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 지금은 21세기 도시 수행자가 되어 참선을 가르치고 강연을 하는 등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굽이굽이 세월을 돌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지만 앞으로의 삶이 더욱 의미 있고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보통사람들의 행복은 물론 온 인류의 안녕을 위해 참선을 널리 알리고 소통하는데 이바지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