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린 해부학자입니다 - 기린 덕후 소녀가 기린 박사가 되기까지의 치열하고도 행복한 여정
군지 메구 지음, 이재화 옮김, 최형선 감수 / 더숲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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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내가 해부학에 특별히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저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어두면 번역 공부에 도움이 될까 해서였다. 역시 들어보지 못했던 해부학에서 사용되는 낯선 용어가 많이 나왔지만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또 한가지 흥미를 끌었던 것은 보통 사람이라면 엄두도 못 낼 만큼 커다란 동물인 기린을 해부하는 학자가 여성이라고 해서 놀랐고 기대감으로 몰입하며 읽었다. 역시 읽어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만큼 재미있었다.

 


 저자 군지 메구는 어려서부터 동물을 좋아했는데 가장 좋아했던 동물이 기린이었다. 도쿄대 1학년 때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평생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고 결심한 후, 운명처럼 엔도 히데키 교수를 만나게 되면서 기린 연구가 시작된다. 열아홉 살에 처음으로 해부를 시작하며 지금까지 30마리의 기린을 해부하며 연구에 몰두해 온 10년의 기록이다. 아무리 기린이 좋다고 해도 기린의 사체를 해부하는 것은 별개일 것 같은데, 기린 연구자로 살아오면서 많은 동물과 기린과 함께 한 이야기에서 학문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맨 처음 해부를 하기 위한 과정에서 필요한 도구와 순서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준다. 먼저 동물원의 직원이 기린의 부고를 알리면 사체가 반입되고 해부를 하고 골격 표본 제작의 순서로 마무리된다.

 


 이 책을 읽다보니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가 떠올랐는데 기린을 해부한다니 얼마나 당찬 여성 과학자인지 비교할 수도 없다. 다 자란 기린은 키가 4~5미터에 무게는 800kg에서 1,200kg나 되는 특성상 몇 개의 부위로 나뉜 사체를 받는단다. 아무리 조각난 사체라도 그것을 옮기는 것은 중노동이 따로 없었다. 그리고 사체가 상하기 전에 해부를 하기 때문에 기린 부고가 오는 즉시 모든 약속을 취소하고 달려가야 한다.

 


 첫 해부를 위해 도쿄대 박물관 해부실에서 기린 니나를 마주한 군지는 망연자실한다. 겨울인데 해부실의 온도는 영상 10도다. 사체가 부패할 우려가 있으므로 난방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을 감수해야 하는 것도 기린 연구에 대한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첫 해부는 무력감만 남겨주었다. 교과서에서 배운 기린 몸의 구조와 근육 이름에 연연하다가 눈앞에 있는 기린의 몸을 제대로 관찰하지 못했다는 실수를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기린의 목뼈에 대해서 연구하기 시작한다.

 

 

<기린의 척추 구조>

 

 

 이 연구의 핵심은 기린의 경추 8개설이 맞느냐 아니냐이다. , 이미 나온 논문의 요점인 기린의 제1흉추는 원래 제 7경추이다.”는 내용을 증명하는 것이다. 여러 기린을 해부하는 과정에서 제1흉추가 움직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안고 해부를 거듭하다가 목과 몸통이 절단되지 않은 기린을 처음으로 해부하면서 어느 정도 확신을 얻는다. 하지만 더 확실한 증명을 얻기 위해 아오이의 새끼를 해부하고 CT스캐너를 이용하여 결국 밝혀낸다. 원래 포유류의 경추는 최소 2억년 전부터 7개로 알려졌다고 한다. 하지만 기린은 7개의 경추 아래에 있는 제1흉추가 목 운동의 거점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에 기능적으로는 ‘8번째 목뼈인 셈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저자는 이 결과를 논문으로 만들어 세상에 발표함으로써 일본학술진흥회 이큐시상을 수상하게 된다.

 


다 자란 기린의 목 길이는 평균 2미터라고 한다. 포유류는 경추가 7개로 정해졌는데 기린의 목은 어떻게 그렇게 길어진 것일까, 어떤 구조의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의문을 갖고 시작된 연구는 결실을 맺으며 기린 박사가 된다. 기린의 사체를 해부하고 표본을 만들고 하는 일련의 과정을 들여다보니 정말 좋아하지 않고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욱 더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와 태도가 무척 순수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하나의 장이 끝날 때마다 재미있는 읽을거리에서 해부를 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나 기린에 대한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들어있다. 기린 하면 한 가지 종류만 있는 줄 알았는데 4종류나 있다는 걸 알았다. 2016년 독일과 아프리카의 국제 연구 조직이 수많은 기린의 DNA를 채취해 유전자 특징을 조사해본 결과 4개의 집단으로 나눌 수 있었다고 한다. ‘그물무늬기린’, ‘마사이기린’, ‘남부기린’, ‘북부기린으로 일본의 동물원에서 사육 중인 기린은 앞의 두 종류뿐이라고 한다. 다음에 동물원에 갈 기회가 있다면 유심히 관찰해봐야겠다.

 

 

기린의 종류에 따라 무늬가 다르다.

 

 

 저자는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지식을 몸에 익히는 즐거움을 배웠다고 한다. 평범한 전업주부였던 어머니가 50세 정도에 문화센터에서 향 만들기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향의 역사에 대한 책을 읽고 나아가 전문적인 과학책까지 읽어나가더니 지금은 조향사가 되어 향 만들기를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기린을 좋아했던 자신은 기린 연구자가 되었다. 학자는 아니지만 학자와 같은 자세를 지닌 어머니가 연구자로 살아가는 중요한 기본기를 다져주었다고 하는 부분에서 뭉클한 감동이 일었다. 그리고 다소 엉뚱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하는 번역 공부는 기린을 해부하는 걸 새로 배우는 것보다는 훨씬 쉬운 일이지 않나, 그러니까 중단하지 말고 열심히 해보자. 는 생각 말이다. 그만큼 무언가 열심히 해 보고 싶다고 결심하게 하는 동기부여도 해 주는 이야기다. 저자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 가장 옳은 것이라고 했다. 어쩌면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열정적인 해부학자의 이야기를 통해서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자세와 태도를 점검해 보는 시간이 되리라 생각한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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