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엔 원년의 풋볼 (무선) 웅진지식하우스 일문학선집 시리즈 4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유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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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만나게 되어 설렜던 마음과 달리, 초반부터 참 어지간히도 잘 안 읽히는 책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노벨문학상 수상작이 그렇게 가볍게 술술 읽혀질 수 없겠지. 인간사에 얽히고설킨 문제를 드러내어 더 나은 삶을 구현하는 역할을 하는 문학의 힘을 생각해 볼 때 당연한 것이었다. 읽기를 다 마치고 작품 해설을 보니 역시나, ‘악명 높은 1장’이라고 했다.


 이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1960년 ‘일미안보조약’을 체결하려는 정부에 맞서 학생들과 시민들이 전국적인 반대 투쟁을 벌였던 해이며, 이듬해 정초까지의 기간으로 되어 있다.


나(화자)는 원래 추한 얼굴로 태어났는데, 길을 걷다가 두려움과 분노로 패닉 상태에 빠진 초등학생들이 던진 돌에 맞아 오른쪽 눈을 실명하였다. 이 사고에 대해 무엇 하나 이해할 수 없고, ‘기대’할 게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아내는 위스키를 달고 사는 알콜 중독자이다. 그리고 이 부부의 아이는 머리에 혹이 달린 채 태어난 백치다. 일란성 쌍둥이로 불리던 나의 친구는 엽기적인 모습을 하고 자살을 했다. 여기까지만 봐도 온통 고통으로 얼룩진 인간 군상을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이렇게 온통 ‘죽음의 냄새가 나는 것들에 완전히 둘러싸여’(P75)있었다.

 

 미국에서 방랑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동생 다카(다카시)는 형에게 시코쿠에서 ‘새 생활’을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그렇다면 형, 그것들을 떨쳐 버리고 삶의 자리로 올라와야 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죽음의 냄새가 형한테 옮겨갈 거야.”(p75)라고 한다. 이미 겁쟁이였던 예전의 동생이 아니다.


초반부터 작품의 분위기는 두려움과 수치심의 고통으로 사로잡혀 있다. “너는 꼭 쥐새끼 같다!”는 말을 마음속에서 떨칠 수가 없다. 꿈속에서조차 정화조 구덩이를 간절히 그리워 할 만큼 자기혐오와 수치심으로 똘똘 뭉쳐있다. 또 하나는 무기력이라고 할까. 맨 정신으로 살아갈 수 없는 아내를 보고 제지하지도 않는다. 포기하고 그대로 지켜보는 것 밖에는.

 

 시코쿠 고향 골짜기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이 ‘슈퍼마켓 천황’에게 빚을 지지 않은 이가 없었다. ‘슈퍼마켓 천황’은 골짜기 사람들의 부정적 감정이 잠재되어 있는 호칭이었다. 20년 전에 강제로 끌려와 벌채 노동을 했던 조선인들이 이제는 거꾸로 경제적 우위에 서게 된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역설적인 표현이었던 것이다.

 

 동생은 만엔 원년(1860년)의 증조부 동생과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S형의 죽음에 맞서 ‘슈퍼마켓 천황’을 축출하려 한다. 광기어린 영웅 심리로 자신을 동일시한다. 풋볼 팀을 구성하여 훈련을 시킨다. 폭동을 일으키기 위한 훈련이다. 군중을 선동하여 물건을 약탈하도록 유도한다. 하지만 군중의 ‘고통의 열망’을 이용하여 폭력을 동원하는 또 하나의 폭력이 어디 성공한 적이 있었던가. 이용만 당하고 폭동은 실패로 끝나며 고스란히 고통을 떠맡게 되는 이는 현지 주민들이다. 다시 비굴하게 고개를 숙인다.

 

 증조부의 동생은 우리 집안에서 보면 자신의 집을 부수고 불을 지른 최악의 미치광이였고, 혼자만 처형을 모면했다. S형은 반대로 조선인 부락의 습격 참가자 중 혼자만 살해당하는 역할이었다. 아버지는 중국에서 무슨 일인지 알 수도 없고 성과도 없는 일을 해서 재산과 생명을 잃은 아버지는 그 미치광이의 피를 이어받은 사람이었다. S형은 아버지를 통해 증조부의 동생과 같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 애는 내 자식이 아니라고 했다. 그 역할을 다시 다카시가 맡은 것이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는다.

 

 ‘못된 짓을 할 수도 없을 만큼 힘이 빠져버려서 결국 선량할 수밖에 없는 쇠약자’인 나는 다카의 풋볼 연습이 증조부님 동생이 청년들을 훈련시킨 것이 아니라 오로지 평화적인 목적으로 유용하게 쓰이기를 바랐지만, 골짜기 마을은 폭력으로 얼룩진다.

 

 또 하나의 감도는 분위기는 무기력하고 미약한 존재감이다. 이미 자기혐오와 수치심으로 가득한 사람은 주변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질 수가 없다. 마치 강 건너 불구경 하는듯한 심정이다. 이 골짜기에 뿌리를 내리려 하나 뿌리가 존재하지 않음을 안다. 동생 다카시는 교활한 연기를 하면서 형의 명의로 된 집과 토지를 팔아치웠고, 풋볼팀을 위한 기부금 명목으로 절반 이상을 빼앗아 갔다. 그것을 알고도 따지지도 못하는 체념과 무기력.

 

 동생의 포악한 생각을 읽은 나는 왜 그것을 저지하지 못하는가. 자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며 ‘외부 인간’이라고 치부한다. 자기만 깨끗하면 된다? 옳지 못한 일을 하려는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말리지 않고 그저 방관하는 자세야말로 ‘말기적인’일이 아닌가. ‘새 생활’이라는 명분 속에서 동생 다카시는 형수(아내)와 불륜을 저지른다. 미스테리로 남아 있던 누이동생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실토한다. 이 엄청난 일들이 너무도 초연하게 묘사된다. 기본적인 인간성마저 의심된다.

 

 반사회적인, 육친 형을 배신한 비양심적인 행위를 아무런 미안한 마음 없이 털어놓는 장면은 전율을 느낀다. 인간의 심리를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과연 인간에게 최소한의 선이 있는가싶다. 무질서의 극치. 동생의 포악과 폭력을 보고도 비겁하게 얕은 잠 속으로 도망치려 한다. 폭력을 당하고 또 폭력을 가하는 가해자가 된다. 누이동생에 대한 죄책감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죽음으로 갚는다. 나는 비로소 다카시의 죽음으로 동생의 아이를 가진 아내와 다시 ‘새 생활’을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결코 평범한 이야기가 아니어서 읽어내기 무척 힘들었지만, 읽기를 마친 지금, 뿌듯한 마음 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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