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찮지만 행복해 볼까 - 번역가 권남희 에세이집
권남희 지음 / 상상출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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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문학을 번역하고 있다는 권남희의 에세이를 만나게 되었다. 프로필 소개를 보고 알았는데 전에 읽었던 <츠바키 문구점>이 그녀가 번역한 작품이라고 해서 반가웠다. 포포가 문구점을 운영하면서 할머니에게 대필업을 물려받아 대필을 의뢰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이웃 사람들과 훈훈한 정을 주고받는 이야기여서 따듯하게 느껴졌었다.


  이 에세이는 그동안 일본문학을 번역하면서 만난 편집자, 일본 작가들의 이야기와 일상에 관한 여러 에피소드가 많이 들어있다. 웃음도 주었고 때로는 살짝 눈이 젖어드는 뭉클한 감동도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이야기로 시작하는데 왠지 번역가들은 그 언어권 작가와 친근감이 있는 것 같아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이것도 번역가들의 특권이 아닐까. 또 딸과 친구처럼 지내는 단출한 가족 이야기도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고 약간의 외로움도 느끼게 했다. 그리고 번역일이라는 게 먼발치로 바라보는 것처럼 그리 낭만적인 일은 아니구나 싶었다. 그녀는 근사한 서재도 없이 거실에서 책상을 두고 일을 한다고 했다. 물론 소박한 공간을 좋아해서 일 것이다. 자신은 번역가라는 호칭보다 번역하는 아줌마로 불리는 게 더 편하다고 했다. 거의 뿌리 깊은 집순이 라고. 게다가 앞 못 보는 애완견 나무를 돌보아야 해서 어지간한 일이 아니고서는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이미 한글을 독학으로 떼고 만화방을 다녔단다. 역시 어릴 때부터 활자와 친했어. 중학교 때부터 인생의 계획을 세우면서 마음을 다잡고 공부를 열심히 한 것 같다. 그때부터 번역을 생각했는지 그건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꿈과 계획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밀고 나가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를 추억하는 부분은 좀 먹먹하기도 했다. 왜 옛날 아버지들은 그렇게 자기밖에 몰랐을까 싶다. 시골에서 목욕탕과 여관을 운영할 정도였으면 집안 살림은 큰 걱정 없이 살았을 것 같다. 그런데 뼛속까지 부지런하고 뼛속까지 구두쇠인 일중독인데다 다혈질 성격 때문에 가족들을 평생 힘들게 했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가보다. 아무리 그렇게 힘들게 했더라도 가족은 가족이다. 이별의 순간이 가까워지면 그냥 그걸로 잊어버리고 안타까운 마음이 되는 건가 보다. 말년에는 와병 환자로 지내던 아버지를 어머니가 돌보는 게 너무 힘들어서 가까운 곳에 요양원 입소를 결정했는데 1시간 만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는다. 요양원 들어가는 것을 그렇게 싫어했다는데.


  좋아하는 일을 해서 평생 밥 먹고 산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로망일 것이다. 종일 책과 씨름하면서 번역을 하고... 멋진 일이기는 하다. 그런데 일 년에 한번쯤 34일 이내로 일본 여행 정도를 다녀올 수 있다고 해서 마음이 좀 짠해졌다. 왜냐하면 일거리는 계속 대기하고 있을 것이고 마감에 맞추려면 어디 돌아다니는 것은 제한적일 것이다. 그래서 정말 그 일이 좋고 밖에 돌아다니지 못하는 것을 감수할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이겠구나 싶었다. 나이 50에 국카스텐에 빠져 들다가 그들의 콘서트를 섭렵하는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단조로운 일상에 가끔은 에너지를 충전하는 것도 필요하겠지.


  예전에 사오정 시리즈가 유행인 적이 있었다. 어머니의 이야기로 추억의 사오정을 소환하는데 너무 웃겨서 몇 번을 읽었다. 웃다가 눈물이 나기도. 크게 웃을 일 없는 요즘이라 여기 소개해 본다.

엄마: (여기)공물(곡물) 파는 데는 없심니까?

노인: 동물이요?

엄마: , 공물요.

노인: 무슨 동물이요?

엄마: 공물이 공물이지 무슨 공물이 어데 있심니까.

노인: 동물도 종류가 있지. 뱀 같은 거요?

엄마: 콩 같은 거요.

노인: 곰 같은 걸 왜 여기서 찾아요!

  일에 충실하게 살아가던 그녀가 마스다 미리의 마음이 급해졌어, 아름다운 것을 모두 보고 싶어를 번역하면서는 그간의 굳은 마음이 변했단다. 더 늙기 전에 여행을 다녀오고 싶다는 일념으로 혼자서 용감하고 씩씩하게 패키지투어를 다닌 이야기란다. 그러고 나서 자신도 친구와 언감생심 꿈도 못 꾸던 동유럽 여행을 다녀온다. 한번 가보면 정말 반하게 되어있다. 여행이 여행을 부른다. 다시 열심히 일해서 장거리 여행 또 갈 거란다. 목표가 생기면 일도 더 열심히 할 거고 건강을 위해서 열심히 운동도 할 것이다. 여기에 소개된 책 중 제목만 알고 있던 유명한 작품이 많았다. 카모메 식당은 영화로도 알려져 있던데. 30년 가까이 번역에 시간을 보냈단다. 얼마나 긴 시간인가. 그런데 지난 세월을 생각해보면 정말 잠깐이다. 오랜 시간 일하면서 다듬어진 언어 속에 땀과 노력, 많은 감정의 숨결이 담긴 그녀의 작품을 읽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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