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복의 성자
아룬다티 로이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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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일에 싸인 신비의 나라로 여기던 인도의 이야기인데다 작가와 작품에 대한 평가가 워낙 호평이어서 궁금한 마음과 기대감으로 만나게 되었다. 결코 평범하다고 할 수 없는 주인공을 내세워 인도의 아픈 역사, 정치 현실을 놀랍도록 예리하게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주인공 안줌은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게 태어났는데 이런 제3의 성을 힌두어로 히즈라로 부른다고 한다. 자웅동체의 동물이 있다는 것은 들어보았지만 인간에게 그런 경우가 있다니. ‘불가촉천민에 해당하는 히즈라안줌이 인도의 역사, 종교, 정치상황의 소용돌이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서로 변화되어 가는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종교 때문에 분리된 역사가 있다는 것은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이토록 잔혹한 이야기가 들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작가의 분신인 듯한 건축학도 틸로를 비롯하여 다양한 계층의 인물들이 많이 나온다. 시체 안치소에서 일하다 잔혹한 폭도들에게 아버지를 잃고 그들에게 복수하려고 이슬람교도가 되어 사담 후세인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사담, 자본주의 제국과 인도와 미국의 국가 테러리즘, 모든 종류의 핵무기와 범죄 등 온갖 사회문제를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십년이 넘도록 단식투쟁을 하는 아자드 바르티야 박사 등 인도라는 나라를 이해하는데 생생한 역할을 하는 등장인물들이다.

 

 자하나라 베굼이 네 번째 아이를 낳았는데 아들이라는 산파의 말을 듣고 엄청 기뻐한다. 미리 준비해 두었던 이름 아프타브 라고 지어주고 이튿날 아침 찬찬히 아이의 몸을 살펴보던 베굼은 소스라치게 놀란다. 아들인 줄 알았던 아이의 몸에 남자와 여자의 성징이 함께 있었던 것이다. 처음엔 심장이 죄어들고 뼈가 재로 변하는 기분이 들더니 자신과 아기를 죽여 버릴까 하는 복잡한 마음까지 생긴다. 세상 대개의 것에는 암수가 정해져 있거늘. 참담한 심정이 된 베굼은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신께 기도를 올리면 여아의 성징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는다.

 

 다섯 살이 되자 학교에 들어가 일 년도 안 되어 쿠란을 거의 암송하고 아홉 살에는 고전음악과 전통 경음악을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지만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당하자 학교에 가는 것을 거부하게 된다. 또 미루고 미루었던 할례를 받아야 할 차례가 되자 베굼은 어쩔 수 없이 남편에게 고백을 하는데... 혼자서 감당해야 했던 악몽을 털어 놓으며 울음을 터뜨린다. 부부는 절실한 마음으로 의사를 찾아갔는데 봉합수술을 하고 약도 처방해 줄 수 있는 외과의사를 소개할 수도 있지만, 표면적인 것만이 아니라 히즈라의 성향은 사라지지 않을 거라 말을 듣는다. 지푸라기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비용을 마련하려는 부모의 노력과 달리 아프타브는 립스틱을 바르고 하이힐을 신은 여자의 모습에 매료되고 점점 여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꿈의 집이라는 의미의 콰브가로 불리는 하벨리(인도의 전통적인 저택)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면서 님모 고라크푸리와 친해진다. 여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과 여자가 되고 싶다는 아프타브와 달리 님모는 뭔가 세상 물정을 아는 듯한 말을 한다.

 

신이 왜 히즈라를 만들었는지 알아?”

아뇨, 왜 만들었는데요?”

일종의 실험이었어, 신은 행복할 수 없는 생물체를 만들어보기로 결심한 거야. 그래서 우리를 만들었지.”(P39)

 

 콰브가에서 사는 사람은 모두 행복하다고 여겼던 아프타브에게는 충격적인 말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는 행복한 사람이 없고 있다고 해도 가짜고 속임수 일 뿐이라니. 보통 사람들은 물가 상승, 자녀 입시, 남편의 폭력이나 힌두-이슬람 폭동, 인도-파키스탄 전쟁에 대한, 결국은 해결되는 외부적인 걱정이지만 히즈라들은 그것 말고도 극복해야 할 걱정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불행한 존재라는 것이다. 행복하다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못하고 열네 살이 되어서야 님모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는데. 키가 커지고 근육질이 되고, 더구나 여자가 되고 싶은 아프타브에게 치명적인 변성기가 찾아오자 자신이 혐오스럽고 두려운 마음이 된다. 삶의 의욕을 잃고 혼란스러운 아프타브는 열다섯 살이 되자 히즈라들의 공동체 꿈의 집을 뜻하는 콰브가로 들어가 우스타드 쿨숨 비의 제자가 되어 안줌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세월이 흘러 안줌은 델리에서 가장 유명한 히즈라가 되었고 버려진 아이 자이나브를 만나 엄마가 되고 싶다는 소망도 이루었다. 더 완벽하게 여자가 되고 싶어서 수술을 하고 후유증으로 두 개의 목소리를 갖게 되었지만 그렇게 콰브가에서 삼십 년 넘게 살다가 마흔 여섯이 되었을 때 그곳을 떠나겠다고 선언한다. 유치원생이 된 자이나브가 시름시름 앓게 되자 기도를 하러 아지메르에 갔다가 구자라트를 경유하게 되는데 구자라트의 폭동을 겪고 죽을 뻔했던 고비를 넘기고 돌아오지만 그 충격으로 딴 사람처럼 변하고 콰브가 식구들과 불협화음이 결심을 굳히게 한다.

 

늙은 새들은 어디에 가서 죽나요? 하늘에서 우리 머리 위로 돌처럼 떨어지나요? 길거리에서 새들의 시체가 우리 발부리에 걸리나요? 우리를 이 지구에 보낸 전지전능한 존재가 우리를 데려갈 적당한 방도를 마련해 놓았을까요?”(p16~17)

 

그녀는 묘지에서 나무처럼 살았다. 새벽이면 까마귀들을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박쥐들을 맞이했다. 해질녁엔 반대로 했다. 새벽과 저녁 사이엔 그녀의 높은 가지들에 흐릿한 형체로 앉아 있는 유령 독수리들과 교류했다. …… 사람들이 그녀를 서커스 없는 광대, 궁전 없는 여왕이라고 헐뜯을 때에도 그 상처가 그녀의 가지들 사이로 산들바람처럼 불어가게 했고, 살랑거리는 잎사귀들의 음악을 고통을 달래주는 진통제로 삼았다.(P13~14)

 

 돌아올 거라 믿었던 콰브가 식구의 생각과 달리 묘지에서 정착한다. 이맘에게 삶의 의미를 묻던 안줌은 황폐한 묘지에 살면서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데 이전과 달리 정치 상황이나 사회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오랜 염원을 실천하며 세상이 아무리 헐뜯고 상처를 주어도 산들바람을 음악처럼 여기고 고통을 나누며 살아간 것이다.

 

비루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그런 것처럼 일단 벼랑 끝에서 떨어지면 추락을 멈출 수 없어.”

그리고 우리는 추락하면서 역시 추락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매달리게 되지. 그 사실을 빨리 깨달을수록 좋아. 우리가 사는 여기 이곳, 우리가 보금자리로 삼은 이곳은 추락하는 사람들의 집이야. 여기엔 하키 카트(‘현실의 의미)가 없어. 이봐, 심지어 우리 자신조차도 현실이 아냐. 우린 진짜로 존재하는 게 아냐.”(P117~118)

 

 콰브가에 두고 온 자이나브를 키우며 행복했던 이야기를 들려주다가 울적해진 안줌이 자신은 엄마가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하자,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하냐고 반박하는 사담에게 다그치는 말이다. 아무것도 아닌, 없는 존재로 살아가는 자신의 정체성을 너무나도 적확하게 직시하는 안줌의 말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작가는 이렇게 철저하게 한 사람 한 사람 그 마음속을 꿰뚫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 한다. 죽을 것 같은 고통과 체념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도 어떤 연민과 동정을 보태지 않는다. 그 태연자약함이 더욱 마음을 아리게 한다. 이것은 조국의 현실을 아파하고 진실 그대로 알리려는 그녀만의 방식이며 내공이 아닐까 싶었다.

 

 안줌의 삶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한편 다른 쪽에서는 인도의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첨예한 대립 상황과 부패한 권력자들의 정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2002년 힌두교도가 수천 명의 무슬림을 학살한 구자라트 폭동은 인도 역사상 가장 잔혹했던 폭동이라고 한다. 대학 때 연극 연습에서 만난 친구였던 나가, 비플랍, 무사, 세 사람 모두 이 소설의 또 다른 중심인물인 틸로를 사랑하지만 틸로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무사이다. 이들은 분리 독립운동으로 들끓었던 카슈미르에서 재회한다. 카슈미르 분쟁은 영토 문제를 중심으로 하여, 종교 문제, 지역 패권 문제, 그리고 주권 관련 정치문제로서의 여러 가지 성격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정부군의 총에 맞은 아내와 어린 딸을 잃은 무사는 정부군에 맞서는 이슬람 전사가 되어 지하운동을 하며 쫓기는 신세이고, 정보국에서 일하는 비플랍과 신문 기자인 나가는 그 지역에서 근무 중이었다. 무사의 은밀한 연락을 받고 카슈미르에 오게 된 틸로는 위기에 빠지고 비플랍에게 구조 신호를 보내면서 이들의 운명은 뒤얽히게 되는데...

 

언젠가는 카슈미르도 그런 식으로 인도를 자폭하게 만들 거야. 그때쯤 너희는 공기총으로 우리 모두를,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전부 눈이 멀게 만들어버렸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눈이 성한 너희들은 너희가 우리에게 한 짓을 볼 수 있을 거야. 너희는 우리를 파괴하고 있는 게 아냐. 일으켜 세우고 있는 거지. 너희가 파괴하고 있는 건 너희들 자신이야. 쿠다 하피즈, 가슨 씨”(P567)

 

 어느 날 무사가 틸로의 셋방에 찾아왔다가 만난 비플랍에게 얘기하는 장면이다. 언제나 군인의 총 조준기 안에 들어있었던 카슈미르인 사람들의 억압적인 삶, 무고한 사람들을 잔혹하게 학살하고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않는 사람들, 그 역사적 현장을 자세히 알게 되어 참으로 마음이 무거워졌다. 파괴하려 할수록 민중은 일어선다는 것을 많은 역사를 통해 알 수 있지 않은가. 이제는 군부와 카슈미르인의 대립의 양상도 바뀌었는지 군중의 분노는 결국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을 무너뜨리겠다는 망상으로 몸담아왔던 일이 틀렸음을 비플랍은 인정하게 된다. 종교적인 신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리되고 또 방글라데시로 분열되었음에도 지구촌에서는 아직도 안타까운 종교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아룬다티 로이는 1997년 데뷔소설작은 것들의 신으로 인도 여성 작가로는 최초로 부커상을 받으며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고 한다. 상금과 인세를 NBA(나르마다강 보전운동)이라는 단체에 기부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을 만큼 환경운동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는 한편 정치에 대한 관심과 인권을 옹호하는 다방면의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한 노력의 시간과 신념이 담긴 이 작품을 통해서 인도의 슬픈 역사와 민중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남자도 여자도 아무것도 아니었던 안줌은 세상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여성정체성으로 잔나트 게스트하우스에서 꿈을 펼쳐 나갔다.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된 사람들을 편안히 쉴 수 있게 보금자리를 내어주고 매춘부라는 이유로 냉대를 받던 여자의 시신을 받아들여 장례를 치러주기도 한다. 그곳은 힘없고 가엾은 타인과 자신을 위한 파라다이스였던 것이다. 틸로는 아이를 원한 적이 없었지만 버려진 아이를 유괴하여 미스 제빈의 엄마가 되어 잔나트 게스트하우스에 들어온다. 엄마에게 버림받은 아픔이 아이를 원하게 했을까. 자신도 모르게 한 행동에 놀랍고 의아해 한다.

 

  ‘지복의 성자이며 위로받지 못한 자들의 성인사르마드를 의지했던 안줌은 자나이브와 우다야 제빈의 엄마만이 아니라 세상에서 환영받지 못한 모든 이들의 어머니로 거듭난 것이 아닐까. 억압에 굴종하지 않고 자유와 사랑을 향한 자신의 길을 나아갔던 것이다. 히즈라였던 안줌과 틸로의 만남이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었다. 아픈 상처가 없는 사람들이 어디 있을까. 서로 함께 도우며 살아가는 세상, 그것이 자유와 평화로 나아가는 길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로 느껴졌다. 보석 같은, 거대한 폭풍 같은 소설, 물에 풀어놓은 잉크처럼 느껴지는, 대담하고 충격적일 만큼 아름다운 작품이라는 언론의 호평이 더없이 잘 어울린다는 것을 깊이 공감하고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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