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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4
메리 셸리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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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아마도 누구나 읽었다고 착각하는 고전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급진 정치 사상가인 아버지와 유명한 여성주의자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메리 셸리(Mary Shelley 1797~1851)는 꽤나 조숙했던 듯 싶다.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계모 밑에서 차별을 받으며 자란 그녀는 제대로 된 교육은 못 받았지만 아버지 서재에서 수많은 장서를 독파하며 정신적으로 성장한다. 17살에 아버지의 제자인 퍼시 셸리와 사랑에 빠져 프랑스로 도피, 이후 8년에 걸친 가난한 유랑 생활을 하게 된다. 


<프랑켄슈타인>은 메리가 유럽 대륙을 여행하는 중에 쓴 작품으로 1818년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생후 며칠만에 어머니를 잃은 것을 시작으로 그녀의 삶엔 참으로 많은 죽음이 있었는데, 5명의 자녀를 낳았지만 그 중 넷을 잃었고 동복언니와 남편의 전처 자살, 1822년에는 남편 퍼시마저 익사했으니, 아무리 비범한 메리 셸리였다해도 견디기 힘든 삶이었을 듯 싶다.


<프랑켄슈타인>은 북극을 탐험하는 로버트 월턴이 그의 누이에게 보낸 편지 형식으로 시작된다. 월턴은 북극으로 가는 과정에서 우연히 프랑켄슈타인을 구조하게 되고 그로부터 '불가능하다고 믿어왔을 그런 일'(p.38)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은 제네바 명문가의 아들로서 어린 시절부터 신비한 자연과학에 관심을 보인다. 그는 독일의 잉골슈타트 대학에 진학하여 자연철학과 화학을 공부하면서 점점 과학의 세계에 빠져든다. 특히 생명을 가진 동물의 신체 구조에 관심을 가지며 '대체 어디서 생명의 원리가 발생하는 것일까?(p.63) 라는 '하느님의 신비로운 섭리로 간주되어왔던' 영역에 손을 뻗는다.

 

그는 '초자연적인 열정'을 가지고 인간의 신체에 일어나는 모든 것을 관찰한다. 해부는 물론 보통 인간이 견디기 힘든 죽음 후 부패 과정 등을 면밀히 관찰함으로써 삶과 죽음의 변화를 탐구한다. 그리고 그런 노력 끝에 그는 마침내 '개체 발생과 생명의 원인', 즉 '무생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능력'을 갖게 된다. 

시체안치소, 도살장, 해부실에서 재료를 조달받아 그는 '인간 창조' 연구에 착수한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의 끝자락인 '11월의 어느 황량한 날' 드디어 2.5미터의 거대한 피조물이 탄생한다. 그러나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이 특별히 선별한 신체 부위와 장기로 만든 것은 인간이 아닌 괴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경악한다. 


아름다움이라니! 하느님, 맙소사! 그 누런 살갗은 그 아래 비치는 근육과 혈관을 제대로 가리지도 못했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흑발은 출렁거렸고 이빨은 진주처럼 희었지만, 이런 화려한 외모는 허여멀건 눈구멍과 별로 색깔 차이가 없는 희번득거리는 두 눈, 쭈글쭈글한 얼굴 살갗, 그리고 일자로 다문 시커먼 입술과 대조되어 오히려 더 끔찍해 보일 뿐이었다. (p.72)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결과물의 흉칙함에 혐오와 공포를 느낀 프랑켄슈타인은 실험실을 뛰쳐 나온다. 자신이 창조한 괴물을 그대로 놔둔 채...

그는 충격으로 인해 신경성 열병을 앓게 되고 가족들이 있는 고향 제네바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그러나 아버지로부터 날아온 편지는 자신이 만든 결과에 책임지지 않은 프랑켄슈타인 비극의 시작을 알리며 불행은 끝까지 그를 놔주지 않는다. 


프랑켄슈타인은 마음의 치유를 위해 가족과 떠난 여행에서 괴물과 만나게 된다. 이때 괴물이 자신의 절절한 사연을 프랑켄슈타인에게 쏟아내는데,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다. (2권 3장~8장)

괴물은 2.5미터의 기괴한 형상이지만 지적 능력은 어린 아이와 같다. 그는 처음 깨어났을 때의 느낌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불쌍하고 힘없고 가련한 흉물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분간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온몸에서 느껴지는 고통때문에 주저앉아 흐느꼈다.' (p.137)


괴물은 정처없이 다니다 발견한 독일의 어느 마을, 오두막 옆 축사에 숨어 살면서 사람들의 대화를 들으며 스스로 말과 글을 배우고 지식을 습득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인간들이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알게 되고, 인간들의 '행위에 영향을 미친 동기들'까지 파악하면서 세상을 조금씩 배워나간다. 괴물은 오두막 가족들이 서로를 사랑하고 의지하는 모습을 보며 자신도 그런 사랑을 받고 싶다고 느낀다. 그러나 물에 비친 자신의 추한 외모, 사람과는 다른 본성, 친구도 재산도 없을 뿐더러 무엇보다 탄생과 창조주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음에 좌절한다.

'나는 지상의 한 점 얼룩 같은 괴물일까?' (p.160) '내 친구와 친척들은 어디에 있는가?'(p.161)

세상에 대해 알아 갈수록 슬픔은 더욱 커지고 자신이 '얼마나 비참한 추방자인지'를 깨닫게 될 뿐이다. 


사실 괴물은 추악한 외모와는 달리 순수하고 여린 마음의 소유자이다. 미덕을 사랑하고 악을 혐오하며 사악함과 덕성의 양면성을 가진 인간의 모습에 놀라기도 한다. 괴물은 이런 선한 마음이 자신의 추한 외모를 덮어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어느 날 오두막 가족 앞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만 현실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로부터 분노와 멸시, 폭행을 당하고 쫓겨난 괴물은 자신을 만든 창조자를 저주하며 악의 존재로 거듭나게 된다


때묻지 않은 어린아이 같았던 괴물이 화목한 한 가족을 보며 사랑과 연민을 갈구하고 외로움을 느껴 조심스럽게 다가가지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추한 외모로 인해 격렬하게 거부당하는 모습은 슬프다. 이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로 외롭게 살아가야하며 자신을 창조한 자에게도 거부를 당하는 운명. 이런 괴물의 마음 속에 남는 건 저주와 복수뿐이지 않을까...


프랑켄슈타인은 무에서 생명만을 만들어냈을 뿐 자신의 피조물에 책임을 지지 않았다. 사람으로 치자면 자식을 낳기만 했지 그 자식이 온전한 한 인간으로 자라도록 부모로서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이다. 프랑켄슈타인의 가장 큰 실수는 자신의 피조물이 감정을 지니고, 자신의 삶을 소중히 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그 누구보다 갖고 싶어하는 하나의 생명을 지닌 존재였다는 것을 간과한데 있다고 생각한다.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만들어 그것을 방치했다. 그에겐 그 흔한 이름조차 없다. 그 결과 남은 건 비극뿐이었다.

지금은 어떤가...현대의 인간이 무책임하게 만들어내고 있는 괴물은 무엇인가...

사람마다 여러 가지 대답이 나오겠지만, 나는 재활용 분리 수거장에 흉물스럽게 쌓여있는 플라스틱, 비닐, 스티로폼이 가끔 괴물로 보인다. 쉽게 쓰고 버리지만 수명은 500년인 플라스틱들이 프랑켄슈타인의 지적 욕망으로 인해 만들어졌지만 그 흉물스러움에 바로 버림받은 괴물과 겹쳐 보이는 건 나뿐일지 궁금하다. 


댓글(19) 먼댓글(0) 좋아요(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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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10-01 15:0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거 다시 읽어야겠어요. 읽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왠지 다시 읽으면 전혀 새로울 거 같은 작품! ㅋ

coolcat329 2021-10-01 15:11   좋아요 3 | URL
저는 늘 지킬 박사와 프랑켄슈타인이 헷갈렸는데 이번에 확실히 알았습니다!

Falstaff 2021-10-01 15:23   좋아요 5 | URL
제 생각엔
프랑켄슈타인 >>>>>>>> 지킬 하이드
셸리에 비하면 스티븐슨은 영혼이 읎어요, 영혼이. ㅋㅋㅋ

coolcat329 2021-10-01 21:20   좋아요 2 | URL
폴스타프님 ~저 지킬박사도 있는데 내년에 읽어보겠습니다! 😊

Falstaff 2021-10-01 21:25   좋아요 2 | URL
지킬, 하이드는 뭐 안 읽으셔도.... ㅋㅋㅋ
아우, 전 짜증만 나던데요. ^^;;;

coolcat329 2021-10-01 21:42   좋아요 1 | URL
앗 그 정도인가요? 읽을 책 덜면 저는 좋습니당! 감사합니다 ㅋㅋ

scott 2021-10-01 16:2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쿨켓님 말씀처럼
우리가 필요해서 쓰다 버린 모든것들이 언젠가 부메랑처럼 흉몰스러운 괴물
전염병, 기후 변화등으로 돌아 오겠죠
시선으로 분석한 프랑켄슈타인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들어서 좋습니다 ^ㅅ^

coolcat329 2021-10-01 21:08   좋아요 2 | URL
항상 더!더!더!를 외치는 인간이 괴물같기도 해요.

붕붕툐툐 2021-10-01 17:3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진짜 이 책 너무 잼나게 읽었어요. 프랑켄슈타인 나빠요~~

coolcat329 2021-10-01 21:12   좋아요 3 | URL
2장 괴물의 육성으로 들려주는 절절한 이야기가 가장 재미있고 인상깊었네요.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의 잘못을 너무 늦게 깨달았죠.ㅠ

새파랑 2021-10-01 17:5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프랑켄슈타인 저도 몇달전에 읽었는데 프랑켄슈타인이 과물이 아니었고 박사였다는 사실에 충격받았던 😅

정말 괴물의 이름도 없었다는데 안타깝다는 생각이 드네요 ㅜㅜ

coolcat329 2021-10-01 21:14   좋아요 3 | URL
200년 넘게 가장 유명한 괴물 중 하난데, 이름이 없어요. ㅠ

mini74 2021-10-01 18:1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은줄 착각했던 책, 아이들용이 아니더군요. 괴물에 감정이입이 돼서 슬펐어요 ㅠㅠ

coolcat329 2021-10-01 21:14   좋아요 2 | URL
2권 괴물의 절절한 이야기가 참 설득력이 있죠?

미미 2021-10-01 18:3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말씀대로 왠지 많이 알려진 캐릭터라서 읽기까지 망설여졌으나 읽으니 여러모로 신선하고 놀라웠던 작품이예요.
그런 의미로 드라큐라도 재밌을것 같고요ㅎㅎ🙄😆

coolcat329 2021-10-01 21:16   좋아요 3 | URL
하하 저는 지킬박사랑 너무 헷갈려서 확실히 하려고 읽었는데 참 청소년부터 어른까지 읽어도 좋을 이야기네요.

드라큐라! 역시 읽은 걸로 착각하는 이야기죠!ㅋㅋ

막시무스 2021-10-01 19:2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어린시절 봤던 만화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고전집에 있어도 시큰둥했는데 생각보다 엄청 철학적이네요!ㅎ 저도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이름인줄 알았던 1인입니다! 즐건 저녁시간되십시요!

coolcat329 2021-10-01 21:19   좋아요 3 | URL
작품해설에 역자가 B급 영화에 나오는 관자놀이에 나사못박힌 괴물은 잊으라고 합니다. 그 고정된 이미지가 이 책의 풍부한 문학성을 가린다구요 ㅎㅎ
근데 그 이미지가 너무 강렬해서 자꾸 떠오르네요.

막시무스님도 즐거운 주말 되세요!

초딩 2021-10-03 13: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ㅜㅜ 정말 괴물의 오두막 씬은 마음 아파요
최근에 영어 동화로 한 번 들어 봤는데
그것도 좋았습니다 :-)
즐거운 연휴 되세요~
 
비밀요원 대산세계문학총서 53
조셉 콘라드 지음, 왕은철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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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요원 The Secret Agent>은 <암흑의 핵심>(1899),<로드 짐>(1900)에 이어 세 번째로 읽은 조지프 콘래드(1857~1924)의 소설이다. 모두 다 콘래드의 대표작이지만 앞의 두 소설이 그의 선원 생활의 경험이 녹아있는 작품인데 반해, 1907년에 쓰여진 이 소설은 영국에서 실제로 발생한 그리니치 천문대 폭파 미수 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쓴 소설로 비밀요원과 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근대 사회를 향한 콘래드의 냉소적인 시각과 비판을 엿볼 수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아돌프 벌록. 그는 런던 소호에서 작고 누추한 가게를 운영하며 아내 위니와 장모, 조금 모자란 처남 스티비와 함께 살고 있다. 집안의 가장으로서 자신의 어머니와 남동생을 부양해야 했던 위니는 애정은 없지만 경제적으로 자신의 가족을 책임질 수 있는 벌록과 결혼을 한다. 위니는 남편이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려고 하지 않고, 그저 조금 모자란 남동생이 남편의 눈 밖에 나지 않을까 늘 전전긍긍한다. 돌아간 아버지로부터 '등신'취급 받으며 맞으며 자랐던 동생은 위니에게 자식과도 같은 존재이다. 그렇기에 위니와 그녀의 어머니는 벌록이 스티비에게 별 관심이 없어도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할 뿐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벌록은 러시아 대사관의 스파이이다. 또한 영국 경찰과도 은밀히 연결되어 있는 이중 첩자이다. 그가 운영하는 가게는 자신의 신분을 숨기기 위한 수단일 뿐이고, 이곳은 나태한 무정부주의자들이 모여서 탁상공론을 벌이는 아지트이기도 하다.  

어느 날 벌록은 러시아 대사관으로부터 호출을 받고 일등 서기관 블라디미르로부터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 폭탄 테러를 벌이라는 명령을 받는다. 폭탄 테러가 발생하면 그 혐의는 급진적인 무정부주의자들에게 돌아갈 것임을 파악한 러시아 대사관은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한 곳을 공격하여 '파괴적 잔인함'을 보여줌으로써 사회에 불안을 조장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이에 벌록은 당황하지만, 앞으로 대사관으로부터 무능력한 요원으로 낙인찍혀 월급도 못받게 될까봐 걱정, 깊은 절망에 빠진다. 

그리고 한 달 후 그리니치 공원에서 엄청난 위력의 폭파 사건이 일어난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지만 이야기는 시간 순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블라디미르의 지시를 받고 고민하는 벌록의 모습 다음으로 이어지는 4장에서 이미 그리니치 천문대 폭파 미수 사건이 일어난 후로 장면이 바뀌는데, 독자로서 폭파 사건이 어떤 과정에서 일어나게 됐는지 기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기 보다는 폭탄을 만든 교수(professor)가 나오고, 교수를 늘 감시하고 있는 특수범죄 수사부 히트 반장, 그의 상관인 부국장 등이 나오면서 이 사건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의 행동과 심리에 초점이 맞춰 이야기는 심도있게 전개된다. 


<비밀 요원>은 정치 스파이 소설이다. 그러나 숨막히는 첩보원의 활약, 음모, 국가 간의 암투 등 전형적인 스파이 소설의 스릴을 기대한다면 이 소설은 지루할 수 있다. 

우선 러시아 대사관과 영국 경찰 양쪽에 발을 걸치고 있는 이중 스파이 벌록만 보아도 그 환상이 깨진다. 스파이의 대명사 제임스 본드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보통 스파이는 잘생긴 얼굴에 키도 크며 날렵한 이미지로 그려진다. 스파이 소설 작가들은 자신의 주인공을 아주 미남은 아니더라도 어딘지 쓸쓸함이 느껴진다거나 알 수 없는 매력을 지닌 독자가 좋아할 만한 인물로 만든다. 그러나 콘래드는 참 냉정하면서도 깐깐한 작가이다. 


벌록은 '침대에서 하루 종일 빈둥거린 것 같은 분위기', '살찐 돼지', '예기치 않게 천하고, 비대하고, 뻔뻔스러울 정도로 우둔하게 생긴', '대금 청구서를 갖고 찾아온 배관공', '사기적인 게으름과 무능력의 화신' 등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매력적인 스파이의 이미지와는 극단적으로 다른 인물로 묘사된다. 국제적으로 활약하는 스파이가 어렵게 입수한 비밀 문서를 건네는 것이 아닌, 자신의 신분을 감추기 위해 차린 그렇고 그런 가게에서 남자 손님들에게 외설스러운 사진을 은밀히 건네는 뚱뚱하고 땅딸한 스파이라니...절로 헛웃음이 나온다.


이런 벌록의 집에 모이는 무정부주의자들은 또 어떤가. 작품해설에서 역자 왕은철은 이들의 모습을 '그로테스크'하다고 말한다. 모임의 전단을 만드는 일 외에 여자 꼬시는 일이 전문인 전직 의대생 오시폰, 귀부인의 후원을 받으며 현실과 동떨어진 낙관론을 주장하는 가출옥한 미케일리스, 테러리스트로 이름은 알려져 있으나 직접 행동은 하지 않는 입만 거친 선동가 늙은이 칼 윤트가 이 소설에서 희극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무정부주의자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서로를 무시, 혐오하며 생활은 게으르고, 하나같이 경제적인 도움은 여자들에게 받는데 이런 모습들은 끈끈한 형제애와 투철한 의지로 똘똘 뭉친 전형적인 혁명가들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또한 이들 무정부주의자들과 반대편에 있는 경찰도 작가 콘래드는 비판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벌록이 러시아 스파이임을 알면서도 그것을 숨기고 그로부터 얻은 정보를 이용해 직장에서 승승장구해온 히트 반장, 미케일리스의 사상에 깊은 인상을 받고 그를 후원하고 있는 귀부인의 반감을 사지 않기 위해 폭탄 테러가 미케일리스와 연관이 없음을 주장, 미케일리스를 범인으로 의심하는 히트 반장과 대립하는 부국장이 그들이다. 이들에게 공직자로서 직업윤리는 없다. 다만 자신들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는 개인적인 욕심만 있을 뿐이고, 이런 경찰의 속성과 범죄자의 속성은 '똑같은 기계에서 나온 생산품이나 다름없다'(p.113)고 작가는 말한다. 


<비밀 요원>에서 벌록 못지 않게 중요한 인물은 아내 위니이다. 이 소설은 위에서 말했듯이 시간순으로 전개되지 않는데, 8장부터는 다시 폭파 사건 전으로 돌아가 벌록 가정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위니는 사랑하는 남자가 있었음에도 몸이 불편한 어머니와 약간 모자란 남동생을 생각해 경제력이 있다고 생각한 벌록과 결혼한 여자다. 그녀는 '가슴이 풍만하고 엉덩이가 큰' 매력적인 여자로 '속을 헤아리기 힘든 무관심한 표정',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침묵이 주는 자극적인 매력' 등으로 묘사된다. 그녀는 '사물의 내면을 눈여겨보지 않는 것을 자신의 철학' 삼으며 감정의 기복이 없고, '세상일이란 너무 깊이 들여다볼 가치가 없다'(p.208)고 생각한다. 

위니는 벌록에게 아내로서 의무에 충실할 뿐 어떤 관심과 애정을 보이질 않는다. '그녀의 유일한 관심은 스티비의 행복'일 뿐이다. 그러나 벌록은 자신이 사랑 받는다고 생각한다. 

매사에 깊이 따지고 드는 성격이 아닌 과묵하지만 매력적인 여자, 위니는 이중생활을 하는 벌록에겐 최고의 위장 수단이었을 것이다

이렇듯 서로의 이해관계에 의해 맺어진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당연히 물과 기름처럼 겉돌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로에 대한 무관심과 몰이해는 결국 폭탄 테러라는 예기치 않은 사건과 얽혀 엄청난 비극으로 치닫게 되는데, 작가 콘래드는 '냉정하고 객관적인 거리를 지키며 시종일관 아이러니컬한 방식으로 내러티브를 전개'(p.385 작품해설)하기에 이 모든 사건이 비장하고 슬프게 다가오지 않고 희극적이며 당연한 결론으로 독자에게도 다가온다. 


역자해설에서 <비밀 요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러니가 지배하는 작품으로 '아이러니의 방앗간'이라고 설명한다. 

작가 콘래드는 작가의 말에서 "이 소재를 아이러니컬하게 다루는 길만이 내가 동정심이나 경멸감을 갖고 얘기해야 한다고 느꼈던 모든 것들을 제대로 얘기할 수 있는 길이라고 믿었다"(p.371 작가의 말)고 밝힌다.


지금까지 읽은 콘래드의 세 작품에 모두 별5개를 주었지만, 재미 면에서는 <비밀 요원>이 최고였다. 무엇보다 거리를 둔 냉정한 내러티브와 서술방식이 <비밀 요원>을 좀 더 품격있는 스파이 소설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벌록이 폭탄 테러를 일으키라는 지시를 받은 후 과정이 시간 순으로 전개되지 않고 독자도 모르게 폭탄이 그 엄청난 파괴력으로 터져버린 상황은 독자로서 굉장한 흥미를 갖게 한다. 그리고 등장하는 여런 인물들의 심리묘사와 그로 인해 소설 전체에 일관되게 흐르는 아이러니는 이 소설의 최고 매력이다. 

'<비밀 요원>은 콘래드의 소설 중 가장 완벽하게 짜여진 소설'이라는 역자 왕은철의 말은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콘래드의 소설이 새로 번역되어 나오길 바란다.



영화와 미니 시리즈로 극화된 <비밀 요원> 

이 외에도 다수.


히치콕 <Sabotage>(1936)





BBC TV Series (2016)







크리스토퍼 햄튼 감독 영화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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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9-23 17: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이거 읽으셨구나. 이 작품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ㅠㅠ

coolcat329 2021-09-23 21:18   좋아요 1 | URL
아흑 참 이 세상의 부조리 불합리 제대로 보여주죠 ㅠ

새파랑 2021-09-23 17:5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와우 최고라니 ㅋ 게다가 대산문학이네요. 영화도 많이 제작되었군요. 이책 찜~!@

coolcat329 2021-09-23 21:19   좋아요 3 | URL
저 세 작품 중 제일 잘 읽혔습니다. ㅋㅋ 일단 말로가 안 나와 좀 편했습니다. ㅎ

scott 2021-09-23 17:5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콘라드 이 작품 많이 좋아합니다 .🖐^^

coolcat329 2021-09-23 21:20   좋아요 2 | URL
존 르 카레 좋아하시는 스캇님 당연히 그러셔야겠죠?!

페넬로페 2021-09-23 21: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직 조셉 콘라드 작가의 작품을 읽지 않았는데 차례로 읽어야겠어요^^
이 작품이 재미도 있고 시대에 대한 비판도 함께 들어 있어 더 의미가 클 듯 해요^^

coolcat329 2021-09-23 21:25   좋아요 2 | URL
네~콘래드 작품 중편인 <어둠의 심연> 으로 출발해 보셔요~^^

han22598 2021-09-24 06: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번역가 이름은 아는 분인데, 작가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네요. ㅋㅋㅋ 역시나 미지의 세계는 끝이 없네요..하지만 기뻐요 ^^ 이 책도 장바구니에 담아둬야겠어요 ㅎㅎ

coolcat329 2021-09-24 06:57   좋아요 1 | URL
특히 이 책은 번역가가 왕은철님이라 더 좋네요~

레삭매냐 2021-09-24 1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오 저도 이 책 읽어 보려고
수배해 두었는데 어디에 두었는지
도 모르겠네요...

비비씨 드라마가 땡기네요.

coolcat329 2021-09-24 11:59   좋아요 1 | URL
찾아보니 영화 드라마로 참 많이 만들어졌더라고요.
이 참에 책정리하셔서 찾으세요 ㅎㅎ

얄라알라 2021-09-24 20: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항상, coolcat님 그리고 다른 플친님들 멋진 페이퍼 읽으며 느끼지만, 그래서 ˝직접 읽어야˝ 하나봅니다. 저는 조셉 콘라드를 읽어본 적도 없이, 그 서구중심 시선 어쩌구 하는 비판만 기억하는지라, 제대로 읽을 준비조차 안 갖추고 있었는데 coolcat님께서 하나하나 더 깊이 들어가주시니, 반성됩니다^^

coolcat329 2021-09-25 08:10   좋아요 1 | URL
북사랑님은 건강, 음식, 산 관련 책 많이 읽으시니 저야말로 북사랑님 책 보며 좋은 정보 많이 얻습니다. ^^

얄라알라 2021-09-24 20: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아이러니의 ....˝ ...에 올 단어들 치고는 ‘방앗간‘은 굉장히 생소하네요^^? 방앗간은 어떤 곳인지? 뭐지? 혼자 막 상상하게 만듭니다. ^^

coolcat329 2021-09-25 08:11   좋아요 1 | URL
그쵸? ㅋ 작품해설에서 어빙 하우라는 사람이 이 책을 ‘아이러니의 방앗간‘이라고 했대요. ㅎ
저는 아이러니의 보고라고 할까 하다가 그냥 방앗간으로 했네요 ㅋ
 
밤의 여행자들 오늘의 젊은 작가 3
윤고은 지음 / 민음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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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윤고은 작가의 <밤의 여행자들>(The Disaster Tourist) 이 영국 추리작가 협회(The Crime Writers Association)에서 주는 추리문학상인 대거(Dagger)상을 번역추리소설 부문(Crime Fiction in Translation Dagger)에서 수상했다는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 

한강 작가가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받았을 때보다 더 기뻤다. 왜냐하면 한국의 장르문학은 영미권,유럽,일본에 비해 국내 시장도 훨씬 작고 기성문단에 비해 제대로 대접도 못 받아왔기 때문이다. 물론 국내 장르문학도 나날이 성장하고 있고, 두터운 매니아 층을 형성,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훌륭한 작가들도 있지만, 영미권, 일본 추리,범죄소설과 비교했을 때 그 기반이 아직은 탄탄하지 못한건 사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영어권의 대표적인 추리문학상인 대거상을 아시아 최초로 윤고은 작가가 받았으니 얼마나 놀라고 자랑스러웠는지 모른다. 


재난이 없는 도시는 없었다. 재난은 우울증 같은 거라 어디에든 잠재했다. 자극이 임계점을 넘으면 그 우울증이 곪아 터지기도 하지만, 용케 숨어 한평생을 마무리하는 경우도 있다. (p.12)


<밤의 여행자들>은 재난 지역을 여행한다는 설정이 매우 특이한 소설이다. 재난으로 폐허가 된 지역을 관광하는 상품을 개발하는 여행사 '정글'의 여행 프로그래머 고요나. 

그녀는 10년 넘게 재난 지역을 물색, 그것을 상품화하는 일을 하면서 자신의 입지를 굳혀왔다. 그러나 최근들어 그동안 하지 않았던 고객 응대같은 일들이 넘어오면서 그녀는 조금씩 불안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엘리베이터에서 상사인 김조광 팀장에게 성추행을 당하게 되고 본격적으로 위기를 느낀다. 이 김조광이라는 팀장은 한물 간 퇴출위기의 직원들만 골라 성추행을 한다고 소문이 나있기 때문. 

이런 식으로 계속 김팀장에게 끌려다닐 수는 없다는 생각에 요나는 결국 회사에 사표를 내는데, 뜻밖에도 팀장은 사료를 수리하지 않는다. 대신 한 달 간의 휴가를 줄테니 출장이라고 생각하고 회사가 검토 중인 퇴출 직전의 여행 상품 5개 중 하나를 골라 다녀온 후 보고서를 올리라고 제안한다. 


요나가 고른 상품은 '사막의 싱크홀'이라는 가장 비싼 5박 6일짜리 상품. 베트남 남부 해안 도시 판티엣에서 배를 타고 30분 정도 달려야 갈 수 있는 제주도만 한 섬, '무이'가 목적지이다. 

요나는 다른 관광객들과 여행하면서 전략적이지도 않고 재난 여행같지 않게 무료하기만한 이 상품이 왜 구조조정의 대상인지 알 것 같다. 사막에 있는 싱크홀은 물이 들어차 호수로 변해 재난의 장소라기 보다는 슬픈 사연만을 담고 있는 곳일 뿐이고, 다음 날 간 화산은 말을 안 하면 화산인 줄도 모를 정도로 시시하다. 요나는 직접 재난 여행을 경험하면서 그동안 자신이 생각하지 못했던 여행의 다른 면을 보게 된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떠나는 엿새째 아침, 한국행 비행기를 타러 공항으로 가는 열차 안에서 요나는 화장실이 급해 다른 칸 화장실을 이용하는데, 이 열차는 중간에 분리되면서 두 노선으로 운행되는 열차였던 것! 요나는 일행으로부터 낙오되고 지갑과 여권도 없는 재난을 방불케 하는 상황에서 우여곡절 끝에 다시 자신이 묶었던 리조트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다 요나가 여행사 직원임을 알게 된 매니저는 요나에게 기상천외한 제안을 하게 되고, 요나는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그저 이 모든 것이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 보려는 회사의 테스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자신도 모르게 엄청난 일에 휘말리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진실과 마주치게 되는 요나...


재난 지역을 여행하는 사람의 심리는 무엇일까?

일단 여행자들은 재난 지역의 처참함에 충격을 받고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동정과 연민, 더 나아가 불편함을 느낀다. 그리고 이런 모든 감정은 '내 삶에 대한 감사'와 '이 상황에서도 나는 살아남았다는 우월감'으로 이어진다. 여행을 통해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안전했다는 이기적인 위안'(p.61)을 느끼고 돌아와 더 열심히 살아가는 힘을 얻는다는 것이다. 


남의 비극과 불행이 상품으로 둔갑하여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그 심리를 이용하여 돈을 버는 여행사 '정글'은 그야말로 자본의 힘으로 움직이는 밀림 그 자체이다. 그 속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는 요나도 그저 이윤 창출의 도구일 뿐이다. 

소설에는 '파울','폴'이라는 실체를 알 수 없지만 뒤에서 모든 것을 조종하고 움직이는 절대적 존재가 나온다. 작가는 이 정체를 밝히지 않지만 그래도 우리는 알 수 있다. 이 세상을 움직이는 자본주의의 보이지 않는 그 무서운 힘을.

자본주의는 돈을 끌어 모을 수 있다면 그 어떤 쓸모없는 것이라도 쓸모있게 만든다. 이 점이 참 무서운 부분인데, 소설 속에서 이 점을 어떻게 형상화했는지 참 끔찍하지만 말할 수 없다. 

자본 앞에서는 뭐든지 쓸모가 있고 누구든지 자신도 모르게 어떤 역할을 맡는다. 

실체를 알 수 없지만 실체를 알고 저항을 하면 그 댓가는 끔찍하다.

 

<밤의 여행자들>은 거대한 자본의 부속품으로 살아가는 인간들의 운명과 그 운명에 맞서는 인간은 또 어떠한 운명을 맞게 되는지 보여준다. 

이러한 인간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그 자체가 재난 현장이다. 

소설의 처음과 끝은 비슷하게 시작하고 비슷하게 끝난다. 우리의 일상처럼...

그리고 우리의 일상은 또 다른 재난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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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9-12 17:45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오~ 저 이책 대출신청 해놨어요~ 예약번호 2번!ㅎㅎ 기대기대^^

coolcat329 2021-09-12 17:48   좋아요 5 | URL
저도 거의 두 달 기다렸습니다. ㅎ

mini74 2021-09-12 17:4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무지 재미있게 읽었어요. 소재도 참신하고 *^^*

coolcat329 2021-09-12 17:50   좋아요 3 | URL
그렇죠? 소재가 정말 참신 독특해요.

새파랑 2021-09-12 17:5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읽다가 예전에 본 <곤지암> 이라는 공포영화가 생각나네요 🙄 전혀 내용이 다르지만 ㅋ

대거상을 수상했으니 이 작품도 엄청난 추리소설 이겠군요~!! 근데 내용을 보면 추리소설 같은 느낌보다는 스릴러 느낌이 드네요. 어떻게 보면 산다는게 재난이라도 할 수 있겠네요~!!

coolcat329 2021-09-12 17:55   좋아요 3 | URL
네 사건을 추리하는 그런 소설은 아니고, 사회고발하는 스릴러라고 할까요? ㅎ

저는 곤지암 무서워서 못봤어요😰

미미 2021-09-12 18:1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런 줄거리의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주인공 때문에 아주 조마조마해서 책과 리모콘을 놓질못하겠어요. 기차 갈라질때부터 심장이 두근두근🤦‍♀️
전국 도서관에 예약 만땅인가봅니다ㅎㅎ잘읽었어요!

coolcat329 2021-09-12 19:31   좋아요 1 | URL
네ㅋ저도 열차 끊어진 부분에서 진짜 공포였어요. 😱

레삭매냐 2021-09-12 18: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서 이 책 빌려다
보고 싶은데 제게는 기회
가 되질 않네요... 까비.

coolcat329 2021-09-12 19:32   좋아요 2 | URL
이 책이 제가 사는 동네 전 도서관에서도 다 대출이라 그냥 예약해놓고 잊고 있었어요 연락이 오더라구요. 일단 예약을 해놓으시고 잊고 계시면 편하실듯요. 😅

막시무스 2021-09-12 20: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의 문제의식이 참 좋네요! 자연이나 인간의 재앙도 이윤 창출의 수단으로 삼고 인간도 이윤 창출을 자본의 매커니즘에 부속으로 만들어 버리고!ㅠ 주인공의 저항이 성공하기 소망할 뿐입니다!ㅎ

coolcat329 2021-09-13 07:32   좋아요 2 | URL
네~자본주의와 환경 등...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재난이라는 메세지를 담고 있는 책입니다~

막시무스 2021-09-13 07:59   좋아요 2 | URL
이 작가님이 제가 가끔 듣는 팟캐스트 진행자군요!ㅎ 잘 참았는데 한번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즐건 하루되세요!

scott 2021-09-19 12: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쿨캣님

추석 연휴 동안 가족과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해피 추석~


∧,,,∧
( ̳• · • ̳)
/ づ🌖
 
로드 짐 열린책들 세계문학 266
조셉 콘래드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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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봄에 <암흑의 핵심>을 읽으며 문장 사이사이 새어 나오는 음산하면서도 불길한 공포에 거의 압도되는 경험을 했었다. 작가 조지프 콘래드(1857~1924)가 두 번째도 아닌 세 번째 언어인 영어로 쓴 문체는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도 낯설게 느껴진다고 하는데, 그것을 번역한 글이니 읽기에 쉽지 않았다. 그러나 안개 속을 걷는 것처럼 모호하고 불확실하며 음울한 문장들은 어딘지 웅장하면서도 불안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고, 그 여운은 지금도 남아있어 <암흑의 핵심>은 특별히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로 남게 되었다. (사실 Heart of Darkness '암흑의 핵심'보다는 '어둠의 심연'이라는 제목이 훨씬 와닿고 작품의 분위기와 더 어울린다고 생각)


<로드 짐>은 <암흑의 핵심>이 나오고 1년 뒤인 1900년에 발표한 장편으로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이자 모더니즘 소설의 시작을 알리는 영문학사적으로도 중요한 작품이다. 

작가는 실제 선원으로 일하다 일등 항해사를 거쳐 선장까지 되어 바다에서 생활했는데, 이 소설은 그런 작가의 경험이 녹아있는 작품이다. 

침몰하는 배의 승객들을 버리고 도망친 일등 항해사 짐의 파란만장한 삶을 담은 <로드 짐>의 줄거리는 대략 다음과 같다.


어린 시절부터 멋진 선원이 되기를 꿈꾸던 짐은 젊은 나이에 일등 항해사가 된다. 짐은 평탄치 않은 선원 생활에 회의감이 들 무렵, 성지로 가는 8백여 명의 무슬림 순례자들을 태운 증기선, 파트나 호에 일등 항해사로 승선하게 된다. 그러나 평탄한 항해를 하던 파트나 호는 난파선 잔해와 충돌하는 바람에 물이 새고, 배가 침몰할 거라고 확신한 선장과 간부 선원들은 배를 버리고 도망치려고 구명정에 올라탄다. 이런 기막힌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짐은 선원으로서 자신이 꿈꾸던 고귀한 이상과 절박한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고, 구명정에 탄 선원들은 뛰어내리라고 독촉하는 가운데 짐은 자신도 모르게 구명정으로 뛰어 내린다. 


구명정을 타고 표류하던 네 사람은 지나가던 증기선에 의해 구조되지만, 그들의 예상과는 달리 파트나 호는 기적적으로 침몰하지 않았고 승객은 무사히 구조되었음이 밝혀진다. 

한 달 뒤, 선장과 간부 선원들은 모두 도망치고 짐 혼자 재판을 받게 되는데 그 결과 짐은 수많은 비난과 함께 일등 항해사 자격증을 박탈당하게 된다.

 

더 이상 선원으로 일을 할 수 없게 된 짐은 재판 과정에서 우연히 알게된 말로(Marlow)를 통해 선박 용품점에서 점원으로 일하게 되지만, 과거의 치욕을 견딜 수 없는 그는 파트나 호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만 하면 일하는 곳을 바로 떠나는 생활을 한다. 이를 지켜보던 말로는 자신과 친분이 있는 부유한 상인 스타인에게 짐의 문제를 상의하고, 스타인은 짐을 동남아의 오지 파투산의 무역 주재원으로 보낸다. 

무역권을 둘러싼 여러 부족 간의 싸움이 끊이지 않는 파투산에서 짐은 도라민 족장의 밑으로 들어가 일대를 평정, 파투산에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그곳의 실질적인 지배자가 되어 투안 짐(Lord Jim)으로 불리게 된다. 


이 작품은 크게 두 가지 에피소드로 나뉜다. 한 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짐을 파멸로 몰아간 파트나 호 사건과 이런 짐이 절망의 나락에서 다시한번 삶의 기회를 찾아 떠난 파투산에서의 이야기.


또한 작가는 낭만적 이상주의를 추구하는 짐의 몰락과 좌절, 모험과 성공, 실패를 통해 짐이라는 인물은 어떤 사람이며, 그의 말과 행동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지, 더 나아가 개인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일어나는 도덕적 문제와 사회규범의 문제 등을 말로라는 화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말로가 자신의 친구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이런 다양한 시각은 짐이라는 인물을 살펴보는데 있어서 계속해서 '새로운 관점을 부여'하고 독자로 하여금 끊임없이 생각하고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든다. 따라서 이야기는 시종일관 모호하고 불확실하며 그에 더해 작가 특유의 길고 화려하면서도 장엄한 문장들은 이 책을 빨리 읽을 수 없게 만든다.

 

또한 시간의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고 말로의 기억의 순서에 따라 과거와 미래가 섞여 전개되기 때문에 더욱 복잡하게 느껴지는데, 현대 소설에는 워낙 과거와 미래가 뒤죽박죽인 작품들이 많아 특별히 콘래드의 이 소설이 낯설게 느껴지진 않았으나, 그래도 독자로서 긴장하게되는 서술 구조이고, 무엇보다 1900년에 이런 현대적이면서 독창적인 서술을 구사한 작가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웅적인 행위를 열망하는 짐이라는 낭만적 인간을 통해 인간존재가 본질적으로 갖고 있는 비극성이 드러나고 그런 속성을 지닌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작가는 스타인을 통해 보여준다. 


"그래! 이 사실은 끔찍하지만 너무 우습기도 해. 세상에 태어난 인간은 마치 바다에 빠지는 사람처럼 꿈속에 빠져들지. 만약 그가 경험 없는 사람들처럼 공기 속으로 기어 나오려 하면 익사하고 말아, 그렇지 않아?......그러면 안돼! 이봐! 살고 싶다면, 그 파괴적 원소에 자신을 맡기고 물속에서 손발을 열심히 움직여 깊은 바다가 몸을 받치게 해야해." (p.296)


스타인에 따르면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면서 꿈에 빠지게 된다. 인간을 파멸로 몰아갈 수 있기에 스타인은 꿈을 가리켜 '파괴적 원소'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꿈과 이상을 외면하고 현실만을 생각하며 살면 인간은 익사, 즉 죽은거나 다름없는 삶을 살게 된다. 인간이 인간으로 살려면 자신의 꿈과 이상을 계속 추구하면서 살아야 한다. 비록 이 꿈이 현실에 의해 무너진다 하더라도 꿈 속에 나를 맡기며 열심히 손발을 움직여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스타인도 자신의 삶에서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맛보며 지금은 아름다운 나비를 수집하며 은둔하며 살고 있다. '죽어서도 손상 없이 화려함을 유지'하는 나비의 화려한 무늬처럼 인간이 추구하는 꿈에도 '쉽게 손상될 수 있으면서도 파괴를 거부하는 무엇인가'(p.288)가 있다고 믿는다. 스타인은 젊은 날의 자신과 비슷한 짐을 보며 자신의 꿈을 끝까지 추구할 수밖에 없는 고독한 인간 짐을 이해한다. 

비록 그 결과는 회의적일지라도 인간에게 꿈은 포기할 수 없는 것이며 그것과 함께 할 때 삶은 가치를 얻고 자아실현을 할 수 있다고 작가 콘래드는 스타인을 통해 말하는 것 같다. 


지난 달 존 쿳시의 <야만인을 기다리며>를 읽으며 자꾸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 떠올랐는데, 이번에 <로드 짐>을 읽으면서는 <야만인을 기다리며>가 생각이 나서 '참으로 묘하구나...'싶었다.

콘래드가 현대 작가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니 당연히 그럴 수도 있겠지만, 책을 읽으면서 경험하는 이런 느낌은 '내가 제대로 느낀건가' 싶으면서도 기분이 좋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의 백자평을 소설 속 말로(Marlow)의 말로 대신하며 글을 마친다. 


"내가 짐을 이해했다고 우길 생각은 없어. 짐이 잠시 내게 보여 준 모습은 짙은 안개가 잠시 갈라진 틈으로 흘끗 보는 광경과 비슷했어."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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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9-07 19: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읽으셨군요!
근데 전 쿳시가 좀 불편해서 콘래드한테는 비비지 못할 거 같습니다..........만! 아주 사소한 기호의 문제입니다. ㅎㅎㅎ

coolcat329 2021-09-07 19:44   좋아요 4 | URL
폴스타프님 콘라드 승인가요?😁
콘래드 다른 작품도 새로 번역되서 나오면 좋겠습니다. 다음은 <비밀요원>입니다~^^

새파랑 2021-09-07 22: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 유명한 작품인거 같아서 한번씩 표지만 훔쳐보곤 했는데 이런 내용이었군요~!! 왠지 이야기가 뒤섞여 전개되는 어려운 작품 같은데 평이 좋으시니 급관심~!!

coolcat329 2021-09-08 12:34   좋아요 1 | URL
읽기 쉬운 책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또 아주 어렵지도 않습니다. 율리시스 읽으실! 새파랑님은 훨씬 즐기실 수 있을거에요. 저는 제임스 조이스 소설 하나도 안 읽어봤거든요. 버지니아 울프, 조이스에게 큰 영향을 준 콘라드 꼭 읽어보시길요~^^

scott 2021-09-08 00: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콘래드 작품 수많은 미국 작가들에 깊은 영향을 줬죠
저도 첨엔 읽다 포기 했는데 읽을 수록 문장에 깊이가 있습니다
[˝내가 짐을 이해했다고 우길 생각은 없어. 짐이 잠시 내게 보여 준 모습은 짙은 안개가 잠시 갈라진 틈으로 흘끗 보는 광경과 비슷했어.˝ ] 밑줄 쫘악~
모비딕의 작가 멜빌 처럼 세상을 유랑 했던 경험이 있던 인물이여서 인지

쿨캣님 리뷰 덕분에 꺼내 놓은 콘래드 작품 낼 출근 길에 챙겨 갈려고요 ^ㅅ^

coolcat329 2021-09-08 12:36   좋아요 2 | URL
아 그러셨군요. 제 독후감 읽고 다시 책을 꺼내셨다니 정말 기뿌네요~~스캇님의 리뷰 기대하겠습니다 ☺

scott 2021-10-08 15: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쿨켓님 이달의 당선 추카~~
주말 행복하게 보내세요~~**

coolcat329 2021-10-09 09:25   좋아요 0 | URL
아 이제야 봤네요~~늘 축하해주시니 감사합니다 😊

mini74 2021-10-08 16: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다가 살포시 놔둔 책이군요 ㅠㅠ 축하드려요 *^^*

coolcat329 2021-10-09 09:26   좋아요 1 | URL
미니님~감사합니다. 😊

새파랑 2021-10-09 08: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쿨캣님 당선 축하드려요~!! 저 콘래드에 급관심이 생겨서 곧 읽어봐야 겠어요~!

coolcat329 2021-10-09 09:29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저는 작가 콘래드가 이상하게 좋네요.
새파랑님 리뷰 기대할게요.☺

페크pek0501 2021-10-10 1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당~~

coolcat329 2021-10-10 14:28   좋아요 0 | URL
아,페크님~감사합니다.
 
페테르부르크 이야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8
고골리 지음, 조주관 옮김 / 민음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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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골(1809~1852)의 <뻬쩨르부르그 이야기>는 제정 러시아의 수도 뻬쩨르부르그를 배경으로 도시의 화려한 이면에 감춰진 소시민의 비극적 삶을 환상적으로 그린 5편의 단편을 담고있다.

'코', '외투', '광인 일기', '초상화', '네프스끼 거리' 로 구성된 이 단편집은 고골이 실제로 체험했던 뻬쩨르부르그에서의 비참한 생활이 녹아 있으며, 특히 '광인 일기'는 실제로 미쳐서 죽은 고골의 모습을 보는 거 같아 섬뜩하다. 


도스토예프스키,푸시킨,고골이 살았던 도시 뻬쩨르부르그는 유럽 문명을 흡수하기 위해 표트르 대제의 지시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도시이다. 그러나 고골이 현실과 환상을 교묘히 섞어 보여주는 이 도시의 모습은 인간의 정신과 가치는 찾을 수 없는 '영혼이 부재하는 곳'이며 '악의 공간'(p.316 작품해설)이다. 

특히 소시민들의 삶을 통제하고 지배하는 관료제도는 이 화려한 도시의 가장 어두운 그림자이다. 고골의 소설 속에서 주인공들을 소개할 때 관등은 꼭 따라온다. '관등의 노예로 전락'한 소시민들의 삶은 비참하다. 

고골의 이 단편집은 바로 이런 관료제가 지배하는 도시의 민낯을 보여준다. 


'외투'의 주인공 아까끼 아까끼예비치를 소개하는 대목이다.


관등에 관한 한 (우리나라에서는 우선 관등부터 밝혀야 한다) 그는 만년 9급 관리였다. 아시다시피 밟혀도 끽소리 한 번 못하는 사람들을 억압하는 훌륭한 습성이 있는 온갖 종류의 작가들이 마음껏 놀려대고 마구 비꼬는 바로 그 9급이다. (p.56 '외투')


그는 관청에서 정서 업무를 하는 말단 관리이다. 상관들은 물론 모든 이들이 그를 아무렇게나 대한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그는 자신의 정서 업무에는 열정을 가지고 있어 맡은 일은 완벽하게 해낸다. 양심적인 국장이 그의 일처리 능력을 보고 좀 더 중요한 직책을 맡기려고 하지만 그는 "못하겠어요, 차라리 정서하는 일을 맡겨주십시오." (p.60) 라고 말한다. 

정서하는 일 외에는 옷차림에도 먹는 것에도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는 인간, 그는 탐욕스러운 도시가 만들어낸 자의식, 영혼이 없는 인간이다. 


'광인 일기'는 정신병에 걸린 9급관리의 일기로 구성되어 있다. 주인공 9급 관리 뽀쁘리시친은 국장의 딸을 사랑하지만 자신의 낮은 관직으로는 사랑을 얻을 수 없다. 국장의 딸이 자신을 사랑하기는 커녕 비웃고 시종무관과 결혼하게 되자 미쳐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되는 인물이다. 다음 일기는 그가 9급 관리라는 자신의 정체성에 얼마나 비관적으로 집착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나는 9급 관리다. 왜 9급 관리가 되었을까? 어쩌면 나는 백작이나 장군인데, 다만 9급 관리처럼 보이는 건 아닐까? 아마 나 자신도 내가 어떤 인간인지 모르고 있을 거다. (...) 어떤 평민이나 농부가 어쩌다가 그 신분이 드러나 갑자기 어떤 귀족이나 황제라는 것이 밝혀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농부까지도 종종 그럴 수 있는데, 귀족인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는 알 수 없는 것 아닌가? (p.121 '광인 일기')


마지막 작품 '네프스끼 거리'는 이 단편집의 주제와 가장 어울리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뻬쩨르부르그에서 가장 번화하고 화려한 거리 네프스끼는 '수도의 미인'으로 뻬쩨르부르그 그 자체라고 봐도 무방하다. 

소설은 이 네프스끼 거리를 찬양하면서 시작한다. 


뻬쩨르부르그에는 네프스끼 거리보다 더 나은 곳이 없다. 이 거리는 이 도시를 위한 모든 것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수도의 미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거리가 왜 훌륭하지 않겠는가! 내가 아는 바로 이곳 사람들은 가난한 자든 고위직 관리든 누구나 네프스끼 거리를 다른 어떤 좋은 것과도

바꾸고 싶어하지 않는다. (...) 그 거리가 즐겁지 않은 자가 대체 누구란 말인가? (p.227)


누구나 좋아하는 이 거리가 밤이 되면 많은 젊은 독신자들로 분주해진다. 

그리고 등장하는 두 명의 독신남, 삐로고프 중위와 화가 삐스가료프. 네프스끼 거리에서 이 두 젊은 독신남은 우연히 아름다운 검은 머리 여인과 금발 여인을 발견하고 각기 미녀를 쫓아간다. 그리고 이어서 일어나는 환상과 현실이 묘하게 섞인 일들은 뻬쩨르부르그의 가려진 실체를 드러내고, 이야기는 결국 다음과 같이 끝나니 아이러니하다. 


이 네프스끼 거리라는 건 언제나 거짓말을 한다. (...) 그리고 악마가 모든 것들을 실제 모습으로 보여주기를 거부하고 램프의 불을 직접 켤 때, 네프스끼 거리는 더욱 심하게 사람들을 속인다. (p.282)


화려함 뒤로 천박한 물질적 욕망과 계급의 허위를 숨기고 있는 도시 뻬쩨르부르그. 이 곳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탐욕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인간 소외를 생생하게 풍자한 <뻬쩨르부르그 이야기>는 고골이 환상과 현실을 교묘하게 직조하여 만든 그만의 세계이다. 


만약에 뻬쩨르부르그 여행을 가서 네프스끼 거리를 걷게 된다면...이 말이 떠오를 것이다.


"오, 이 네프스끼 거리를 믿지 마라!" (p.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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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8-27 13:3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팽귄클래식에서 나온 고골단편집 있는데 이거랑 세편이 겹치더라구요. 코와 외투는 익숙한데 광인일기 보니까 재미있을거 같아요. 이 글 보니 뻬쩨르부르그 여행 가보고 싶네요 😆

coolcat329 2021-08-27 13:50   좋아요 3 | URL
광인 일기가 제일 웃겼어요 .ㅋㅋㅋㅋ

저도 뻬쩨르부르그 막연히 화려하고 아름다운 도시로만 생각했는데, 이 책 읽고 차르가 거주한 화려한 궁정, 귀족들의 사치, 관료제에 눌려 영혼없는 인간으로 살아야했던 하급관리들의 눈물과 애환이 서린 도시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참 가보고 싶죠?

coolcat329 2021-08-27 13:48   좋아요 3 | URL
펭귄엔 코 외투 광인일기 검찰관이 있네요.
재밌는것만 있어서 좋은데요. 초상화는 좀 지겨웠거든요.

새파랑 2021-08-27 14:10   좋아요 3 | URL
아 읽고싶은책은 많은데 시간은 없고 ㅜㅜ 곧 읽어봐야겠어요 ~!!

페크pek0501 2021-08-27 14:5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외투를 좋아하는 1인입니다. 긴 시간의 간격을 두고 세 번쯤 또는 그 이상을 읽었던 것 같아요.
이 책의 작품 다섯 개 중에서 세 개가 제가 읽은 거네요. 저는 다른 책으로 읽었거든요.
도스토예프시키는 ‘러시아의 모든 작가들은 고골의 외투 안에서 나왔다‘라고 했을 정도로 극찬했던 모양입니다.

coolcat329 2021-08-27 15:54   좋아요 5 | URL
이 단편집에서 외투가 가장 유명하죠~^^ 외투의 아까끼는 아기때부터 참 안스러워요. 9급 관리가 될것같은 표정이라니 ㅠ
세번이나 읽으셨다니 외투의 찐팬이세요~😄

mini74 2021-08-27 19:5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는 코. 어릴 적 어떻게 저런 기발한 생각을 할까 싶었어요. ~

Falstaff 2021-08-27 19:58   좋아요 4 | URL
<코>는 쇼스타코비치가 오페라로 만들었거든요. 요즘에도 있는지 모르겠는데 영국에서 영어 버젼으로 공연을 한 게 너튜브에 있었습니다.
진짜 사람만한 코가 무진장 등장해서 춤도 추고 막 그래요. 그것도 재미납니다. 한 시간 정도로 길지도 않고요. ㅋㅋㅋㅋ

coolcat329 2021-08-27 21:57   좋아요 4 | URL
아 <코>도 참 기발하죠! 카프카 <변신>이 생각났는데 그보다 거의 80년이나 앞선 작품이니 대단하지요?

폴스타프님/오페라로도 있군요. 사람만한 코가 춤추고 다니니 얼마나 웃긴가요.ㅋ 긴 칼도 허리에 당연 찼겠죠? 상상만해도 재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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