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4
메리 셸리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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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아마도 누구나 읽었다고 착각하는 고전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급진 정치 사상가인 아버지와 유명한 여성주의자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메리 셸리(Mary Shelley 1797~1851)는 꽤나 조숙했던 듯 싶다.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계모 밑에서 차별을 받으며 자란 그녀는 제대로 된 교육은 못 받았지만 아버지 서재에서 수많은 장서를 독파하며 정신적으로 성장한다. 17살에 아버지의 제자인 퍼시 셸리와 사랑에 빠져 프랑스로 도피, 이후 8년에 걸친 가난한 유랑 생활을 하게 된다. 


<프랑켄슈타인>은 메리가 유럽 대륙을 여행하는 중에 쓴 작품으로 1818년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생후 며칠만에 어머니를 잃은 것을 시작으로 그녀의 삶엔 참으로 많은 죽음이 있었는데, 5명의 자녀를 낳았지만 그 중 넷을 잃었고 동복언니와 남편의 전처 자살, 1822년에는 남편 퍼시마저 익사했으니, 아무리 비범한 메리 셸리였다해도 견디기 힘든 삶이었을 듯 싶다.


<프랑켄슈타인>은 북극을 탐험하는 로버트 월턴이 그의 누이에게 보낸 편지 형식으로 시작된다. 월턴은 북극으로 가는 과정에서 우연히 프랑켄슈타인을 구조하게 되고 그로부터 '불가능하다고 믿어왔을 그런 일'(p.38)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은 제네바 명문가의 아들로서 어린 시절부터 신비한 자연과학에 관심을 보인다. 그는 독일의 잉골슈타트 대학에 진학하여 자연철학과 화학을 공부하면서 점점 과학의 세계에 빠져든다. 특히 생명을 가진 동물의 신체 구조에 관심을 가지며 '대체 어디서 생명의 원리가 발생하는 것일까?(p.63) 라는 '하느님의 신비로운 섭리로 간주되어왔던' 영역에 손을 뻗는다.

 

그는 '초자연적인 열정'을 가지고 인간의 신체에 일어나는 모든 것을 관찰한다. 해부는 물론 보통 인간이 견디기 힘든 죽음 후 부패 과정 등을 면밀히 관찰함으로써 삶과 죽음의 변화를 탐구한다. 그리고 그런 노력 끝에 그는 마침내 '개체 발생과 생명의 원인', 즉 '무생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능력'을 갖게 된다. 

시체안치소, 도살장, 해부실에서 재료를 조달받아 그는 '인간 창조' 연구에 착수한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의 끝자락인 '11월의 어느 황량한 날' 드디어 2.5미터의 거대한 피조물이 탄생한다. 그러나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이 특별히 선별한 신체 부위와 장기로 만든 것은 인간이 아닌 괴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경악한다. 


아름다움이라니! 하느님, 맙소사! 그 누런 살갗은 그 아래 비치는 근육과 혈관을 제대로 가리지도 못했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흑발은 출렁거렸고 이빨은 진주처럼 희었지만, 이런 화려한 외모는 허여멀건 눈구멍과 별로 색깔 차이가 없는 희번득거리는 두 눈, 쭈글쭈글한 얼굴 살갗, 그리고 일자로 다문 시커먼 입술과 대조되어 오히려 더 끔찍해 보일 뿐이었다. (p.72)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결과물의 흉칙함에 혐오와 공포를 느낀 프랑켄슈타인은 실험실을 뛰쳐 나온다. 자신이 창조한 괴물을 그대로 놔둔 채...

그는 충격으로 인해 신경성 열병을 앓게 되고 가족들이 있는 고향 제네바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그러나 아버지로부터 날아온 편지는 자신이 만든 결과에 책임지지 않은 프랑켄슈타인 비극의 시작을 알리며 불행은 끝까지 그를 놔주지 않는다. 


프랑켄슈타인은 마음의 치유를 위해 가족과 떠난 여행에서 괴물과 만나게 된다. 이때 괴물이 자신의 절절한 사연을 프랑켄슈타인에게 쏟아내는데,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다. (2권 3장~8장)

괴물은 2.5미터의 기괴한 형상이지만 지적 능력은 어린 아이와 같다. 그는 처음 깨어났을 때의 느낌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불쌍하고 힘없고 가련한 흉물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분간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온몸에서 느껴지는 고통때문에 주저앉아 흐느꼈다.' (p.137)


괴물은 정처없이 다니다 발견한 독일의 어느 마을, 오두막 옆 축사에 숨어 살면서 사람들의 대화를 들으며 스스로 말과 글을 배우고 지식을 습득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인간들이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알게 되고, 인간들의 '행위에 영향을 미친 동기들'까지 파악하면서 세상을 조금씩 배워나간다. 괴물은 오두막 가족들이 서로를 사랑하고 의지하는 모습을 보며 자신도 그런 사랑을 받고 싶다고 느낀다. 그러나 물에 비친 자신의 추한 외모, 사람과는 다른 본성, 친구도 재산도 없을 뿐더러 무엇보다 탄생과 창조주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음에 좌절한다.

'나는 지상의 한 점 얼룩 같은 괴물일까?' (p.160) '내 친구와 친척들은 어디에 있는가?'(p.161)

세상에 대해 알아 갈수록 슬픔은 더욱 커지고 자신이 '얼마나 비참한 추방자인지'를 깨닫게 될 뿐이다. 


사실 괴물은 추악한 외모와는 달리 순수하고 여린 마음의 소유자이다. 미덕을 사랑하고 악을 혐오하며 사악함과 덕성의 양면성을 가진 인간의 모습에 놀라기도 한다. 괴물은 이런 선한 마음이 자신의 추한 외모를 덮어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어느 날 오두막 가족 앞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만 현실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로부터 분노와 멸시, 폭행을 당하고 쫓겨난 괴물은 자신을 만든 창조자를 저주하며 악의 존재로 거듭나게 된다


때묻지 않은 어린아이 같았던 괴물이 화목한 한 가족을 보며 사랑과 연민을 갈구하고 외로움을 느껴 조심스럽게 다가가지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추한 외모로 인해 격렬하게 거부당하는 모습은 슬프다. 이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로 외롭게 살아가야하며 자신을 창조한 자에게도 거부를 당하는 운명. 이런 괴물의 마음 속에 남는 건 저주와 복수뿐이지 않을까...


프랑켄슈타인은 무에서 생명만을 만들어냈을 뿐 자신의 피조물에 책임을 지지 않았다. 사람으로 치자면 자식을 낳기만 했지 그 자식이 온전한 한 인간으로 자라도록 부모로서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이다. 프랑켄슈타인의 가장 큰 실수는 자신의 피조물이 감정을 지니고, 자신의 삶을 소중히 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그 누구보다 갖고 싶어하는 하나의 생명을 지닌 존재였다는 것을 간과한데 있다고 생각한다.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만들어 그것을 방치했다. 그에겐 그 흔한 이름조차 없다. 그 결과 남은 건 비극뿐이었다.

지금은 어떤가...현대의 인간이 무책임하게 만들어내고 있는 괴물은 무엇인가...

사람마다 여러 가지 대답이 나오겠지만, 나는 재활용 분리 수거장에 흉물스럽게 쌓여있는 플라스틱, 비닐, 스티로폼이 가끔 괴물로 보인다. 쉽게 쓰고 버리지만 수명은 500년인 플라스틱들이 프랑켄슈타인의 지적 욕망으로 인해 만들어졌지만 그 흉물스러움에 바로 버림받은 괴물과 겹쳐 보이는 건 나뿐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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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10-01 15:0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거 다시 읽어야겠어요. 읽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왠지 다시 읽으면 전혀 새로울 거 같은 작품! ㅋ

coolcat329 2021-10-01 15:11   좋아요 3 | URL
저는 늘 지킬 박사와 프랑켄슈타인이 헷갈렸는데 이번에 확실히 알았습니다!

Falstaff 2021-10-01 15:23   좋아요 5 | URL
제 생각엔
프랑켄슈타인 >>>>>>>> 지킬 하이드
셸리에 비하면 스티븐슨은 영혼이 읎어요, 영혼이. ㅋㅋㅋ

coolcat329 2021-10-01 21:20   좋아요 2 | URL
폴스타프님 ~저 지킬박사도 있는데 내년에 읽어보겠습니다! 😊

Falstaff 2021-10-01 21:25   좋아요 2 | URL
지킬, 하이드는 뭐 안 읽으셔도.... ㅋㅋㅋ
아우, 전 짜증만 나던데요. ^^;;;

coolcat329 2021-10-01 21:42   좋아요 1 | URL
앗 그 정도인가요? 읽을 책 덜면 저는 좋습니당! 감사합니다 ㅋㅋ

scott 2021-10-01 16:2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쿨켓님 말씀처럼
우리가 필요해서 쓰다 버린 모든것들이 언젠가 부메랑처럼 흉몰스러운 괴물
전염병, 기후 변화등으로 돌아 오겠죠
시선으로 분석한 프랑켄슈타인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들어서 좋습니다 ^ㅅ^

coolcat329 2021-10-01 21:08   좋아요 2 | URL
항상 더!더!더!를 외치는 인간이 괴물같기도 해요.

붕붕툐툐 2021-10-01 17:3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진짜 이 책 너무 잼나게 읽었어요. 프랑켄슈타인 나빠요~~

coolcat329 2021-10-01 21:12   좋아요 3 | URL
2장 괴물의 육성으로 들려주는 절절한 이야기가 가장 재미있고 인상깊었네요.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의 잘못을 너무 늦게 깨달았죠.ㅠ

새파랑 2021-10-01 17:5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프랑켄슈타인 저도 몇달전에 읽었는데 프랑켄슈타인이 과물이 아니었고 박사였다는 사실에 충격받았던 😅

정말 괴물의 이름도 없었다는데 안타깝다는 생각이 드네요 ㅜㅜ

coolcat329 2021-10-01 21:14   좋아요 3 | URL
200년 넘게 가장 유명한 괴물 중 하난데, 이름이 없어요. ㅠ

mini74 2021-10-01 18:1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은줄 착각했던 책, 아이들용이 아니더군요. 괴물에 감정이입이 돼서 슬펐어요 ㅠㅠ

coolcat329 2021-10-01 21:14   좋아요 2 | URL
2권 괴물의 절절한 이야기가 참 설득력이 있죠?

미미 2021-10-01 18:3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말씀대로 왠지 많이 알려진 캐릭터라서 읽기까지 망설여졌으나 읽으니 여러모로 신선하고 놀라웠던 작품이예요.
그런 의미로 드라큐라도 재밌을것 같고요ㅎㅎ🙄😆

coolcat329 2021-10-01 21:16   좋아요 3 | URL
하하 저는 지킬박사랑 너무 헷갈려서 확실히 하려고 읽었는데 참 청소년부터 어른까지 읽어도 좋을 이야기네요.

드라큐라! 역시 읽은 걸로 착각하는 이야기죠!ㅋㅋ

막시무스 2021-10-01 19:2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어린시절 봤던 만화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고전집에 있어도 시큰둥했는데 생각보다 엄청 철학적이네요!ㅎ 저도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이름인줄 알았던 1인입니다! 즐건 저녁시간되십시요!

coolcat329 2021-10-01 21:19   좋아요 3 | URL
작품해설에 역자가 B급 영화에 나오는 관자놀이에 나사못박힌 괴물은 잊으라고 합니다. 그 고정된 이미지가 이 책의 풍부한 문학성을 가린다구요 ㅎㅎ
근데 그 이미지가 너무 강렬해서 자꾸 떠오르네요.

막시무스님도 즐거운 주말 되세요!

초딩 2021-10-03 13: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ㅜㅜ 정말 괴물의 오두막 씬은 마음 아파요
최근에 영어 동화로 한 번 들어 봤는데
그것도 좋았습니다 :-)
즐거운 연휴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