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여행자들 오늘의 젊은 작가 3
윤고은 지음 / 민음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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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윤고은 작가의 <밤의 여행자들>(The Disaster Tourist) 이 영국 추리작가 협회(The Crime Writers Association)에서 주는 추리문학상인 대거(Dagger)상을 번역추리소설 부문(Crime Fiction in Translation Dagger)에서 수상했다는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 

한강 작가가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받았을 때보다 더 기뻤다. 왜냐하면 한국의 장르문학은 영미권,유럽,일본에 비해 국내 시장도 훨씬 작고 기성문단에 비해 제대로 대접도 못 받아왔기 때문이다. 물론 국내 장르문학도 나날이 성장하고 있고, 두터운 매니아 층을 형성,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훌륭한 작가들도 있지만, 영미권, 일본 추리,범죄소설과 비교했을 때 그 기반이 아직은 탄탄하지 못한건 사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영어권의 대표적인 추리문학상인 대거상을 아시아 최초로 윤고은 작가가 받았으니 얼마나 놀라고 자랑스러웠는지 모른다. 


재난이 없는 도시는 없었다. 재난은 우울증 같은 거라 어디에든 잠재했다. 자극이 임계점을 넘으면 그 우울증이 곪아 터지기도 하지만, 용케 숨어 한평생을 마무리하는 경우도 있다. (p.12)


<밤의 여행자들>은 재난 지역을 여행한다는 설정이 매우 특이한 소설이다. 재난으로 폐허가 된 지역을 관광하는 상품을 개발하는 여행사 '정글'의 여행 프로그래머 고요나. 

그녀는 10년 넘게 재난 지역을 물색, 그것을 상품화하는 일을 하면서 자신의 입지를 굳혀왔다. 그러나 최근들어 그동안 하지 않았던 고객 응대같은 일들이 넘어오면서 그녀는 조금씩 불안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엘리베이터에서 상사인 김조광 팀장에게 성추행을 당하게 되고 본격적으로 위기를 느낀다. 이 김조광이라는 팀장은 한물 간 퇴출위기의 직원들만 골라 성추행을 한다고 소문이 나있기 때문. 

이런 식으로 계속 김팀장에게 끌려다닐 수는 없다는 생각에 요나는 결국 회사에 사표를 내는데, 뜻밖에도 팀장은 사료를 수리하지 않는다. 대신 한 달 간의 휴가를 줄테니 출장이라고 생각하고 회사가 검토 중인 퇴출 직전의 여행 상품 5개 중 하나를 골라 다녀온 후 보고서를 올리라고 제안한다. 


요나가 고른 상품은 '사막의 싱크홀'이라는 가장 비싼 5박 6일짜리 상품. 베트남 남부 해안 도시 판티엣에서 배를 타고 30분 정도 달려야 갈 수 있는 제주도만 한 섬, '무이'가 목적지이다. 

요나는 다른 관광객들과 여행하면서 전략적이지도 않고 재난 여행같지 않게 무료하기만한 이 상품이 왜 구조조정의 대상인지 알 것 같다. 사막에 있는 싱크홀은 물이 들어차 호수로 변해 재난의 장소라기 보다는 슬픈 사연만을 담고 있는 곳일 뿐이고, 다음 날 간 화산은 말을 안 하면 화산인 줄도 모를 정도로 시시하다. 요나는 직접 재난 여행을 경험하면서 그동안 자신이 생각하지 못했던 여행의 다른 면을 보게 된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떠나는 엿새째 아침, 한국행 비행기를 타러 공항으로 가는 열차 안에서 요나는 화장실이 급해 다른 칸 화장실을 이용하는데, 이 열차는 중간에 분리되면서 두 노선으로 운행되는 열차였던 것! 요나는 일행으로부터 낙오되고 지갑과 여권도 없는 재난을 방불케 하는 상황에서 우여곡절 끝에 다시 자신이 묶었던 리조트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다 요나가 여행사 직원임을 알게 된 매니저는 요나에게 기상천외한 제안을 하게 되고, 요나는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그저 이 모든 것이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 보려는 회사의 테스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자신도 모르게 엄청난 일에 휘말리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진실과 마주치게 되는 요나...


재난 지역을 여행하는 사람의 심리는 무엇일까?

일단 여행자들은 재난 지역의 처참함에 충격을 받고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동정과 연민, 더 나아가 불편함을 느낀다. 그리고 이런 모든 감정은 '내 삶에 대한 감사'와 '이 상황에서도 나는 살아남았다는 우월감'으로 이어진다. 여행을 통해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안전했다는 이기적인 위안'(p.61)을 느끼고 돌아와 더 열심히 살아가는 힘을 얻는다는 것이다. 


남의 비극과 불행이 상품으로 둔갑하여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그 심리를 이용하여 돈을 버는 여행사 '정글'은 그야말로 자본의 힘으로 움직이는 밀림 그 자체이다. 그 속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는 요나도 그저 이윤 창출의 도구일 뿐이다. 

소설에는 '파울','폴'이라는 실체를 알 수 없지만 뒤에서 모든 것을 조종하고 움직이는 절대적 존재가 나온다. 작가는 이 정체를 밝히지 않지만 그래도 우리는 알 수 있다. 이 세상을 움직이는 자본주의의 보이지 않는 그 무서운 힘을.

자본주의는 돈을 끌어 모을 수 있다면 그 어떤 쓸모없는 것이라도 쓸모있게 만든다. 이 점이 참 무서운 부분인데, 소설 속에서 이 점을 어떻게 형상화했는지 참 끔찍하지만 말할 수 없다. 

자본 앞에서는 뭐든지 쓸모가 있고 누구든지 자신도 모르게 어떤 역할을 맡는다. 

실체를 알 수 없지만 실체를 알고 저항을 하면 그 댓가는 끔찍하다.

 

<밤의 여행자들>은 거대한 자본의 부속품으로 살아가는 인간들의 운명과 그 운명에 맞서는 인간은 또 어떠한 운명을 맞게 되는지 보여준다. 

이러한 인간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그 자체가 재난 현장이다. 

소설의 처음과 끝은 비슷하게 시작하고 비슷하게 끝난다. 우리의 일상처럼...

그리고 우리의 일상은 또 다른 재난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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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9-12 17:45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오~ 저 이책 대출신청 해놨어요~ 예약번호 2번!ㅎㅎ 기대기대^^

coolcat329 2021-09-12 17:48   좋아요 5 | URL
저도 거의 두 달 기다렸습니다. ㅎ

mini74 2021-09-12 17:4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무지 재미있게 읽었어요. 소재도 참신하고 *^^*

coolcat329 2021-09-12 17:50   좋아요 3 | URL
그렇죠? 소재가 정말 참신 독특해요.

새파랑 2021-09-12 17:5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읽다가 예전에 본 <곤지암> 이라는 공포영화가 생각나네요 🙄 전혀 내용이 다르지만 ㅋ

대거상을 수상했으니 이 작품도 엄청난 추리소설 이겠군요~!! 근데 내용을 보면 추리소설 같은 느낌보다는 스릴러 느낌이 드네요. 어떻게 보면 산다는게 재난이라도 할 수 있겠네요~!!

coolcat329 2021-09-12 17:55   좋아요 3 | URL
네 사건을 추리하는 그런 소설은 아니고, 사회고발하는 스릴러라고 할까요? ㅎ

저는 곤지암 무서워서 못봤어요😰

미미 2021-09-12 18:1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런 줄거리의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주인공 때문에 아주 조마조마해서 책과 리모콘을 놓질못하겠어요. 기차 갈라질때부터 심장이 두근두근🤦‍♀️
전국 도서관에 예약 만땅인가봅니다ㅎㅎ잘읽었어요!

coolcat329 2021-09-12 19:31   좋아요 1 | URL
네ㅋ저도 열차 끊어진 부분에서 진짜 공포였어요. 😱

레삭매냐 2021-09-12 18: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서 이 책 빌려다
보고 싶은데 제게는 기회
가 되질 않네요... 까비.

coolcat329 2021-09-12 19:32   좋아요 2 | URL
이 책이 제가 사는 동네 전 도서관에서도 다 대출이라 그냥 예약해놓고 잊고 있었어요 연락이 오더라구요. 일단 예약을 해놓으시고 잊고 계시면 편하실듯요. 😅

막시무스 2021-09-12 20: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의 문제의식이 참 좋네요! 자연이나 인간의 재앙도 이윤 창출의 수단으로 삼고 인간도 이윤 창출을 자본의 매커니즘에 부속으로 만들어 버리고!ㅠ 주인공의 저항이 성공하기 소망할 뿐입니다!ㅎ

coolcat329 2021-09-13 07:32   좋아요 2 | URL
네~자본주의와 환경 등...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재난이라는 메세지를 담고 있는 책입니다~

막시무스 2021-09-13 07:59   좋아요 2 | URL
이 작가님이 제가 가끔 듣는 팟캐스트 진행자군요!ㅎ 잘 참았는데 한번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즐건 하루되세요!

scott 2021-09-19 12: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쿨캣님

추석 연휴 동안 가족과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해피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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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