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 짐 열린책들 세계문학 266
조셉 콘래드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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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봄에 <암흑의 핵심>을 읽으며 문장 사이사이 새어 나오는 음산하면서도 불길한 공포에 거의 압도되는 경험을 했었다. 작가 조지프 콘래드(1857~1924)가 두 번째도 아닌 세 번째 언어인 영어로 쓴 문체는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도 낯설게 느껴진다고 하는데, 그것을 번역한 글이니 읽기에 쉽지 않았다. 그러나 안개 속을 걷는 것처럼 모호하고 불확실하며 음울한 문장들은 어딘지 웅장하면서도 불안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고, 그 여운은 지금도 남아있어 <암흑의 핵심>은 특별히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로 남게 되었다. (사실 Heart of Darkness '암흑의 핵심'보다는 '어둠의 심연'이라는 제목이 훨씬 와닿고 작품의 분위기와 더 어울린다고 생각)


<로드 짐>은 <암흑의 핵심>이 나오고 1년 뒤인 1900년에 발표한 장편으로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이자 모더니즘 소설의 시작을 알리는 영문학사적으로도 중요한 작품이다. 

작가는 실제 선원으로 일하다 일등 항해사를 거쳐 선장까지 되어 바다에서 생활했는데, 이 소설은 그런 작가의 경험이 녹아있는 작품이다. 

침몰하는 배의 승객들을 버리고 도망친 일등 항해사 짐의 파란만장한 삶을 담은 <로드 짐>의 줄거리는 대략 다음과 같다.


어린 시절부터 멋진 선원이 되기를 꿈꾸던 짐은 젊은 나이에 일등 항해사가 된다. 짐은 평탄치 않은 선원 생활에 회의감이 들 무렵, 성지로 가는 8백여 명의 무슬림 순례자들을 태운 증기선, 파트나 호에 일등 항해사로 승선하게 된다. 그러나 평탄한 항해를 하던 파트나 호는 난파선 잔해와 충돌하는 바람에 물이 새고, 배가 침몰할 거라고 확신한 선장과 간부 선원들은 배를 버리고 도망치려고 구명정에 올라탄다. 이런 기막힌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짐은 선원으로서 자신이 꿈꾸던 고귀한 이상과 절박한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고, 구명정에 탄 선원들은 뛰어내리라고 독촉하는 가운데 짐은 자신도 모르게 구명정으로 뛰어 내린다. 


구명정을 타고 표류하던 네 사람은 지나가던 증기선에 의해 구조되지만, 그들의 예상과는 달리 파트나 호는 기적적으로 침몰하지 않았고 승객은 무사히 구조되었음이 밝혀진다. 

한 달 뒤, 선장과 간부 선원들은 모두 도망치고 짐 혼자 재판을 받게 되는데 그 결과 짐은 수많은 비난과 함께 일등 항해사 자격증을 박탈당하게 된다.

 

더 이상 선원으로 일을 할 수 없게 된 짐은 재판 과정에서 우연히 알게된 말로(Marlow)를 통해 선박 용품점에서 점원으로 일하게 되지만, 과거의 치욕을 견딜 수 없는 그는 파트나 호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만 하면 일하는 곳을 바로 떠나는 생활을 한다. 이를 지켜보던 말로는 자신과 친분이 있는 부유한 상인 스타인에게 짐의 문제를 상의하고, 스타인은 짐을 동남아의 오지 파투산의 무역 주재원으로 보낸다. 

무역권을 둘러싼 여러 부족 간의 싸움이 끊이지 않는 파투산에서 짐은 도라민 족장의 밑으로 들어가 일대를 평정, 파투산에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그곳의 실질적인 지배자가 되어 투안 짐(Lord Jim)으로 불리게 된다. 


이 작품은 크게 두 가지 에피소드로 나뉜다. 한 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짐을 파멸로 몰아간 파트나 호 사건과 이런 짐이 절망의 나락에서 다시한번 삶의 기회를 찾아 떠난 파투산에서의 이야기.


또한 작가는 낭만적 이상주의를 추구하는 짐의 몰락과 좌절, 모험과 성공, 실패를 통해 짐이라는 인물은 어떤 사람이며, 그의 말과 행동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지, 더 나아가 개인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일어나는 도덕적 문제와 사회규범의 문제 등을 말로라는 화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말로가 자신의 친구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이런 다양한 시각은 짐이라는 인물을 살펴보는데 있어서 계속해서 '새로운 관점을 부여'하고 독자로 하여금 끊임없이 생각하고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든다. 따라서 이야기는 시종일관 모호하고 불확실하며 그에 더해 작가 특유의 길고 화려하면서도 장엄한 문장들은 이 책을 빨리 읽을 수 없게 만든다.

 

또한 시간의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고 말로의 기억의 순서에 따라 과거와 미래가 섞여 전개되기 때문에 더욱 복잡하게 느껴지는데, 현대 소설에는 워낙 과거와 미래가 뒤죽박죽인 작품들이 많아 특별히 콘래드의 이 소설이 낯설게 느껴지진 않았으나, 그래도 독자로서 긴장하게되는 서술 구조이고, 무엇보다 1900년에 이런 현대적이면서 독창적인 서술을 구사한 작가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웅적인 행위를 열망하는 짐이라는 낭만적 인간을 통해 인간존재가 본질적으로 갖고 있는 비극성이 드러나고 그런 속성을 지닌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작가는 스타인을 통해 보여준다. 


"그래! 이 사실은 끔찍하지만 너무 우습기도 해. 세상에 태어난 인간은 마치 바다에 빠지는 사람처럼 꿈속에 빠져들지. 만약 그가 경험 없는 사람들처럼 공기 속으로 기어 나오려 하면 익사하고 말아, 그렇지 않아?......그러면 안돼! 이봐! 살고 싶다면, 그 파괴적 원소에 자신을 맡기고 물속에서 손발을 열심히 움직여 깊은 바다가 몸을 받치게 해야해." (p.296)


스타인에 따르면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면서 꿈에 빠지게 된다. 인간을 파멸로 몰아갈 수 있기에 스타인은 꿈을 가리켜 '파괴적 원소'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꿈과 이상을 외면하고 현실만을 생각하며 살면 인간은 익사, 즉 죽은거나 다름없는 삶을 살게 된다. 인간이 인간으로 살려면 자신의 꿈과 이상을 계속 추구하면서 살아야 한다. 비록 이 꿈이 현실에 의해 무너진다 하더라도 꿈 속에 나를 맡기며 열심히 손발을 움직여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스타인도 자신의 삶에서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맛보며 지금은 아름다운 나비를 수집하며 은둔하며 살고 있다. '죽어서도 손상 없이 화려함을 유지'하는 나비의 화려한 무늬처럼 인간이 추구하는 꿈에도 '쉽게 손상될 수 있으면서도 파괴를 거부하는 무엇인가'(p.288)가 있다고 믿는다. 스타인은 젊은 날의 자신과 비슷한 짐을 보며 자신의 꿈을 끝까지 추구할 수밖에 없는 고독한 인간 짐을 이해한다. 

비록 그 결과는 회의적일지라도 인간에게 꿈은 포기할 수 없는 것이며 그것과 함께 할 때 삶은 가치를 얻고 자아실현을 할 수 있다고 작가 콘래드는 스타인을 통해 말하는 것 같다. 


지난 달 존 쿳시의 <야만인을 기다리며>를 읽으며 자꾸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 떠올랐는데, 이번에 <로드 짐>을 읽으면서는 <야만인을 기다리며>가 생각이 나서 '참으로 묘하구나...'싶었다.

콘래드가 현대 작가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니 당연히 그럴 수도 있겠지만, 책을 읽으면서 경험하는 이런 느낌은 '내가 제대로 느낀건가' 싶으면서도 기분이 좋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의 백자평을 소설 속 말로(Marlow)의 말로 대신하며 글을 마친다. 


"내가 짐을 이해했다고 우길 생각은 없어. 짐이 잠시 내게 보여 준 모습은 짙은 안개가 잠시 갈라진 틈으로 흘끗 보는 광경과 비슷했어."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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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9-07 19: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읽으셨군요!
근데 전 쿳시가 좀 불편해서 콘래드한테는 비비지 못할 거 같습니다..........만! 아주 사소한 기호의 문제입니다. ㅎㅎㅎ

coolcat329 2021-09-07 19:44   좋아요 4 | URL
폴스타프님 콘라드 승인가요?😁
콘래드 다른 작품도 새로 번역되서 나오면 좋겠습니다. 다음은 <비밀요원>입니다~^^

새파랑 2021-09-07 22: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 유명한 작품인거 같아서 한번씩 표지만 훔쳐보곤 했는데 이런 내용이었군요~!! 왠지 이야기가 뒤섞여 전개되는 어려운 작품 같은데 평이 좋으시니 급관심~!!

coolcat329 2021-09-08 12:34   좋아요 1 | URL
읽기 쉬운 책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또 아주 어렵지도 않습니다. 율리시스 읽으실! 새파랑님은 훨씬 즐기실 수 있을거에요. 저는 제임스 조이스 소설 하나도 안 읽어봤거든요. 버지니아 울프, 조이스에게 큰 영향을 준 콘라드 꼭 읽어보시길요~^^

scott 2021-09-08 00: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콘래드 작품 수많은 미국 작가들에 깊은 영향을 줬죠
저도 첨엔 읽다 포기 했는데 읽을 수록 문장에 깊이가 있습니다
[˝내가 짐을 이해했다고 우길 생각은 없어. 짐이 잠시 내게 보여 준 모습은 짙은 안개가 잠시 갈라진 틈으로 흘끗 보는 광경과 비슷했어.˝ ] 밑줄 쫘악~
모비딕의 작가 멜빌 처럼 세상을 유랑 했던 경험이 있던 인물이여서 인지

쿨캣님 리뷰 덕분에 꺼내 놓은 콘래드 작품 낼 출근 길에 챙겨 갈려고요 ^ㅅ^

coolcat329 2021-09-08 12:36   좋아요 2 | URL
아 그러셨군요. 제 독후감 읽고 다시 책을 꺼내셨다니 정말 기뿌네요~~스캇님의 리뷰 기대하겠습니다 ☺

scott 2021-10-08 15: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쿨켓님 이달의 당선 추카~~
주말 행복하게 보내세요~~**

coolcat329 2021-10-09 09:25   좋아요 0 | URL
아 이제야 봤네요~~늘 축하해주시니 감사합니다 😊

mini74 2021-10-08 16: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다가 살포시 놔둔 책이군요 ㅠㅠ 축하드려요 *^^*

coolcat329 2021-10-09 09:26   좋아요 1 | URL
미니님~감사합니다. 😊

새파랑 2021-10-09 08: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쿨캣님 당선 축하드려요~!! 저 콘래드에 급관심이 생겨서 곧 읽어봐야 겠어요~!

coolcat329 2021-10-09 09:29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저는 작가 콘래드가 이상하게 좋네요.
새파랑님 리뷰 기대할게요.☺

페크(pek0501) 2021-10-10 1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당~~

coolcat329 2021-10-10 14:28   좋아요 0 | URL
아,페크님~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