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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에서 “평강의 왕”은 패자에게 평화를 강요하고,

그들의 무기를 빼앗아 불태워버리는 승자였다.

그것은 미국을 포함해서 어떤 제국에서든 마찬가지다.

물론 평강을 이루는 방법으로 그런 폭력적인 행동을 취하는

예수님을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월터 브루그만, 『메시아의 이름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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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피닷 2024-01-01 05: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정치는 어떻게 과학의 팔을 비트는가 - 기후 낙관론에 맞선 세계적인 환경과학자의 폭로
루이스 지스카 지음, 김보은 옮김 / 한문화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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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이 꽤 인상적이다. 정치가 과학의 팔을 비튼다라... 대략 이 책에 정치권력에 의해 과학적 사안들이 어떻게 왜곡되는지가 잔뜩 소개될 것 같은 인상을 주는 제목이지만, 실은 책 내용의 대부분은 이산화탄소가 농업계에 미칠 영향에 관한 과학적 실험과 그에 근거한 전망들이다. 정치 비판보다는 과학 이야기, 그 중에서도 식물학, 농학에 가까운 책이다. 물론 책 후반에 약간 제목에 실린 종류의 비판이 실려 있기도 하다. 그 부분은 뒤에서 다시 언급하기로 하고.



말했듯이 이 책은 이산화탄소에 관한 내용이다. 어느 정도 환경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익히 알고 있지만, 이산화탄소는 대표적인 온실가스 중 하나다. 물론 이보다 더 큰 효과를 내는 물질들도 있지만, 그 양에 있어서 이쪽이 압도적이다. 우리가 배출하는 탄소의 대부분이 이산화탄소의 형태니까.


그런데 또 한 편으로 이산화탄소는 식물들이 자라는데 필요한 자원이기도 하다. 식물의 성장률을 높이는 요인에는 높은 온도와 적절한 양분, 그리고 충분한 이산화탄소가 포함된다. 쉽게 말해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지면 식물이 더 빨리 자란다는 뜻이다.


식물이 빨리 자라는 건 좋은 일이 아닌가 할 수도 있다. 그러면 이산화탄소의 증가가 꼭 나쁜 일만은 아닐 거라는 추측도 가능하고. 실제로 미국 보수 정치계에서는 이런 식의 주장을 하면서 기후위기에 대응하려는 정부의 노력을 중단시키려고 애쓰고 있다고 한다. 당연히 그 뒤에는 화석연료로 돈을 버는 기업들의 막대한 로비가 있고.


책에서 저자는 이산화탄소가 식물의 성장을 빠르게 한다는 요인은 사실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문제는 디테일이다. 저자에 따르면 그 빠른 성장을 하는 식물들 중에는 우리가 애써 기르는 곡물류만이 아니라 잡초도 포함되어 있기에(그리고 이것들이 더 빨리 자라기에, 그 방해를 받아) 전체적인 곡물생산량은 오히려 줄어들 수 있다고 말한다. 제초제를 쓰면 되지 않느냐는 반론이 있겠지만, 높은 이산화탄소 수치는 농약에 대한 잡초의 저항력을 높일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빨리 자란 식물이 생산하는 열매에는 몇몇 영양소들이 부족하자는 증거도 있고, 나아가 식물과 연관된 생태계의 좀 더 넓은 범위(곤충의 식생이라든지, 식물을 먹고 사는 동물들이라든지)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문제를 단편적으로만 생각할 게 아니라는 말이다.




책 말미에서 저자는 과학의 영역에 정치가 부적절하게 개입하는 문제에 대해 언급한다. 우선 저자 자신부터가 25년 가까이 미국 농무부 소속의 과학자로 다양한 연구를 해 왔던 인물이다. 몇 번이나 언급되는 수치인데 1달러를 (연구비로) 투입해 10달러를 벌어들이는 나름 유익한 작업들을 해왔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그런데 이들이 하는 연구가 보수 정치인들에게 후원금을 제공하는 기업들의 이과 관련되어 있다는 게 문제다. 예컨대 트럼프는 후원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기후위기 관련 예산을 대폭 줄였고, 국제적 노력에서도 탈퇴를 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주장에 반대하는 과학적 연구를 하는 기관들을 억압하기도 했고. 결국 약 50%의 연구자들이 사직을 했다고 하는데, 저자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또 하나의 문제는 트럼프가 벌여놓은 난장판이 단지 미국에만 영향을 끼친다는 게 아니라는 점에 있다. 미국이 가진 그 큰 국제적 영향력을 고려해 보면, 그건 거의 전 세계에 (악)영향을 끼친다. 책에는 그게 막대한 돈을 쏟아 부을 수 있는 반(反)환경 기업들의 로비만을 언급하는데, 생각해 보면 결국 그런 광고와 헛소리에 넘어가 공화당에 표를 준 무식한 미국 농부들과 블루칼라 노동자들 탓도 있지 않을까.(물론 미국 민주당이 선이라는 뜻은 아니다.)


책이 거의 끝날 때 즈음에 재미있는 인터뷰가 하나 실려 있다. 한 농부와의 인터뷰였는데, 날씨가 극단적으로 변했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농수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파종하기 알맞은 날이 줄었고, 폭풍과 홍수가 늘고 있다고. 다시 진행자가 전에 못 보던 잡초나 곤충, 식물병을 본 적이 있냐고 묻자 농부는 물론이라고 대답한다. 그래서 새로운 시설에 돈을 써야 하느냐는 질문에 농부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진행자가 묻는다. 기후변화가 사실인 것 같냐고. 그러자 농부는 대답한다. “그럴리가요. 그건 앨 고어나 하는 말이죠.” 이런 수준의 유권자들이 있는 나라에서 제대로 된 환경정책이 나오긴 바라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물론 이게 어디 미국에만 해당될까. 수년 전 우리나라에서도 자기는 보수정당(그게 한나라당이었는지 새누리당이였는지 기억이 정확치는 않다. 하지만 뭐 그리 차이가 있겠는가. 그 자리에 자민당이나 나치당이 들어가도 별 위화감이 없는 인터뷰였는데)이 나라를 팔아먹어도 꼭 찍을 거라고 했던 한 시장 상인의 인터뷰가 한동안 유명한 짤이 된 적이 있었다. 물론 진짜로 나라를 팔아먹으면 애초에 투표할 권한 따위도 없겠지만, 이런 수준의 무식한 시민들이 서식하는 환경에서 좋은 정치가 나올 수는 없는 법이다.


우리는 거의 일상적으로 정치인들을 깐다. 마치 정치인이 온 나라를 망치고 있는 것처럼. 그러나 선거철 종종 목격할 수 있듯, 결국 그들은 시민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존재다. 우리의 선택이 그들의 태도를 만든다. 그들의 오만함은 우리가 그들에게 굽실거렸기 때문이고, 그들의 당당함은 우리가 그들의 잘못에 눈을 감고 넘어갔기 때문이다. 범인은 바로 우리다.




과학을 다루다보니 어느 정도 전문적인 내용들, 그래프와 표가 등장한다. 하지만 그런 복잡한 내용은 조금 미뤄두더라도 책을 이해하는 데는 그리 어렵지 않게 쓰였다. 하지만 바로 그런 과학적 실험 데이터가 이 책을 좀 더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부분이니, 너무 금방 넘기지 말고 잠시 머리에 담아두는 게 좋다. 사실 그래야 이 책에서 지적하는 기후위기부정론자들의 이산화탄소 드립을 이길 수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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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은 대부분 철학의 문장들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말하려는 시도의 결과였다고 보고 있다.

종래의 철학자들의 주장들은

한결같이 그러한 주장의 합법성을 갖추지 못한 채

우리 언어의 논리를 남용한 결과

무의미한 문장들을 양산해내었다는 것이다.


- 박병철, 『비트겐슈타인 철학으로의 초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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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를 뒤흔든 40가지 사건 역사가 우리를 강하게 만든다 7
강부원 지음 / 믹스커피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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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이 한국교회사에 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내용의 글을 썼었는데, 좀 더 범위를 넓혀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한국사, 특히 그중에서도 현대사에 관한 이해도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우선은 학교에서 이 부분에 대해 잘 가르치지도 않을뿐더러, 소위 정체성 정치가 심해지면서 현대사에 관한 어이없는 주장들이 범람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장 지난 100년만 봐도 우리나라는 정말 버라이어티한 사건들의 연속이었다. 식민지 시절을 경험하기도 했고, 3년간의 내전을 겪었고, 민주 공화국을 건설했다가 군부 쿠데와 군사독재시절을 지나기도 했다. 군주를 처형하는 혁명 없이 다시 민주화를 이루기도 했고. 어지간한 국가가 2, 3백 년 동안 겪어야 할 일을 압축해서 100년 만에 모두 겪은 셈이다. 그뿐 아니라 놀라운 수준의 경제성장과 그로 인한 도시의 외적 변화들, 그리고 최근에는 극단적인 출생률 저하로 인한 인구 소멸 위기까지...





물론 이 책이 그런 우리나라의 현대사 전체를 조망하게 해 주는 건 아니다. 책 제목처럼 우리나라 현대사의 여러 장면들 중 40개를 뽑아서 큼직한 주제 아래 소개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그 기간 역시 한국전쟁 이후부터 90년대 까지 약 50년에 한한다. 그래도 이 기간 동안 뽑아 놓은 장면들을 보면 정말 이 나라는 다이내믹하구나 싶다.


시점이 시점이다 보니 개인적인 경험과도 어느 정도 겹치고 있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이라든지, 성수대교 붕괴, 다미선교회 휴거 사기 같은 것들은 어린 시절 뉴스를 통해 본 것들이지만 여전히 기억에 남아 있다. 또, 내가 태어나고 자랐던 성남의 역사와도 관련된 광주대단지 이주 사건 같은 것들은 좀 더 인상적이기도 했다.


성남시의 기원은 박정희 시절 서울의 미관을 위해 청계천 인근에 살던 빈민들을 거의 반 강제로 이주시켜 만든 광주대단지였다. 집과 편의시설, 일자리까지 만들어주겠다고 판자촌 주민들을 꾀어 보냈지만, 그들이 마주한 건 맨땅에 그어진 줄과 군용텐트가 전부. 물을 한 번 얻으려면 수 km를 걸어가야 했고, 하루에 겨우 버스 네 번만 지나가는 곳에 버려진 이들의 이야기는 군사독재 정부가 보여준 무능함과 잔혹성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저자의 시각은 대체로 이 시기의 문제점, 혹은 어두운 지점들을 향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지난 반 세기의 역사가 어둠기만 했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이런저런 이유로 감추고 숨기려 했던 이야기들도 있는 법이고, 그런 장면들은 누군가 애써 들춰내지 않으면 그대로 잊히고 말 것이다. 하지만 그런 역사와 기억들 또한 오늘의 우리를 구성하는 것들이니 그냥 잊어버릴 수만은 없는 것들이다.


말 그대로 대한민국은 다양한 굴곡을 지나왔다. 주한미군들이 저지른 잔혹한 범죄들을 처벌조차 못했던 약소국이었고, 독재정권은 각종 정치공작으로 정권을 유지하려고 애쓰기도 했다. 빠른 성장을 위해 부실공사로 여러 건물들이 붕괴하기도 했고, 외적인 성장에 비해 성숙하지 못했던 내면은 끔찍한 범죄로 나타났다. 느리지만 그런 문제들이 생길 때마다 조금씩 개선해 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우리가 정말로 그런 일들을 극복했나 싶다. 백주 대낮에 아파트들이 무너져 내리고, 무도한 정권은 노동자들을 깡패로만 몰기 바쁘다. 어느 샌가 검찰이라는 권력기관을 동원해 언론은 장악되어버렸고. 상황이 이렇게 되었는데도 생각보다 세상이 잠잠한 건, 어쩌면 우리가 근대사를 너무 일찍 잊어버렸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우려도 든다.



그리 어렵지 않게, 지난 50년의 다양한 사건들을 스케치 해 가는 책이다. 익히 아는 것이 있더라도, 또는 근대사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더라도 전체적인 윤곽을 그려가는 데 제법 쓸만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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