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이건 중요한 거니까 잘 기억해 둬.

누군가에게 지금처럼 가까이, 따뜻하게 다가가면

생김새 같은 건 잘 안 보이게 돼.

지금 거울이 흐려진 것처럼.

 

- 정지원, 샤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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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대화가 없는 아이와

아빠가 없는 아이는 크게 다르지 않다.

- 토마스 호프마스터

론 헌터 주니어, 6』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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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은 격투기 선수 용후(박서준)에게 어느 날 갑자기 손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출혈이 발생한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해서 만나게 된 안 신부(안성기)는 바티판에서 파견되어 온 구마사제. 아버지를 살려 달라는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은 신에 대한 깊은 배신감과 불신을 갖고 있던 용후는 안 신부를 쉽게 믿지 못하지만, 점점 그에게 마음을 열게 되면서 함께 악의 사제를 처단하기 위한 일에 나서게 된다는 이야기.

 

     ​격투기 선수와 구마사제라는, 쉽게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보여주는 뭔가가 있을 줄 알았으나, 캐릭터들이 하나같이 전형적인 오버스러움을 벗지 못해 딱 뻔한 영화가 되어버렸다. 구마사제라는 소재마저 최근에 OCN에서 방송되었던 프리스트나 앞서 제작되었던 영화 검은 사제들보다 못했으니... 초반의 말끔한 클럽 사장의 모습에서 뭔가 엄청난 능력이나 목적이 있을 것 같았던 빌런도 그냥 흐지부지되고 말았고. 사실 영화에서 뭘 말하려고 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내용도, 재미도, 그림마저도 잃은 영화.

 

 

 

 

 

      영화의 초반부터 중후반 상당 지점까지 주인공 용후를 괴롭게 만드는 건, 어린 시절 기도에 관해 겪었던 강한 실망이다. (아마도) 출산 과정에서 세상을 떠난 어머니부터, 사고로 순직한 아버지까지, 신에게 기도를 했음에도 왜 구해주지 않았느냐는 것. 단순해 보이긴 하지만, 기도의 가장 기본적인 부분을 묻는 본질적인 질문이다. 히친스나 도킨스 같은 신무신론자들이 대표적으로 비꼬는 부분이기도 하고.

 

     ​사실 기독교 신앙을 가진 이들에게도 어려운 질문이다. C. S. 루이스는 개인기도에서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11:24)는 구절을 어린아이나 불신자에게 기독교를 가르치는 출발점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는 우리가 조금은 다른 차원의 존재가 되었을 때 적용될 수 있는 구절이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물론 우리는 그분의 가르침에 따라 청원 기도를 할 수 있다. 그분은 훨씬 열등한 기도도 받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한편 루이스는 세상의 마지막 밤에 실린 기도의 효력이라는 글에서 기도의 정의를 좀 다르게 내린다. 그는 기도를 요청이라고 말한다. 요청은 강제와 달리 거절당할 수 있음을 전제한다. “무한히 지혜로운 존재가 유한하고 어리석은 피조물들의 요청에 귀를 기울인다면, 당연히 그는 요청을 들어주기도 하고 거절하기도 할 것이다. 다만 우리는 기도를 들으시는 분의 선한 속성과 의지를 믿고 구할 뿐이다. 그렇게 요청(기도)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우리는 그분에 대해 더욱 깊이 알아가며 성숙해지게 된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은 영화 속 어린 용후에게는 너무 어려운 내용이었을 것이다. 그의 보호자였던 어른들(아버지와 신부)은 제대로 된 설명 없이, 그리고 자신들도 충분히 이해되지 않는 내용을 문자적으로만 가르친 실책이 없지 않고.(물론 이 부분을 쉽게 가르치는 곳은 많지 않다)

 

 

 

 

     ​엑소시즘이라는 소재가 끊임없이 대중문화 가운데 다뤄지고 있는 건, 영적인 영역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이 부분이 지나치게 흥미 본위로만 그려지고 있다는 것이 아쉬운 부분. 신비주의나 영적 탐험은 제대로 된 지도가 없다면 길을 잃기 쉽다는 C. S. 루이스의 경계를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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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깨달았다.
혼자와 외톨이는 닮은 듯 다르다.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은데
혼자가 되어버리는 것이 외톨이다.


- 시게마쓰 기요시, 『블랭킷 캣』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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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급생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신경립 옮김 / 창해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추리소설로 잘 알려진 히가시노 게이고의 학원물. 선천성 심장병을 가지고 있는 여동생이 있는 주인공 니시하라 소이치는 어느 날 아침 학교에서 여자친구 미야마에 유키코가 죽었다는 소식을 알게 된다. 얼마 후 유키코가 임신을 한 상황이었다는 소문이 돌았고, 소이치는 그 아이가 자신의 아이일 것이라고 생각한다.(이 자식!)

 

     ​유키코가 사고를 당했을 때 학교의 여교사 미사키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소이치는, 미사키가 사고와 관련되어 있다고 믿고 많은 학생들 앞에서 추궁을 하기 시작한다. 얼마 후 미사키가 죽은 채로 발견되면서 소이치의 머릿속은 혼란에 빠지고, 누군가 그를 범인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마저 받는다. 그러는 동안 경찰의 수사는 시작되고, 소이치는 자신이 결백하다는 것을 증명함과 동시에 범인이 누구인지를 찾기 시작한다.

 

 

     ​학교를 배경으로 한 소설인데, 소재가 꽤나 세다. 학생 간 혼전성관계와 임신, 잇따른 죽음에, 여학생에 성적으로 접근하는 교사까지. 그런데 그 중심에 있는 인물은 또 너무나학생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주인공 소이치의 판단력과 행동은 딱 십대의 수준에 머무는데, 덕분에 이야기는 어설픈 추리와 충동적인 행동들을 밟고 진행된다. 이게 또 이 작품의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아마추어들만의 탐정놀이로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기는 어려웠기에, 작가는 형사들의 수사를 병행시킨다. 양쪽이 종종 마주치면서 진실을 향해 다가가는 모습은 긴장감과 안도감을 교대로 느끼게 만든다. 노련한 작가의 솜씨가 드러나는 부분.

 

     ​다만 작품 후반부에 밝혀진 사건들의 전말은 예상했던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서 살짝 김이 샜다. 좀 더 화려한 반전이 있었으면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는데, 뭐 그랬다가는 애초에 고등학생을 주인공으로 세운 보람이 없어질 지도 모르니까... 썩 나쁘지는 않았던 구성.(그래도 소설 내내 직접 언급되지 않았던 주인공 소이치와 히로코 사이의 관계를 묻는 형사의 질문과 그에 대한 소이치의 대답은 살짝 흠칫 놀라게 만들었다.)

 

 

     작가 후기에 학창시절 자신이 얼마나 교사들을 혐오했는지가 실려 있다. 자신들이 세상 모든 것을 다 아는 양, 상대적 약자일 수밖에 없는 학생들 앞에서 으스대는 꼴이 싫었다는 내용인데, 덕분에 이 작품 속 등장하는 교사들은 하나같이 공감이나 교감이 이루어지지 않는 모습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문제의 발단은 주인공 소이치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던, 작품 후반에 그 전말이 드러난다) 미야마를 성관계로 끌어들여 임신하게 만든 것도, 그 뒤에 일어난 사건들의 원인의 한 축도 모두 소이치였다. 그런데도 혼자서는 의협심에 넘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나선다는 그림 아래 돌아다녔던 건 어쩌면 일조의 자책감, 자기부정의 한 형태였을지도 모르겠다.

 

     ​흥미로운 내용과 전개에, 쭉쭉 읽혀나가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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