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어떻게 과학의 팔을 비트는가 - 기후 낙관론에 맞선 세계적인 환경과학자의 폭로
루이스 지스카 지음, 김보은 옮김 / 한문화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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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이 꽤 인상적이다. 정치가 과학의 팔을 비튼다라... 대략 이 책에 정치권력에 의해 과학적 사안들이 어떻게 왜곡되는지가 잔뜩 소개될 것 같은 인상을 주는 제목이지만, 실은 책 내용의 대부분은 이산화탄소가 농업계에 미칠 영향에 관한 과학적 실험과 그에 근거한 전망들이다. 정치 비판보다는 과학 이야기, 그 중에서도 식물학, 농학에 가까운 책이다. 물론 책 후반에 약간 제목에 실린 종류의 비판이 실려 있기도 하다. 그 부분은 뒤에서 다시 언급하기로 하고.



말했듯이 이 책은 이산화탄소에 관한 내용이다. 어느 정도 환경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익히 알고 있지만, 이산화탄소는 대표적인 온실가스 중 하나다. 물론 이보다 더 큰 효과를 내는 물질들도 있지만, 그 양에 있어서 이쪽이 압도적이다. 우리가 배출하는 탄소의 대부분이 이산화탄소의 형태니까.


그런데 또 한 편으로 이산화탄소는 식물들이 자라는데 필요한 자원이기도 하다. 식물의 성장률을 높이는 요인에는 높은 온도와 적절한 양분, 그리고 충분한 이산화탄소가 포함된다. 쉽게 말해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지면 식물이 더 빨리 자란다는 뜻이다.


식물이 빨리 자라는 건 좋은 일이 아닌가 할 수도 있다. 그러면 이산화탄소의 증가가 꼭 나쁜 일만은 아닐 거라는 추측도 가능하고. 실제로 미국 보수 정치계에서는 이런 식의 주장을 하면서 기후위기에 대응하려는 정부의 노력을 중단시키려고 애쓰고 있다고 한다. 당연히 그 뒤에는 화석연료로 돈을 버는 기업들의 막대한 로비가 있고.


책에서 저자는 이산화탄소가 식물의 성장을 빠르게 한다는 요인은 사실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문제는 디테일이다. 저자에 따르면 그 빠른 성장을 하는 식물들 중에는 우리가 애써 기르는 곡물류만이 아니라 잡초도 포함되어 있기에(그리고 이것들이 더 빨리 자라기에, 그 방해를 받아) 전체적인 곡물생산량은 오히려 줄어들 수 있다고 말한다. 제초제를 쓰면 되지 않느냐는 반론이 있겠지만, 높은 이산화탄소 수치는 농약에 대한 잡초의 저항력을 높일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빨리 자란 식물이 생산하는 열매에는 몇몇 영양소들이 부족하자는 증거도 있고, 나아가 식물과 연관된 생태계의 좀 더 넓은 범위(곤충의 식생이라든지, 식물을 먹고 사는 동물들이라든지)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문제를 단편적으로만 생각할 게 아니라는 말이다.




책 말미에서 저자는 과학의 영역에 정치가 부적절하게 개입하는 문제에 대해 언급한다. 우선 저자 자신부터가 25년 가까이 미국 농무부 소속의 과학자로 다양한 연구를 해 왔던 인물이다. 몇 번이나 언급되는 수치인데 1달러를 (연구비로) 투입해 10달러를 벌어들이는 나름 유익한 작업들을 해왔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그런데 이들이 하는 연구가 보수 정치인들에게 후원금을 제공하는 기업들의 이과 관련되어 있다는 게 문제다. 예컨대 트럼프는 후원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기후위기 관련 예산을 대폭 줄였고, 국제적 노력에서도 탈퇴를 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주장에 반대하는 과학적 연구를 하는 기관들을 억압하기도 했고. 결국 약 50%의 연구자들이 사직을 했다고 하는데, 저자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또 하나의 문제는 트럼프가 벌여놓은 난장판이 단지 미국에만 영향을 끼친다는 게 아니라는 점에 있다. 미국이 가진 그 큰 국제적 영향력을 고려해 보면, 그건 거의 전 세계에 (악)영향을 끼친다. 책에는 그게 막대한 돈을 쏟아 부을 수 있는 반(反)환경 기업들의 로비만을 언급하는데, 생각해 보면 결국 그런 광고와 헛소리에 넘어가 공화당에 표를 준 무식한 미국 농부들과 블루칼라 노동자들 탓도 있지 않을까.(물론 미국 민주당이 선이라는 뜻은 아니다.)


책이 거의 끝날 때 즈음에 재미있는 인터뷰가 하나 실려 있다. 한 농부와의 인터뷰였는데, 날씨가 극단적으로 변했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농수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파종하기 알맞은 날이 줄었고, 폭풍과 홍수가 늘고 있다고. 다시 진행자가 전에 못 보던 잡초나 곤충, 식물병을 본 적이 있냐고 묻자 농부는 물론이라고 대답한다. 그래서 새로운 시설에 돈을 써야 하느냐는 질문에 농부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진행자가 묻는다. 기후변화가 사실인 것 같냐고. 그러자 농부는 대답한다. “그럴리가요. 그건 앨 고어나 하는 말이죠.” 이런 수준의 유권자들이 있는 나라에서 제대로 된 환경정책이 나오긴 바라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물론 이게 어디 미국에만 해당될까. 수년 전 우리나라에서도 자기는 보수정당(그게 한나라당이었는지 새누리당이였는지 기억이 정확치는 않다. 하지만 뭐 그리 차이가 있겠는가. 그 자리에 자민당이나 나치당이 들어가도 별 위화감이 없는 인터뷰였는데)이 나라를 팔아먹어도 꼭 찍을 거라고 했던 한 시장 상인의 인터뷰가 한동안 유명한 짤이 된 적이 있었다. 물론 진짜로 나라를 팔아먹으면 애초에 투표할 권한 따위도 없겠지만, 이런 수준의 무식한 시민들이 서식하는 환경에서 좋은 정치가 나올 수는 없는 법이다.


우리는 거의 일상적으로 정치인들을 깐다. 마치 정치인이 온 나라를 망치고 있는 것처럼. 그러나 선거철 종종 목격할 수 있듯, 결국 그들은 시민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존재다. 우리의 선택이 그들의 태도를 만든다. 그들의 오만함은 우리가 그들에게 굽실거렸기 때문이고, 그들의 당당함은 우리가 그들의 잘못에 눈을 감고 넘어갔기 때문이다. 범인은 바로 우리다.




과학을 다루다보니 어느 정도 전문적인 내용들, 그래프와 표가 등장한다. 하지만 그런 복잡한 내용은 조금 미뤄두더라도 책을 이해하는 데는 그리 어렵지 않게 쓰였다. 하지만 바로 그런 과학적 실험 데이터가 이 책을 좀 더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부분이니, 너무 금방 넘기지 말고 잠시 머리에 담아두는 게 좋다. 사실 그래야 이 책에서 지적하는 기후위기부정론자들의 이산화탄소 드립을 이길 수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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