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냇물이 얼마나 즐거운 건지 아세요?

시냇물은 언제나 웃어요.

겨울에도 얼음 밑에서 웃는 소리가 들려요.

초록 지붕 집 근처에 시내가 있어서 참 좋아요.


- 루시 모드 몽고메리, 『빨간 머리 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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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회의 이콘 신학
레오니드 우스펜스키 지음, 박노양 옮김 / 정교회출판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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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성화상”이라고 불리는 이콘은 오늘날에는 가톨릭교회나 정교회의 예배와 신앙생활에 중요하게 남아있다. 대신 내가 속해 있는 개신교회 전통에서는 이 부분이 크게 강조되지 않는다. 잘 알지 못하면 다양한 오해가 생기기 마련인지라, 이렇게 일부러 찾아보지 않으면 영영 알아볼 기회가 없을 것 같아 일부러 손에 들어 본 책이다.


성화를 직접 그리기도 하고 연구하는 저자가 쓴 책인데다가, 우리나라 정교회에서 직접 운영하는 출판사에서 낸 책이기도 하니 그 내용은 어느 정도 정교회의 공식입장을 반영하고 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책은 이콘에 관한 비판적 검토나 설명보다는, 정교회가 갖고 있는 이콘 신학의 내용을 설명하고 옹호하는 데 좀 더 집중한다.(책 앞에 실려 있는 추천사에는 정교회 한국대교구장의 내용에 대한 보증까지 있다.)




흥미로운 부분은 이콘이라는 것이 정교회 신학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에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정교회에서 이콘이란 “전체로서의 정통 신앙 그 자체의 표현”(10)이다. 그렇다면 이콘에 대한 공격, 혹은 부정은 정교회 신학과 신앙에 대한 부정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사실 이건 좀 과장이 아닌가 싶은데, 이런 이콘에 대한 강한 애착은 8세기 경 동로마제국에서 있었던 강한 反(반)이콘주의자들의 핍박과 파괴로 인한 큰 피해의 기억에 기초하는 것 같다. 소위 성상파괴운동은 단순한 성상에 대한 공격만이 아니라, 그것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에 대한 공격으로도 이어졌던 것이다. 역사의 예를 보면 이런 종류의 핍박은 그 핍박을 받은 사람들의 정체성을 형성하기도 한다.


정교회 신학에서 가장 중요한 이콘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신 성자께서 인간의 형상을 띄고 세상에 오셨다. 그분의 말씀처럼, 우리는 그분을 통해 하나님을 본다. 구약의 형상 금지 규정을 가지고 이콘을 공격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와 그분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형상을 통해 신앙적 유익을 얻을 수 있다(54). 이게 그 중심 논리다.


이 논리를 조금 더 확장해 보면, 정교회는 이콘에 대한 공격을 성육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인다. 반대자들은 “하나님의 인간적 형상을 거부함으로써,… 물질 일반의 성화를 거부”(200)하고 있다는 것이다. 휴~ 과연 이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걸까? 다른 식으로 생각할 여지는 없을까?


예컨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진술에 대한 동의와, 그러니까 교회가 다양한 그림이나 조각으로 성자와 그 주변 인물들, 훌륭한 신앙의 선배들의 모습을 만들고 공경해야 한다는 주장 사이에 필연적인 논리적 연결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또, 이콘을 만들고 사용하지 않으면 물질의 성화라는 교리를 거부하는 것과 같다는 공격 역시 첫 번째와 두 번째 문장 사이에 논리적 연결의 긴밀성이 부족하긴 마찬가지다. 나는 저 진공청소기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말이 반드시 내가 청소를 하지 않겠다는 말은 아닐 수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해서 이콘에 관한 정교회 신자들의 애착과 사랑을 비웃을 필요는 없다. 더더욱 그들의 이콘을 파괴해야 한다는 생각을 할 필요도 없고. 개인적으로는 책 속에도 소개되는 프랑크푸르트 공의회의 견해와 비슷하다. 이콘의 사용은 허용하지만, 그것에 전례적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는, 예술과 역사적 기록으로 이콘을 보는 것이다(196).


물론 우리가 일상의 다양한 공간과 사물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는 것처럼, 이콘을 통해서, 특히 그것이 제작되는 과정에 반영된 다양한 신학적 장치들을 알고 바라봄으로써 특별한 유익을 얻을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건 이콘의 신성함이나, 그 사물이 갖는 특별함 때문에 아니라 그것을 통해 일하시는 성령의 힘이 아닐까.


이콘을 하나의 도구로서 이용해 그분께 가까이 나아가는 기회로 삼는다면 크게 문제가 될 건 없겠지만, 종종 정교회의 주장에는 여기에 그보다 더 큰 무슨 힘이 있는 것처럼 설명하는 느낌이다. 물론 이게 그저 느낌일 뿐이라면, 지나친 논쟁보다는 서로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의 형제와 자매들과의 우호적인 교제가 늘어났으면 하는 생각이다.


책에 많은 수의 컬러 도판이 실려 있어서 중간중간 보는 맛을 더해준다. 재미있는 건 그 중 “서미경 다띠안나”라는 이름의 한국인 화가의 작품이 자주 보인다는 점이다. 심지어 그림 속에 한글도 적혀 있다. 다만 이 도판들이 본문의 내용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제시되는 건 아니라는 점이 살짝 아쉽다. 물론 이 책 자체가 그림의 설명이 아니라 이콘에 관한 “신학”을 소개하는 데 그 목적이 있으니 문제는 아니다.


이콘에 관한 정교회 신자들의 생각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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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재난이 들이닥쳤을 때

어떤 심대한 의미를 찾았다고 서둘러 발표하는 일이

어둠의 한복판에 빛을 비추고자 하는

어떤 도덕적 의무감과 긴급함에서 나온 행동인지,

아니면 타자의 고통을 빌미로 자신의 신념을 일련의 수사들로 표현해

공감을 받아내려 하는 기회주의에서 나온 행동인지를

구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 데이비드 벤틀리 하트, 『바다의 문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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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읽는 불평등 사회 - 사회학자에게 듣는 한국사회 불안을 이기는 법
조형근 지음 / 소동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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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을 얼마 앞두고 요새 유튜브나 신문, 방송 등에서 이전보다 훨씬 더 다양한 가짜 정보들이 나돌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예전에도 종편채널에서는 꽤나 편향된 거짓 주장들을 한 트럭씩 실어 나르긴 했지만, 요샌 소위 공영방송이라는 데까지 그런 식의 정보로 오염되고 있다. 그 분야도 다양해서, 정치 영역은 물론, 경제, 사회, 문화 등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한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지식의 수준이 고도화 되면서 우리는 어떤 영역을 한 눈에 직관적으로 인식하는 게 어려워졌다. 다양한 매체들에서는 어쩔 수 없이 그 중 일부를 떼어다 나름의 방식으로 정리하고 해서 전달하기 마련인데, 문제는 이 과정에서 꽤 높은 빈도로 왜곡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그게 실수나 능력의 한계라면 또 그럴 수도 있지 하겠지만, 문제는 다분히 의도가 뻔히 보인다는 점이다.


아마도 이 책은 우리가 가진 다양한 영역의 지식 사이사이에 박혀 있던 편견이나 선입관을 줄이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MBC의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고정적으로 출연해 나누었던 주제와 대화들을 엮은 책이다. 물론 여기에도 문제를 이해하는 저자의 관점이 들어가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적어도 우리가 클릭 몇 번으로 얻은 수준의 지식보다는 좀 더 균형이 잡혀 있으니까.




가장 자주 소개되는 건 경제 영역이다. 상속세, 경자유전 원칙, 기본소득, 최저임금, 공공임대 주택, 공매도, 주식에서의 차등의결권 등 나름 우리 사회의 핫한 주제들이 다양하게 망라되어 있다. 관련 주제들에 대해 어느 정도 상식적인 이해를 하고 싶다면 한 번 읽어볼 만한 일.


이외에도 차별금지법이나 난민 문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같은 사회적 이슈들도 다루는데, 몇몇은 서로 다른 토막에서 반복적으로 보인다. 그만큼 저자가 관심이 있는 주제라는 의미일 것이다. 전체적으로 진보적 관점을 띄고 있는데, 그건 워낙 그동안 소위 보수지에서 관련 주제에 관한 헛소문을 많이 퍼뜨려놨기 때문에 교정차원에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소위 진보적 주장만 강요하는 건 물론 아니다. 대부분의 사안에 관해서 다양한 정보를 제시한 뒤 함께 고민해 나가야 할 문제라는 식으로 결론을 내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또, 의사협회의 자율규제라는 주제에 대해서는 오히려 찬성 쪽에 가까운 입장을 보이기도 한다.(읽고 나면 또 그런 면도 있겠구나 싶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제대로 된 지식을 얻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단편적인 정보를 모아 편향된 관점을 담은 영상들이 수두룩해서, 요샌 그런 쪽은 추천이 뜰 때마다 아예 “채널 추천 안함” 버튼을 누르곤 한다. 대개 시선을 끌기 위해 누군가를 폄하하거나 특정한 대상에 대한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게 메인이어서 보고 나면 기분도 썩 좋지 않다.


여전히 이런 책들의 쓰임이 있다는 말이다. 다양한 주제들을 간단하게 정리했지만, 그 깊이가 아주 얕지는 않으니 분명 도움이 될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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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예술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 실존하는 것을 찾아내려 한다는 점에서

맥락을 공유하며 서로 이어져 있다.

그렇기에 과학자들의 새로운 발견이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작용을 하기도 하고,

예술가들의 작업이 과학자들에게 신선한 화두를 던지고

시야를 넓혀주기도 한다.


- 서민아, 『빛이 매혹이 될 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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