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화의 진실 - 조선 경제를 뒤흔든 화폐의 타락사
박준수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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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요약 。。。。。。。

 

     조선 말, 오랜 세도 정치로 인해 왕권은 약화되고 나라의 곳간은 비게 된데다, 잇따라 외국의 배들이 해안에 나타나 통상을 요구하며 무력시위를 벌이던 혼란의 시기. 대원군은 아들인 고종을 대신에 전권을 휘두르며 나라를 개혁하려고 하지만 상황은 좀처럼 쉽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그가 선택한 것은 대규모의 토목공사(경복궁 중건)를 통해 왕실의 위엄을 세우고 왕권을 강화한다는 것이었고, 대규모 토목공사라는 게 다 그렇듯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많은 돈이 필요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라의 재정은 말이 아니었고, 그렇다고 백성들에게 더 많은 돈을 걷을 수도 없는 법. 고심 끝에 좌의정 김병학의 건의에 따라 당백전이라는 새로운 화폐를 발행하기로 한다.

     당백전. 말 그대로 이 하나의 동전에 기존의 동전이 가지고 있던 액면가의 백 배를 부여한다는 무시무시한 고액전. 당시 정부에는 화폐 발행에 있어서 통화량과 인플레이션과 같은 경제 요소들을 고려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고, 그런 이들이 찍어낸 당백전은 조선의 경제를 단번에 혼란으로 몰아넣는다.

     작가는 현금의 비중이 높았던 시전상인들과 현물의 비중이 높았던 송파장 상인들 사이의 미묘한 관계와 당백전의 발행으로 인한 경제적 문제발생에 관한 매커니즘, 그리고 악화(惡貨)에 관한 경제학적 논의들을 이 역사 소설 안에 녹여내고 있다.



2. 감상평 。。。。。。。

 

     대규모의 토목사업은 그 자체로 충분히 위험하다. 엄청난 재원이 필요한 사업은 국가의 재정에 심각한 타격을 준다. 재정이라는 게 무한한 것이 아니니 필연적으로 다른 부분에 있어서 사업 축소나 중단이 이루어진다. 특히나 대규모이기에 그 영향력도 커서 잘 되더라도 곧바로 수익을 얻을 수 없고, 실패하기라도 하면 이만저만한 손해가 아니다. 때문에 신중에 또 신중을 더해야 한다. 널리 의견을 수렴하고, 충분히 준비를 해야 한다. 하지만 조선 말 경복궁 중건은 매우 즉흥적으로 시작된 면이 있었고, 그 목적이나 효과에 대한 계산도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엄청난 재정 적자는 당백전의 발행을 초래했고, 이는 수많은 백성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역사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우는 것은 아닌가 보다.

     대한민국의 학생들은 이 나라의 근현대사에 관해 매우 적은 지식의 양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 편년체로 기록된 역사 교과서의 가장 뒷부분에 위치해 있기에 시험범위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당연히 시험을 위해 공부하는 그들이 뭘 제대로 알까. 더구나 이 나라를 그렇게 자랑스러워 한다는 사람들은 국사를 선택과목으로 전락시켜버리기나 하니(개인적으로는 근현대사에 뭔가 감추고 싶은 게 기록되어 있다고밖에 볼 수 없지 않을까 싶다) 말이다. 이 책은 그런 부족한 부분을 적당히 보충해 줄 수 있는 좋은 보조교과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책에 등장하는 조선 말의 경제 상황은 생각보다 발전된 모습으로,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경제와 역사를 접목시켜 보겠다는 취지는 매우 좋다. 두 가지 주제가 썩 괜찮게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조선 후기의 정치와 경제 상황에 대한 묘사도 꽤나 흥미롭다. 소설이라는 문학작품으로 봐도 당백전 발행으로 인한 경제적 위기와 시전 상인과 송파 상인들 사이의 서로 다른 이해관계로 인한 대립, 나아가 위조화폐 사건 등이 동시에 흥미롭게 진행된다. 다만 전업 작가가 아니었기 때문인지, 시작된 이야기들이 충분히 등장인물들에 의해 해소되지 못하고 좀 급하게 마무리된 느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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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인의 책마을 - 책세이와 책수다로 만난 439권의 책
김용찬.김보일 외 지음 / 리더스가이드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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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책읽기를 즐겨하는 독자들이 책에 관해 말하기 시작한다. 전문적인 필자도 있는가 하면 처음으로 책에 자신의 이름(혹은 닉네임)을 넣은 이도 있다. 온오프라인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스물 두 명의 저자들이 ‘책에 관한 책’이라는 콘셉트로 저마다 생각하던 것들을 글로 옮겼다. 단순히 책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서로 연결된 주제를 담고 있는 책들을 하나의 이야기 속에 녹여내며 자연스럽게 인용하고, 소개하며, 평가한다는 데 이 책만의 독특함이 있다.

 



2. 감상평 。。。。。。。

 

     내가 쓴 글이 들어 있는 책에 대해서 쉽게 좋다 나쁘다는 평을 하기는 어렵다. 최소한의 양심이랄까. 그래도 내가 쓴 글은 간만에 깔끔하게 쓰였다. 초고 단계부터 수십 번을 넘게 읽어봤지만, 근래 이 정도로 괜찮은 내용과 형식의 글은 못 써본 것 같다.(읽고 나서 이게 제일 잘 쓴 거란 말이야? 라고 한다면 어쩔 수 없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다양한 저자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써 내려갔기에 ‘한 권’의 책으로 보면 분명 산만한 데가 있다. 편집자들이 애써 항목을 만들고 그 안에 글을 다듬고 배열해 두었지만, 이는 편이 상 그런 것일 뿐 논리적인 순서나,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독자마다 관심 있는 분야를 선별적으로 택해서 읽어나갈 수도 있고, 평소에 많은 관심을 갖지 않았던 분야들에 대해 간단한 소개를 받는 식으로 읽어나갈 수도 있다. 정 관심이 없다면 그 분야나 글을 대충 읽고 넘어가도 전혀 무방하다. 즉, ‘한 권’의 책이 아니라 ‘여러 권의 책들’로 이해하면 이 책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분명 다양한 저자는 다양한 독자들의 취향을 어느 정도 받아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글의 수준을 비슷하게 맞추기란 꽤나 어려운 작업. 이 책에 실린 글 중에도 단지 책 소개에 급급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들도 있고, 또는 반대로 자신의 생각들을 주장하느라 책에 관한 소개가 미흡한 것들도 있다.(굳이 평가하자면 내 글은 후자 쪽의 문제일까.) 하지만 이 역시 앞서와 같이 ‘여러 책들’로 이해하면 못 이해할 것도 아니다.
 

     책으로 세상을 이야기한다는 의미의 ‘책세이’(이 단어는 공교롭게도 책으로 에세이를 엮어낸다는 뉘앙스도 준다)라는 컨셉트 자체가 매우 신선하다. 나름 수백 권의 책을 읽어봤지만, 아직 이런 식의 책은 본 적이 없다. 전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독자들이 베르나르의 글쓰기를 흉내 내 쓴 글을 엮은 『나무 2』라는 책을 읽고, ‘출판 자체가 재미있는 시도인 책’이라는 평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이 평가는 이 책에도 그대로 붙여도 좋을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단지 ‘아마추어스러운(?) 글들’이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책은 사람을 지혜롭게 해 주는 법. 적게는 수년, 길게는 십 수 년의 책읽기 내공을 지닌 분들의 작품이다. 결코 가볍게 날아가는 깃털 같은 책은 아니다. 다양한 분야에 있어서 독서의 길을 잡아주는 책이라고 할까? 혼자서 이 길을 찾아가는 것은 지난하다는 것은 책을 좀 읽어본 사람이라면 다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들이 당신의 그 괴로운 여정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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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머 씨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장 자끄 상뻬 그림 / 열린책들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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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같은 마을에 사는 좀머 씨라는 독특한 아저씨를 바라보며 조금씩 자라가는 주인공 ‘나’의 성작 이야기. 하루 종일(종종 며칠 동안도) 그저 앞으로 걷는 일밖에 하지 않는 좀머라는 독특한 아저씨를 두고 마을 사람들은 이런저런 추측을 하지만 누구도 정확하게 그에 대해 알지는 못한다. 누구와도 제대로 대화를 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길만을 가고자 하는 아저씨를 흥미롭게 관찰하던 (채 십대가 되지 않았던) ‘나’는 의도치 않게 몇 차례 그와의 직간접적인 조우를 하고, 이때의 만남은 ‘나’의 성장에 작지만 중요한 영향을 준다.


 

2. 감상평 。。。。。。。

 

     그리 길지 않은 이 동화 같은 이야기는 그다지 복잡한 구조를 가지지 않으면서도(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여지를 풍성히 담고 있다. 서술자인 ‘나’의 성장소설로 읽을 수도 있고, ‘나’를 단순한 관찰자로 놓고 좀머 씨의 행동에서 의미를 찾아내며 읽을 수도 있다. 물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이야기만을 따라갈 수도 있고.

     내 경우엔 역시나 좀머라는 인물의 독특한 행동이 눈에 더 띄었다. 누구와의 소통도 거부하며 - 어쩌면 두려워하며 - 자기의 길만을 가려는 존재. 누군가의 방해를 극도로 싫어하며 앞만 보고 걸어가다 결국 가지 말아야 하는 곳까지 걸어간 사람. 실제로도 외부와의 접촉을 극도로 경계한다는 저자가 91년 이 작품을 썼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저자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일 수도 있고, 어쩌면 지나치게 개인주의화 된 세상에 대한 냉소를 보내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은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은 1900년대 중반의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해 좀머 씨의 행동과 일종의 대조를 보여주는 것을 보면 후자 쪽으로 해석할 여지가 더 큰 것일지도 모르겠다.

     인간 진화에 관한 신화는 가면 갈수록 생존에 적합한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가르치지만, 오늘의 인간들이 과연 과거의 사람들보다 더 살아가기에 적합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주 전체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데도 유독 인간과 생명체만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그저 하던 대로만 해도 충분히 번성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건지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는 좀머처럼 호수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데도 그것을 인정하기 싫어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미 우리는 더불어 살아가는 법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실패를 경험하고 있다. 생존을 위해서는 좀 더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옳다는 식의 헛소리가 박수를 받고 있는 시대이니 뭐 말은 다했다. 길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돌아가는 것이 답이다. 여기가 정확히 어디인지 모른다면,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특히나 반대쪽으로 가고 있었다면 돌아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바른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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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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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1990년대 중반 갑자기 서울 강남 한복판에 있던 백화점 하나가 말 그대로 폭삭 주저앉았던 사건이 있었다. 이름 하여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이 작품은 바로 그 붕괴 사건을 중심으로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는, 하지만 모두 강남이라는 특정한 지역과 연결된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타고난 미모로 인해 눈에 띄어 고급 술집의 프리랜서 아가씨로 들어갔다가 결국 백화점 회장의 둘째 부인으로 들어가게 된 박선녀, 일제시대 일본의 끄나풀로 활동하다가 해방 이후 미 군정청과 군대의 정보기관에서 활동하며 치부한 재산으로 백화점을 세운 김진, 강남 개발이 한창 시작되려고 할 시기에 젊은 시절을 보내며 부동산업에 몸을 담아 한 재산을 톡톡히 모은 심남수, 광주에서 상경해 전국의 조직폭력계를 주름잡던 홍양태와 개발 바람에 밀려 광주(현재의 성남)의 천막촌에서 힘겹게 삶을 이어온 임판수 부부의 이야기가, 일제 강점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격동적이었던 한국의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긴장감 있게 펼쳐진다.

  


2. 감상평 。。。。。。。

 

     새 정부 들어 가장 자주, 그리고 노골적으로 등장했던 말 가운데 하나가 ‘편향’이라는 단어였다. 그 이전 정부의 10년간을 ‘잃어버린 시간’으로 규정하고 마치 자기들이 그 10년 전에서 바로 튀어나온 것처럼 으스대며 모든 것을 이전 정부와 반대로 하는 것을 그 기치로 삼았었다. 바로 그런 일환으로 진행되었던 것 중 하나가 ‘좌편향 된 역사관’에 대한 수정이었다. 명목상으로는 편향된 역사를 균형 있게 서술한다는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래로 정권을 잡았던 모든 권력자들을 긍정적으로 묘사해야한다는 또 하나의 말 같지 않은 원칙을 강제했을 뿐이었다.  

 

     이런 역사관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 중요한 특징은 ‘물질에 대한 숭배’다. 지저분한 습지와 쓸모없이 버려진 땅에 높은 건물들이 들어가고, 아파트가 세워지고, 백화점이 건립되어 사람들이 많이 살게 되었으니 이게 발전이고 진화며, 이런 일들을 이룬 위대한 지도자들을 마땅히 찬양해야 한다는 것.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땀이 흘러들어갔는지를 정당하게 평가하지는 않으면서 말이다. 이런 식의 논리는 오늘날의 뉴타운 재개발과 같은 사업들을 추진하는 데서도 동일하게 반복된다. 힘없고 가난한 원래 주민들은 푼돈을 쥐어 주고는 다 쫓아내고, 그 자리에 수억 원짜리 깨끗하고 멋진 집을 짓는다는 것이 뉴타운 계획의 본질이 아닌가.

     이 작품은 찬란한 발전의 역사로만 채색되고 있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이면을 다룬다. 작가는 뛰어난 스토리텔링으로 이 격동적이었던 시대의 이면을 담담하게 서술해 나간다. 거기에는 철거민들의 고달픈 삶이 있었고, 권력에 줄을 대어 친일행각을 감추고 승승장구해 나간 재력가도 있었다. 개발의 주변에서 부동산 투기를 통해 재산을 불린 이도 있었고, 밤의 동반자인 술과 여자, 그리고 폭력으로 개발의 현장을 지켰던 이도 있었다.

     당연히 작품 속에서 이 다섯 명의 주인공들은 서로와 관계를 맺는다. 술과 폭력은 늘 함께 가고 있었고, 술을 통해 여자는 부동산으로 한 몫을 챙긴 젊은이나 길고 험난한 인생을 살아왔던 재력가와 인연을 맺는다. 철거민의 딸은 재력가의 백화점에서 일을 하고, 회장의 둘째 부인과 우연히 한 자리에 매몰된다. 여기까지는 문학적 기법으로 충분히 등장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작가의 뛰어난 점은 그 인물들이 어디까지나 표층적인 관계만을 맺을 뿐 속 깊은 관계로 이어지지 못하도록 그리고 있다는 부분이다. 강남 개발의 한복판에서 모두들 결과적으로 한 몫씩을 챙기긴 했지만, 다른 사람들과 속 깊은 관계를 맺지는 못하고 있다. 오히려 천막촌으로 이주해 와 가진 것은 직접 지은 집 한 채밖에 없는 임판수 부부야 말로 제대로 성공한 것은 아니었을까?

     각각의 인물들의 이야기의 말미에 이르면 그들 모두는 마치 꿈에서 깨어난 듯 허탈함을 느낀다. 구운몽과 같은 환몽설화는 그리 낯선 구조는 아니지만, 강남으로 상징되는 개발신화와 우리에게 익숙한 현대의 이야기라는 요소들이 잘 어우러져 새로운 감흥을 준다. 올 상반기에 읽은 소설 중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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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전미궁 가이도 다케루의 메디컬 엔터테인먼트 4
가이도 다케루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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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은 원래 출신성분이 형편없는 존재인데도 지금은 귀부인처럼 행세하고 있어.

웃기지도 않지. 자신의 모태를 경시하는 현대 의료는 언제 어디서든 파탄에 이를 걸세.

 

1. 줄거리 。。。。。。。

 

     일본의 한 소도시에 위치한 사쿠라노미야 병원을 조사해 줄 것을 요청받은 덴마(天馬)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자원봉사자 명목으로 병원에 들어가게 된다. 지역의 유명한 병원인 도조대학병원의 위성병원인 사쿠라노미야 병원은 도조 대학에서 더 이상 손댈 수 없는 환자들이 넘어와 마지막 나날들을 보내는 식이었다. 소위 ‘종말기 의료’를 담당하고 있는 것.

     본의 아니게 작은 사고로 인해 며칠 간 입원을 하게 된 덴마는 병원에 입원한 모든 환자가 그 병원의 직원으로 고용되고, 병원과 함께 헤키스이인이라는 종교법인(절)이 서로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등, 이와오 원장과 그의 두 딸로 이루어진 가족 병원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점들에 주목을 하게 된다. 곧 얼마 되지 않는 기간에 입원 중이던 환자의 상당수가 차례로 죽음을 맞고, 덴마는 점점 병원의 비밀을 담고 있는 핵심부로 진입해 들어가기 시작한다.

  


2. 감상평 。。。。。。。

 

     등장인물과 지명, 기관의 이름이 일본어가 아니라 한국어로 되어 있다고 해도 대번에 ‘일본 이야기구나’ 하고 알아챌 수 있을 것 같은, 전형적인 일본 분위기의 작품이다. 바닷가에 세워진 요새 같은 구조의 병원이나, 가족 중심의 운영, 해부한 시체들의 장기를 담아 놓는 드럼통 같은 소재는 좀처럼 우리나라 작품들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부분들이니까. 자칫 음산한 느낌만을 줄 수도 있는 소재들이지만, 작가는 서유기 삼총사 할머니들이나 히메이야와 같은 인물을 통해 지나치게 작품이 무거워지는 것을 막아 내는 솜씨를 보여준다. 


     작가의 능력은 작품의 분위기만을 수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부분에서도 훌륭한 재능을 보여준다. 사전에 어떤 정보도 가지지 못하고 그냥 첫 장을 넘기기 시작했으나, 서너 장(章)을 넘기면서부터 이야기에 푹 빠져들게 된다. 추리소설 기법을 사용해 조금씩, 하지만 모든 정보를 독자에게 전해주면서도 다음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오랜만에 느끼는 기분 좋은 흥분감.

     작품은 충분히 재미있다. 다만 강한 일본색이 느껴지고, 시신의 해부와 장기 적출, 죽음에 관한 이와오 원장 가족들의 독특한 관점은(개인적으로도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는다) 약간의 저항감이 느껴질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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