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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섬 - 주제 사라마구 철학동화
주제 사라마구 지음, 송필환 옮김, 박기종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좋아한다는 것은 소유하는 최선의 방법일 거요.

소유한다는 것은 좋아하는 최악의 방법일 테지만.

  

 

1. 줄거리 。。。。。。。

 

     한 남자가 왕을 만나고 싶다고 청원을 한다. 왕은 귀찮았지만 사람들의 눈을 의식해 그를 만나러 갔고, 왕을 만난 남자는 대뜸 배 한 척을 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한다.

     미지의 섬을 찾아 떠나겠다는 남자와, 더 이상 미지의 섬은 없다고 말하는 왕. 남자는 정말로 미지의 섬을 찾아갈 수 있을까?



 

2. 감상평 。。。。。。。

 

     『눈먼 자들의 도시』 등의 책으로 알게 된 포르투갈 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작품이다.(이름은 일본사람 같지만) 앞서 읽었던 작가의 작품들(『눈먼 자들의 도시』와 『눈뜬 자들의 도시』)과는 달리, 사회에 대한 강한 비판적 시각이나 냉정한 묘사는 없다. 그래서 역자도 ‘철학동화’라는 부제를 붙여 놓았다.(분량도 짧아, 생각을 하며 읽어도 30분이면 된다.)

     ‘미지의 섬은 없는 것이 아니라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라는 주인공 남자의 믿음은 주변 인물들과 끊임없이 충돌한다. 왕과 충돌을 하고, 항구의 관리자와, 선원들과 충돌을 하면서 남자의 꿈은 조금씩 흔들린다. 결국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으니까. 온통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라고 여기는 사람들 속에서 그가 살아갈 수 있는 자리는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작가가 그리고 있는 상황은 오늘의 상황과 매우 흡사하다. 사람들은 온통 눈에 보이는 것 - 먹는 것과 즐길 것 -에만 몰두하고, 보이지 않는 미지의 무엇을 향한 꿈을 비웃는다. 그들이 알고 있는 섬도 언젠가는 미지의 섬이었고, 미지의 섬을 찾아 나선 사람들 때문에 알게 된 것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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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가게
장 퇼레 지음, 성귀수 옮김 / 열림원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1. 줄거리 。。。。。。。

 

     때는 그다지 멀지 않은 미래. 몇 대에 걸쳐 자살전문용품을 파는 가게가 하나 있었다. 유구한 전통의 가업(家業)에 충실하려고 하는 아버지 튀바슈, 그런 남편을 도와 독극물를 제조하는 뤼크레스, 첫째 아들인 뱅상은 만성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기발한 자살 장치(심지어 자살 테마파크까지..;)들을 고안해 내는 가문의 기대주이고, 딸인 마릴린은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여자라고 생각하며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단조로운(?)’ 가족 구성원에 특이함을 더해주는 것은 막내아들인 알랑이다. 가풍과는 어울리지 않게 늘 발고 활기찬 그는 부모님의 큰 ‘걱정거리’다. 게다가 가업인 자살가게를 어떻게든 망가뜨리려고 하는 듯한 모습까지 보여주니 말이다.(자살용 밧줄을 칼로 긁어 놓거나, 독약이 든 사탕을 골라내 버리기도 하고, 면도칼은 무디게 만들어 버린다)

     이 가족은 제대로 굴러갈 수 있을까?

 

 

 

2. 감상평 。。。。。。。   

 

     이 특이한 소재와 시종일관 그로테스크 한 전개는 처음 몇 장을 넘기는 동안 독자의 마음을 살짝 설레게 한다. 과역 작가는 어떤 식으로 즐거움을 줄 것인가. 이 상황에 담겨 있는 반전의 요소나 강한 임팩트는 어디쯤 등장할까.... 하는.

     역자 후기를 보니 이 책을 영화로 만들면 누가 감독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이야기가 실려 있던데, 생각해 보면 영화화는 제법 괜찮을 것 같다. 이런 내용과 유사한 분위기의 영화를 자주 만드는 팀 버튼 감독이라면 봐 줄만도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영화 이야기고, 영화랑 책은 좀 다르지 않은가. 영화는 내용의 빈약함을 영상으로 메울 수 있지만, 책은 그럴 수 없으니까 말이다.

     요컨대 문제는 이 책에는 주제를 재미있게 할 만한 부수적인 소재들은 많은데, 마땅한 주제가 없다. 툭툭 잽만 날리다가 경기가 끝난 복싱경기를 본 허전함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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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돌리드 논쟁
징 클로드 카이에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샘터사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몇 세기 동안 유례가 없었던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고도로 조직된 두 제국이 서로에 대한 풍문조차

 듣지 못해 서로 생판 모르는 채로 만난 것이었다.

듣도 보도 못한 무수한 사람들이 지구에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에 양쪽 모두 경악했다.

 

 

1. 줄거리 。。。。。。。

 

     콜럼부스 이래로 유럽인들의 남아메리카 이주가 시작되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겸하고 있었던 에스파냐의 칼 5세는 즉각 교황으로부터 새로운 대륙에 대한 에스파냐의 권리를 인정받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금과 특산품으로 돈을 벌기 위해 식민지를 설치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비정상적인 우월의식을 가지고 건너간 에스파냐인들은 원주민들을 그 땅의 원래 주민이었던 인디오들을 마구잡이로 살해하거나 강탈하고, 노예화했다. 한편에서는 이런 일들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났고, 또 다른 한 편에서는 현재의 상황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게 벌어진 논쟁. 시대가 시대인지라 논쟁은 신학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교황청은 바야돌리드에서 인디오들이 과연 유럽인과 같은 인간으로 보아야 하는가가 주제였다. 인디오들도 똑같은 인간이라는 라스카사스 수사와 그에 반대하는 철학자 세풀베다 교수는 추기경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주장을 교황청의 공식입장으로 채택하도록 하기 위해 토론을 시작한다.

     5일간 이어지는 토론의 결론은 무엇일지 궁금하다면 책을 손에 드시길..


 

 

2. 감상평 。。。。。。。

 

     문제의 본질은 ‘인간의 특성’이 무엇인가 하는 것처럼 보인다. 과연 무엇을 갖추고 있기에 인간은 독특한가. 감정과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인지,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인지, 도구를 만들거나 종교를 갖고 있다는 것인지, ‘인간다움’은 무엇에 근거하고 있느냐가 겉으로 드러난 토론의 주제이다.

     하지만 좀 더 깊숙이 들어가 보면 중요한 문제는 약간 다른 데 있다. 어떤 존재가 인간인지를 구분하는 판정을 ‘누가’ 할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세풀베다 교수는 자신들을 포함한 유럽인들이 - 그러니까 인간이 - 그 판정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라스카사스 수사는 그 기준은 다른 그 무엇 - 아마도 인간의 의식을 뛰어넘는 그 이상의 -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작가는 모든 걸 인간 자신의 능력으로 측정하고, 계산하고, 해답을 제시하려는 인간들의 시도는 종종 매우 어이없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책 내용의 대부분이 두 사람을 중심으로 한 토론으로 구성되어 있어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구조지만, 작가는 적당한 상상력을 발휘해 작품이 늘어지는 것을 막고 있다. 되레 긴박감마저 느껴질 정도다. 비록 문헌들을 참고했다고는 하나, 각각의 인물들 편에 서서 그들의 세계관에 맞는 논리를 하나의 변론으로 재구성하는 저자의 작업은 매우 훌륭하다.

     흥미도 있으면서 생각할 거리까지 던져주는 괜찮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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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피용 (반양장)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뫼비우스 그림 / 열린책들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왜 우리는 항상 같은 도식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거지?」

「인간이란 존재를 쉽게 변화시킬 수 없으니까요.」

 

 

 

1. 줄거리 。。。。。。。

 

     과밀한 인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테러, 끊임없이 소모적인 논쟁만 벌이는 정치인들과 제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는 종교인들, 이 모든 것은 더 이상 지구에 소망이 없다고 느끼게 만들었다.

     우주과학자인 이브 크라메르는 아버지의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우주범선을 제작할 꿈을 꾼다. 양자로 구성된 빛을 이용해 우주선에 돛을 달아 움직인다는 생각이었다. 말기 암으로 더 이상의 치료가 불가능했던 억만장자 맥 나마라의 자금력은 이 황당한 프로젝트가 움직일 수 있는 힘을 제공해주었다. 여기에 이브가 일으킨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전직 요트 항해사 엘리자베트까지 합류하면서 얼추 프로젝트 팀은 완성되었다.

     이브의 계획은 태양계 밖의 새로운 행성을 찾아 ‘건강한’ 사람들만을 정착시키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재의 기술력으로는 아무리 빨리 날아가도 족히 1,000년은 걸리는 이 여행의 가장 큰 적은 시간이었다. 이브는 완전히 새로운 발상 - 우주선 안에서 계속 생명을 번식시키겠다는 -으로 이 난관을 헤쳐 나가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현대판 노아의 방주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2. 감상평 。。。。。。。

 

     기독교 신자든 아니든 ‘노아의 방주’라는 말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작가는 아마도 노아의 방주로부터 모티프를 얻어 이 이야기를 써 내려간 듯 보인다. 또 그것 말고도 책 전반에는 성경 이야기에 대한 패러디들이 많이 엿보인다. 144,000명은 요한계시록의 상징적인 숫자(12 X 12 X 1,000)이고, 탐험에 참가할 사람의 숫자를 줄여내는 작업은 사사기의 기드온 이야기를 떠올리게 만든다. 사람과 동물이 쌍을 이루어 배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이나, 마지막 장의 창세기 패러디는 작가의 재치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성경적’이라거나 ‘기독교적’이라는 말은 아니다.(오히려 작품 전체에는 종교에 대한 반감이 좀 더 자주 드러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첫 작품인 『개미』에서부터 작가의 작품들이 일관되게 말하고 있는 것은 ‘신과 함께 사는 인간’이 아니라 ‘혼자서도 충분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주제도 ‘인간’이다. 특히 작품 속에 등장하는 ‘아쿠아리움’, 혹은 ‘마이크로 월드’에는 이런 소망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외부의 간섭(신?)없이 완벽하게 돌아가는 ‘닫힌 세계’가 그것이다.

     외부의 개입을 완전히 거부하니 자연히 남는 것은 인간들 자신의 의지뿐이다. 이런 세계가 망하지 않으려면 인간 개개인에게 ‘선한 무엇’이 갖춰져 있어야만 한다. 자연으로 돌아가자, 혹은 원시공산주의로 돌아가자는 히피나 공산주의자, 또는 무정부주의자들의 주장은 여기에 근거한다. 인간 본성에 대한 무한한 신뢰만이 그들의 주장이 설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해 주니 말이다.

     하지만 인류 역사는 그 반대증언을 자주 하고 있다는 데 어려움이 있다. 작품 안에서도 파노라마식으로 보이듯 사람들은 정부도 군대도 종교도 없는 세상, 곧 모든 종류의 인위적 질서를 없애버린 세상에선 오래 살 수 없었다는 것이 현실이니까. 이브의 탐험이 결국 ‘실패 같은 성공’을 남긴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들은 인간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고, 인간은 그들의 생각처럼 기계와 같은 정밀성으로 움직이는 존재들이 아니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멋진 상상력을 접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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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 일기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민정 옮김 / 문학세계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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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한 미치광이가 뒤죽박죽으로 풀어낸 사랑 이야기이다.

 

 

1. 줄거리 。。。。。。。

 

     애인과 헤어진 뒤 감정을 잃어버린 주인공은 얼마 뒤 살인청부업에 뛰어든다. 타고난 사격술에, 감정까지 사라졌으니 그에게 딱 어울리는 일이었다. 게다가 살인을 하는 과정이 자신에게 묘한 성적 흥분까지 일으킨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이제 살인을 유쾌한 오락으로 즐기기까지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장관의 가족을 처리하라는 명령을 받게 되면서, 주인공의 삶은 크게 변한다. 장관의 딸과 일기장, 그리고 자기 방으로 날아 들어와 죽은 제비 한 마리는 그 변화의 시작 단추였다.


 

 

2. 감상평 。。。。。。。

 

     책의 마지막 부분에 쓰여 있는 한 마디 문장이 이 책의 성격을 잘 드러내 준다. 책 전체는 기준이나 판단이라는 면에 있어 뒤죽박죽이었고, 그 안에 살고 있는 주인공은 갈팡질팡하는 중이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서 볼 수 있었던 것과 같은 종류의 대반전을 기대하고 계속 책장을 넘겼지만, 이 책에는 그런 것이 없다. 동시에 독자는 혼란에 빠진다. ‘그래서 어쨌다는 건가?’ 인물에 대한 평가부터(과연 이 인물을 호의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가), 사건에 대한 판단(살인이라는 일에 담긴 사회적, 윤리적 함의)도 없으니까. 작가는 그저 ‘묘사’만 하고 있다.

     작가의 묘사력은 여전히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아쉬움이 느껴지는 이유는, 왠지 마무리가 제대로 안 되어 있는 듯한 느낌 때문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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