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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식사에서 시작되었다 - 사회적 실험 그리고 초기 기독교의 정체성
할타우직 지음, 예가교회 엮음, 조익표 외 옮김 / 동연출판사 / 2018년 9월
평점 :
생각해 보면 신약성경 속에는 수많은 ‘식사 자리’가 묘사되어 있다. 당장 복음서 속 예수님만 하더라도 다양한 사람들과 식사를 하셨고, 이 과정에서 중요한 교훈들이 여럿 있었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예식 중 하나인 성찬은 ‘식사’를 그 모티브로 하고 있다. 그러니 이 책의 제목인 “기독교는 식사에서 시작되었다”는 말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그런데 이 책은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는 주장을 펼친다. 저자는 아예 초기 기독교의 예배가 ‘식사의 형태’를 띠고 있었으며, 이 식사는 ‘의식적 성격’을 지닌 헬레니즘 연회의 변형으로, 그 자체로 특별한 저항과 변혁의 의식을 포함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식사’ 모델이 1-2세기 유일한 예배 형태였다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꽤 과감하다.
사실 저자의 주장에 공감이 가는 면이 많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예배’하면 떠오르는 정교한 예전에 따른 공식적 의식이 초기 기독교 시대에 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 아마도 예수님께서 그러셨듯이, 종종 무언가를 먹고 마시는 과정에서 대화가 오고가며 하나님과 그분의 새로운 통치에 관한 이야기들이 오고갔을 것 같다.(이 점은 IVP에서 최근에 나온 ‘1세기 교회 시리즈’에서도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이에 관한 한 가지 대안은 ‘회당 모델’이다. 유대인들은 포로기 이후 오랫동안 회당을 중심으로 한 예배 전통을 유지해 왔고, 초기 기독교회도 이를 차용해서 예배를 진행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저자도 책에서 이를 언급하지만, 회당을 가리키는 ‘시나고게’가 폭넓은 회집을 가리키는 용어였다면서 이 모델을 탈락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이 단어가 넓은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것과 초기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의 예배 형태를 회당예배에서 가져왔을 수도 있다는 주장은 서로를 배척하지 않는다. 저자의 판단은 조금 성급해 보인다.
초기 기독교 시대에 ‘식사’가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녔을 것이라는 주장에는 상당부분 공감이 되면서도, 그것이 ‘유일한’ 모델이었다는 데까지는 쉽게 동의가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당시 예배의 유일한 형태가 ‘식사’였다면,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다른 문헌들, 예컨대 1세기 속사도들이나 교부들의 편지, 혹은 ‘디다케’나 ‘헤르마스의 목자’ 같은 당대의 유명한 글에도 이와 관련된 내용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저자의 주장은 성경 속 여러 에피소드가 식사라는 배경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데 근거한다. 하지만 이는 저자가 말한 대로, 당시 식사가 폭넓은 인적 교류의 자리였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기록될 만한 더 많은 일들이 일어났기에 일어난 결과이지는 않을까? 그렇다면 이 식사모델이 과대대표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이 책에서 살펴본 당시 식사모델이 가지고 있는 의식적 성격, 그리고 ‘비스듬히 기대어 눕는 것’부터 시작해, 연회의 여러 순서들과 이에 대한 기독교적 변형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등은 기억해 둘만한 부분이다.
한 가지 언급하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책의 번역 수준에 관한 것이다. 예컨대 책 초반에 이런 문장들이 있다. “그러한 구두의 연습이 어디에서 일어났는가를 물을 때, 증거들이 암시하는 것은 거의 유일하다”, “여기서는 참고문헌을 알려주는 각주가 있는 짧은 요약에서 두 주제의 상호관계에 대한 일부 제안을 잇는 정도로 만족할 것이다”.
네 명의 번역자가 번역을 나눠서 진행했기에 부분에 따라 어느 정도 번역의 질 차이는 나지만, 사실 책 전체가 이런 문장들로 가득하다. 원 저자가 문장을 복잡하게 쓰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문장으로 400페이지가 채워져 있는 책을 읽는 건 좀처럼 머리가 아픈 일이다.
또, 이미 언급된 주장이 지나치게 자주 반복되면서, 독자를 지루하게 만든다는 점도 아쉬운 부분. 마치 논문처럼 주장과 관련된 다양한 내용들을 모두 싣기도 했지만, 대중들에게 읽히고자 한다면 나라면 핵심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이 책의 절반 정도의 양이 되는 책을 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