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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이란 무엇인가 - 개정판
톰 라이트 지음, 안정임 옮김 / IVP / 2021년 6월
평점 :
성찬은 초기 기독교 시대부터 교회의 아주 중요한 상징적 의식이었다. 물론 다양한 종교의식에서 그 참여자들이 음식을 나누어 먹는 관습은 흔하게 발견되지만, 신자들이 먹는 음식이 그들이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존재의 몸과 피라는 의미를 담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만큼 독특한 의식이었고, 이 때문에 인신공양을 한다거나, 어린 아이들을 잡아먹는 야만적 종교라는 식의 가짜뉴스에 의한 공격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교회는 그런 오해를 받으면서도 이 의식을 바꾸거나 없애려 하지 않았다. 그만큼 이 의식에 담긴 상징과 그것을 기념하는 일이 중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종교개혁 시대를 전후해 개혁을 바라는 사람들이 요구했던 핵심 사항 중 하나도, 이 성찬에 제대로 참여할 수 있게(당시에는 일반 교인들에게는 빵만 떼어주고, 포도주는 성직자들이 독점했다)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성찬은 교회의 역사와 신앙체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함에도, 오늘날 많은 신자들은(특히 가톨릭교인들보다는 개신교인들 사이에서) 이 성찬의 의미는 많이 퇴색된 감이 있다. 성찬의 의미에 대해서 제대로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또 그 의미를 인식하고 있더라도 고작 일 년에 몇 차례만 행해지는 의식을 통해 얼마나 오랫동안 그 의미를 간직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성찬의 역사와 의미에 관한 짧은 드라마를 보여준다. 1부에서 저자는 ‘엿보기’라는 형식을 통해 독자들을 BC 2세기 터키의 한 마을로, 1세기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으로 데려가, 유월절에서 시작한 이 식사의 의미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어떻게 변화되고 새롭게 재정의되었는지를 부드럽게 설명한다.
2부에서는 성찬의 신학적 의미에 대해 좀 더 살핀다. 이 식사를 통해 과거 하나님의 약속이 되새기지는 동시에, 그분이 자신의 백성들에게 주시겠다고 하셨던 미래가 당겨져 온다. 이 식사를 통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한 자리에서 만나는 복된 시간이 열린다는 것.
톰 라이트의 다른 책들처럼, 현란한 수사와 아름다운 문장이 돋보이는 책이다. 성찬의 자리를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한 자리에서 만나는 시간이라고 묘사할 줄 누가 알았을까. 그리고 짧은 몇 개의 드라마를 통해 자연스럽게 성찬의 의미가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그려내는 솜씨도 능숙하다. 여기에 이 문제를 두고 여러 개의 경쟁적인 의견들이 존재하며, 어떻게 핵심적인 가치를 중심으로 모아나갈지를 제안하는 현실적 접근도 의미가 있다.
다만 여전히 남아있는 고민은, 저자가 말한 성찬의 ‘맛보기’로서의 성격이 어떻게 실제적인 신앙생활에서 적용될 수 있을지가 좀 더 분명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코로나로 인해 사업이 망하고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성찬은 어떤 힘을, 어떤 식으로 줄 수 있을까? 성찬을 통해 예수님의 살과 피를 영적으로 먹고 마신다는 것은 우리의 기분과 생각을 넘어, 실제 삶에 어떻게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얇은 책이라 금세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런 책은 읽고 끝낼 게 아니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필수적이다. 아마 저자도 이를 알았는지, 각 장의 말미마다 두 개의 질문을 배치해 두었던 것 같다. 함께 이야기를 시작해 볼 만한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