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기독교 - 동방교회의 역사
크리스토프 바우머 지음, 안경덕 옮김 / 일조각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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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일단 책의 크기에 압도된다가로가 20cm 세로가 24cm로 보통의 단행본보다 큼직한백과사전 사이즈인데또 페이지는 600쪽 가까이 된다당연이 하드커버로 되어있는 데다가수많은 컬러사진이 실려 있어서 이런 사진을 인쇄하기에 알맞은 두툼한 종이까지 사용했으니내가 좋아하는 독서 장소 중 하나인 지하철에 들고 다니며 읽기에는 아무리 봐도 무리인 크기다.

 

본문 좌우에 여백을 넉넉하게 두었고여기에는 본문에 실린 도판의 설명이 붙어있는 고전적인 편집법을 사용했다제법 오랫동안 붙잡고 읽었는데몇 번이나 침대에서 떨어뜨렸는데도 멀쩡한 걸 보니출판사가 책 하나는 제대로 만들 줄 아는 것 같다물론 45,000원이라는 가격은 조금 겁이 나긴 했지만이보다 훨씬 읽을 게 없는 책들도 보통 만 원 대 중반은 하는 시대니까 돈이 아깝지는 않다.

 


이 책은 동방교회의 역사를 담고 있다말 그대로 처음부터 오늘날까지의 거의 모든 주요 사건들이 열거된다동방교회가 무엇인지를 알려면 431년 열렸던 에페소스 공의회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당시 로마 동부 교회들은 예수의 두 본성(신성과 인성)과 관련된 문제를 두고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는데이 싸움에 한 편에 네스토리우스가 있었다.


그는 동로마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폴리스 교회의 주교를 맡고 있었는데수도 교회의 주교는 제국의 모든 교회를 관할하는 자리였기에공명심이 강한 이들의 타겟이 되었다결국 그 자리를 원했던 알렉산드리아 주교 키릴로스의 치열한 계략에 의해 네스토리우스의 주장(예수의 신성과 인성이 완전히 따로따로 존재한다)”이 이단으로 정죄된다. (물론 이 공의회의 결정은 옳았지만문제는 거기서 정죄된 주장을 정말로 네스토리우스가 했는지가 미심쩍었다.)


당연히 이 결정에는 많은 사람들이 반발했고결국 그들은 동로마 교회에서 떨어져 나와 동쪽으로 간다초기에는 시리아를 근거지로 했고이후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좀 더 이동하는데이 때문에 동방교회라는 이름으로 분류를 한다네스토리우스파라고도 하는데실크로드를 타고 지속적으로 동쪽으로 선교를 해나가면서 당나라에까지 도착해서는 경교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당나라가 멸망한 뒤 중국 대륙의 동방교회의 역사는 잠시 후퇴하지만북방의 유목민족 선교에 성공해 곧 이어지는 몽골/원 제국과 함께 다시 대륙으로 들어온다하지만 원이 망한 뒤에 들어선 보수왕조인 명나라 시대에 그 자취는 거의 사라지고 만다.

 

그 사이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에는 이슬람 세력이 점차 주도권을 잡으면서 그 지역의 동방 교인들의 삶은 극도로 위축되기 시작한다수많은 교회들이 파괴되고수 백 만의 사람들은 학살되었다사실 동방 교회는 가장 많은 순교자를 낳은 교회이기도 했다.


이 모든 과정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던 건 서방의 가톨릭 선교사들이 이 지역에 들어와 동방교회 교인들을 개종시키려 했다는 점이다그들 덕분에 교회는 분열되었고이는 당면한 위기를 조직적으로 대처하는 일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말았다끝없는 화해와 재분열을 반복하는 동안 교회는 모래알처럼 바스라져 버렸다.


이름부터가 고색창연한 느낌을 주는 칼데아 교회(로마 가톨릭파)와 아시리아 교회로 크게 분리된 오늘날의 동방교회의 모습은 퍽이나 안타깝다대주교구는 불안정한 중동이 아닌 미국에 위치해 있고현지 교인들은 점점 줄어가고 있다최근까지도 이들은 쿠르드족(이들과 동방교회의 오랜 근거지는 그 범위가 꽤나 겹친다)과 그들을 이용하는 터키 정부에 의해 학살과 약탈 같은 대대적인 파괴를 겪었지만서방의 그리스도인 형제들은 이들의 삶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으니.



한 편의 대서사시를 읽은 느낌이다어지간한 건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낼 수 있는 시대지만이 책만큼 자세하고 많은 내용을 담아낸 저작은 아직 본 적이 없다물론 우리나라에는 그리 잘 알려진 분야가 아니기도 하다개인적으로 동방교회와 관련된 내용을 처음 접한 건 서울대의 김호동 교수가 쓴 책(“동방 기독교와 동서문명”)이었는데그보다도 훨씬 방대하다물론 그 책이 읽기엔 좀 더 좋고이 책은 찾아보기에 좀 더 적합한 책이다.


한 번을 다 읽었지만이런 백과사전 같은 책은 두고두고 다시 찾아 읽어봐야 할 그런 보물이다어차피 이런저런 작업을 하다보면 반드시 다시 꺼내보게 될 것 같지만유튜브 채널에 동방교회의 연대기만을 따로 떼서 시리즈 영상으로 만들어 봐도 좋을 것 같고이런저런 즐거운 자극을 주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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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02-08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듦새가 좋다고 하시니 좋긴한데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고 잘 다루십시오.
혹시 들어 올리다 떨어트려 발등이라도 다치면...빠지직~!ㅋㅋ

노란가방 2022-02-08 20:24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이 책은 그런 경우 위험합니다, 꼭 두 손으로 받들어야 합니다.
 
2084 : 인공지능과 인류의 미래
존 레녹스 지음, 이우진 옮김 / 한국장로교출판사(한장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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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이다최근엔 이런저런 경로로 서평 이벤트 같은 명목으로 출판사에서 책을 보내주기도 하는데집에 이미 안 읽고 사다놓은 책만 백 권은 되는지라 일부러 신청하지는 않는다신청을 위해 요구하는 이런저런 활동들도 간단하지만 그다지 내키기도 않고


그래도 이렇게 출판사에서 먼저 연락해 보내주는 책은 사양하지 않고 받는다혹 리뷰에 관해 문의를 하는 경우에는책은 읽어보고 딱 제가 느낀 대로 올릴 거라서 만족스럽지 않으실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보내주신다면 감사히 읽겠다고 대답하는 편이 책은 출판사 담당자분이 매우 쿨하게 별다른 언급 없이 책을 보내줘도 괜찮겠다고 물으셔서 오케이.

 


존 레녹스라는 저자 이름이 왠지 귀에 익다 했는데찾아보니 6년 전쯤 읽었던 책의 저자였다. “최초의 7이라는창세기 1장에 나오는 창조기사와 과학이론을 조화시켜보려는 시도를 담고 있는 내용이었던 책이었다아직도 이름을 기억할 정도로나름 괜찮은 통찰을 얻었던 기억이 있다.


이번 책은 AI라는 주제를 끄집어냈다최근 여러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주제이면서어쩌면 우리의 미래를 결정지을 수도 있는 중요한 문제가 바로 인공지능이다저자는 이 문제를 다루면서, ‘할 수 있다면 해야 한다는’ 성급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그것이 가지고 있는 철학적이고 윤리적인 문제를 고려를 해 볼 것을 제안한다.


저자는 가까운 시기에 커즈와일 같은 인물들이 예언했던 특이점’ 같은 건 오지 않을 거라고 예상하는 것 같다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인공지능은 아직 지능’ 비슷한 수준도 아니며단순히 특정한 알고리즘을 매우 빠르게 수행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다만 학습계획추론 지능과 같은 용어들을 무분별하게 기계장치에 사용함으로써 일종의 착시현상을 일으키고 있다는 말이다.


오히려 저자는 이 기술발전의 이면에서 기술을 통해 사람들을 통제지배하거나 빈부의 심각한 격차를 더욱 벌리며 특정인을 위한 기술로 전락하는 문제나아가 그것이 추구하고 있는 최종적인 목표로서의 인간성 상실이라는 문제를 더욱 우려한다(이 책의 핵심은 여기에 있는 듯하다).

 


오늘날 널리 퍼져 있는 인공지능 기술 추종자들의 최종적인 목표는 기술을 통해 생명의 한계를 극복하는 일인 것처럼 보인다이 극복은 단순히 건강의 유지만이 아니라아름다움과 지능을 향상시키고최종적으로는 불멸에 까지 목적하고 있는 듯하다문제는 이 과정에서 인간다움의 상실혹은 폐지까지 모색되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다움을 넘어선’ 인간은 어떤 모습일까당장은 신체의 일부가 기계장치로 대체되는 사이보그형이 떠오르지만일부는 아예 신체에서 벗어난 어떤 존재마저 떠올리는 듯하다(여기에서 저자는 C. S. 루이스의 그 가공할 힘이라는 작품을 자주 인용한다). 육체가 없이 순전히 정신만으로 존재하기 위해뇌의 정보를 기계로 이식하는 그림은 일부 영화에서는 이미 구현되고 있기도 하다.


저자는 이런 아이디어의 기저에인간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일종의 신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 있음을 읽어낸다그리고 이 지점에서 저자는 이미 성경에 그런 신인(神人)’이라는 존재가 있었음을 상기시킨다바로 예수 그리스도인데뿐만 아니라 성경은 그가 겪은 온전한 변화를 모든 인류가 따라갈 수 있음을 이미 말하고 있다(인본주의적 호모 데우스 프로젝트는 이 비전의 하위 호환이다).

 


책 제목인 2084는 조지 오웰의 디스토피아적 소설인 1984를 다분히 의식해 지어진 것이다미래에 대한 매우 암울한 그림을 담고 있는 작품이었는데어쩌면 최근 급격하게 발달하고 있는 새로운 기술이 이런 전망을 앞당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반영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결국 저자는 우리가 AI와 관련된 다양한 전문 기술 용어들에 현혹되어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으며그것이 그려주는 최종적인 비전도 결코 성공적이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그보다 확실한 하나님의 약속(특히 요한계시록 등을 주석하면서 이런 주장을 강조한다)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


다만 이런 결론에 이르는 과정이 썩 매끄럽지는 못했다. AI라는 기술에 관한 언급은 지나치게 간략하고 단편적이며여기에서 유발 하라리 등이 언급한 호모 데우스라는 비전으로 옮겨가는 과정의 도약은 조금은 급격해 보인다책 후반은 성경의 오래된 약속에 대한 주석으로 거의 채워져 있을 뿐이고개인적으로는 이 정도의 내용이라면 설교 한 편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을까(조금은 길게 늘어뜨린 것 같다하는 느낌도 준다.


기술이 사람들을 편리하게 해 주는 것은 분명하지만 무비판적으로 관련 연구자나 예언자들의 말을 추종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경고는 귀담아 들을 만하다다만 편리함은 누리되 위험성은 경계하는 일이 그리 쉽지만은 않아보다는 점도 생각해 봐야 할 듯하다어떻게 경계하면서 사용할 수 있을까그게 한두 사람의 개인적 실천을 넘어 사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전반적으로 내용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머리에 잘 들어오지는 않는 느낌의 책(이게 번역의 문제인지구성의 문제인지는 모르겠다). 지나치게 많은 인용구가 읽기를 방해하는 감이 있고구성이나 담고 있는 정보의 양과 깊이 부분에서도 조금은 아쉬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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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크, 카오스, 그리스도교 - 종교와 과학에 관한 질문들 비아 시선들
존 폴킹혼 지음, 우종학 옮김 / 비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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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존 폴킹혼은 알리스터 맥그래스와 비슷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맥그래스가 옥스퍼드에서 분자생물학과 신학을 공부해 과학과 신학의 조화를 시도했다면폴킹혼은 케임브릿지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한 후 신학을 공부해 성공회 사제로 몇 달 전 생을 마친 인물이다역히 과학과 신학 사이의 대립을 완화시키고 대화를 위해 노력해왔다.

 


이 책도 바로 그런 목적을 위해 쓰였다저자는 과학은 사실을종교는 의견을 다룬다는 일반적인 생각이 오해임을 밝히면서둘 모두 사실이 무엇인지를 추구하는 학문이라고 말한다다만 두 학문은 서로 묻는 내용이 다를 뿐이다과학은 어떻게를 묻고신학은 를 묻는다과학은 신학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수단이 없고신학은 과학의 대답을 검증할 도구가 없다.


폴킹혼은 우주가 수학적으로 이해가능하다는즉 우주의 합리성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추정할 수 있는 근거를 발견한다우주가 오늘날의 형태로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너무나 많은 조건들이 정교하게 조율되어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물론 이 점이 신의 존재를 입증하는 것은 아니지만우주가 창조되었다는 걸 가정한다면 그 증거라고 볼 수도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인간은 단순히 화학물질의 조합이 아니다(이런 저급한 환원주의는 그걸 주장하는 사람 자신도 설득하지 못한다). 전체는 부분으로 구성되지만부분의 합을 넘어선다인간은 훨씬 더 깊은 측면을 가지고 있는데저자는 창조주의 의지와 본성에 관한 종교의 설명이 그런 다양한 인간 경험들의 이면을 통합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다고 믿는다.


책의 후반에는 기도와 기적종말에 관한 합리적(과학자로서의)인 관점을 조심스럽게 제시한다물리적 세계의 열려 있음을 통해 기도의 효과를 설명하거나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여주는 자연법칙과 기적의 이론적 조화 가능성을 검토하는 등 흥미로운 내용이 담겨 있으니 읽어볼 만하다.

 


작지만말하고자 하는 내용에 제대로 집중해 쓰인 책이라 집중력을 가지고 읽을 수 있었다종종 C. S. 루이스의 글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고특히 기적을 다루는 부분이라든지 기도에 관한 설명우주적 차원에서 신의 존재를 검토하는 방식 등은 루이스의 몇몇 책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물론 저자의 우주 이해는 보수적인 신학과는 차이가 있다. 140억년의 진화과정을 인정하는 일보다, 6일 동안의 창조를 믿는 게 어떤 이들에게는 더 쉽게 느껴지기도 하니까하지만 그 때문에 대화를 포기하려 한다면 그야말로 바보 같은 일이 아닐까 싶다우리가 정확히 알 수 없는 일을 가지고충분히 합리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걷어차는 일일 테니까.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비슷한 주제를 다룬 책들도 몇 권 나와 있지만이쪽이 훨씬 짧고 간결하다물론 맥그래스의 책은 또 그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으니까 이 주제에 관심이 있다면 모두 찾아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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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시크릿 - 마침내 드러난 하나님의 비밀·선교
레슬리 뉴비긴 지음, 홍병룡 옮김 / 복있는사람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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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학 교과서로 쓰인 이 책을 손에 든 것은순전히 저자의 이름 때문이었다대학원에 다니던 시절 처음으로 레슬리 뉴비긴의 책을 읽어본 이래로그는 나에게 C. S. 루이스와 더불어 내용의 질은 보장된 저자 목록에 올라 있다물론 레슬리 뉴비긴의 글은 루이스의 그것과 달리 유머도 풍자도 거의 없고내용도 기발함이나 창의적인 생각보다는 오랜 전통을 새롭게 읽어 내거나 잘 정리해 내면서 새로운 통찰을 보여주는 쪽인지라 조금은 더 딱딱하게 느껴질 순 있지만아무튼 꼭꼭 씹어 먹으면 도움이 되는 저자다.

 


책은 중요한 질문을 품고 시작한다. “우리는 무슨 권위로 선교를 하려고 하는가”, “다른 성실한 종교인들도 온전한 진리를 추구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것저자는 이 질문에 관해 매우 고전적이고 정통적인 대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이 일(선교)를 하는 것이다저자는 반복해서 선교에 있어서의 이 궁극적인 신념을 강조한다.


이런 차원에서 저자는 소위 WCC식의 하나님의 선교라는 개념을 강하게 비판한다그들은 그동안 잘 지켜온 범세계적인 선교 소명에 대한 헌신을 잃어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이제 그들에게 선교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상호간의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에만 매몰되어 있다흥미로운 건 레슬리 뉴비긴 자신이 한 때 WCC에서 중요한 지위를 맡아 사역을 했었다는 점이다저자는 자신이 힘써 일했던 기관의 변질을 매우 안타까워한다.


저자는 선교를 삼위 하나님의 사역으로 소개한다이를 위해 무려 세 장을 할애해서이 일이 어떻게 성부성자성령 하나님의 사역과 연결되는지를 설명한다이를 통해 선교의 계획과 실행의 모든 과정에서 교회는 하나님의 사역을 따라가는 것이라고 설명한다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선교라고 할 수 있을 텐데앞서 말한 일부 교회들은 선교를 단순히 문화적 교류나 사회적 개선운동으로 전락시켜버렸다.


물론 선교는 단순히 복음을 선포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저자는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한 뒤에 그 뜻을 이루려는 가시적인 활동을 전개하지 않는다면그 기도는 헛될 것이라고 말한다선교사역은 복음선포를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는 행동으로부터 결코 분리시킬 수 없다는 것.

 


책의 후반부에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내용이 있다결국 선교는 다른 신앙을 가진 이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의 우월성을 전하는 것이다이 과정이 자칫 폭력적이거나 압제적이지는 않을까 하는 질문이다앞서의 WCC는 이 부분에서 부담을 느낀 나머지 예수를 전하는 일 자체로부터 물러선 감이 있었다.


저자는 이에 대해그들(타종교인)을 공동의 삶을 나누는 자의 입장에서 대하되동일한 말씀에 힘입어 살아가는 존재로 여겨야 한다고 말한다또한 그들 가운데 나타나는 선한 면모들을 진심으로 기뻐하며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는 일에는 무엇이든지 비그리스도인 이웃들과 함께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인다.


얼마 전 읽었던 미로슬라프 볼프의 책에서는 비슷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기독교와 이슬람교 사이의 차이를 없애려는 시도를 했었다개인적으로는 이런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종교는 책상에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 있기 때문이다오히려 이 책에 실린 레슬리 뉴비긴의 대안이 좀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싶다기독교인들은 타종교인들을 정중하게그리고 존중을 담아 대할 줄 알아야 한다.

 


선교에 관해 알아야 할 기본적인 내용들을 잘 담아낸 책이다선교에 관심이 있다면이 주제를 정리해 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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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 크리스천
데이브 톰린슨 지음, 이태훈 옮김 / 포이에마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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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내용의 책인데그 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건 저자의 이력이다수년 동안 가정교회의 리더였고한 때는 술집에서 모임을 갖는 대안교회의 목회자였으며현재는 성공회 사제로 사역을 하고 있다고 한다그 중에서도 역시 눈에 들어오는 건 에서 다양한 종류의 회중과 만났다는 부분인데그가 전형적인 목회자와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그의 회중은 전형적인지 않은 사람들로 채워져만 있는 것 같다(물론 꼭 그렇기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스스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동성애자들(꽤 자주 등장하는 사례다), 약에 빠져있고사회의 정규적인 코스에서 벗어나 있는 이들이 그의 주변으로 모여든다문득 우리가 이들의 모습을 보고 뭔가 불편함을 느낀다면그건 정확히 예수님 곁에 있는 사람들을 보고 불평했던 바리새인들의 모습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벽을 낮추고사람들이 그들의 영혼 속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 예수님을 소개한다저마다의 사정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그렇게 조금은 다른 교회에서 새로운 길을 발견한다아름다운 스토리다여기까지는.

 


교조주의에 빠진 기성 교회들에 대한 비판(솔직히 말하면 요새는 그나마 교리에 대한 관심조차 적어진 게 사실일 것이다), 자기들만 생각한다는 지적자신들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척 등 책에서 비판하는 요소들에 공감한다이런 것들은 애초의 교회가 가지고 있던 역동성과 생명력을 희미해지게 만드는 요소다이런 것들에 대한 의심은 문제가 아니라 건강한 신앙생활을 위해 꼭 필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깨고 저자가 새롭게 세워가려고 하는 게 교회가 맞는지는 살짝 의문이다저자가 이 책에서 설파하고 있는 복음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것자존감을 회복시키는 것자신에 감정에 충실해지는 것이성보다는 직감에 따라 종교를 찾는 것(이건 저자의 표현이다)이다.

 

물론 저자는 몇 번에 걸쳐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고백한다이 고백이 거짓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그의 신앙이 어떤지는 내가 판단할 수 있는 일는 아니니까다만 그가 이 책을 통해 제시했던 기독교에 관한 그림이 과연 충분한가 하는 의문은 별개의 문제다책 전체에 걸쳐서 그가 제안하는 종교는 C. S. 루이스가 말했던 물 탄 기독교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저자가 생각하고 있는 기독교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단지 위안을 주는 멘토 그 이상으로 비춰지지 않는다그는 아무 것도 하라고 명령하거나기준을 제시하거나잘못을 지적하지 않는다그저 자신에게 나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괜찮다라는 말만 반복하는 인물이다개인적으로는 그 자리에 요즘 유행하는 대중적인 심리상담가가 있어도 크게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을 것 같다.

 


예수의 정체나 그의 사역과 전혀 상관없이 우리는 기독교인이 될 수 있을까그에게서 역사성이라는 맥락을 제거해버리고 누구나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부드러움만 남기려는 시도는 기독교가 아닌’ 무엇을 만드는 건 아닐까복음서 속 예수의 모습은 때로 분노하고엄격한 기준을 제시하기도 하고저주와 징계를 다짐하고 예언하기도 한다그분은 실제 존재했던 분이기에, 2천 년 후 어떤 사람들이 불편한 부분을 제거하고 남긴 모양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런 입장을 유지하려다 보니 회개에 관한 이해는 크게 달라져 버린다저자는 회개의 본래 의미가 사고의 폭을 넓히는 것이라고 말하면서자신에 대한 좀 더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는 것도 회개라고 말한다이 정도의 단어 의미의 오용이 이루어지면우리는 아무 말이나 할 수 있게 된다저주라는 말은실은 상대가 잘 되기를 바라는 소망이고미움이라는 말은 특정한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에 만족한다는 의미고 하는 식으로.


그리고 논리적 귀결로 자연스럽게 구원에 관한 내용은 책 자체에서 다뤄지지 않는다심지어 이 책이 크리스천을 다루고 있음에도 말이다구원이 갖는 심리적 차원에서의 효과는 넌지시 비취긴 하지만단지 그게 전부일까?

 


그간 하나님이 배제했다고 여기던 이들이 실은 교회가 배제한 것임을 보여주었다는 면에서 저자의 수고는 충분히 인정해야 한다기성교회는 어느 순간 너무 높은 벽을 세워두고 있었다개인적으로는 펍이든호프집이든맥도널드 한 구석이든교회가 모일 수 있는 자리로서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애초에 벽이 세워지기 시작했던 맥락을 잊어버린다면우리는 그렇게 벽이 사라진 자리에 온갖 종류의 잡초들이 자라는 것을 곧 목격하게 될 것이다벽을 낮추는 건그 벽으로 보호하고자 했던 내용을 충분히 지킬 수 있을 때 하는 일이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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