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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켈러의 일과 영성 - 인간의 일과 하나님의 역사 사이의 줄 잇기
팀 켈러 지음, 최종훈 옮김 / 두란노 / 2013년 11월
평점 :
최근 ‘일상신학’이 주목을 받고 있다. ‘신학’을 신학자들만 하는, 그들만의 작업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날마다 살아가는 현장을 성경적으로 해석하는 일로 바라보려는 (바람직한) 생각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일’은 우리가 하루 중 깨어있는 시간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영역이고, 이에 대한 신학적 고찰을 해 보는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일 것이다.
그의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이번 책에서도 팀 켈러는 다루려는 주제를 체계적으로 구성하고 설명한다.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에서, 저자는 일이 지니고 있는 본질적인 선함과 유익을 정의하고(1부), 이것이 왜 오늘날처럼 변질되었는지를 분석한 후(2부), 어떻게 하면 일이 가진 본래의 가치를 되살릴 수 있을지를 제안(3분)한다. 창조, 타락, 구속이라는 전통적인 기독교 세계관의 틀을 따른 알찬 구성이다.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지만, 그 ‘일’이 갖는 신학적 의미를 제대로 알고 하는 경우는 적은 듯하다. 그저 ‘밥벌이’를 위해서, ‘하는 수 없이’ 매일 무표정한 얼굴로 출근을 하는 사람들로 도로와 전철은 날마다 가득 찬다. 앞서도 말했듯, 우리가 깨어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의 시간’이 그렇게 우리를 소진시키기만 하는 시간이어도 되는 걸까? 그건 이상한 일이 아닐까?
저자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부여하신 특별한 사명으로서의 일을 강조한다. 그건 우리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명령이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일을 해야만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일이 “영혼을 고치는 약이 아니라 영양을 공급하는 밥”이라는 지적은 탁월하다. 매일매일 노동을 통해 무슨 특별한 물리적, 정서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더라도 그것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일이다.
뿐만 아니라 모든 노동은, 가장 온전한 그 나라에서 우리가 얻게 될 참된 만족과 유익, 즐거움을 제한되게나마 동료 인간들에게 맛볼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기도 하다는 지적도 크게 와 닿는다(이 점은 ‘모든 좋은 열매는 천국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라는 C. S. 루이스의 설명과도 일맥상통한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통찰은,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자동적으로 이런 선한 목적을 위해 봉사하게 되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다른 이들을 섬기도록 하나님이 주신 과업으로 일을 새로이 정의하는 과정이 선행되지 않으면 일상적인 일은 소명이 될 수 없다”면서, 일을 대하는 우리의 시각을 바꾸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지적한다. 스스로가 하는 일에 대한 분명한 비전을 갖지 못하면, 우리는 언제까지나 일에 관한 세상적 그림에 따라 노예처럼 매일 수밖에 없다.
오늘날 일에 관한 성경적 비전을 왜곡시키는 다양한 타락의 양상을 지적하는 2부도 꼼꼼히 살펴볼 만하다. 특히 “직업적인 성공에서 구원(자존감과 자부심)을 찾으려” 하는 모습에 관한 지적은 탁월하다. 흔히 ‘타락’하면 떠오르는 어둡고 음침한 이미지와는 달리, 이쪽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고, 좋은 보수와, 쾌적한 사무실을 얻는 일이다. 하지만 이 역시 일에 관한 타락한 비전이라는 것은 기억하는 건 중요하다.
결국 이런 잘못된 비전은 우리를 일중독으로 몰아가고, 더 높은 생산성을 위해 인간을 부품화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오늘날 노동과 관련된 일 전반에 깔린 인간성 소외현상은 딱히 놀라운 일도 아니다.
일을 통해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중요한 방법 중 하나로 ‘능숙한 사역’을 꼽는 부분도 인상적이다. 일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은 결과는 어찌되었든 의도만 좋으면 다 좋다는 식이 아니다. 직장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웃는 얼굴’ 이상을 보여주어야 하고, 일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는 비그리스도인과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만약 그렇지 않다면, 기독교인들이 가진 자원은 금세 바닥나고 말 것이다)
다만 일에 관한 바른 비전을 회복하는 데 필요한 실제적인 방법을 좀 더 담아냈다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은 남는다. 책은 이 주제에 관한 신학적 고찰을 잘 정리했지만, 저자도 언급하듯 무엇인가를 잘 가르친다고 해서 그걸 배운 사람들이 그대로 해 낼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물론 그 부분을 다루기 위해서는 또 다른 책 한 권이 필요할 것 같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