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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룩스 크리스티
박지훈 지음 / 좋은땅 / 2020년 9월
평점 :
품절
요즘 보기 드문 기독교 소설이다. 기독교 분야에서도 제법 많은 책들이 매일 쏟아지고 있지만, 유독 소설이라는 분야서는 그리 많은 작품들이 보이지 않는다. 물론 서양 작가들의 책은 조금 보이지만(예를 들면 윌리엄 폴 영이 쓴 『오두막』 같은), 국내 작가들의 작품은 더더욱 적다. 이 책은 그런 출판 상황 가운데서 ‘기독교 소설’을 표방하고 나왔다. 시도 자체는 고무할 만한 일이다.
왜 기독교 소설이라는 장르는 적을까.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꼭 판타지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소설을 쓴다는 건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일과 같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세계는 대부분 온전치 못하기에 버려지고 만다. 물론 특정한 주장을 하기 위해 소설이라는 옷을 입은 글을 쓸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세계’에는 독자가 들어갈 수 없기에, 먹음직스럽게 만든 플라스틱 전시물처럼 느껴질 뿐이다.
또 한 가지 이유는 ‘기독교 소설’이 갖는 주제의 한정됨 때문일 것이다. 많은 기독교 작가들은 자신의 신앙을 독자에게 전하고 설득하기 위해 작품을 쓴다. 물론 이 목적이 틀린 것은 아니다. 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받아들일 만한 것으로 제시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어떤 사람이 말하는 것이 시종일관 ‘전도’일 뿐이라면, 그 사람과의 대화는 쉽게 피곤해질 것이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작가가 만들어 낸 이야기 속 ‘세계’가 그리 실감나지도 않고, 그 안에 들어가서 인물들과 함께 호흡하기도 어려웠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인물들의 대화 말고 다른 부분에 관한 묘사가 매우 적기 때문이다. 인물들은 서점으로, 강의실로, 왔다 갔다 하지만 독자로서는 전혀 그런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다. 이들이 어디 잠수함 속에서 토론을 하고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책에서 다루고 있는 두 가지 주제가 개인적으로 썩 잘 조화된다고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서양문화사 수업 과제를 위해 ‘십자가’라는 주제를 탐구하는 동시에, 주인공이 꾸는 꿈을 통해 복음서의 십자가 처형 장소와 이어지는 경험을 한다.
문제는 이야기의 핵심에 ‘십자가’에 관한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인데, 그 핵심에는 십자가를 기복주의적 상징물로 변질시키는 작업이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의 기복주의화가 십자가의 의미 전환이라는 작업을 통해 일어난 것일 리 만무하고(그런 불필요한 작업 없이도 일어났을 것이다), 이게 주인공이 꾸는 꿈, 그리고 회심과 직접적인 연계가 되는 부분도 별개의 사건처럼 느껴진다.
물론 소설의 주제의식은 쉽게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충분히 좋은 이야기, 소설로서의 문학으로는 조금 아쉬운 점이 많았던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