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흉내낼 수 없는 기독교
제라드 윌슨 지음, 전병철 옮김 / 생명의말씀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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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저자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종교적 감각(선하게 사는 사람은 현세와 미래에 복을 받는다)과 기독교의 가르침이 어떻게 다른 지를 지적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책은 열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의 장들의 제목은 비기독교인들이 기독교에 관해 던지는 (반쯤은 부정적인 뉘앙스를 담고 있는) 질문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물론 이 질문들은 무작위가 아니라 신중하게 선정된 것이다. 저자는 이 질문들을 도리어 기독교 교리가 갖는 독특함을 드러내는 기회로 바꿔낸다.

 

     ​책 전반에 걸쳐 선물(은혜)로 주어진 구원이라는 주제가 강조된다. 여기에는 구원은 스스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삼위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것과 죄의 문제의 심각성, 그리스도의 사역의 독특하고 유일한 가치, 나아가 타인을 위한 희생(선교)에 대한 옹호 등이 포함된다.

 

 

2. 감상평 。。。。。。。

     기독교, 혹은 교회가 가질 수 있는 탁월함은 그것이 보유하고 있는 독특한 교리에서 나온다. (물론 이 말은 교회에 속한 사람들이 전혀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거나, 이미 범한 잘못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제법 여러 해 동안 교회는 그런 특유의 장점들을 스스로 잊어버리고, 단순히 규모를 키우거나, 사회운동의 한 지류가 되는 데 더 많은 신경을 써왔다. 얼마 전부터 다시 교리의 중요성에 눈을 뜬 움직임들이 두드러지고 있는데 이 책도 그런 종류의 책이다.

     저자는 보수적인 기독교단에서 교육과 훈련을 받았고, 이런 종류의 대답을 하는 데 익숙해 보인다. 책 속에 제시된 대답들은 정통적인 교리에 충실하면서, 현대적인 배경을 아울러 잘 담아내고 있다. 특히 가장 중요한 교리를 중심에 두고 전개해 나가고 있기에, 기독교 교리를 제대로 알고 싶거나, 제대로 정리하려고 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하다.

     정통적인 기독교 교리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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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차원 우주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신준호 지음 / 새물결플러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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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초끈이론, 홀로그램 우주설과 같은 이론에 깊이 감동한 저자가, 이를 바탕으로 성경의 기록을 재해석한 책.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소위 천국, 새 하늘은 블랙홀의 2차원 표면적에 집적된 정보의 세계를 가리키는 것이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는 그 정보가 일종의 홀로그램으로 표현된 것이다.

     원래 세상은 11차원으로 창조되었으며, 우리가 사는 3차원(+1, 시간의 차원)으로 둘러 싸여 있다.(43) 보통은 이 경계를 통과할 수 없지만, 중력은 고층우주와 저층우주를 넘나들 수 있다.(46) 저자는 이 지점에서 영혼과 중력을 연결시키려고 시도한다. 인간의 영혼이 이 중력장과 결합할 때 소위 환상을 보게 된다는 식이다(59).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는 소위 나타나심의 신학을 주장하는데, 이는 예수께서 고층우주에서 저층우주로 내려오셨다는 주장을 기초로 세워지는 신학이다. 예수는 부활을 통해 두 세계를 넘어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셨고, 인류 또한 믿음을 통해 고층 세계를 바라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

 

2. 감상평 。。。。。。。

     책을 읽어 나가면서, 이 책의 내용을 얼마나 진지하게 읽어야 할까 싶은 생각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우선은 천체물리학(사실 초끈이론은 수학에 가깝다고 한다)을 기초로 신학을 재구성하는 시도 자체가 워낙에 특이하기도 했고, 여기서 제시하고 있는 신학이 이전의 전통적인 신학의 전제들을 거의 모조리 재해석하는 새로운 것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저자는 정말로 이 주장을 진지하게 여기고 있는 걸까?

     사실 이 초끈이론 신학, 혹은 홀로그램 우주 신학이 가진 맹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저자가 거의 확신하고 있는 전제가 되는 이론이 한 번도 증명된 적이 없는 이론이라는 점. 사실 물리학 전공자가 아닌 이상 이 이론들에 대해 깊이 알기 어렵지만, 다양한 자료들을 찾아보면, (수학적 정합성을 가지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현대 이론에서 초끈이론이 점유하고 있는 위치가 생각보다 견고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저자가 여기에서 주장하는 신학은 결정적으로 예전에 폐기된 가현설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세계가 홀로그램이라면 예수께서 이 세계 안으로 오셨을 때 그 역시 홀로그램(진짜 세계의 모사)에 불과했다는 의미가 아닌가? 또한 이 세계가 실재가 아니라면, 죄를 보는 관점도 크게 달라진다. 실제로 저자는 홀로그램 우주를 자각하지 못하는 것을 개신교적 유물론의 죄라고 부른다.(37) 죄는 이제 이해의 문제로 전환되어버리는데, 그럼 이해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는 것은 정당한가의 문제가 제기되지 않을까?

     이 이론의 현실적 공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사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더라도, 이 세계의 틈 안에 일곱 개의 차원이 감춰져 있는 이상, 맨눈으로 그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맨눈이 아닌 어떤 도구를 이용하더라도 마찬가지. 앞서 말했던 것처럼 이 이론은 검증되거나 증명된 적이 없다. 심지어 이 이론을 설명하는 단 하나의 방정식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뭔가를 보려고 애를 쓰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저자는 꿈을 통해 우리가 그 세계에 갈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한데, 모든 꿈이 중력파의 도움으로 고층우주로 가는 틀이라고 주장하는 건 과도한 해석이다.

 

     물론 기독교 신학은 단순한 도그마의 반복이어서는 안 된다. 신학은 현실을 해석하는 틀이고, 따라서 우리는 성경만이 아니라 세속의 다양한 지식에도 눈을 떠야 한다. 하지만 새로운 이론이나 발견이 나왔다고 해서 그것으로 이전의 모든 틀을 재구성하려 한다면, 나는 그것에 기독교라는 이름을 (저자처럼) 쉽게 붙이기 어려울 것 같다. 용어의 유사성이 내용의 유사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니까.

 

     기독교는 단순히 교리모음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의 삶을 기초로 세워지는 혁명적 운동이다. 과거 역사 속 신앙인들의 모든 삶을 무효로 돌려버리고 새로운 것을 세우려 한다면, 매우 확실한 근거가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아직 초끈이론이나 홀로그램 우주론은 그런 확실한 근거가 되기엔 너무 일러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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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도 쉽게 배우는 성경 속 히브리어
이문범 지음 / 두란노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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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히브리어의 기초를 배울 수 있는 교본. 히브리어 알파벳과 모음기호로 첫 발을 내딛은 후, 동사와 명사의 어미변화를 통한 각종 품사들에 대해 배운다. 그렇게 히브리어 문법의 기초를 뗀 후, 저자는 구약성서의 각 장르에서 대표적인 구절들을 뽑아 히브리 문장의 감을 익히게 도와준다. 중간 중간 QR코드를 이용해 직접 발음을 들을 수 있는 동영상으로 연결시켜두기도 했다.

 

2. 감상평 。。。。。。。

     ‘혼자서도 쉽게 배우는이라는 책 제목의 한 구절이 눈에 들어와 구입을 했다. 성서를 좀 더 깊게 읽어보고 싶다면, 결국 히브리어, 그리스어 같은 원어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을 테니까. 책머리에 히브리어는 울면서 들어가서 웃으며 나오는 언어니 너무 걱정말라는 저자의 격려가 인상적이다. 정말 그렇게 웃으며 나올 수 있을까?

     사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과정은 대개 비슷하다. 그 언어에 익숙해져야 하고, 문법적 사항을 숙지하고, 단어를 외우고 하는... 이 책 역시 히브리어를 학습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책답게, 이런 기본적인 부분을 먼저 다루고 넘어간다. 꼭 외워두어야 하는 것들은, 꼼짝 없이 외워야 한다. 책을 그냥 읽고 넘어가면 금방이겠지만, 제대로 익혀보려고 한다면 시간을 좀 더 들여서 잘 숙지하고 넘어가야 할 부분.

 

      그런데 우선은 배우려는 언어에 대한 저항감을 줄이는 게 급선무다. 학창시절 영어와 프랑스어를 배울 기회가 있었지만, 개인적으론 이런 외국어에 대한 저항감 때문에 고전을 했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은 그런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앞서 말한 것처럼 QR코드를 통해 노래와 발음을 직접 익혀갈 수 있는 장치를 더했다. , 성서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이 무슨 뜻인지 설명하면서 좀 더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책 속의 신학적 설명은 약간 아쉽다. 창세기 1장의 엘로힘우리’, 그리고 단수동사를 가지고 삼위일체를 도출해 내려는 시도와 몇 장 뒤 장엄복수형에 관한 언급은 서로 모순되는 것 같기도 하고.

 

      전반적으로 히브리어를 가볍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돕는 데는 좋을 듯. 좀 더 깊게 공부하고 싶다면 또 다른 책을 찾으면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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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해부 - '앎'을 위한 팩트체크 옥성호의 성경 직독직해 시리즈 1
옥성호 지음 / 테리토스(Teritos)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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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저자는 책의 초반부 기도로 폐병을 고쳤다고 확신한 채 촉망받는 물리학자의 삶을 포기하고 신학으로 돌아선 한 인물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오랜 시간이 흘러 애초의 진단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된 그가 쓸쓸하게 걸어간다는 내용으로 마치는 이 이야기는, 그가 신앙으로 자기합리화를 했을 것이 분명하다는 저자의 거의 사실화된 강력한 추측으로 이어진다.(이 책에선 매번 이런 식이다. 자신의 추측이 곧 사실이다.)

     처음의 예와 거의 반복되는 또 하나의 사례(이번에는 저자 자신의 이야기다)를 든 후, 저자는 흥미로운 주장을 한다. 자신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믿는 사람이라는 것. 이를 위해 심지어 아담의 역사성까지 믿고 있다는 식으로 (다분히 깐족대는 어조로) 자신의 보수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건 다음 내용을 전개하기 위한 밑밥이었다.

 

     ​본론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는 자신이 볼 때, 성경 속 하나님의 모습은 차마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수준의 원시적이고, 무능력하며, 과격하고, 잔인한 신이며, 나아가 성경 속 각종 명령과 규례들은 온갖 모순을 안고 있으며, 종종 이해할 수 없는 전근대적 법령들이라는 것. 이를 위해 저자가 분석하는(이 책의 제목을 따르면 해부하는’) 대상은 놀랍게도 십계명이다.

 

  

2. 감상평 。。。。。。。

     먼저 책 서두에 나오는 한 전직 물리학도의 실감나는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이야기를 생각해 보자. 모든 이야기가 그렇듯 전하는 사람들은 일어난 사건을 단순히 옮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입맛대로 더하거나 빼기 마련이다. 더구나 저자가 전한 이야기는 그 자신의 생각으로 마무리 되고 있고, 또 마지막을 최대한 허탈하게 만들기 위한 구성도 엿보인다. 설사 그가 한 설명이 사실이 근접했다고 하더라도, 이야기 속 주인공이 젊은 시절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고 해서 반드시 훌륭한물리학자가 되었을지는 알 수 없는 법이다.

     그런 그의 삶에 대한 평가를 단순히 속은 것이라고 평가하는 저자의 판단은 무엇에 근거한 걸까? 또 그는 신앙에 의해 속임을 당한 것도 아니고, 그가 물리학을 포기하는 과정에서 누군가의 (주변의 기독교인들의) 강요가 있었던 것도 아니지 않은가? 저자는 다분히 이 이야기를 가지고 전통적인 신앙인들을 조롱하거나, 그들의 신앙생활 모습을 못 미더운 것으로 만들려고 하지만, 이런 식의 개별적(귀납적) 경험사례를 가지고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를 확실히 판단내릴 수 없다는 건 논리학의 기본적인 원칙이 아닌가.

 

     저자가 십계명의 조목들을 해부하는모습도 썩 능숙해 보이지는 않는다. 저자가 이 과정에서 참고한 것은 대체로 자유주의적 관점을 지닌 신학자들의 의견일 뿐이고, 각각의 판단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신학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잠재적인 것일 뿐인데, 저자는 지나치게 자신의 판단을(정확히는 자신에게 영향을 준 자유주의적 신학방법론을) 확신하고 있다.

 

     ​예컨대 왕하 3장의 모압전투 가운데 벌어진 사건에 대해서 히브리어 원문은 주어를 아예 표시하지 않는다. 그래서 성경만을 보면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 수 없다. 본문에서 저자는 그것을 신의 분노라고 읽지만, 꼭 그렇게 읽어야 할 것은 아니다. 모압 비문에서야 그것을 자신의 신학에 입각해 해석해놓았지만, 그 비석이 성경기록을 해석하는 키는 아니다.

     [엘 엘룐][엘로힘]을 두고 저자가 그리는 신관의 발전에 대한 이미지(다신교일신교유일신교)는 애초에 문학적 수사법 안에서 두 단어가 같은 대상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히브리 수사법에서 대구, 반복 등은 매우 자주 사용되는 방식이고, 각각의 단어들이 꼭 다른 대상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필요는 없다. ​전반적으로 이 책 속에서는 이런 식으로 수사적 표현과 논리적 정합성을 다투는 문장 사이의 혼동이 자주 벌어지고 있다. 물론 저자가 선택하고 있는 문자주의적 자유주의(?)’ 신학은 그렇게 보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물론 저자가 책 속에서 지적하고 있는 기독교인들 가운데서도 발견되는 이중적인 모습들, 말과 행동의 불일치, 작은 부분에 집착하면서 더 큰 기회와 관계를 포기하는 좁은 시야 등은 분명 곱씹어 들을 만한 부분이다.

     그러나 심지어 여호와가 인신제사를 좋아하는 신이라는 식의 주장까지도 거침없이 하는 걸 보며(이 부분에서 저자는 레 27장의 속전 개념, 3장의 레위인 대속 개념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저자가 메스를 들고 진리의 배를 가를 수 있는 능력은 있는 건지 싶다. 저자는 마치 자신이 성경 속 신앙인들로부터 바로 나온 것처럼 여기는 듯하지만, 그가 책 속에서 비웃고 있는 수많은 무명의, 그리고 많이 배우지 못했지만 신실하게 살려고 애썼던 신앙의 선배들 덕택에 지금 그가 누리고 있는 것들은 생각지 못하는 것 같다.

 

     ​칼을 들고 다짜고짜 배를 가른다고 다 수술은 아니다. (, 저자는 수술이 아니라 해부라고 했으니 상관이 없는 걸까.) 해부용 메스는 휘두르는 게 아니라 조심스럽게 관련된 부분에만 그어야 한다. 하물며 의학적 목적으로 기증된 시신을 대할 때도 난도질을 하는 것은 상식에서 벗어난 일이다. 그렇다면 살아 있는 사람을 대할 때는 좀 더 조심스럽게, 예의를 갖추는 게 기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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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근동 신들과의 논쟁
존 D. 커리드 지음, 이옥용 옮김 / 새물결플러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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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고고학의 발전으로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다양한 표현들, 이야기들과 유사한 인근 문명의 기록들이 발견되었다. 흥미로운 건 대다수의 사람들이 성서의 기록이 그런 인근 지역의 신화들에서 파생된, 혹은 표절된 아류기록이라고 본다는 것. (이 책에 의하면 심지어 후대에 기록된 인근 기록이 이전에 기록된 성서의 기록의 원조라고까지..)

 

     이 책의 저자는 좀 다른 방향에서 문제를 본다. 물론 성서의 기록자들이 인근의 신화들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고, 그들의 기록에 인근 문화의 요소들이 일부 담겨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엔 분명한 목적이 있었는데, 그건 성서 기록자들의 기록들과 인근 기록들의 차이점에서 발견된다.

 

     저자는 성서의 기록자들이 의도적으로 외부의 이야기와 표현들을 가져왔으며, 이는 성서의 하나님의 우월함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이었다는 것이다. 성서 이야기 안에서 이방의 신들은 의도적으로 약화되어 있고, 인근 문화에서 그들의 신에게 돌려지던 능력과 영광은 성경 속에서 오직 한 분 하나님에게만 속한 것으로 묘사된다. 이른바 논쟁신학적 목적이라는 것.

 

     책의 주요 내용의 대부분은 이른바 창조 이야기부터 홍수 기사, 요셉, 고난을 극복하는 영웅 등 다양한 이야기 등을 통해 논쟁신학이 어떤 식으로 실제 전개되는지를 보여준다.

 

 

2. 감상평 。。。。。。。

 

     흥미로운 주장을 담고 있는 책이다. 성서와 인근 고대 문명의 신화, 기록들 사이의 유사성을 두고 주로 성경의 신뢰성을 훼손하는 방식으로 전개되던 논의에, 일종의 전환지점을 만드는 데 성공하지 않았나 싶다. 저자는 양측의 공통점을 인정하면서도 그 차이점에서 특별함을 찾으려 하고 있고, 이는 막연히 사상의 진화론적 전제를 고수하면서 별다른 증거도 없이 하나가 다른 하나로 변했다는 식으로 판단하는 것보다 좀 더 학문적으로 보인다.

 

     다만 책이 뭘 말하려는지 주제 파악은 일찌감치 끝났는데, 정작 본문에 들어가서도 앞서의 설명했던 주제를 계속 반복하는 느낌이 들어 아쉽다. 물론 앞서의 주장을 실제 본문들 가운데서 입증하기 위해 예를 제시하는 부분이기에, 주제의 반복이 아주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한 권의 책으로 엮는다면, 주제의 발전을 보여주거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대감을 갖게 만들 만한 내용의 확장이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새로운 주장을 담고 있는 책이 꼭 완성적일 필요는 없으니까. (물론 그렇게 된다면 더 좋겠지만) "이방의 신화가 이스라엘의 사실이 되었다"는 표현이 인상적이다. 한 번 읽어볼 만한 책.

 

 

​덧. 번역은 대체로 괜찮게 되었는데 88페이지 표의 가장 마지막 단의 표현이 거슬린다. “야웨가 노아를 축복한다는 문장인데, ‘축복복을 빈다는 뜻이다. 비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그 소원을 듣고 복을 내려주는 존재가 필요하고. 그렇다면 야웨가 그보다 더 높은 존재에게 복을 빌어서 노아에게 내리도록 한다는 뜻인데, 이건 저자가 그토록 강조하던 고대 이스라엘의 유일신 사상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표현이다. 영어의 bless를 번역할 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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