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니언 - 기독교는 어떻게 서양의 세계관을 지배하게 되었는가
톰 홀랜드 저자, 이종인 역자 / 책과함께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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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흔히 연대를 계산하기 위한 기준으로 BC와 AD라는 기준을 사용한다전자는 Before Christ, 즉 '그리스도 이전이란 뜻이고후자는 Anno Domini라는 문구의 줄임말인데라틴어로 우리 주님의 날들이라는 의미다즉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을 기준으로 시간을 세고 있다는 말이다.


     시대가 변해서 이런 게 '불편했던' 사람들이 몇 차례 새로운 연대법을 제안하긴 했지만,(예컨대 저기 북쪽의 주체 몇 년이나 이슬람력 같은 경우여전히 기존의 방식을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하고병기하는 수준이다일단 전 세계의 달력과 시간계산법을 다 바꾸는 데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기도 한데그 때문인지 요새 어떤 사람들은 BCE(Before Common Era)라는 식으로 비기독교적 용어를 애써 만들려고도 하지만...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확실히 시대는 변했다이 책에서 주로 탐험하고 있는 서유럽에 국한해도 이는 마찬가지다한 때 기독교 국가라고 불리는 나라들이 수없이 일어서고 사라졌던 땅이었지만이제 이 지역의 기독교 인구는 20%도 안 되는 게 사실이다크리스마스를 홀리데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고집하는 생뚱맞음으로 상징되는전방위적인 무신론적 도전이 무척이나 강하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서유럽에서는 기독교의 영향력이 상당부분 남아 있다고 수차례에 걸쳐 단언한다심지어 기독교를 공격하는 사람들조차도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아니 그들의 주장 자체도 기원을 따져보면 기독교에서 연원한 것들이라는 말다만 여기에서 기독교의 영향력이라는 말은 신앙적 차원이 아니라 사회학적 차원에서 언급되는 표현이다우선 저자 자신도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다.

 





     저자는 이 책에서 지난 2천 년의 역사 속에서 기독교가 가지고 있었던 힘을 추적하고 있다기독교는 그 기원부터 매우 독특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세상을 정복하고반대파를 철저하게 탄압하고적들에게 복수할 수 있는 힘을 지닌 자들을 신으로 섬기던 사회에서기독교는 예수의 희생과 죽음을 그 신성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주장하기 시작했다.


     장애를 가진 아이를 내다 버리고버려진 여자 아이들이 유기되어 창녀로 전락하는 일이 흔히 벌어지던 고대 로마 사회에서 기독교의 가르침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지만기독교가 제국의 담을 허문 다음부터 점차 당시 사회의 표준으로 자리 잡아 간다물론 세상의 진보는 일직선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고수많은 변주와 변조가 일어나곤 했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구하고 앞서 설명했던 것처럼 그 영향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예컨대 저자는 로마 황제 중 하나인 율리아누스를 예로 든다흔히 배교자 율리아누스로 불리는 인물인데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거의 국교의 자리에 올려놓았을 즈음에 나타나 이교주의를 부활시키려 한 인물이다문제는 그가 부활시키려 한 이교주의와 혼란 시대에 필요한 도덕과 윤리가 서로 마주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예컨대 일리아스’ 속 영웅들은 거만하고약탈에 열을 올렸고허약한 자들을 경멸했다율리아누스가 명예를 부여하려 했던 철학자들 역시 가난한 이들을 경멸하기는 마찬가지였다그런 상황에서 기독교를 배척하면서 기독교가 도입한 새로운 윤리를 거부하는 일은 그 자체로 역설적인 시도였다저자는 율리아누스가 망상에 빠져 있었다고 평가한다(194).


     근대 이래로 종교의 영향력을 감소시키기 위해 세속주의자들이 꺼내 든 성과 속의 분리라는 개념도 흥미롭게도 기독교 전통에서 등장한 것이었다그 시작은 아우구스티누스였는데이후 몇몇 교황들이 중세 기간 동안 교회에 대해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던 세속 권력자들로부터 교회의 독립을 위해 이 개념을 강조하면서 하나의 새로운 전통이 만들어졌다는 것물론 오늘날에는 그 반대의 의도를 가지고 이 개념을 끌어오는 사람들이 더 많아 보이지만이 개념을 진실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그 개념을 정립한 교회를 과도하게 비난하는 것 또한 자기모순적 태도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개념은 인권이다인간이 보장받아야 하는 최소한의 권리가 있다는 개념은 교회법학자들이 처음으로 언급한 것이었다가난한 사람들도 생활필수품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것을 주장한 것도노예 해방을 소리 높여 외친 것도 그 시작은 교회와 기독교인들이었다마치 인권이 근대의 발명품인 양 주장하는 이들도 있지만, ‘천부인권이라는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그들 역시 그 정당성을 다른 데서 찾지 못한다현대의 유물론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말들을 보면인권이라는 개념이 그들이 만들어낸 작품은 아니라는 게 확실해 보이긴 한다.


     물론 이런 설명들이그러니 인권과 성속의 구분이성과 자선과 같은 개념들을 사용하려면 기독교인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는 당연히 아니다다만 뿌리도 모른 채 어떤 사상이나 개념을 취하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얄팍한 교만함을 피해야 한다는 것과어떤 좋은 개념들이 역사상 반복적으로 특정한 집단에서 나왔다면그 집단을 보는 눈도 좀 최소한 균형 있게 바라보아야 한다는 정도는 기억해 둘만 하지 않을까?






     여기에 이 책이 지닌 또 다른 유익은유대교부터 기독교로 이어지는 역사를 너무 딱딱하지 않게그러면서도 충분히 연대기적 충실함을 담아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책의 각 장은 1~200년의 터울을 두고 그 시대의 중요한 장면들을 스케치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상당히 노련한 솜씨다.


     당연히 기독교 역사를 학문적으로 자세히 살피고 연구하기에는 이 책 한 권으로 충분할 리는 없지만전체적인 그림을 갖는 데는 도움이 될 듯하다단순히 교리적 설명이나 일어났던 사건들을 순서대로 배열해 놓는 것에 그치지 않고그것이 가지고 있는 내적 의미를 인문학적 차원에서 분석하고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중요한 지점까지 짚어주니 친절한 역사책이라고 할 수 있을 듯개인적으로는 재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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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10-13 21: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벌써 다 읽으셨군요. 저는 아직 반도 다 못 읽었습니다.
역사에 대한 지식이 일천하여 조금 지루하긴 합니다만
괜찮은 책 같다는 생각은 들더군요.
이달 안에 리뷰를 쓸 수 있을건지 모르겠습니다.ㅠ

노란가방 2020-10-13 20:27   좋아요 1 | URL
15일까지 리뷰 올려달라 하셨던 기억이..ㅋ 전 재미있어서 술술 넘어가더라구요. 비슷한 내용의 좀 더 두꺼운 책이 하나 더 기다리고 있는지라 비교해 보며 읽을 수 있을 듯도 하네요. ^^

stella.K 2020-10-13 21:25   좋아요 0 | URL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알지는 그렇게 빡빡한 곳이 아닌지라
완독하고 올리려구요.ㅎ
기다리고 있다는 책 뭔지 궁금하네요.^^

노란가방 2020-10-13 21:28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완독하고 잘 소화하시면 좋은 글이 나오겠지요. ㅎㅎ
폴 존슨이 쓴 ˝기독교의 역사˝란 책을 구입해놨습니다. 일단 알라딘엔 892쪽이라고 나와있네요. ㅋㅋ
 
다시 춤추기 시작할 때까지 - 코로나 시대 성경이 펼치는 예언자적 상상력
월터 브루그만 지음, 신지철 옮김 / IVP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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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명한 구약학자인 월터 브루그만의 새로운 책이다책의 내용 중 두 개의 장은 한참 전에 쓰였지만이 책을 위해 일부를 다시 써서 실었다코로나19의 세계적인 확산으로 고통 받고 있는 상황에서기독교인들이 어떻게 현실을 이해하고나아가 신앙을 지킬 수 있을지에 관한 저자의 깊은 고민이 담겨 있다.



     이 책은 전염병이라는 주제에 천착한다. 1장에서 저자는 성경적으로 전염병 같은 재앙과 하나님을 연결하는 세 가지 방식(동등 보응의도적 권능자유로운 능력 행사)를 제안하면서 신비라는 전통적 주제로 되돌아간다각각의 방식으로 현실을 해석하려 할 수 있지만무엇보다 우리는 하나님을 완전히 알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2장에서 저자는 조심스럽게이 현상이 하나님의 징계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안한다물론 코로나19와 하나님의 징계를 곧바로 연결시키는 데는 상당한 무리가 따른다그러나 어떤 것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라면우리는 그분의 자비를 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볼 수 있지 않겠는가하나님의 자비로운 속성을 안다면 더더욱.


     3장에서는 모든 것이 중단되어 버린 이 상황에서교회는 다시 한 번 희망을 선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이것은 단순히 말로만이 아니라어려운 시기를 맞아 가난하고 자신의 것을 쉽게 빼앗기는 이들을 적극적으로 돕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4장은 기도에 관해 말한다어떻게 이런 광범위한 재앙을 앞에 두고 우리는 계속 기도할 수 있을까하나님은 이미 우리의 기도를 거절하셨거나들어주실 힘이 없으신 건 아닐까저자는 그치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 전염병의 상황에서 기도의 본질은 마술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신뢰라는 점을 되새겨야 한다고 말한다.


     5장에서 저자는 시편 77편을 분석하면서재난 상황을 통해 관심의 초점을 자아에서 하나님에로 돌려야 할 필요성에 대해 말한다이 재난은 우리의 무력함을 발견하고그분의 풍성함을 발견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매우 짧은 6장은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인간과 자연을 착취하는 방식으로 발전해 온 구조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를 주목하게 만든다코로나19의 위협 앞에서 가벼운 죄를 저지른 재소자들을 석방하거나(교도소 내 밀집도를 낮추기 위해서), 가난한 이들에게 재정적 지원을 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마지막 7장에서는 새 창조를 위한 과정으로서의 탄식과 고통(특히 해산의 고통)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빨리 괜찮다고 말하려고 한다그러나 진지한 고통이 없는 방식으로는 새 생명을 얻을 수 없다우리는 고통 가운데서 희망을 발견한다.



     최근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를 마주하면서 한국교회 일각에서 충분한 고민 없는 말들을 쏟아냈다기본적으로 교회에서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기초해 우리들이 살아가는 현실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인데이들의 행태에서는 성경에 대한 충분한 이해도현실에 대한 충분한 분석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결과가 참담하다방송과 언론 매체가 다양해지면서이들이 내뱉은 말은 훨씬 더 멀리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졌고그들이 대표한다고 주장하는 교회는 단숨에 반사회적 집단으로 비춰지고 말았다물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개인과 그가 속한 집단 사이를 구분할 줄 알겠지만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이미지가 주는 타격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그들이 성경도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마 22:29). 이 땅에서의 경험으로 부활을 멋대로 상상했던 사두개인들처럼그들은 성경 속에 담겨 있는 믿음의 사람들의 풍성한 경험과 고민그리고 현실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자신들의 무지를 인식할 수 없을 정도의 독선적 확신에 빠져 있었다.



     우리가 월터 브루그만의 글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그는 독자를 성경 속으로 깊이 이끌어서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해 보지 못한 하나님을 만나게 도와준다어지간히 성경에 익숙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이 책에 실린 고민들을 하나씩 따라 가다보면 분명 그런 경험을 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성경신학자인 저자는 본문 그 자체에 깊이 매달리면서그것이 비춰주는 현실을 재해석한다일부 결론들은 앞서 말한 개념이 부족한 사람들의 주장과 비슷하게 느껴질 지도 모르지만거기까지 이르는 과정은그리고 그 말 속에 담긴 함의는 전혀 다르다.


     각 장이 너무 짧아서 관련된 주제를 충분히 설명하고 깊이 있게 적용하기엔 지면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특히 좀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문제들에 대한 저자의 관점을 접하고자 하는 독자라면 더 아쉬움이 들 듯도 하다하지만 어디 한 권의 책에서 모든 것으로 얻으려 하는 게 가능할까이 책에서 제안된 주제들을 좀 더 발전시킬 수 있는 독서과 공부는 추가로 해 나가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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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한 칼빈주의 -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칼빈주의자의 모든 것
제프 A. 메더스 지음, 김태형 옮김 / 좋은씨앗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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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겸손한 칼빈주의라는 독특한 제목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하나는 일종의 반어법으로, 소위 칼빈주의를 따른다고 하는 사람들의 고집스러움, 그리고 종종 과도한 엄격한 모습을 가리키는 제목이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이 단어는 진정한 칼빈주의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목표를 담고 있는 표현이다

 

     이 두 가지 의미는 책 전체의 구조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저자는 우선 소위 칼빈주의자들의 부적절한 처신들비타협적인 모습들, 분열을 감수하고서라도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자세, 특정한 교리에 대한 과도한 헌신 같은(칼빈주의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적절치 않음을, 유쾌하지만 통렬하게 지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칼빈주의를 버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저자도 칼빈주의자다) 대신 저자는 칼빈주의가 본래 무엇인지를 풀어냄으로써, 앞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는다. 그리고 여기에 사용된 것은 도르트 총회에서 결의된 그 유명한 다섯 가지 칼빈주의자들의 선언인 튤립 교리다.

 

 

     솔직히 말하면, 튤립 교리에 담겨 있는 다섯 가지 선언은 싸우기 위해 만들어진 교리였다. 아르미니우스와 그 후예들에 의한 교리적 혼란으로부터 정통적인 교리를 지켜내기 위해 신중하게 구성된 단어와 문장들이었다. 당연히 이 교리를 굳게 붙잡으면, 애초에 그것을 만들었던 사람들의 결기 같은 것에 물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저자는 이 전투적으로 정리된 교리를 하나님의 은혜를 가리키는 것으로 새롭게 조명해 준다. 저자의 이 흥미로운 작업을 따라가는 것은 꽤나 재미있는 일이었고, 그의 의도는 어느 정도 성공하지 않았나 싶다. 사실 도르트 총회의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의 의도와 상관없이, 거기에 담겨 있는 교리는 이 책의 저자의 말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가리키는 것이 맞다.(비단 튤립 교리만이 아니라 모든 바른 교리는 결국 그런 목적지에 이를 수밖에 없다.)

 

     전적인 타락, 무조건적 선택, 제한 속죄, 저항할 수 없는 은혜, 그리고 성도의 견인으로 이어지는 이 다섯 가지 교리는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에 이를 수 있는지 그 과정을 묘사한 내용이다. 애초에 도르트의 선진들은 이 다섯 가지 교리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려고 했었고, 여기에는 그 반대편에 서 있다고 상정된 아르미니우스의 주장이 하나님의 은혜를 감소시키고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었다. 그런데 이 교리를 붙잡고, 원한이나 분노, 분열을 일으킨다면, 그건 정말로 은혜의 교리라고 할 수 있을까.(이런 차원에서 저자의 주장에 상당부분 동의한다.)

 

 

     글을 재미있게 쓰는 재주를 가진 저자다. 다만 지나치게 현대적인 (그리고 미국적인) 농담에 살짝 거리감이 생길 때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칼빈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다섯 개의 영문자는 튤립TULIP이 아니라 예수님Jesus이다.”, “튤립TULIP 교리는 본래 아름다운 하나님의 은혜를 보게 하는 망원경이다.”처럼 눈에 쏙 들어오는 문구를 떠올릴 수 있는 재능까지 있다.

 

     저자는 교리의 무용론을 주장하는 게 아니다. 다만 그는 교리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복음적 관점에서 교리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고 우리의 시선을 환기시켜주고자 한다. 특별히 수없이 분열되어 있는 한국 장로교(이 중 상당수가 칼빈주의자들을 자처한다)에 필요한 교훈이 아닌가 싶다.(물론 애초에 그 사람들이 칼빈주의에 충실한 사람들이었더라면 이런 일들도 없었겠지만)

 

     ​한 번 읽어볼 만한 책. 특히 이제 갓 신학교를 마치고 목회 사역에 나온 젊은 사역자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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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논쟁 - 지옥에 관한 네 가지 성경적.신학적 견해 Spectrum 스펙트럼 시리즈 8
데니 버크 외 지음, 스탠리 N. 건드리 외 엮음, 김귀탁 옮김 / 새물결플러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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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문화와 종교 가운데 지옥과 비슷한 개념이 존재한다그만큼 사람들이 오래 전부터 공의의 문제를 중요한 것으로 여겨왔다는 증거일 것이다분명 이 세상은 사람들이 행한 선하고 악한 일들에 대한 응보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이는 사람들 마음 가운데 어떤 부분을 자극하는 면이 있다. ‘이 세상에서가 아니라면 그 다음에라도라는 생각.


     흔히 기독교의 지옥관도 이런 맥락에서만 이해되기도 한다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들에 대한 충분한 처벌이 이루어지는 곳하지만 성경에는 생각만큼 이 주제에 관해 충분히 자세한 설명이 보이지 않는다매우 단편적이고때로 상징적인 언급만 있을 뿐이니까이 쪽에 대한 설명이라면 불교나 무속신앙 쪽이 훨씬 자세한데(영화 신과 함께를 보라), 그 때문인지 저쪽의 지옥관을 그대로 기독교 안으로 끌어들여 이해하는 경우도 있다.(물론 이 과정이 꼭 의식적인 것은 아닐 수도 있지만.)



     이 책은 지옥에 관해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이 책에 기고한 네 명의 저자들은 모두 지옥이 실재한다는 것과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점을 믿는 사람들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지옥에 관해 서로 크게 다른 관점을 보인다.


     먼저 데니 버크는 지옥이 영속적인 의식적 고통의 장소라고 본다그들이 영원한 고통 속에 있어야 하는 이유는그들이 저지른 죄는 하나님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또 그것은 악을 무던히 넘기실 수 없는 하나님의 공의의 결과다.


     존 G. 스택하우스 2세는 이와는 조금 다른 지옥관을 제안한다그 역시 지옥이 의식적인 고통을 당하는 장소라고 보지만그는 지옥의 고통이 영원하다는 점을 부정한다그에 따르면 지옥은 인간이 저지른 죄에 대한 대가를 충분히 치르는 장소이지만그 대가를 치른 후에는 그 존재가 소멸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로빈 A. 패리는 한 발 더 나아가지옥에서의 고통을 받는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것이며결국에는 그들 모두 구원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하나님의 사랑은 누구도(심지어 인간의 악함도막을 수 없으며그분의 획은 반드시 실현될 것이라는 전망에서다.


     제리 L. 월스는 앞서의 주장들과는 조금 그 유형이 다른 내용을 전개하는데그가 집중하는 주제는 연옥이다기존의 가톨릭적 설명에서 연옥은구원에 이르기 위해 개인이 치러야 할 대가인 보속 개념과 연결된다면월스의 연옥은 생전에 이루지 못한 성화의 나머지 부분을 담당하기 위한 영역으로 제안된다.(그는 종교개혁자들의 편에 서서 이런 주장을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각각의 주장들 뒤에는 나머지 세 저자들의 논평이 간략하게 실려 있다개인적으로는 그 논평에 대해 다시 저자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재 논평이 붙어 있었다면 더 흥미로웠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그러다보면 한도 끝도 없어질지 모르니까입장이 갈리는 상황에서서로의 입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직접 설명하는 구성이 좋았다.


     네 편의 글에 대해 서로 논평을 하는 형식이 반복되는지라자연스럽게 각 저자들의 성격이 드러난다성경의 직접적 언급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버크나다른 어떤 주제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하는 패리중재적 입장을 자주 취하는 스택하우스의 인상들 같은.


     개인적으로는 보수적인 신앙전통 안에서 자란지라 넷 중 버크에 의견에 심정적으로는 가까웠지만성경구절에 관한 그의 강조가 자칫 문자주의로 기우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물론 신학 이론을 전개하는 데 있어서 철저한 주석적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겠지만특정한 내용을 담고 있는 성경구절을 누가 더 많이 찾느냐는 식은 아니니까.(그런 식으로라면 우리 모두는 안식교인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반면 스택하우스나 패리의 주장이 좀 감상적으로 치우친다는 느낌이 자주 든다불쌍하고안타깝고사랑이 많고 하는 이야기들은 마음을 움직이는 데 도움이 되지만우리의 감정이라는 건 너무 쉽게 바뀌는 법이니까.(반대편 입장에 설 때면 얼마든지 뒤집어질 수도 있다)


     보속이 아닌 성화의 관점으로 연옥을 설명하는 월스의 관점은 흥미롭다애초에 그걸 꼭 연옥이라고 부르지 않았더라면 일부의 반대는 좀 더 누그러뜨릴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잠깐 든다.



     죽음과 죽음 이후의 상태에 관해서 여전히 기독교인들은 많은 것을 알지 못한다다만 우리는 조심스럽게 추측해 나갈 수 있을 따름이다그리고 여기에는 내가 속한 전통만이 아니라 다른 전통에 속한 이들의 이야기도 주의 깊게 들으며나의 관점이 가진 약점과 빈틈을 차근차근 메워가는 작업도 필수적일 것이다그런 차원에서 이런 책들을 읽어가며자신의 입장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보는 것도 유익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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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의 십자가 - 중국 5대 제국과 흥망성쇠를 함께한 그리스도교 역사
송철규.민경중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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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홍보 키워드가 세 가지 있다. “1,400”, “중국 5대 제국”, 그리고 로마-중국-한반도. 중국의 기독교 역사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오래 전 기독교가 중국에 들어갔으며, , , , , 청이라는 다섯 제국이 들어서는 동안에도 그 명맥을 유지해 왔고, 그 가운데 인접한 우리나라에도 기독교적 영향을 주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역사를 사랑하는 기독교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땡기지 않을 수 없는 설명이다.

 

 

     두 명의 저자들은 수년 동안 중국 각지를 직접 다니면서 다양한 취재를 한 듯하다. 각 장의 말미마다 저자들이 방문한 지역의 교회 탐방기와 현지 목회자나 교인들과 나눈 인터뷰의 내용이 실려 있다. 직접 방문한 사람들만이 채울 수 있는 내용들이 여러 페이지에 걸쳐 소개된다. 그 성실한 구성은 분명 플러스 요인.

 

     다만 책을 소개할 때 사용한 키워드들이 제대로 구현되어 있는가 하고 묻는다면 솔직히 약간 아쉽다. 애초에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1,400년 전 중국에서 활동한 기독교에 관한 좀 더 다채로운 내용을 구경하기 위해서였는데, ‘경교라고도 불리는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아시리아 기독교)의 중국 전래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1장과 원나라 황실 내 기독교인에 관한 짧은 언급을 담은 2장을 제외하면, 나머지 이야기들은 대개 근대 이후의 이야기들이다. 물론 이 부분에 관한 충실한 내용은 필요한 경우 참고할 만하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사실

 

     여기에 기독교의 우리나라 전래에 관한 내용도 당나라와 신라 사이의 커넥션을 기대했건만, 관련된 내용은 거의 없고 대부분 근대 선교사들과 관련된 내용들이다. 물론 책 자체가 중국 이야기를 하려다보니 우리나라에 관한 언급은 적은 것도 자연스러운 구성이고, 사료 자체가 부족하다는 것도 한 가지 사유겠지만... 그래도 왠지 살짝 과대선전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역사를 다루면서도 책은 시간의 흐름을 따라서 연대기적으로 서술하는 대신, 공간을 중심으로 한 전개를 선택했다. 시계열적 변화를 통해 역사적 흐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연대기적 서술방식을 포기할 정도로 공간을 중요시한 것. 결과적으로 보면 이건 준비한 내용을 좀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선택이라기보다는, 저자들이 방문했던 지역에 관한 언급을 늘리기 위한 선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덕분에 책은 역사책보다는 기행문적 성격이 좀 더 강하게 느껴지고, 한 번 나왔던 내용들이 여기저기서 반복적으로 재등장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리고 이 역시 애초에 역사적 자료를 구하려 했던 독자라면 좀 실망스러운 부분이다. 솔직히 얘기하면, 저자들이 어디를 다녀왔는지는 별 관심사가 아니니까. 그곳에서 새로운 사료를 발견했다거나, 그것들을 제대로 정리했거나 하는 부분이 중요하지, 어디서 누구를 만다고 하는 건 기대한 내용이 아니었다. 차라리 저자들의 방문경험을 부가적으로 붙였더라면 좀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형편없다는 말은 물론 아니다. 책은 짜임새 있게 쓰였고, 특정한 목적을 갖고 읽는다면, 예를 들어 중국 근현대 기독교 선교역사라든지, 현대 중국 기독교의 현황과 같은 내용에 집중하려고 한다면, 이 책은 매우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몇몇 중요한 내용들을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되었는데, 삼자교회와 가정교회 사이의 관계라든지(요즘은 등록교회와 미등록교회라고 불린다고 한다), 중국 현대 기독교 역사 가운데 꽤 중요한 인물들이 여럿 있었다는 부분도 기억에 남는다.

 

     책 본문은 아니지만, 뒤에 붙어 있는 중국 기독교사 연표에는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 기독교의 중요한 사건들이 연대순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될 듯하다. 여기에 주제와도 연관되는 현대 중국의 종교 관련 법률문서도 번역되어 소개되고 있어서 관련내용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 , 이런 종류의 책에 꼭 필요한 찾아보기도 붙어 있다.(기본적으로 난 찾아보기를 충실하게 갖춰놓은 책은 일단 점수를 1점 더 주고 본다. 그만큼 정성을 들였다는 이야기니까.)

 

 

     한 가지 덧붙이자면, 애초에 내가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목표, 즉 중국 중세사 속 기독교의 흔적을 본격적으로 다룬 책을 원한다면, 오래 전 나온 김호동의 동방 기독교와 동서문명을 보는 걸 추천한다. 관련 내용을 거의 종합해 두었다고 해도 좋을 정도의 수준의 책이다. 사실 이 책(대륙의 십자가)에 나온 내용들의 대부분이 그 책에도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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