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에 선 기독교 - 공적 신앙이란 무엇인가
미로슬라브 볼프 지음, 김명윤 옮김 / IVP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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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말하는 ‘공적 신앙’(원서의 원제도 “A Public Faith”다)에 관한 책이다. 우리나라에서 출판된 게 2014년이고, 원서가 나온 건 2011년이니 벌써 10년이 된 셈이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공적 신앙이 제대로 수행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개인적 차원에서의 실천 시도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공적 신앙을 위한 제대로 된 신학을 정립하고 가르치거나 하는 일은, 일선 교회에 차원에서는 아직 요원해 보인다.


그 결과 사람들은 공적인 영역에 나설 때, 자신의 신앙을 마치 외투를 벗어 벽에 걸어두듯 잠시 없는 것처럼 생각하려고 애쓴다. 공개적인 영역에서 어떤 사람의 신앙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피해야 할 일로 여겨진다. 예를 들면 “100분 토론”에서 어떤 사람이 자신의 주장을 하면서 그 근거를 윤회사상이나 구속 신앙에서 찾는다면 어떤 댓글이 달릴까?


사실 이 부분에서 기독교는 소위 무속종교보다 더 열악한 상황인데, 후자의 경우는 예능이나 종편의 유사 시사프로그램에서 종종 하나의 코너로 당당하게 자리를 차지하기도 하니 말이다.



저자인 볼프는 기독교 신앙이 지극히 내세적이고, 개인구원이나 ‘복 받는 삶’ 따위에 집중하는 ‘신비주의적 종교’가 되어가는 상황을 비판하면서 ‘예언자적 종교’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언자적 종교의 가장 큰 특징은 신의 이름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한다는 점인데, 오늘날의 신앙은 일종의 기능장애에 빠져 애초의 이런 목적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유를 찾아보는 일은 어렵지 않다. 유럽의 경우 “30년 전쟁” 이후 종교가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음을 처절하게 인식했고, 곧 이어지는 르네상스는 종교가 아닌 인간의 가능성에서 소망을 찾고자 하는 시도였다. 20세기에도 여전히 곳곳에서 종교로 인한 갈등이 많은 사람들을 위기로 몰아넣었고, 지난 2001년 벌어진 9.11 테러는 사람들로 하여금 종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의 정점을 찍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종교가 사람들의 공적인 삶을 해칠까? 볼프는 적어도 기독교만큼은(이건 다른 종교는 그렇지 않다는 게 아니라, 저자가 기독교인이기에 기독교에 대해서는 잘 알고 말할 수 있다는 의미다) 종교적 폭력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그 신앙에서 멀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신앙에 더욱 충실해지는 데서 발견될 수 있다고 말한다.


표층적이면서 열광적인 신앙은 자칫 폭력을 불러올 수 있다. 그러나 심층적이면서 헌신된 실천은 평화를 낳고 유지한다. 특히 기독교 신앙은 인간의 궁극적인 번영에 관한 비전을 가지고 있다. 인생의 목표와 의미, 그리고 어떻게 그 목적지에 이를 수 있는지를 기독교 신앙은 보여준다.



책은 크게 2부로 나뉘어 있는데, 1부에서는 공적 신앙의 필요성, 의의에 대해 설명하고, 2부에서는 어떻게 하면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은 목표를 실천할 수 있을까에 집중한다. 다원주의 아래, 다양한 사상과 신앙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기독교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저자는 적응이나 도피/고립과 같은 태도는 적절하지 않으며,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반복한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지혜를 나누고, 사랑과 용서를 기조로 다른 사람들을 대해야 한다. 기꺼이 다른 이들을 환대할 수 있도록 우리 삶의 구조를 변화시켜야 할 필요도 있다.


다만 이 부분에서 구체적인 지침, 혹은 예시라고 할 만한 것들은 조금 부족해 보인다. 특히나 이 책이 공적인 영역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실천의 영역이 구체적이지 못하고 이론적 차원으로만 제안되는 점은 상당히 아쉽다.



사실 이 책의 공헌은 공적인 영역에서 신앙의 자리가 치워지거나 봉쇄되는 상황에 문제가 있음을 일깨워 주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점에서라면 어느 정도 소기의 성과는 있었던 것 같고. 가장 중요한 지적은 역시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실천은 부가적인 영역이 아니라 그 신앙적 본질의 영역이라는 점이다.


어떻게 하면 더 잘 믿을까에만 집중 한 채, 교회 중심의 신앙생활에 머물러 있는 상황은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 운전면허증은 도로에 나가 차를 운전하기 위해 취득하는 것이다. 언제까지 면허장 내 연습 주행코스만 반복해서 오고가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라도 이상하게 볼 터.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꼭 그렇게 보인다고 하면 조금 지나친 말이려나.


한 번 읽어 볼만한 책. 다만 조금 더 쉽게, 잘 풀어놓은 책이 계속 나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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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왜 폭력에 연루되시는가? - 성서 내러티브에 나타난 하나님의 폭력
L. 대니얼 호크 지음, 홍수연 옮김 / 새물결플러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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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읽다보면 종종 난감한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다. ‘선한 인물들’로 분류되는 캐릭터들이 종종 놀랄만한 폭력적 성향을 내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의 사람들을 진멸할 것을 호소했고, 다윗은 에돔 족과의 전투에서 수만 명의 사람들을 몰살시키기도 했다. 시편의 시인들은 종종 적들에 대한 잔혹한 보복을 꿈꾸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좀 더 큰 ‘문제’는 하나님 또한 이런 이야기에서 빠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호수아의 명령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포된 것이고, 자신의 백성들을 구해내기 위해 이집트 사람들에게 견디기 힘든 재앙을 내리기도 하신다. 선지자들을 통해 전달된 그분의 계획은 원수들에 대한 가혹한 징벌로 표현된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그분의 아버지의 뜻과는 좀처럼 어울리는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사실 이런 문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지적되어왔다. 초기 기독교 시기 대표적인 이단 중 한 명인 마르키온은, 보복을 즐겨하는 폭력적인 신을 담고 있는 구약과 사랑을 명령하는 신약의 하나님을 아예 분리시키고자 했다. 그가 가진 성경에는 오직 사랑의 하나님에 관한 내용만 남아있고, 나머지는 모두 삭제된 것이었다.


이건 좀 지나치게 과격한 행동이었지만, 확실히 이 문제는 어떤 식으로든 해결해야만 했다. 좀 더 온건한 사람들 중에 오리게네스 같은 인물은 구약의 이야기를 일종의 알레고리화 함으로써 그 역사성을 희미하게 만드는 전략을 취한다. 겉으로 보기엔 폭력적으로 보이나, 실은 아니었다는 식이다.


방법은 좀 다르지만, 오늘날에도 정통적인 기독교 안에서 이 문제를 다루려는 사람들은 대체로 오리게네스와 비슷한 결론을 취한다. 물론 아예 성경을 신화적 이야기로만 보는 사람들이야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겠지만, 어쨌든 이를 ‘거룩한 문서’로 읽어내려는 사람들은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결론이 같다고 해서 다 같은 내용이라고 할 수는 없다. 구약 전체를 알레고리로 보려는 시도는 아무리 생각해도 좀 지나치니까. 그리고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 신학은 알렉산드리아 학파대신 안티오크 학파가 개척한 길을 따르는 게 기본이다. 본문의 문법적, 역사적 해석을 기초로 하는 것. 이 책의 저자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성경에 묘사된 “하나님의 폭력성‘이 기본적으로 그 시대의 산물임을 인정한다. 그리고 하나님 또한 어쩔 수 없이 그런 방식으로 자기계시를 하실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당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자신을 드러내시지 않았다면, 사람들과의 소통 자체가 불가능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저자는 성경에 묘사된 “하나님의 폭력성”에 관한 본문들 중 상당수는 그 본래의 의미가 오해되고 있다는 점도 지적한다. 예컨대 가나안 주민들을 진멸하라는 명령은, 곧바로 그 땅의 백성들과 관계를 맺을 때 주의해야 할 점에 관한 경고가 따라 나오는 것으로 보아, 문자적으로 전멸시키라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식이다. 일리가 있는 해석이다.


저자는 성경 전체를 성큼성큼 걸어가면서, 하나님이 어떻게 인간 역사에 개입하시고, 그 과정에서 당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힘, 폭력)을 보여주셨는지를 따라간다. 그러나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의 방식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은 결국 백성들의 배신과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마침내 하나님은 그들과 거기를 두신 채, 새로운 방식으로 그분의 계획을 실현해 나가기로 하신다.


이 내용을 신학적으로 보면 일종의 과정신학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뭐 성경 전체의 내러티브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주제의 흐름이기도 하니까, 너무 성급하게 배척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사실 우리(보수적 학자들이나 진보적 학자나 마찬가지로)는 하나님에 대해서 여전히 많은 것을 모른다. 그분을 둘러싼 신비의 영역은 우리의 능력으로 파헤치는 게 불가능하다고 봐야하지 않겠는가. 저자도 이 책에서 어떤 결론을 내려 하는 대신, 하나의 논의를 제안할 뿐이고.


그리고 이 문제(“하나님의 폭력성”)가 초래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실천적인, 그리고 더 크게 와 닿는 문제는, “우리의 폭력성”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인간들의 잔혹한 행동들,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성경구절을 가져다 대는 꼴들이 진짜 더 문제가 아니겠는가. 그건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며, 결코 하나님의 허락을 받을 수 없는 행태다. 그리스도인은 이 폭력이 가득한 세계에서, 어떻게 평화를 실현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실천해 나가야 하는 근본적인 사명을 지니고 있다.



생각보다 두툼한 책이었다(400페이지 정도가 된다). 어떻게 보면 똑부러지는 결론을 내지 않고, 마지막에 와서도 서로 다른 입장을 함께 실으려고 하는 태도가 불만족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논쟁이 아닌 대화를 추구한다는 건데, 우리 일상 가운데서 그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책을 다 읽고 나서도, 확실히 이 문제는 쉽게 풀리지 않는다. 결론을 내놓고 어떻게든 성경을 그 결론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는 손쉬운(하지만 썩 매끄럽지 않은) 방법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는 결말이다.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진실한 자세로 성경을 읽어나가면서 서로 다른 견해들과 지속적인 대화를 해 나가는 것 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또 뭐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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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미로 책의 지도 - 텍스트 숲에서 길을 잃은 당신에게
송인규 지음 / 비아토르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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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는 사람마다 책을 권하곤 하지만, 꽤 높은 확률로 듣게 되는 대답이 있다. “책은 읽고 싶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잘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이유를 들어보면 ‘시간이 없다’거나, ‘바쁘다’는 이유가 한 쪽에 있고, 다른 한 쪽에는 ‘어떤 책을 봐야할지 모르겠다’, ‘나에게 맞는 책이 필요하다’ 같은 이유가 있다.


책을 읽을 절대적인 시간이 없다면, 정말로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다. 짧은 시간에 간단히 읽을 수 있는, 좀 더 쉽고 흥미로우면서 얇은 책을 추천해 주는 게 한 가지 방법은 될 수 있겠지만, 숨 쉴 시간도 부족할 정도로 바쁘게 살아야만 하는 사람의 눈에는 그런 것도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리고 이건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그저 피하려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책을 읽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단지 독서의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할 말은 조금 더 많아진다. 내가 어떻게 책을 읽어왔는지, 책을 고를 때는 어떻게 하는지, 책을 읽는 중에는, 책을 읽고 난 후에는 또 어떻게 하는지 등등. C. S. 루이스가 말했던 것처럼, 나와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순간 우리는 곧 친구가 되니까.



아마 이 책의 저자가 꼭 그랬던 것 같다. 오랫동안 많은 책을 읽어온 저자는, 이 책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독서의 길을 알려주려고 애를 쓴다. 책의 제목도 ‘책의 미로 책의 지도’다.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책의 미로’에 해당하는 전반부는 저자 자신의 독서 이력과 독서방식 등을 소개하고, ‘책의 지도’에 해당하는 후반부는 특정한 주제에 관해 알고 싶을 때 읽어볼 만한 책들의 목록과 간략한 소개를 제시한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히 ‘독서에 관한’ 책만은 아니다. 저자는 기독교인이고, 신학대에서 강의를 하며, 한동안 교회에서 설교를 하기도 했었다. 저자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책을 쓰고 있고, 그의 독서 안내에도 자연스럽게 그의 신앙이 묻어난다. 특히 책의 후반부에 저자가 추천하는 책들은 하나같이 소위 ‘크리스천 마인드’에 기초한 기독교 세계관, 영성, 신앙과 성경 등에 관한 내용들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책의 장르가 다르더라도 어느 정도 공통점을 갖게 되는 것 같다. 하물며 신앙적으로 같은 사람일 경우 좋아하는 책이나 관심사가 상당부분 겹칠 테니 더더욱 만남이 즐거울 거고. 책 속에서 저자가 언급하거나 소개하는 책 가운데 내가 읽었던 책들이 보이면 괜히 반갑기도 했다.


물론 다른 점도 있다. 책을 읽는 도중 기억할 만한 구절들을 체크하는 방식이나(밑줄이라니!!), 분류하는 방식 같은 것들에는 차이가 있다. 하긴 분류 건은 나보다 훨씬 많은 책들을 보유하고 있는 저자이니 다를 수밖에 없을 것 같기도 하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독서의 중요성(성경책 이외의 책들을 말한다)을 강조하는 부분에 크게 공감이 된다. 사실 그 내용은 너무나 쉽고 당연한 것들인데, 그렇게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여기는 사람이 많다는 게 함정..


완전 초심자에게 추천하기는 어렵겠지만, 어느 정도 독서의 맛을 경험하고 좀 더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독서를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권해줄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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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 삶으로의 초대 - 하나님나라를 향한 여행 안내
김형국 지음 / 비아토르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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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기초적인 사항을 소개하기 위해 쓰인 책이다총 일곱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일종의 예비적 고찰인 1장에서는 사람들이 기독교를 믿게 되는 세 가지 방식인 생활양식경험탐구를 소개하고어느 방향으로 접근했든 결국 세 가지 요소가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고 말한다또 기독교를 믿는 데 장애가 될 수 있는 몇 가지 요소들을 검토한다.


두 번째 장에서는 유신론과 무신론을 대조하면서 유신론의기독교의 우월함을 제시하고어떻게 하면 행복을 얻을 수 있는지(3), 하나님의 창조와 변질(4), 죄가 일으킨 문제와 영향(5),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6), 결단의 촉구(7등이 이어진다.


 

기본적으로 창조타락구속이라는 기독교 세계관의 틀을 그대로 가져가고 있다초심자를 대상으로 했기에 행복이라는 주제를 초반에 배치한 점도 인상적이다최고의 행복을 원하지만 얻을 수 없는 상황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흐름으로 자연스럽게 내용이 전개된다.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점은 초반부, 2장이었다저자는 유신론과 무신론이 똑같이 확신의 문제임을 옳게 지적하면서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넘어간다물론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이 주제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훨씬 긴 지면이 필요할 것이고 그걸 이 초보적인 안내서에 싣는 것이 무리였을 수도 있다그래도 유신론을 그냥 전제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식 대신간략하게라도 설명하고 넘어갔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또 유신론의 다양한 관점들과 기독교의 차이를 단순히 소통으로 축약시킨 것도 아쉽다예컨대 뉴에이지는 신적 존재(혹은 느낌)과의 소통에 대단히 집중한다신이 인간 가운데 들어와서 메시지를 전한다는 콘셉트는 불교나 힌두교에서도 자주 발견되고이들 종교의 다양한 베리에이션을 생각해 보면 그들이 전부 어떤 자력구원을 전제하고 있다고 볼 수도 없다요컨대 제 유신론들 중에서 기독교의 독특성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몇 가지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초심자들에게 기독교를 설명하는 데는 괜찮은 책이다어차피 이런 책을 보는 사람들이란믿을지 말지를 두고 고민하는 사람보다는 믿기로 결심한 사람들인 경우가 많으니까그리고 이쪽이라면 위에서 말했던 미비점도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고.


소위 선물용으로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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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자살, 그리고 우리 - 한국사회 자살의 경향을 말한다
조성돈.정재영 지음 / 예영커뮤니케이션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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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세계적으로도 높다이건 통계적으로 나온 사실이니까 뭐라 덧붙일 만한 게 없다그러면 왜 우리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하는 걸까이 부분은 다양한 사회학적 조사를 통해 이유를 밝혀내야 하는 영역이다요새는 이런저런 조사들이 진행되어서 어느 정도 과학적 원인이 밝혀졌지만여전히 이 문제에 관해서 우물쭈물하고 있는 영역이 있다바로 교회다.


자살에 대한 교회의 관점은 그것이 라는 것이다어째서 죄일까생명을 해치는 것은 성경에 금지되어 있는데그것이 자신의 생명이라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일반론적인 설명으로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말해주거나 설명하지 않는 대답이다물론 원칙이라는 게 어느 정도 일반론이라는 성격을 띨 수밖에 없긴 하지만문제는 여기에 근거 없는 온갖 설명들이 덧붙여지는 경우다.


자살자에게는 구원이 없을까자살한 사람은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기에 지옥에 가는 걸까뭐 이런 대답들인데명백히 성경적 근거가 부족한 속설들이다애초에 자살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가 부족한 탓에 생기는 억측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자살이라는 주제에 대한 사화과학적그리고 신학적 접근을 위한 예비조사의 성격을 띠고 있다비록 나온 지 10년도 넘은 책이지만이에 관한 연구는 그다지 더 발전한 것 같지 않다여전히 이 책을 읽을 만하다는 의미.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자살에 대한 기초적인 사회학적 연구 결과를 정리해 놓은 것이고, 2부는 기독교적 입장을 정리하는 내용그리고 3부는 결론이자 부록 격의 몇 가지 자료들을 모아놓았다한국교회가 자살이라는 주제에 대해 피하지 말고 좀 더 진지하게 말해야 한다는 것그리고 이를 위한 몇 가지 조언들이다.


1부의 내용이야 이보다 더 좋은 책을 찾아볼 수도 있을 거고이 책의 의미는 역시 2부다공동 저자들은 성경에서 자살을 바라보는 관점이 생각만큼 분명하거나 한 쪽 방향으로만(자살은 죄이며자살한 사람은 저주혹은 지옥행이라는 식의치우쳐 있지 않다고 정리한다하지만 정작 교회의 태도는 이보다 강경한 경우가 많다.


책은 교인들을 대상으로 한 통계조사를 시도하는데교인들 중 자살 충동을 느끼는 비율그 대응 방식 등이 주요 내용이다흥미로운 내용은 자살의 신학적 의미에 관해 단호한 입장을 보이는 교회 속에서자살자들에 대한 대응 부분에서는 유화적인 입장을 갖고 있는 비율이 높다는 점이다자살자들에 대한 장례를 교회에서 맡는 일에 관해 약 70%가 찬성하고자살을 정신적 질병으로 보려는 입장도 85%가 넘는다이쯤 되면 교인들보다 목회자들의 의식이 더 뒤떨어지는가 싶기도 하고.


자살 예방을 위해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을 몇 가지 제안하는 부분도 짧지만 귀담아 들을 만하다특히 개인적인 심방과 소그룹 활동이 효과적이라는 점은교회의 본질적인 사역이 이 부분에도 통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물론 그 자리에서 어떤 메시지가 전달되느냐도 중요한 부분이겠지만.

 


사실 이런 저런 내용들을 잔뜩 담고 있지만, ‘종합이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아쉽다내용들 사이의 긴밀한 연계가 좀 부족한 느낌인데(이건 이후 정재영 교수가 참여한 한국교회탐사센터에서 내고 있는 책들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리뷰에서 정리라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이기도 하다일종의 잡지를 보는 느낌도 준다하지만 한 번 읽어볼 만한 내용인 건 맞으니까특히 실제로 설문을 통한 통계조사를 시도한 면이 인상적이다.

 

교회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일에 대해서 지나치게 단언하려는 버릇을 좀 고쳐야 한다물론 교리라는 것이 어느 정도 독단적일 수밖에 없다는 면은 인정하지만성경의 제한된 설명을 기초로 삶의 일반적인 분야에 관한 새로운 교리를 구원의 문제와 연결시키는 일은 특히 조심해야 한다기본적으로 성경은 믿음과 구원에 관한 내용이지자살자가 천국에 갈 수 있는지와 같은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기 위해 쓰인 책이 아니다.


잘 모르는 건 모른다고 대답하되조심스럽게 입장을 밝히고나아가 현재 문제가 되는 상황을 바꾸기 위한 일에 (좀 따뜻하게!)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나서는 것그게 교회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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