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말 타고 찾아온 셰인, 나는 주근깨 소년이 되어 가슴 졸인다. 셰인은 악당들 마음까지 處置하고 갔지만 나는 畵面 밖에 남아 있어 問題다. 혹시 셰인이 겨냥했던 건 未練이 아니었을까. 여전히 未解決로 서성이는 세상사. 총은 正確했지만 자신을 쏘았는지 모른다.

 

어느 새 나는 주근깨 노인이 되었다. 셰인이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靑春이 말 타고 사라진 일요일 오후, 사살된 세월 彈皮 희망. 낡은 字幕 너머 기다릴 때 다가온 豫感. 門 열리자 “헤이!”하며 등 뒤까지 관통하는 싸늘한 日沒.

 

 

 

*세인: 1953년도 제작된 정통 서부극 제목이다. 셰인이라는 나그네가 한 마을에 나타나 악당들을 결투로써 해치우고서 떠나간다는 스토리이다. 이 때 그를 따르는 죠이(주근깨 소년)가 숨어서, 술집에서의 마지막 결투 장면을 지켜보는 부분이 있다. 몇 년에 한 번씩 주말 명화로 방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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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래 정치현실에 관심이 없었다. 대학 다닐 때 교련 반대 데모로 캠퍼스 전체가 들썩거려도 무심하게 문학회지 발간에 매달려 지낼 정도였다. 그랬던 내가 그 가을, 정국에 대한 두려운 직감까지 하게 된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외로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난생처음인 객지생활이었다. 병역까지 동사무소 업무 보조로 때웠으니 단 한 번도 고향을 떠나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동해안 작은 읍으로 네 시간이나 시외버스 타고 와서 시작한 교사생활. 고향은 험준한 태백산맥 너머 아득한 곳에 있었다. 교직원 삼십 명 내외의 학교에는 어울릴 만한 또래도 없었다. 그럴 만 했다. 내 또래라면 삼 년 만기의 군대에 있을 테니, 일 년 남짓 방위 복무를 마치고 학교에 첫 발령 받은 나와 조우될 수가 없었다.

퇴근하면 돌아다닐 데도 마땅치 않은 시골 읍이었다. 결국 나는 하숙방에 틀어박혀 밤늦게까지 텔레비전이나 보며 외로움을 달래다가 정국이 심각하다고 직감하게 된 게 아닐까? 내 작은 하숙방의 십사인치 텔레비전은 태백산맥 너머 넓은 세상을 그리워하는 촉수나 다름없었다. 그 촉수에 뭔가 섬뜩한 게 감촉되었다. 분명, 방영되는 음울한 흑백 화면 뒤에서 무언가 전개되고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 어떻게 전개될지는 뚜렷하게 짐작되진 않았다. 믿었던 그분마저 별 도움이 되지 못하면서 나는 뒤늦게, 교무실에 굴러다니는 신문들을 모아 유심히 읽기 시작했다. 전에는 심심풀이땅콩이라 여기고 건성으로 보던 것들이었다. 여전히 흥밋거리 위주로 편집된 기사들이지만 텔레비전에서 직감되는 ‘무엇’의 보완 자료들로서는 충분하였다.

태풍 앞에 선, 위기의 난국인 게 분명했다. 삼 년 전 ‘10월 유신’ 선포 때부터 수시로 난국이란 표현이 등장했지만 이번에는 그 느낌이 달랐다. 교무실에는 신문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사람이 둘로 늘어난 셈이었다. 비는 시간마다 그분 혼자 신문들을 뚫어지게 들여다보더니 이제는 나까지 합류한 것이다. 그분이 며칠 전 교정의 벤치에서 일어나며 일러준 말이 떠올라, 정치면의 해설을 읽다가 교감선생 쪽을 돌려다보았다.

교감선생이 황급하게 눈길을 거두어 낮잠 자는 모습으로 돌아갔다.

전통적으로 야당성이 강한 모 신문에서는 사설을 통해‘자칫 국가 위기사태로 진전될 수도 있는 현 시국에 대하여 당국은 보다 근원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며 심각한 우려까지 표명하고 있었다. 솔직히, 그런 식의 사설은 물에 물 탄 듯 아무 것도 아닌 잡문이었다. ‘…… 될 수도 있는’‘…… 근원적인 해결책’등은 뭔가 대단한 것을 말하는 듯싶지만 실상 딱 부러지게 내세우는 것 없이, 긴급조치 위반이나 모면하는 말장난이었다. 다만‘국가 위기사태’라는 표현은 제시하는 바가 있었다. 그분이 말한 ‘4․19와 비슷하다는 마산 쪽 사태’를 암시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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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후회한다.

그 날 청소검사 때 걔의 뒤에 있던 칠판이 청소가 안 되어 있다고, 뭣 하러 말했나 싶다. 판서를 그냥 내버려둔다 해도, 다음 날 아침이면 주번 애가 1교시 수업 전에 지우개로 스윽스윽 닦아버렸을 텐데……. 힘도 별로 들지 않을뿐더러 제일 간단한 청소가 칠판 청소인데 그걸 뭣 하러 지적했는지.

내가 부질없는 짓을 감행한 까닭은, 걔와 실장에 대해 순간적으로 분노가 치민 때문이 아닐까? 정작 자기 청소 구역도 모르면서 마치 담임처럼 교단에 서서 위엄을 떨던 걔와, 그런 걔의 힘에 기대어 청소검사를 실시하고는 걔가 ‘잘했다.’고 총평하자 수줍은 얼굴로 미소 짓던 실장에 대해 나도 모르게 분노했던 게다. 그래서 결코 잘한 청소가 아니라는 것을 일러줌으로써 두 사람을 무색하게 만들고 싶었던 게다.

지난 4월초에 내 담당이었던 양동이 물 버리기가 걔를 써클에 가입케 하고 급기야는 한 써클의 데빵으로 이르는 출발점이 된 것처럼, 결국 내가 그 날 칠판 청소가 안 되어 있다고 지적한 게 ‘비극적 사건’의 출발점이 된 셈이다.

‘비극적 사건’은 이러했다.

조회시간이었다. 주번이 교무실로 조회 전달사항을 받으러 간 직후, 전 날 칠판 청소도 안 하고 그냥 간 애가 교실로 들어왔다. 뒤 출입구로 조용히 등교한 것이다. 엎드려 있던 걔가 뒤돌아보며 공책에 적어놓은 그 애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그 애가 발걸음을 멈추며 삭막한 어조로 반문했다.

“난데 왜?”

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3학년 선배들에게 책걸상을 쳐들 때처럼 목덜미가 벌겋게 달아오르며 으르렁거렸다.

“난데 왜 부르냐고? 이 개새끼야, 너 왜 칠판 청소도 안 하고 갔어?”

둘의 말소리밖에 다른 소리는 교실에 존재하지 않았다. 모두 숨죽이고 지켜보았다. 키 작은 애는 과연 만만치 않았다.

“그러는 너는 청소 하니?”

“이런 씨발 놈이…… 씨발 놈아, 나는 운동부야. 유도특기자로 입학한 것 몰라?”

“운동부 연습은 방과 후에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래, 7교시 전 청소시간이 방과 후냐?”

걔가 대꾸를 못했다. 고장이 나 멈춰진 영화 장면의 주인공처럼 동작도 정지됐다. 잠시 후 신음소리 같은 한숨을 내쉬고 나서 천천히 뇌까렸다.

“이런 씨발 놈은…… 한 번…… 혼나야 돼.”

그러면서 곰처럼 큰 걔의 두 손이 마치 살쾡이처럼 작은 애의 어깨를 움켜잡았는데, 순간 무엇이 번쩍이며 ‘팍’ 찔리는 소리가 났다. 걔는 잡아 메치려 했던 두 손을 들며 ‘어허?’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어느 새 작은 애 손에 피 묻은 잭나이프가 쥐어있었다.

그길로 출입문을 ‘콰당!’ 열어젖히고 달아나는 작은 애를, 걔가 왼쪽 가슴을 움켜쥔 채 뒤쫓았다. 요란한 발걸음 소리들을 따라 우리도 복도로 나왔다. 복도 바닥에는 핏방울들이 투두둑 흩뿌려져 있었다.

작은 애가 어느 새 교문 밖으로 달아나, 사라졌다. 걔가 가슴을 움켜쥔 모습으로 비틀비틀 쫓다가 멈추어서더니 이번에는 느리게 돌아가는 영화 장면처럼 천천히 고꾸라졌다.

그 날은 비가 오지 않았다. 모처럼 화창한 날씨였다. 우리가 1층으로 내려가 고꾸라져 있는 걔한테 달려갔을 때 걔 몸 주위로 번지는 검붉은 핏물에 아침 햇빛이 반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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걔가 교실로 귀환하던 날은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그 탓에 교실이 어둑해져, 자기 책상에 상체를 엎드리고 앉은 걔를 나는 뒤늦게 발견했다. ‘그간 잘 지냈니?’라고 묻기도 그렇고 해서 이렇게 간단히 물었다.

“끝났니?”

걔는 엎드린 채 고개만 끄덕였다. 솔직히, 근신을 받던 얘기라도 듣고 싶었으나 당사자가 그러니 어쩔 수 없었다. 실장도 다가와 ‘별 일 없었니?’하며 말을 걸었으나 걔는 고개만 끄덕거렸다. 예전처럼, 공책 하나 책상 위에 놓고 엎드려 있는 모습으로 조용히 귀환한 것이다.

담임선생이 걔를 교실에서 발견한 것은 사흘 뒤 윤리시간이었다. 담임선생은 걔를 보고 놀라서 물었다.

“너, 언제 들어왔니?”

그 날부터 쉬는 시간마다 인상이 안 좋아 보이는 2학년, 3학년 선배들이 하나 둘 걔를 찾아와 포옹하고 돌아갔다. 그럴 때만 걔는 자기 책상 옆에 바로 서서 실눈으로 잔잔하게 웃으며 포옹에 응했다.

나는 깨달았다. 걔는 이제 한 써클의 데빵이었다. 먼저 데빵이 권고전학을 가면서 걔가 승계한 것이다.

그래서 써클 회원들이 새 데빵의 징계 마침을 축하하고자 다녀가는 모습이었다. 자기들도 징계 받는 중일 텐데 그렇듯 짬을 내어 ‘알현’하고 있었다. 걔는 1학년생임에도 전교를 제압할 어둠의 제왕으로 등극한 것이다. 그럴 만했다. 대단한 체구, 험상궂은 인상, 유도 2단의 실력, 깡다구에다가 ‘근신’일망정 데빵으로서 필수적인 처벌 전력까지 갖추었으니.

장마로 이어지려는지 비가 계속 구질구질 내리는데 어둑한 교실의 뒤편에서 쉬는 시간마다 다져지던 음산한 우의(友誼)들.

실내에 습기가 차 눅눅해진 데다가 갖가지 쓰레기들이 발에 걸릴 정도로 바닥에 넘쳐났다. 걔가 쉬는 시간에 한 마디 외쳤다.

“실장!”

복도로 나가려던 실장이 놀란 얼굴로 달려왔다. 걔가 이어서 말했다.

“요새 청소들 안 하냐? 왜 이리 바닥에 쓰레기 천지냐?”

사실 그런 말은 담임선생이나 할 말이다. 그러나 실장은 답했다.

“애들이 내 말을 안 듣거든.”

“그래? 그럼 오늘 종례하자.”

“알았어.”

실장은 차마 걔가 소집한 종례라는 걸 밝히지 않고 마치 담임선생이 전하는 것처럼 “오늘 종례는 절대 빠져서는 안 된다!”고 쉬는 시간마다 외치는 한편, 칠판 구석에도 ‘오늘 종례 있음’이라 적어 놓았다.

마침내 우리는 오랜만에 종례시간을 가졌다. 전원, 아니 한 명만 빠지고 다 참석했다. 오랜만의 종례라 긴장한 표정들로 앉아 있는 우리를 보며 실장이 비장한 어조로 말했다.

“요즈음 우리 반이 너무 엉망이라서 내가 종례시간을 갖고자 했다. 학급비 얼마 안 되는 것도 제대로 걷히지 않고 교실청소도 개판이라 쓰레기 천지이고……참으로 이런 문제들을 한 번 의논해야 하지 않냐?”

그쯤에서 걔가 “실장, 나 좀 한 마디!”하며 발언권을 얻더니 공식적으로 으르렁거렸다.

“너희들, 실장 말 잘 들어! 말 안 듣는 새끼는 나한테 혼날 각오해! ……그리고 이런 종례 때 그냥 무단으로 불참한 한 새끼는 누구냐? 그 새끼, 내일 각오하라 그래.”

그러고는 자기자리에 앉았다. 너무 세게 앉았는지 의자에서 삐걱 소리까지 났다. 얼어붙은 교실 분위기라 참았지만 사실 배꼽 잡고 웃을 일이었다. 바로 걔 자신이 종례 때 무단 불참을 일삼지 않았나?

우리는 실장의 종례 의도를 눈치 챘다. 실장은 한 번은 짚고 가려고 벼르던 것들을 ‘걔’라는 막강한 힘에 기대어 터뜨리고 있었다.

“독일어 선생님 문제도 그렇다. 그 선생님이 우리 반에 수업 들어오기가 무섭다는 거야. 나를 따로 불러서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 아무리 나이 어린 처녀선생이라도 그렇지, 우리가 너무 말들 안 듣고 놀리는 게 아니니? 앞으로는 ‘쎅스 하다가 독일어로 무엇입니까?’하는 그런 이상한 질문도 삼가고, 책을 읽으라 지시하면 딴 짓 하면서 시간을 끌지 말고 틀리더라도 읽고 그러자고…….”

그 외에도, 평소에 느낀 서너 가지 문제점을 격하게 발언하더니 마지막으로 차분한 어조로 바꿔 말했다.

“오늘 교실청소는 다시 해야겠다. 너무 지저분해서 안 되겠어.”

마치 담임선생이라도 된 듯 그러는 데에 경악한 교실청소 담당 애들. 웅성거리며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걔가 다시 으르렁거리며 진압했다.

“까라면 까, 씨발 놈들아!”

복도청소와 특별구역(학교에서 학급 별로 배정한 실외구역으로서, 우리 반은 강당 앞 정원이다.) 청소 애들은 먼저 귀가하고 교실청소 담당 애들만 남아 다시 청소가 시작되었다.

나는 교실청소 중 ‘막대걸레 닦기’였다. ‘책걸상 나르기’ 애들이 책걸상을 교실 앞 쪽으로 옮김과 동시에 ‘빗자루 쓸기’ 애들이 바닥의 쓰레기들을 교실 뒤쪽으로 쓸어나가고, 그 다음에 ‘막대걸레 닦기’들이 교실바닥을 물걸레질하는 것이다.

막대걸레 다섯 자루의 걸레들이 모두 새까매지고…… 빗자루로 쓸어 모은 쓰레기들의 양도 엄청났다. ‘쓰레기통 비우기’두 명이 쓰레기들을 강당 뒤에 있는 소각장에 갖다 버리느라 네 번이나 쓰레기통을 들고 그 먼 길을 다녀야 했다. ‘책걸상 나르기’애들이 책걸상들을 원 위치로 다시 날라 놓느라 바쁠 때, 막대걸레를 적시느라 먹물처럼 된 양동이 물을 내다버리려고 ‘양동이’가 나섰다. 그 때 걔가 외쳤다.

“그거 내가 할게.”

교단에 의자 놓고 앉아서 청소상황을 지켜보느라 심심했던 게 아닐까? 걔는 땟물이 가득한 양동이를 한 손으로 가벼이 들긴 했는데 ‘복도로 해서 1층까지 내려가 하수구 구멍에 쏟아버리고 와야 하는 지겨운 일’이란 생각이 뒤늦게 들었는지 잠시 주춤거렸다.

‘막대걸레 닦기’‘책걸상 나르기’ ‘빗자루 쓸기’등 교실청소에 속하는 모든 애들이 걔의 다음 행동을 주시했다.

걔는 이윽고, 창가 쪽으로 걸었다. 하지만 전과 다르게 3학년 선배들이 없는 순간을 살핀 뒤 냅다 창밖으로 양동이 물을 쏟아버렸다.

“이러면 빠르잖아?”

교실청소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정말 오랜만에 교실청소가 잘 이뤄졌다. 걔가 교단에 의자 하나 놓고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교실청소가 잘 이뤄지다니……. 오랜만에 실장도 제 역할을 수행하였다. 형식적이긴 하지만 담당 별로 검사를 한 뒤 귀가시켰다.

오후 늦도록 비 내리는 구질구질한 날씨였지만 교실에는 새벽처럼 신선한 공기가 들어찬 듯싶었다. 바닥에 작은 휴지 하나 떨어진 게 없을뿐더러 물걸레로 잘 닦은 덕에 기름칠한 듯 빛났다. 실장과 함께 교단에 서 있던 걔가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총평했다.

“잘했는데!”

실장은 걔 앞에서 수줍은 낯으로 미소 지었다. 그 때 나는 보았다, 청소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한 곳을. 실장과 걔가 서 있는 바로 뒤 칠판이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마지막 수업의 판서가 허연 백묵 자국 그대로 남아 있을 줄이야.

“칠판은 하나도 안 되어 있는데?”

내 말에 걔가 뒤돌아보더니 얼굴이 벌겋게 되어 으르렁거렸다.

“실장, 어떤 씹새끼가 안 한 거야?!”

실장이 급히 ‘청소구역 별 배정표’를 보고 답했다.

“아하, 아까 종례를 받지 않고 그냥 간 애야. 그러니까 이렇게 다시 청소하는 줄도 몰랐겠지.”

“그래? 그 개새끼, 이래저래 손 좀 봐 줘야겠구먼. 어디, 이름 좀 보자고. 내가 실장 대신 혼내줄 거니까. ……어, 이런 새끼가 우리 반에 있었어? 처음 보는 이름 같은데?”

“우리 반 애 이름, 맞아. 얘는 창가 쪽 분단 맨 앞에 앉지.”

실장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일러주었다.

“알았어, 알았어.”

걔가 오랜만에 제대로 몸의 힘을 쓸 기회를 맞았다는 듯, 어깨를 두어 번 으쓱거리며 교단에서 내려섰다. 그 때에 맞춰 주번이 걔와 실장을 두루 보며 물었다.

“이제 교실 문을 닫아도 되니?”

실장은 말로써 허락했고 걔는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허락했다. 마치 둘 다 담임 같았다.

다른 때와 다르게 주번이 교실 앞뒷문을 잠그는 것은 물론, 열린 유리창까지 찾아서 닫는 것을 보며…… 나는 실장과 걔의 발걸음에 맞춰 셋이 함께 복도를 걸었다. 나와 실장은 책가방을 들었지만 걔는 빈손이었다. 잠시 같이 가는 길이지만 분위기가 무거워 내가 웃길 목적으로 걔한테 말을 걸었다.

“너, 책가방 어디에다 두었냐?”

걔가 실눈으로 웃으면서 답했다.

“나는 공책 한 권이면 돼.”

우리 셋은 ‘와하하!’ 웃었다. 어둑한 복도에 웃음소리들이 울려 펴졌다. 1층으로 내려가서 밖으로 나서는 출입구에 섰을 때 걔가 어이없다는 듯, 그러나 자랑스러움이 묻어 있는 음성으로 말했다.

“내가 형들한테 오늘은 먼저 가라고 했는데도 저렇게 교문에서 기다리고 있잖아? 이러니 내가 공부할 시간이 어디 있겠어?”

교문 옆에 같은 써클 회원으로 보이는 선배 서너 명이 서 있었다. 우산 하나를 펼치고 몰려 있어서 시커먼 덩어리 같았다. 걔가 달려가자, 우산 바로 아래로 ‘모신’ 뒤 자기들은 부분적으로 비를 맞으며 함께 사라져갔다. 지켜보던 실장이 걱정스런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오늘 청소도 안 하고 간 애가, 키는 작지만 만만치 않거든. 그 애가 순순히 매 맞을 것 같지 않아 걱정이야. 그 애가 역전 동네에 사는데 거기 깡패들과 친하다는 말이 있어. 우리 반 애들이 그걸 잘 모르지. 왜, 언젠가 누군가 담임 말투를 흉내 내어 담임이 열 받은 적 있었잖아? 바로 그 애야. 그 애가 ‘오토바이 소리 아닌교’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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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가을, 흑백텔레비전이 분수에 맞지 않는 이상한 짓을 시작했다.  

정시 뉴스 직전마다 뜨던‘대통령 말씀’이란 장면부터 이상했다. 무궁화무늬로 대통령 말씀을 에워쌌지만 무궁화의 고운 빛깔이 나타나지 못하는 까닭에, 질 낮은 흑백 전단처럼 보였다. 그런 장면으로 대통령 말씀이 게시되는 거라면 차라리 안 하는 게 나을 듯싶었다.

프로그램이 바뀔 때마다 여 가수가 등장해서‘조국찬가’를 부르는 장면도 이상했다. 펄럭이는 태극기를 배경으로 두 팔까지 흔들며 힘차게 노래 부르지만 빨강 파랑이 아닌 흑백 태극이라, 왠지 음울해 보였다.

심상치 않은 정국이라고 나는 직감했다. 텔레비전의 이상한 장면들이, 흔들리는 민심을 회유해 보려는 당국의 안간힘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직장에 배달된 신문들에도 불안한 정국임을 보여주는 사건들이 보도되고는 있었다. 여공들이 야당 당사로 자리를 옮겨 농성하다가 경찰에 진압되는 과정에서 사상자가 났다던가, 강경 발언을 한 야당 총재를 국회에서 제명시켰다던가 하는 사건 보도가 그랬다. 당장 큰일이라도 벌어질 것처럼 큰 제호들로 요란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기사 내용이 축소되면서 다른 흥미로운 큰 사건으로 바뀔 게 틀림없었다. 애당초 신문은 심심풀이 땅콩장사가 아니던가?

신문 보도를 폄하하는 입장이라서, 나는 정국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텔레비전에서‘대통령 말씀’이나‘조국찬가’같은, 색깔이 나와야 되는 장면들을 흑백 장면들로 급조해 방영하니 그 느낌은 섬뜩했다. 분명 정국이 심상치 않았다. 감당 못할 큰일이 태풍처럼 음산하게 코앞에 다가왔는데…… 과연 다른 선배 교사들도 나와 같은 느낌인지 궁금했다.

출근해서 교무실 분위기를 살폈다.

별 일 없이 평온했다.

여전히 교감선생은 회전의자에 파묻혀 졸고 앉았고, 그 앞의 과장선생들은 그 모습을 힐끔힐끔 뒤돌아보며 묘한 눈빛으로 웃다가 수업에 들어가고 있었다. 새벽까지 관사에서 교감선생과 내기화투를 치다가 출근들 한 모양이었다.

수업이 없어 남아 있는 평교사들도 바둑 두거나, 줄판에 등사원지를 대고 뭘 쓰거나, 교과서에 참고서의 내용을 옮겨 적거나, 하고 있었다. 전과 다를 바 없는 평온한 모습들이었다. 무언가 섬뜩하게 전개되는 정국이라고 직감한, 걱정스런 모습들이 아니었다. 하긴, 나는 그들을 진작부터 ‘나라가 돌아가는 일을 걱정할 위인들이 아니다.’고 속으로 판단내린 적도 있었다.

한 분, 김 선생님만은 예외였다. 수학교사인 그분은 항상 반정부적인 태도를 갖고 있어서 그런 면에서 예외적인 존재였다. 말 한 마디 잘못했다가는 소식도 없이 모 기관에 끌려간다는 세상이므로 그분이 드러내놓고 반정부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간간이 농담처럼 내뱉는 말씀은 그런 성향의 소유자임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 박정희 대통령이 지방을 순시하다가 ‘농촌에서 헌신하는 새마을 지도자들을 친히 접견하여 격려하는 뉴스’가 나오면 그분은 퉁명스레 이렇게 내뱉었다.

“아니, 대통령께서 그렇게 할 일이 없는 거야? 별 볼 일 없이 농사짓는 사람들까지 불러다가 칭찬해주고 그럴 정도로 말이야.”

크지는 않으나 누구나 들을 수 있는 카랑카랑한 목소리였다. 졸고 있던 교감선생은 그럴 때마다 깨어 기겁한 어조로 ‘허어, 김 선생! 그 무슨 오해받을 말씀을!’하는 경고를 잊지 않았다. 졸다가도 교사의 위험한 발언에 즉각 대처하는 교감선생의 능력에 나는 놀랄 뿐이었다. 내가 어디서 듣기에는, 교감선생이 6․25동란 때 북파 특수공작원으로 활약했다는데……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었다.

김 선생님은 운동장수업을 마치고 들어오는 교련선생한테 한 마디 하기도 했다.

“아니, 북괴가 당장 쳐들어온다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애들을 총 쌈 가르친답시고 고생시키는 거요?”

교무실 분위기가 일순 싸늘해졌지만 당사자인 교련선생이 헤헤 웃으며 ‘나도 먹고사느라 하는 짓이지 어떡하겠수?’받아넘기면서 모두 함께 폭소를 터뜨리게 되니, 다행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두 분은 먼저 학교에서도 같이 근무했던 사이로 가끔씩 술잔도 나눈다 했다.

어떤 사연으로 그분이 반정부적인 성향을 갖게 되었는지 알 순 없지만 어쨌든 이 심상치 않아 보이는 정국에 대하여 그 의견을 들어볼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고 나는 판단하였다.

그분은 키가 작았다. 내가 수업을 조금 일찍 마치고 복도의 창가에서 기다렸더니, 그분이 당신 키보다 큰 삼각자를 한 손에 든 채 멀리서 다가오고 있었다. 기하 단원에 들어간 듯했다. 지나가는 학생들 키에 가려져 삼각자만 보이다가 서서히 머리가 드러나면서 내 쪽으로 가까이 왔다. 나는 새삼스레 고개를 꾸벅여 인사하며 말을 건넸다.

“선생님, 다음 시간에 수업 있으세요?”

“아니요.”

“그럼, 교정에 있는 벤치로 갈 수 없을까요?”

“아니, 우리 시인께서 웬일이셔?”

그분은 언젠가 내가 회식자리에서 박인환의‘목마와 숙녀’를 암송해 보인 뒤 시인으로 대우해 주고 있었다.

금싸라기처럼 떨어지는 가을햇살 아래, 플라타너스 잎들도 금색으로 바뀌고 있었다. 나는 플라타너스 옆 벤치에 앉자마자 그분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정국이 심상찮지요?”

그분은 대답 없이, 앉은 자세로 자기 두 발을 들어 검은색 양말이 보이는 슬리퍼 앞쪽을 내려다보았다. 읍내 오일장에서 샀을 것 같은 싸구려 플라스틱 슬리퍼였다. 나는 다시 물었다.

“불원간 무슨 큰일이 생기지 않겠어요?”

그분이 다시 두 발을 내렸는데 다리가 짧아 땅에 닿지 않고 공중에 떠 있었다. 그 상태로 내게 답했다.

“하기는, 마산 같은 데에서 벌이는 학생들 데모가 심상치 않다 하더라고. 뉴스에는 제대로 나오지 않지만 내가 어디서 전해 듣기에는 4․19 비슷한 분위기라던데.”

역시 뭔가를 알고 있는 분이었다. 나의 ‘직감’에 대한 기대까지는 충족시키지 않고 기껏 이런 말을 하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던 것이다.

“뭐, 그러다가 줘 터지면 다시 잠잠해지는 게 우리나라 백성들 아니겠수? 어서 교무실로 들어갑시다. 교감선생이 창문으로 우리 둘을 내다보고 있을지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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