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9년 가을, 흑백텔레비전이 분수에 맞지 않는 이상한 짓을 시작했다.
정시 뉴스 직전마다 뜨던‘대통령 말씀’이란 장면부터 이상했다. 무궁화무늬로 대통령 말씀을 에워쌌지만 무궁화의 고운 빛깔이 나타나지 못하는 까닭에, 질 낮은 흑백 전단처럼 보였다. 그런 장면으로 대통령 말씀이 게시되는 거라면 차라리 안 하는 게 나을 듯싶었다.
프로그램이 바뀔 때마다 여 가수가 등장해서‘조국찬가’를 부르는 장면도 이상했다. 펄럭이는 태극기를 배경으로 두 팔까지 흔들며 힘차게 노래 부르지만 빨강 파랑이 아닌 흑백 태극이라, 왠지 음울해 보였다.
심상치 않은 정국이라고 나는 직감했다. 텔레비전의 이상한 장면들이, 흔들리는 민심을 회유해 보려는 당국의 안간힘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직장에 배달된 신문들에도 불안한 정국임을 보여주는 사건들이 보도되고는 있었다. 여공들이 야당 당사로 자리를 옮겨 농성하다가 경찰에 진압되는 과정에서 사상자가 났다던가, 강경 발언을 한 야당 총재를 국회에서 제명시켰다던가 하는 사건 보도가 그랬다. 당장 큰일이라도 벌어질 것처럼 큰 제호들로 요란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기사 내용이 축소되면서 다른 흥미로운 큰 사건으로 바뀔 게 틀림없었다. 애당초 신문은 심심풀이 땅콩장사가 아니던가?
신문 보도를 폄하하는 입장이라서, 나는 정국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텔레비전에서‘대통령 말씀’이나‘조국찬가’같은, 색깔이 나와야 되는 장면들을 흑백 장면들로 급조해 방영하니 그 느낌은 섬뜩했다. 분명 정국이 심상치 않았다. 감당 못할 큰일이 태풍처럼 음산하게 코앞에 다가왔는데…… 과연 다른 선배 교사들도 나와 같은 느낌인지 궁금했다.
출근해서 교무실 분위기를 살폈다.
별 일 없이 평온했다.
여전히 교감선생은 회전의자에 파묻혀 졸고 앉았고, 그 앞의 과장선생들은 그 모습을 힐끔힐끔 뒤돌아보며 묘한 눈빛으로 웃다가 수업에 들어가고 있었다. 새벽까지 관사에서 교감선생과 내기화투를 치다가 출근들 한 모양이었다.
수업이 없어 남아 있는 평교사들도 바둑 두거나, 줄판에 등사원지를 대고 뭘 쓰거나, 교과서에 참고서의 내용을 옮겨 적거나, 하고 있었다. 전과 다를 바 없는 평온한 모습들이었다. 무언가 섬뜩하게 전개되는 정국이라고 직감한, 걱정스런 모습들이 아니었다. 하긴, 나는 그들을 진작부터 ‘나라가 돌아가는 일을 걱정할 위인들이 아니다.’고 속으로 판단내린 적도 있었다.
한 분, 김 선생님만은 예외였다. 수학교사인 그분은 항상 반정부적인 태도를 갖고 있어서 그런 면에서 예외적인 존재였다. 말 한 마디 잘못했다가는 소식도 없이 모 기관에 끌려간다는 세상이므로 그분이 드러내놓고 반정부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간간이 농담처럼 내뱉는 말씀은 그런 성향의 소유자임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 박정희 대통령이 지방을 순시하다가 ‘농촌에서 헌신하는 새마을 지도자들을 친히 접견하여 격려하는 뉴스’가 나오면 그분은 퉁명스레 이렇게 내뱉었다.
“아니, 대통령께서 그렇게 할 일이 없는 거야? 별 볼 일 없이 농사짓는 사람들까지 불러다가 칭찬해주고 그럴 정도로 말이야.”
크지는 않으나 누구나 들을 수 있는 카랑카랑한 목소리였다. 졸고 있던 교감선생은 그럴 때마다 깨어 기겁한 어조로 ‘허어, 김 선생! 그 무슨 오해받을 말씀을!’하는 경고를 잊지 않았다. 졸다가도 교사의 위험한 발언에 즉각 대처하는 교감선생의 능력에 나는 놀랄 뿐이었다. 내가 어디서 듣기에는, 교감선생이 6․25동란 때 북파 특수공작원으로 활약했다는데……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었다.
김 선생님은 운동장수업을 마치고 들어오는 교련선생한테 한 마디 하기도 했다.
“아니, 북괴가 당장 쳐들어온다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애들을 총 쌈 가르친답시고 고생시키는 거요?”
교무실 분위기가 일순 싸늘해졌지만 당사자인 교련선생이 헤헤 웃으며 ‘나도 먹고사느라 하는 짓이지 어떡하겠수?’받아넘기면서 모두 함께 폭소를 터뜨리게 되니, 다행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두 분은 먼저 학교에서도 같이 근무했던 사이로 가끔씩 술잔도 나눈다 했다.
어떤 사연으로 그분이 반정부적인 성향을 갖게 되었는지 알 순 없지만 어쨌든 이 심상치 않아 보이는 정국에 대하여 그 의견을 들어볼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고 나는 판단하였다.
그분은 키가 작았다. 내가 수업을 조금 일찍 마치고 복도의 창가에서 기다렸더니, 그분이 당신 키보다 큰 삼각자를 한 손에 든 채 멀리서 다가오고 있었다. 기하 단원에 들어간 듯했다. 지나가는 학생들 키에 가려져 삼각자만 보이다가 서서히 머리가 드러나면서 내 쪽으로 가까이 왔다. 나는 새삼스레 고개를 꾸벅여 인사하며 말을 건넸다.
“선생님, 다음 시간에 수업 있으세요?”
“아니요.”
“그럼, 교정에 있는 벤치로 갈 수 없을까요?”
“아니, 우리 시인께서 웬일이셔?”
그분은 언젠가 내가 회식자리에서 박인환의‘목마와 숙녀’를 암송해 보인 뒤 시인으로 대우해 주고 있었다.
금싸라기처럼 떨어지는 가을햇살 아래, 플라타너스 잎들도 금색으로 바뀌고 있었다. 나는 플라타너스 옆 벤치에 앉자마자 그분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정국이 심상찮지요?”
그분은 대답 없이, 앉은 자세로 자기 두 발을 들어 검은색 양말이 보이는 슬리퍼 앞쪽을 내려다보았다. 읍내 오일장에서 샀을 것 같은 싸구려 플라스틱 슬리퍼였다. 나는 다시 물었다.
“불원간 무슨 큰일이 생기지 않겠어요?”
그분이 다시 두 발을 내렸는데 다리가 짧아 땅에 닿지 않고 공중에 떠 있었다. 그 상태로 내게 답했다.
“하기는, 마산 같은 데에서 벌이는 학생들 데모가 심상치 않다 하더라고. 뉴스에는 제대로 나오지 않지만 내가 어디서 전해 듣기에는 4․19 비슷한 분위기라던데.”
역시 뭔가를 알고 있는 분이었다. 나의 ‘직감’에 대한 기대까지는 충족시키지 않고 기껏 이런 말을 하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던 것이다.
“뭐, 그러다가 줘 터지면 다시 잠잠해지는 게 우리나라 백성들 아니겠수? 어서 교무실로 들어갑시다. 교감선생이 창문으로 우리 둘을 내다보고 있을지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