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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게 있다.

우리한테 아예생각이란 게 없는 줄로 말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우리한테도 생각이 있다. ‘어떻게 니네 짐승들한테 생각이 있느냐?!’고 힐난한다면 가장 평범한 실례를 들어 보이겠다.

우리가 어린 새끼들을 입으로 물어서 옮기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가? 이런 장면은 당신들이 주변에서 흔하게 목격하는 것이다. 작은 쥐들부터 개들, 커다란 사자들까지 제 새끼를 옮길 때 자기 입으로 살짝 새끼의 목덜미 부분을 물어서 들어 옮긴다. 이런 장면 하나로도 우리에게 분명 생각이 있음을 알 수 있지 않을까?

만일 생각이 없다면 어떻게 이빨들이 날카로운 입으로 어린 새끼들을 살짝 물어 옮기겠는가? 어린 새끼들의 피부는 아주 연해서 조금만 실수해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다. 그러함에도 단 한 번의 작은 상처도 내는 일 없이 우리는 새끼를 살짝 물어 다른 장소로 온전하게 옮긴다. 경우에 따라서는 몇 백 미터 먼 데까지 옮긴다. 이런 일은내 새끼를 잘 옮겨야 한다는 분명한 생각없이는, 단순한 본능만으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이런데도 우리가생각이 없는 짐승인가?

물론 우리의 이런 생각들은 단발(單發)로 끝난다. 그 때 그 때 필요한 상황에서 발현되고 만다. 이런 한계가 우리와 당신네 사람들과의 차이를 만들고 말았다. 당신들의 생각들은 우리와 달리 길게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날씨가 쌀쌀하구나.’하는 인식(생각)몸이 떨리는구나.’하는 인식(생각)이 제 각기 발현되고 말 때에는 단발인 생각들이다. 그러나 날씨가 쌀쌀하니까 몸이 떨리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그게 바로 이어지는 생각들이다.

이어지는 생각들이 쌓여 지식체계가 됨으로써 당신들은 문명 문화를 만들어냈고 역사도 이루어냈다. 생각들을 이어나갈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차이 다른 차이들도 있지만 이런 차이가 당신들과 우리 짐승들을 가르는 분기점이 되었다고 나는 믿는다.

참으로 통탄할 일은, 이런 차이 하나로 갈라선 당신들이 우리를 아무 생각 없는 사물로 간주하고는 별의별 만행을 다 저지른다는 사실이다. 분명 당신들과 우리는 진화의 단계로 봐도 멀지 않은 관계인데 말이다.

당신들의 그런 만행을, 개들의 예로써 지적해 보겠다.

개들은 당신들이 시키는 대로 갖은 일을 다 한다. 집 지키기는 기본이고 양이나 염소같이 순한 놈들을 몰고 다니는 일, 같은 짐승인 멧돼지 따위를 사냥할 때 앞장서는 일, 심지어는 당신들이 판돈을 건 투견 장에서 자기들끼리 피투성이 싸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 충실한 개들을 당신들은 어떻게 대하는가?

같은 배의 새끼들을 서로 접붙이거나 심지어는 어미 개와 새끼 수캐를 교접붙이기도 해서, 당신들이 바라는 괴상망측한 모양의 개들로 만들어낸다. 애완견이라 하는 유들이 다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런 짓은 당신네들 표현을 따른다면 극악무도한 패륜이지 않은가?

어디 그뿐인가. 질긴 끈으로 개모가지를 매달아죽이거나 개 대가리를 도끼로 쳐서 죽인 뒤 불로 삶아 몇 끼의 음식으로 만들기도 한다.

그런 만행을 저지르면서도 아무런 부끄러움 없는 당신들…… 그건 단지 우리 짐승들이아무 생각이 없는 사물들로 보인 때문이다.

정말 그건 오해다. 아까 말했듯이 우리는 결코 생각이 없는 사물이 아니다. 분명 생각이 있는 존재이다. 단지 그 생각이 단발들로 존재할 뿐이다.

당신들이 지금 내 얘기를 듣다가 이런 질문을 던질 것 같다.

그럼 너는 뭐냐? 뭔데 짐승 주제에 우리 사람들한테 항변하는 거냐? 네 정체가 도대체 무어냐?”

그에 답하겠다. 나는 어느 때부턴가 생각하게 된 짐승이라고 말이다.

어느 때부턴가, 단발이던 생각들이 잠깐 잠깐 이어지기 시작하더니 마침내는 제대로 이어지면서 나를 부리는 당신들의 생각까지 읽게 된 한 마리 이라고 말이다.

그러면 내게 이런 비난을 퍼부을 듯싶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마라! '생각은 언어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인데 너 같은 짐승은 언어가 없으니 생각 따위는 애당초 있을 수 없어!”

그러면 나는 이렇게 길게 답하겠다.

당신들 생각이 언어적 생각이라면 우리들 생각은 본능적 생각이다. 그런, 본능적 생각들을 어느 때부터 잇기 시작한 짐승이 바로 나다. 분절음으로 발음하며 문자로도 적을 수 있는 당신네들생각과는 모양새가 다르지만 분명히 내 생각들이 존재한다. 그걸 입증해 보라고? 사실, 그런 말을 내게 한 순간 당신들은 이미 내가 생각하는 존재임을 전제하는 것이지만 이런 말은 말장난일 수 있으므로 하지 않겠다. 그 대신, 이제 내가 하는 얘기를 끝까지 다 듣고 나서 판단하기 바란다. 다만, 지금 내가 하는 말은 발음되거나 문자로 전해지는 말이 아니라 생각으로 하는 말이다. 굳이 문자를 쓴다면 이심전심 방식이랄까?”

그러면 당신들은 이렇게 야유할 듯싶다.

그건 말이 아니라 네가 혼자 하는 생각이야. 아무리 좋게 봐 줘도 독백밖에 더 되겠어? 독백이라도 그건 알아들을 수도 없는 독백이지. 그러니까 너는 지금 말하는 게 아니야!”

좋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계속 말하겠다. 내 말을 당신들이 듣건 안 듣건 상관하지 않고 말이다. 그냥 내 생각인데, 무슨 상관이냐 말이다.

 

아무래도 나는 별난 곰이었다.

잘은 모르지만 나는 곰의 역사상(?) 최초로 생각하는 곰이 된 듯했다. 여기서생각하는이란 표현은 아까 내가 말했듯이단발적인 생각들을 이을 수 있는이란 뜻으로 받아주기 바란다.

나는 생각하는 곰이 되었다.

그것은 마치 숫자 1의 상태로 머물러 있다가 또 다른 숫자 1을 만나면서 숫자 2의 세계로 확장된 거나 같았다. 수식으로 표현하자면 ‘11+n, n='이겠지. 나의 생각들은 걷잡을 수 없이 확장되었다. 분명 나는 곰들 중에서 매우 희귀하고 특별난 곰이었다.

그렇게 생각들이 불길처럼 확장되면서 내가 가진 첫 번째 감정은 경이감이나 자신감이나 흥분 따위가 아니었다. 막막한 절망감이 첫 번째 감정이었다. 도대체 나는 '생각해서는 안 되는 존재였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런 존재의 방식은 당신 같은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굳건한 철장이었다.

곰은 말은커녕 생각조차 못하는 미련한 짐승이다.’라는 인식의 철장. 그 철장 안에 내가 갇혀 있었다. 이런 철장을 사이에 두고서 당신들은 자유롭고 나는 억제되어 있었다. 철장은, 오직 당신들 편의로 만들어진 수단이었다.

이런 기막힌 생각이 들기 전까지 내게는 여기 곡마단의 철장밖에 없었다. 나는 단단한 쇠막대로 만들어진 곡마단의 철장에 길들여 있었다. 간간이 철장을 붙잡고 흔들기도 했지만 그건 배고프거나 무료할 때 하는 짓에 불과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당신들 인식의 철장까지 생각하게 되니까 그 순간부터 나는 갑갑한 눈앞의 철장부터 벗어나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 나는 그 날부터 철장의 쇠막대들을 부여잡고 마구 흔들거나 철장 안을 길길이 뛰기 시작했다.

멍청이는 느닷없는 내 난동에 당황했다. (그는 나를 어릴 때부터 맡아서 길러주며 곡예도 가르친 사람이다. 그는 나를 데리고 곡예를 사람들한테 보여줄 때 일부러 우스꽝스런 바보짓을 하면서멍청이란 이름으로 불린다. 물론 그럴 때에는 괴상한 피에로 분장이다.)

멍청이는 채찍으로 나를 후려치기도 하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꿀을 그릇째 갖다 줘 보기도 하고 일부러 굶겨 보기도 했으나, 그래도 난동이 멈춰지지 않으니까 난감한 얼굴로 한참 궁리하다가 텔레비전을 갖다 놓았다. 내 철장 바로 앞에 말이다. 나는 그 때부터 난동을 멈추었다. 그 순간 희희낙락하던 멍청이의 표정이라니!

멍청이는 이렇게 외치기까지 했다.

이 미련한 새끼야! 그렇게 텔레비전이 보고 싶었으면 말로 하지.”

그러고는 아 참, 곰 새끼는 말을 못하잖아.’하면서 자기 머리를 긁적이다가 사라져 버렸다.

그 때의 진상을 이제 밝히고 싶다. 멍청이가 텔레비전을 갖고 올 즈음에 나는 이미 지쳤던 것이다. 아무리 요동을 쳐도 철장을 벗어날 수 없을 뿐더러, 내 몸만 상할 뿐인지라 지치고 만 때였다. 하도 철장을 붙잡고 흔들어서 내 발톱들에서 피까지 나던 참이었다. 그렇게 지쳐 있을 때 텔레비전이 눈앞에 놓이는 게 아닌가.

낡은 텔레비전.

멍청이가 그것을 내 앞에 갖다 놓을 생각까지 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내가 새끼 곰일 때 그가 나를 품에 안고 우윳병꼭지를 빨려가며 키웠는데 그럴 때 그 텔레비전이 눈앞에 있었다. 그는 비좁은 방에서 곰 새끼나 기르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그것을 발치에 두고 보면서 지냈던 것이다. 그 까닭에 나는 새끼 때부터 텔레비전의 화면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 낯익은 물건이 오랜 세월 뒤에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나는 그 날부터 난동을 부리지 않고 텔레비전의 화면을 보는 일에 집중했다. 먹이를 받아먹거나, 잠자거나, 곡예를 하러 철장 밖으로 나갈 때 이외에는 내 굴속(철장 안에 있는, 바위들로 만들어진 인공 굴이다.) 바닥에 엎드려서 그 텔레비전 화면만 보았다.

그런 나의 모습에 곡마단 사람들이 신기해하며 지켜보기도 했으나 사나흘 지나자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았다. ‘철장 안의 곰에게 달리 낙이 없으니 그럴 수가 있겠다고 이해하거나 곰이 저러다가 말 거다라고 편하게 생각하는 듯했다. 하긴, ‘쳐 박아둔 낡은 텔레비전이 저렇게 요긴하게 쓰일 줄이야!’하는 감탄도 사나흘이면 족하지 않을까.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그 사나흘은 내 확장된 생각들이 지식까지 얻게 된 중요한 계기였다. 그것이 다시 내 눈앞에 놓이기 전까지 내 생각들은 단순하게 확장된 수준이었다. 그런데 그 화면을 온종일 볼 수 있는 환경으로 바뀌자 나는 그것이 보여주는 다양하고 깊은 지식들까지 내 생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내가 어린 새끼였을 때에는 명멸하며 바뀌는 것으로 여겨지던 화면들이 그렇게 오랜 세월 (나는 아직도 내가 몇 년을 산 곰인지 알지 못한다. 단발적인 생각들이 대부분이던 과거에서는 시간조차 짧게들 끊겨 있었기 때문이다.) 지나 다시 지켜보니 놀랍게도 의미 있게 이어지는 장면들이었다. 돌이켜보면, 단발적인 생각들이 이어지던 나의 지적변화가 텔레비전 보기에도 깊은 영향을 준 게 틀림없다.

온종일 켜져 있는 그것을 지켜보며 나는 갖가지 깊은 지식들까지 얻게 되었다. 내게 지식들이란 의미 있게 이어지는 장면들의 모음이었다. 곡마단 사람들이전기료가 더 들긴 하지만 텔레비전을 켜 두면 순하게 철장 안에 잘 있는 곰이다고 판단했는지 온종일 텔레비전을 켜 두기 시작했다. 첫 번째 텔레비전이 수명을 다해 화면이 나오지 않게 되자, 멍청이는 두 번째로 다른 낡은 텔레비전을 구해서 갖다 놓았다. 아마도 쓰레기장에서 주워 왔을 것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온 사방에 버려진 게 흑백텔레비전들이었다.

벌써 오래 전부터 텔레비전이 당신네 사람들의 생활을 점하게 되었는데 이제는 그조차 흑백이 아닌 컬러텔레비전의 시대로 바뀌면서 그런 지경이 되었던 것이다.

그 후 세 번째, 네 번째…… 낡은 텔레비전들 수십 대가 갈리도록 오래 살아온 셈이다, 나는.

사실, 텔레비전을 줄곧 보며 살게 되었다 해도 재방영이 없었더라면 내가 지식을 습득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다행히도 텔레비전은 재방영이 흔한 기계였다. 하다못해 돌발적인 사건이나 사고까지 늘 엇비슷한 장면들로 되풀이되니, 재방영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같거나 비슷한 장면들을 끝없이 반복해 보게 되면서 나는 이렇듯 박식한 곰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내 존재에 대한 절망감은 커져갔다. 나는 곰이었다. 생각이 있어도 그 생각을 표현할 마땅한 수단이나 방법이 없는 짐승이었다. 내 뭉툭한 아가리 구조가 어디 제대로 된 발음 하나 낼 수 있는 구조이겠으며, 내 무딘 앞발이 작은 볼펜 하나 쥘 수 있는 구조이던가? 당신네 사람들이 나만 보면 흔하게 외치는 곰 새끼란 발음 하나도 내 아가리를 통해 나오면 으르렁거리는 소리밖에 되지 못했다. ‘내 몸이 내 생각대로 움직여지질 못하는구나!’하고 깨달았을 때의 절망감이란!

숨 막혀 죽을 것 같은 절망감에서 나는 곡마단 탈출을 생각해 내었다. 겹겹이 둘러싼 철장 안 생활이, 숨 막혀 죽을 것 같은 절망감 그 자체로 느껴졌는지 모른다. 그간 숱하게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광활한 자연 속의 곰들 장면. 풀들로 덮였거나 눈으로 덮였거나, 광활한 터전에서 내 종족인 곰들은 마음껏 먹이를 사냥하고 잠을 자고 번식하는 모습들이었다. 몹쓸 사냥꾼의 장총에 처참하게 목숨을 잃기도 하지만 그건 문제가 아니었다. 단 한 번이라도 광활한 자연에서 살아볼 수 있다면 나는 여러 번 총을 맞아도 좋았다.

어디서 어떻게 태어났는지 모르는 채로 내 눈에 처음 보인 풍경은 곡마단 안이었으니까. 멍청이의 넓적한 얼굴이 나를 들여다보며 우윳병을 내 아가리에 물려주고 있을 때 주위로 줄무늬 천막이 드리워져 있었는데 나중에 알았지만 바로 내가 평생을 보낼 여기 곡마단 안 풍경이었다.

이런 답답한 천막 안에서 내 삶이 마감될 거라니, 어떻게 해서든지 여기를 탈출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답답한 천막 안 공간도 그렇고…… 항상 똑같이 반복되는 일과에서도 나는 벗어나고 싶었다.

나의 일과는 이랬다.

멍청이가 철장 안으로 들어오기 전에 사과 한 알같이 간단한 먹이를 던져준다. 나는 굴속에서 나와 그것들로 요기를 해결한 뒤 멍청이가 목의 줄을 잡아끄는 대로 철장을 나선다. 철장을 나서면 넓고 둥근 마당이다. 이 마당은 촘촘한 철망 울타리로 둘러쳐져 있어서 그 밖으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멍청이가 가져온 자전거에 걸터앉은 나는 두 발로 페달을 밟아가며 둥근 마당을 열 번은 돈다. 그럴 때 숨죽이고 지켜보던 울타리 밖 사람들이 환호하며 박수를 친다. 그런 식으로 서너 가지 곡예를 보이고서 다시 멍청이가 잡아끄는 대로 철장으로 되돌아온다. 철장 안에는 아까와 달리 맛있는 먹이들이 푸짐하게 놓여 있다. 나는 이 먹이들을 먹게 된다는 기대감에 힘든 곡예를 해내는 것이다. 사과, 복숭아, 생선 등등의 맛있는 먹이들을 다 먹고 나서 나는 다시 굴속으로 들어가 엎드린 채 텔레비전을 보다가 잠이 든다.’

멍청이의 검던 머리칼들이 허옇게 센 지금까지, 내 일과가 그러했다.

별 생각 없이 지내온 일과였지만생각하기시작하면서 이제는 지루하고 따분해서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운 일과다. 나는 탈출할 길을 찾고 있다. 언젠가 멍청이가 실수로 철장 문을 닫는 것도 잊고 둥근 마당의 출입문까지 열어 놓은 적이 있었다. 그러했음에도 무심하게 굴속에 엎드려 텔레비전만 보던 나 자신이라니……. 이제는 그런 절호의 기회를 다시는 놓치지 않을 것이다.

여태껏 나를 길러주고 먹여주고 재워준 곳에서 탈출할 생각까지 품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변화인가.

이런 변화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게 텔레비전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텔레비전.

얼마나 기막힌 사물인가.

자기는 아무 생각 없으면서 남의 갖가지 생각들을 다 갖다 보여주는 물건.

자기 수명이 다할 때까지 갖가지 장면들을 하나도 빠트림 없이 보여주는 그 우직함. 게다가, 끝없이 반복해 보여주는 단순함. ‘미련하다는 말은 우리 같은 곰이 아니라 저런 텔레비전에게 해야 옳지 않을까?

 

텔레비전은 나만 변화시킨 게 아니다.

우리 곡마단 전체를 변화시켰다. 아니, 세상사람 모두를 변화시켰다. 이런 놀라운 사실조차 텔레비전을 통해서 안 것이다.

이 놀라운 사실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처음 곡마단이 등장했을 때 세상 사람들은 환호했다. 나라에 큰 잔치가 베풀어질 때마다 초대받고 가는 단체가 곡마단이었다. 그런 잔치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너나없이 곡마단을 찾아가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맛보았다. 말 그대로 만백성의 사랑을 독차지한 곡마단이었다. 하지만 곡마단의 영광은 근대에 이르러 된서리를 맞는다. 과학문명의 발달과 함께 등장한 영화에 세상 사람들이 매료되기 시작한 때문이다. 곡마단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반 이하로 줄어들었으나 그래도 필름으로 보여주는 착시현상에 불과한 영화에 맞서 생생한 눈앞의 현장이라는 장점 하나로 곡마단은 가까스로 버텨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텔레비전이 등장하여 각 가정에 보급되기 시작하자 영화를 상영하던 극장이란 공간은 물론, 곡마단까지 사라질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이제 소수로 남은 곡마단조차 문 닫을 위기에 처한 것이다.’

내가 있는 곡마단이 그 소수로 남은 곡마단 중 하나일 줄이야! 식자우환이라더니, 텔레비전을 통해 세상일을 알면 알수록 더욱더 깊어지는 나의 절망감이었다.

그래서 내게 주는 먹이가 점점 더 열악해지는 걸까? 사과나 감은 늘 주지만 파인애플이나 벌꿀 같은 별미 먹이는 사라진 지 오래다.

예전에는 말들이 둥근 마당을 도는 공연순서가 있었는데 그조차 사라진지 오래다. 물론 말들의 행방도 보이지 않는다. 말들뿐인가, 간단한 숫자 더하기 게임을 보여주던 염소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거꾸로 서서 두 발로 통을 굴리던 사람도, 입에서 석유 불을 내뿜던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이미 우리 곡마단이 문 닫는 수순에 들어간 것이다.

나는 애써 탈출을 꾀하지 않아도 이 곡마단을 벗어날 판이 아닌가?

이 어처구니없는 현실! 내 앞날은 어떻게 될까? 탈출은커녕 불확실한 앞날을 걱정할 판에 내가 처해 있었다.

알면 알수록 요지경 속인 세상의 가장자리에 내가 엎드려 있었다. 내가 엎드려서 철장 밖에 놓인 텔레비전을 보는 굴속이 바로 세상의 가장자리였다. 내가 곰이 자전거를 타는 유서 깊은 곡마단의 마지막 모습으로 사라질 참이었다.

텔레비전이 태풍처럼 휩쓸면서 변해버린 세상의 가장자리에 곡마단 천막이 놓여 있고 그 가운데에 내가 누워서 문제의 낡은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 될까?

나는 곡마단 사람들의 거동을 살펴보았다. 그들은 언어적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고 나는 본능적 생각을 가진 짐승이니까 나는 그들의 떠드는 언어를 알아들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떠들고 있을 때 그 억양이나 어조, 내 쪽을 우울하게 보며 말하는 표정, 깊은 탄식 소리 등등을 종합해서 나는 그 뜻을 파악하였다.

그건 이런 뜻이었다. ‘저 곰 새끼를 팔아치우자고.’

 

 

그 동안 나는 객석 쪽을 살펴볼 겨를이 없었다.

당신네 사람들에게는 자전거 타는 일이 아무 것도 아니겠지만, 나와 같은 곰에게는 얼마나 고되고 혹독한 일이겠는가. 뭉툭한 앞발로 손잡이를 쥐고 뒷발로는 쉼 없이 페달들을 밟아가며 앞으로 나아간다는 일은 내 몸과 자전거와의 균형까지 조절하면서 쓰러지지 않고 나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복잡하고 힘든 일이겠는가. 그러느라 나는 미처 객석의 상황을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곡마단 사람들의곰을 팔아치우자는 뜻을 감지한 뒤 비로소 나는 객석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자전거 타기가 끝난 뒤 객석을 향해서 멍청이를 따라 인사할 때였다. 살펴보았더니 과연 머리털 허연 노인들 몇몇만 앉아 있었다.

그 옛날 객석이 미어지게 들어차던 손님들이 아니었다.

정말 나는 미련한 곰이었다.

객석의 변화조차 이제야 깨달았으니 말이다. 객석 상황이 그런 즉, 경각에 달려 있는 내 운명이었다.

매일 하던 공연도 사흘에 하루 꼴로 줄여서 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공연을 쉬는 날의 곡마단 안 풍경이란…… 딱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나는 나대로, 곡마단 단원들은 단원들대로 제각기 하릴없이 텔레비전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풍경이니 말이다. 공연자인 나는 굴속 바닥에 엎드려서 철장 밖 텔레비전을, 공연 스텝인 그들은 천막 안 사무실 방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그 방안이 보이지는 않지만 동시에 웃거나 떠드는 소리들이 나는데다가, 플라스틱류()가 전열에 달궈진 냄새가 내 코까지 풍겨오므로 텔레비전을 종일 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냄새에, 쉴 새 없이 피워대는 그들의 담배 냄새까지.

어느 날이다. 그 날도 공연 없이 쉬는 날이었다.

그렇게 전해오던 그 방 쪽의 냄새들에 다른 냄새 뭉치가 섞여서 전해왔다. 특유의 체취, 그건 나와 같은 곰들의 냄새였다. 나는 아연 긴장해서 코를 벌름거리며 그 냄새의 방향을 쫓는다.

얼마 후 그 냄새가, 아니 그 냄새를 풍기는 낯선 사내 하나가 나타났다. 곡마단 단장이 그 사내를 데리고 내 철장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낮은 소리로 으르렁거리며 이빨까지 드러내었다.

철장 앞에 선 단장이 그런 나를 보며 말했다.

얘가 벌써 눈치 챘나 보네요.”

사내가 이빨 새로 침을 찍 갈기며 말했다.

곰들이 냄새를 잘 맡거든…… 그런데, 얘는 너무 늙었네. 늙은 놈은 약효가 떨어지는데.”

단장이 벌게진 얼굴로 말했다.

기껏 열 살 정도밖에 안 됐거든요.”

사내가 다시 이빨 새로 침을 찍 갈기며 말했다.

내가 뭐 한두 해 이런 장사 한 줄 아슈? 탁 보면 안다니까. 최소한 스무 살은 된다니까. 맞지?”

, 그렇게 보신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만…… 값 좀 잘 쳐 줘요. 그 가격 갖고는 단원들 밀린 임금의 반이나 줄까…….”

글세…… 웅담이란 게 팔팔한 곰한테 나온 게 좋은 거지, 이렇게 다 늙은 거야 원.”

발바닥도 알아주는 약이라던데…….”

, 긴 소리 할 게 뭐 있소? 내가 말한 가격대로 팔 생각이면 넘기고 그렇지 않으면 그만 둡시다.”

그러면, 하루 지나서 다시 연락할 게요. 우리 단원들의 의견들을 다시 들어봐서 자기들 임금을 덜 받더라도 좋다면 그 가격에라도 하지요.”

아니, 하루 지나서 연락할 게 뭐 있어? 지금 당장 단원들 의견을 들어보지?”

“‘멍청이라고, 이 곰을 맡은 녀석이 어디로 샜는지 통 낯짝을 볼 수 없거든요. 그래도 그 녀석이 이 곰의 아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그 녀석 의견을 들어보는 시늉이라도 내야죠.”

사내는 단장과 악수를 하고는, 바깥의 해가 저무는지 어둑해지는 천막을 나가버렸다.

밤이 되었다.

다른 어느 날 밤보다도 떠들썩한 소리들이 사무실 방 쪽에서 나고 있어서, 내 철장 쪽으로 조심스레 다가오는 멍청이의 발걸음 소리는 아예 없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조금은 술 냄새를 풍기는 멍청이였다.

사실은, 멀리 바깥에서부터 곡마단 천막 쪽을 향해 걸어오던 멍청이를 나는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체취는 모르지만 멍청이의 체취라면 아무리 멀어도 맡을 수 있는 내 코였다. 다른 때와 달리 술 냄새까지 풍기는 멍청이인지라 나는 이상하다는 생각이었다.

이제는 수명이 다 됐는지 화면이 수시로 흔들리다가 제자리를 잡기도 하는 철장 앞의 텔레비전. 그래도 그 화면의 빛들이 천막 안의 어둠을 나지막하게 밀어내고 있어서 가까이 선 멍청이의 하체를 비쳐준다. 그러니까 나는 멍청이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채로 텔레비전을 지켜보고 있다. 그 때 사무실 방 쪽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들. 야아아 슛꼴인!…… 아이구 놓쳤네…… 그래그래 다시 슈웃 꼴!…… 아이구 아이구!

그런 요란한 소리들일 때 멍청이가 철장 문을 찰칵 따고 들어와서는 내 목의 끈을 조심스레 잡아당긴다. 나는 철장을 빠져나와서 둥근 마당에 들어섰다. 내가 보던 텔레비전이 그대로 켜져 있어서 등진 화면 빛에 내가 엎드려 있던 굴속이 훤하다. 멍청이는 잠시 망설이더니 되돌아가서 텔레비전을 꺼 버렸다.

몇 달째 생각 없이 눈뜨고 있던 텔레비전 놈이 잠들었다.

객석에 가득 찬 어둠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멍청이는 철망 울타리에 난 작은 출입구로 나를 끌었다. 이미 열려 있는 출입구이다.

꼴인! 꼴인! 와하하!

다시 요란한 사무실 방 소리들을 뒤로 하고 우리는 천막의 큰 출입구도 빠져나왔다. 이 출입구는 단장이 의자를 놓고 앉아서 입장객들의 돈을 받던 곳이다.

곡마단 천막 안의 어둠 따위는 비교조차 안 될 엄청난 밤의 어둠이 밖에 있었다. 아아 이 맑고 서늘한 밤. 그 언제던가, 기차로 곡마단이 이동하던 어느 날 밤에 열린 차창으로 이런 밤을 본 적이 있었다. 나는 코를 벌름거리며 시원한 밤공기를 들이마신다.

멍청이는 나를 잡아끌어 찝차 안의 뒷좌석에 앉혔다. 단장의 차인지 단장의 퀴퀴한 몸 냄새가 역력하다. 잠시 후 차는 푸르륵 몸을 떨더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우리의 차가 곡마단 천막을 떠나 부근에 있는 마을의 앞 도로를 조용히 지나가고 있을 때에도 야하하! 아이고 저런저런 하는 등등의 탄성들이 모든 집들에서 동시에 나다가 가라앉다가 하고 있었다.

마을을 반 넘게 지나쳐 갈 즈음이었다. 어느 집 개 한 마리가 요란하게 짖기 시작하니까 덩달아 다른 개들도 따라 짖기 시작했다. 멍청이는 차의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어느 집 개인지 타다닥 도로를 내딛는 발소리까지 내면서 우리 차를 따라오고 있었다. 나는 허옇게 살아나는 본능으로 이빨들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멍청이는 나를 달래는 자 자 자 자소리를 내면서 더욱 차의 속력을 높인다.

차는 마을을 훨씬 벗어나 벌판길로 들어섰다.

밤하늘과 그대로 맞붙은 채 펼쳐진 벌판. 곡마단 천막 위에 매단 장식등 같은 별들이 밤하늘에 숱하게 매달려서 반짝이고 있다.

따라오던 개의 발걸음 소리는 사라져 버렸다. 간간이 덜컹거리기도 하면서 달리는 차.

멍청이가 나 들으란 듯이 뇌까린다.

이상하단 말이야. 어느 때부턴가 네가 사람처럼 느껴진단 말이야. 네가 텔레비전을 보고 있을 때는…… 꼭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 사람 같더라니까. 그러니, 내가 너를 그런 백정 놈한테 팔려가도록 그냥 있겠니?”

나는 지금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어 안타깝다. 다른 때 같았으면 표정 손짓 등을 살피면서 당신이 하는 말의 뜻을 헤아릴 텐데, 당신이 운전하느라 앞을 보며 말하니까 뒷자리의 내가 볼 수가 있어야지. 나 참, 참으로 답답하네 답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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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었다.

다른 어느 날 밤보다도 떠들썩한 소리들이 사무실 방 쪽에서 나고 있어서, 내 철장 쪽으로 조심스레 다가오는 멍청이의 발걸음 소리는 아예 없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조금은 술 냄새를 풍기는 멍청이였다.

사실은, 멀리 바깥에서부터 곡마단 천막 쪽을 향해 걸어오던 멍청이를 나는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체취는 모르지만 멍청이의 체취라면 아무리 멀어도 맡을 수 있는 내 코였다. 다른 때와 달리 술 냄새까지 풍기는 멍청이인지라 나는 이상하다는 생각이었다.

이제는 수명이 다 됐는지 화면이 수시로 흔들리다가 제자리를 잡기도 하는 철장 앞의 텔레비전. 그래도 그 화면의 빛들이 천막 안의 어둠을 나지막하게 밀어내고 있어서 가까이 선 멍청이의 하체를 비쳐준다. 그러니까 나는 멍청이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채로 텔레비전을 지켜보고 있다. 그 때 사무실 방 쪽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들. 야아아 슛꼴인!…… 아이구 놓쳤네…… 그래그래 다시 슈웃 꼴!…… 아이구 아이구!

그런 요란한 소리들일 때 멍청이가 철장 문을 찰칵 따고 들어와서는 내 목의 끈을 조심스레 잡아당긴다. 나는 철장을 빠져나와서 둥근 마당에 들어섰다. 내가 보던 텔레비전이 그대로 켜져 있어서 등진 화면 빛에 내가 엎드려 있던 굴속이 훤하다. 멍청이는 잠시 망설이더니 되돌아가서 텔레비전을 꺼 버렸다.

몇 달째 생각 없이 눈뜨고 있던 텔레비전 놈이 잠들었다.

객석에 가득 찬 어둠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멍청이는 철망 울타리에 난 작은 출입구로 나를 끌었다. 이미 열려 있는 출입구이다.

꼴인! 꼴인! 와하하!

다시 요란한 사무실 방 소리들을 뒤로 하고 우리는 천막의 큰 출입구도 빠져나왔다. 이 출입구는 단장이 의자를 놓고 앉아서 입장객들의 돈을 받던 곳이다.

곡마단 천막 안의 어둠 따위는 비교조차 안 될 엄청난 밤의 어둠이 밖에 있었다. 아아 이 맑고 서늘한 밤. 그 언제던가, 기차로 곡마단이 이동하던 어느 날 밤에 열린 차창으로 이런 밤을 본 적이 있었다. 나는 코를 벌름거리며 시원한 밤공기를 들이마신다.

멍청이는 나를 잡아끌어 찝차 안의 뒷좌석에 앉혔다. 단장의 차인지 단장의 퀴퀴한 몸 냄새가 역력하다. 잠시 후 차는 푸르륵 몸을 떨더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우리의 차가 곡마단 천막을 떠나 부근에 있는 마을의 앞 도로를 조용히 지나가고 있을 때에도 야하하! 아이고 저런저런 하는 등등의 탄성들이 모든 집들에서 동시에 나다가 가라앉다가 하고 있었다.

마을을 반 넘게 지나쳐 갈 즈음이었다. 어느 집 개 한 마리가 요란하게 짖기 시작하니까 덩달아 다른 개들도 따라 짖기 시작했다. 멍청이는 차의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어느 집 개인지 타다닥 도로를 내딛는 발소리까지 내면서 우리 차를 따라오고 있었다. 나는 허옇게 살아나는 본능으로 이빨들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멍청이는 나를 달래는 자 자 자 자소리를 내면서 더욱 차의 속력을 높인다.

차는 마을을 훨씬 벗어나 벌판길로 들어섰다.

밤하늘과 그대로 맞붙은 채 펼쳐진 벌판. 곡마단 천막 위에 매단 장식등 같은 별들이 밤하늘에 숱하게 매달려서 반짝이고 있다.

따라오던 개의 발걸음 소리는 사라져 버렸다. 간간이 덜컹거리기도 하면서 달리는 차.

멍청이가 나 들으란 듯이 뇌까린다.

이상하단 말이야. 어느 때부턴가 네가 사람처럼 느껴진단 말이야. 네가 텔레비전을 보고 있을 때는…… 꼭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 사람 같더라니까. 그러니, 내가 너를 그런 백정 놈한테 팔려가도록 그냥 있겠니?”

나는 지금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어 안타깝다. 다른 때 같았으면 표정 손짓 등을 살피면서 당신이 하는 말의 뜻을 헤아릴 텐데, 당신이 운전하느라 앞을 보며 말하니까 뒷자리의 내가 볼 수가 있어야지. 나 참, 참으로 답답하네 답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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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나는 객석 쪽을 살펴볼 겨를이 없었다.

당신네 사람들에게는 자전거 타는 일이 아무 것도 아니겠지만, 나와 같은 곰에게는 얼마나 고되고 혹독한 일이겠는가. 뭉툭한 앞발로 손잡이를 쥐고 뒷발로는 쉼 없이 페달들을 밟아가며 앞으로 나아간다는 일은 내 몸과 자전거와의 균형까지 조절하면서 쓰러지지 않고 나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복잡하고 힘든 일이겠는가. 그러느라 나는 미처 객석의 상황을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곡마단 사람들의곰을 팔아치우자는 뜻을 감지한 뒤 비로소 나는 객석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자전거 타기가 끝난 뒤 객석을 향해서 멍청이를 따라 인사할 때였다. 살펴보았더니 과연 머리털 허연 노인들 몇몇만 앉아 있었다.

그 옛날 객석이 미어지게 들어차던 손님들이 아니었다.

정말 나는 미련한 곰이었다.

객석의 변화조차 이제야 깨달았으니 말이다. 객석 상황이 그런 즉, 경각에 달려 있는 내 운명이었다.

매일 하던 공연도 사흘에 하루 꼴로 줄여서 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공연을 쉬는 날의 곡마단 안 풍경이란…… 딱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나는 나대로, 곡마단 단원들은 단원들대로 제각기 하릴없이 텔레비전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풍경이니 말이다. 공연자인 나는 굴속 바닥에 엎드려서 철장 밖 텔레비전을, 공연 스텝인 그들은 천막 안 사무실 방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그 방안이 보이지는 않지만 동시에 웃거나 떠드는 소리들이 나는데다가, 플라스틱류()가 전열에 달궈진 냄새가 내 코까지 풍겨오므로 텔레비전을 종일 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냄새에, 쉴 새 없이 피워대는 그들의 담배 냄새까지.

어느 날이다. 그 날도 공연 없이 쉬는 날이었다.

그렇게 전해오던 그 방 쪽의 냄새들에 다른 냄새 뭉치가 섞여서 전해왔다. 특유의 체취, 그건 나와 같은 곰들의 냄새였다. 나는 아연 긴장해서 코를 벌름거리며 그 냄새의 방향을 쫓는다.

얼마 후 그 냄새가, 아니 그 냄새를 풍기는 낯선 사내 하나가 나타났다. 곡마단 단장이 그 사내를 데리고 내 철장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낮은 소리로 으르렁거리며 이빨까지 드러내었다.

철장 앞에 선 단장이 그런 나를 보며 말했다.

얘가 벌써 눈치 챘나 보네요.”

사내가 이빨 새로 침을 찍 갈기며 말했다.

곰들이 냄새를 잘 맡거든…… 그런데, 얘는 너무 늙었네. 늙은 놈은 약효가 떨어지는데.”

단장이 벌게진 얼굴로 말했다.

기껏 열 살 정도밖에 안 됐거든요.”

사내가 다시 이빨 새로 침을 찍 갈기며 말했다.

내가 뭐 한두 해 이런 장사 한 줄 아슈? 탁 보면 안다니까. 최소한 스무 살은 된다니까. 맞지?”

, 그렇게 보신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만…… 값 좀 잘 쳐 줘요. 그 가격 갖고는 단원들 밀린 임금의 반이나 줄까…….”

글세…… 웅담이란 게 팔팔한 곰한테 나온 게 좋은 거지, 이렇게 다 늙은 거야 원.”

발바닥도 알아주는 약이라던데…….”

, 긴 소리 할 게 뭐 있소? 내가 말한 가격대로 팔 생각이면 넘기고 그렇지 않으면 그만 둡시다.”

그러면, 하루 지나서 다시 연락할 게요. 우리 단원들의 의견들을 다시 들어봐서 자기들 임금을 덜 받더라도 좋다면 그 가격에라도 하지요.”

아니, 하루 지나서 연락할 게 뭐 있어? 지금 당장 단원들 의견을 들어보지?”

“‘멍청이라고, 이 곰을 맡은 녀석이 어디로 샜는지 통 낯짝을 볼 수 없거든요. 그래도 그 녀석이 이 곰의 아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그 녀석 의견을 들어보는 시늉이라도 내야죠.”

사내는 단장과 악수를 하고는, 바깥의 해가 저무는지 어둑해지는 천막을 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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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은 나만 변화시킨 게 아니다.

우리 곡마단 전체를 변화시켰다. 아니, 세상사람 모두를 변화시켰다. 이런 놀라운 사실조차 텔레비전을 통해서 안 것이다.

이 놀라운 사실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처음 곡마단이 등장했을 때 세상 사람들은 환호했다. 나라에 큰 잔치가 베풀어질 때마다 초대받고 가는 단체가 곡마단이었다. 그런 잔치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너나없이 곡마단을 찾아가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맛보았다. 말 그대로 만백성의 사랑을 독차지한 곡마단이었다. 하지만 곡마단의 영광은 근대에 이르러 된서리를 맞는다. 과학문명의 발달과 함께 등장한 영화에 세상 사람들이 매료되기 시작한 때문이다. 곡마단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반 이하로 줄어들었으나 그래도 필름으로 보여주는 착시현상에 불과한 영화에 맞서 생생한 눈앞의 현장이라는 장점 하나로 곡마단은 가까스로 버텨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텔레비전이 등장하여 각 가정에 보급되기 시작하자 영화를 상영하던 극장이란 공간은 물론, 곡마단까지 사라질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이제 소수로 남은 곡마단조차 문 닫을 위기에 처한 것이다.’

내가 있는 곡마단이 그 소수로 남은 곡마단 중 하나일 줄이야! 식자우환이라더니, 텔레비전을 통해 세상일을 알면 알수록 더욱더 깊어지는 나의 절망감이었다.

그래서 내게 주는 먹이가 점점 더 열악해지는 걸까? 사과나 감은 늘 주지만 파인애플이나 벌꿀 같은 별미 먹이는 사라진 지 오래다.

예전에는 말들이 둥근 마당을 도는 공연순서가 있었는데 그조차 사라진지 오래다. 물론 말들의 행방도 보이지 않는다. 말들뿐인가, 간단한 숫자 더하기 게임을 보여주던 염소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거꾸로 서서 두 발로 통을 굴리던 사람도, 입에서 석유 불을 내뿜던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이미 우리 곡마단이 문 닫는 수순에 들어간 것이다.

나는 애써 탈출을 꾀하지 않아도 이 곡마단을 벗어날 판이 아닌가?

이 어처구니없는 현실! 내 앞날은 어떻게 될까? 탈출은커녕 불확실한 앞날을 걱정할 판에 내가 처해 있었다.

알면 알수록 요지경 속인 세상의 가장자리에 내가 엎드려 있었다. 내가 엎드려서 철장 밖에 놓인 텔레비전을 보는 굴속이 바로 세상의 가장자리였다. 내가 곰이 자전거를 타는 유서 깊은 곡마단의 마지막 모습으로 사라질 참이었다.

텔레비전이 태풍처럼 휩쓸면서 변해버린 세상의 가장자리에 곡마단 천막이 놓여 있고 그 가운데에 내가 누워서 문제의 낡은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 될까?

나는 곡마단 사람들의 거동을 살펴보았다. 그들은 언어적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고 나는 본능적 생각을 가진 짐승이니까 나는 그들의 떠드는 언어를 알아들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떠들고 있을 때 그 억양이나 어조, 내 쪽을 우울하게 보며 말하는 표정, 깊은 탄식 소리 등등을 종합해서 나는 그 뜻을 파악하였다.

그건 이런 뜻이었다. ‘저 곰 새끼를 팔아치우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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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막혀 죽을 것 같은 절망감에서 나는 곡마단 탈출을 생각해 내었다. 겹겹이 둘러싼 철장 안 생활이, 숨 막혀 죽을 것 같은 절망감 그 자체로 느껴졌는지 모른다. 그간 숱하게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광활한 자연 속의 곰들 장면. 풀들로 덮였거나 눈으로 덮였거나, 광활한 터전에서 내 종족인 곰들은 마음껏 먹이를 사냥하고 잠을 자고 번식하는 모습들이었다. 몹쓸 사냥꾼의 장총에 처참하게 목숨을 잃기도 하지만 그건 문제가 아니었다. 단 한 번이라도 광활한 자연에서 살아볼 수 있다면 나는 여러 번 총을 맞아도 좋았다.

어디서 어떻게 태어났는지 모르는 채로 내 눈에 처음 보인 풍경은 곡마단 안이었으니까. 멍청이의 넓적한 얼굴이 나를 들여다보며 우윳병을 내 아가리에 물려주고 있을 때 주위로 줄무늬 천막이 드리워져 있었는데 나중에 알았지만 바로 내가 평생을 보낼 여기 곡마단 안 풍경이었다.

이런 답답한 천막 안에서 내 삶이 마감될 거라니, 어떻게 해서든지 여기를 탈출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답답한 천막 안 공간도 그렇고…… 항상 똑같이 반복되는 일과에서도 나는 벗어나고 싶었다.

나의 일과는 이랬다.

멍청이가 철장 안으로 들어오기 전에 사과 한 알같이 간단한 먹이를 던져준다. 나는 굴속에서 나와 그것들로 요기를 해결한 뒤 멍청이가 목의 줄을 잡아끄는 대로 철장을 나선다. 철장을 나서면 넓고 둥근 마당이다. 이 마당은 촘촘한 철망 울타리로 둘러쳐져 있어서 그 밖으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멍청이가 가져온 자전거에 걸터앉은 나는 두 발로 페달을 밟아가며 둥근 마당을 열 번은 돈다. 그럴 때 숨죽이고 지켜보던 울타리 밖 사람들이 환호하며 박수를 친다. 그런 식으로 서너 가지 곡예를 보이고서 다시 멍청이가 잡아끄는 대로 철장으로 되돌아온다. 철장 안에는 아까와 달리 맛있는 먹이들이 푸짐하게 놓여 있다. 나는 이 먹이들을 먹게 된다는 기대감에 힘든 곡예를 해내는 것이다. 사과, 복숭아, 생선 등등의 맛있는 먹이들을 다 먹고 나서 나는 다시 굴속으로 들어가 엎드린 채 텔레비전을 보다가 잠이 든다.’

멍청이의 검던 머리칼들이 허옇게 센 지금까지, 내 일과가 그러했다.

별 생각 없이 지내온 일과였지만생각하기시작하면서 이제는 지루하고 따분해서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운 일과다. 나는 탈출할 길을 찾고 있다. 언젠가 멍청이가 실수로 철장 문을 닫는 것도 잊고 둥근 마당의 출입문까지 열어 놓은 적이 있었다. 그러했음에도 무심하게 굴속에 엎드려 텔레비전만 보던 나 자신이라니……. 이제는 그런 절호의 기회를 다시는 놓치지 않을 것이다.

여태껏 나를 길러주고 먹여주고 재워준 곳에서 탈출할 생각까지 품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변화인가.

이런 변화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게 텔레비전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텔레비전.

얼마나 기막힌 사물인가.

자기는 아무 생각 없으면서 남의 갖가지 생각들을 다 갖다 보여주는 물건.

자기 수명이 다할 때까지 갖가지 장면들을 하나도 빠트림 없이 보여주는 그 우직함. 게다가, 끝없이 반복해 보여주는 단순함. ‘미련하다는 말은 우리 같은 곰이 아니라 저런 텔레비전에게 해야 옳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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