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원래 정치현실에 관심이 없었다. 대학 다닐 때 교련 반대 데모로 캠퍼스 전체가 들썩거려도 무심하게 문학회지 발간에 매달려 지낼 정도였다. 그랬던 내가 그 가을, 정국에 대한 두려운 직감까지 하게 된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외로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난생처음인 객지생활이었다. 병역까지 동사무소 업무 보조로 때웠으니 단 한 번도 고향을 떠나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동해안 작은 읍으로 네 시간이나 시외버스 타고 와서 시작한 교사생활. 고향은 험준한 태백산맥 너머 아득한 곳에 있었다. 교직원 삼십 명 내외의 학교에는 어울릴 만한 또래도 없었다. 그럴 만 했다. 내 또래라면 삼 년 만기의 군대에 있을 테니, 일 년 남짓 방위 복무를 마치고 학교에 첫 발령 받은 나와 조우될 수가 없었다.
퇴근하면 돌아다닐 데도 마땅치 않은 시골 읍이었다. 결국 나는 하숙방에 틀어박혀 밤늦게까지 텔레비전이나 보며 외로움을 달래다가 정국이 심각하다고 직감하게 된 게 아닐까? 내 작은 하숙방의 십사인치 텔레비전은 태백산맥 너머 넓은 세상을 그리워하는 촉수나 다름없었다. 그 촉수에 뭔가 섬뜩한 게 감촉되었다. 분명, 방영되는 음울한 흑백 화면 뒤에서 무언가 전개되고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 어떻게 전개될지는 뚜렷하게 짐작되진 않았다. 믿었던 그분마저 별 도움이 되지 못하면서 나는 뒤늦게, 교무실에 굴러다니는 신문들을 모아 유심히 읽기 시작했다. 전에는 심심풀이땅콩이라 여기고 건성으로 보던 것들이었다. 여전히 흥밋거리 위주로 편집된 기사들이지만 텔레비전에서 직감되는 ‘무엇’의 보완 자료들로서는 충분하였다.
태풍 앞에 선, 위기의 난국인 게 분명했다. 삼 년 전 ‘10월 유신’ 선포 때부터 수시로 난국이란 표현이 등장했지만 이번에는 그 느낌이 달랐다. 교무실에는 신문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사람이 둘로 늘어난 셈이었다. 비는 시간마다 그분 혼자 신문들을 뚫어지게 들여다보더니 이제는 나까지 합류한 것이다. 그분이 며칠 전 교정의 벤치에서 일어나며 일러준 말이 떠올라, 정치면의 해설을 읽다가 교감선생 쪽을 돌려다보았다.
교감선생이 황급하게 눈길을 거두어 낮잠 자는 모습으로 돌아갔다.
전통적으로 야당성이 강한 모 신문에서는 사설을 통해‘자칫 국가 위기사태로 진전될 수도 있는 현 시국에 대하여 당국은 보다 근원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며 심각한 우려까지 표명하고 있었다. 솔직히, 그런 식의 사설은 물에 물 탄 듯 아무 것도 아닌 잡문이었다. ‘…… 될 수도 있는’‘…… 근원적인 해결책’등은 뭔가 대단한 것을 말하는 듯싶지만 실상 딱 부러지게 내세우는 것 없이, 긴급조치 위반이나 모면하는 말장난이었다. 다만‘국가 위기사태’라는 표현은 제시하는 바가 있었다. 그분이 말한 ‘4․19와 비슷하다는 마산 쪽 사태’를 암시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