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그 즈음 우리는 건더기 하나 없는 멀건 국물처럼 시시한 놈을 멸건 놈이라고 불렀다. 맞춤법대로라면멀건 놈이라 해야 맞는데 왜 그랬을까? 단모음를 이중모음로 바꿔 발음해야만 그 놈의시시해 보임이 더 강조되었던 걸까?)

 

그 새끼는 멸건 놈이었다.

시골 중학교 출신인데 분명 그 학교에선 1,2등을 다툰 수재였을 테다. 하지만 이 도시의 우리 명문고에서는 그저 멸건 놈일 뿐이다. 왜냐면, 이 도시에 있는 여러 중학교들에서 배출된 공부깨나 한다는 애들모두가 우리 명문고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새끼 같은 시골 중학교 출신은 수재는커녕, 잘못되면 바보소리 듣기 딱 좋으니 그만 기죽어서 멸겋게 지낼 수밖에.

그런데 일이 묘하게 되었다.

2학기 들어서 새끼와 내가 창가 분단에 같이 앉게 된 것이다. 담임선생이 자리 배치를 다시 한 결과였다. 그것도 하필, 내 자리 바로 뒤로 새끼가 앉게 되었으니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창가 분단은 1,2교시 수업 때 칠판 글씨가 푸르딩딩하게 보이는 어려움이 있는데 유리창을 통해 밀려드는 현란한 아침 햇살 탓이다. 쉬는 시간에 뒤돌아 앉아 얘기 나누다보면 그 햇살은 새끼의 빡빡 깎은 머리통부터 시작해서 한쪽 뺨, 한쪽 어깨, 오른손 손등으로 발광페인트처럼 흘렀다.

그런데 하필 새끼의 눈동자 색이 멸건 잿빛이었다.

현란한 햇살 속에서 이상스레 빛나는 잿빛 눈동자는, 골목어귀나 쓰레기장에서 맞닥뜨리곤 하던 허연 눈깔의 잡종 개를 연상케 했다. 얘기를 나누다 말고 물끄러미 들여다보는 나의 괴상스레 변형된 얼굴이 새끼의 그 기분 나쁜 잿빛 눈동자 속에 빠져 있어서…… 나는 , 이 새끼야 네 눈깔 빛깔이 뭐 그러냐?’칵 내뱉고 싶은 충동이 일곤 했다.

그러면서…… 나는 새끼와 친해진 거다.

 

실토하자면 사실, 나도 전에는 멸건 놈이었다. 그러나 새끼와 달리 나는시골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이 도시의 어느 중학교로 진학한 경우. 이미 멸건 놈과정을 다 겪고 나서 이 명문고로 진학했기에, 그 새끼를 처음 봤을 때 멸건 놈인 줄을 단번에 안 것이다.

물론 이런 얘기는 새끼한테 비밀이다.

 

새끼와 나는 방과 후에도 붙어 다니기 시작했다. 집에 일찍 가 봐야 심심하니, 시내를 돌아치는 거다.

기껏해야 장날 구경이 고작인 시골 고향보다는 아무래도 구경거리도 많고 재미난 이 도시다. 우리는 책가방을 옆구리에 끼고서들 구경거리를 찾아서 돌아친다.

제일 먼저 극장 앞에 간다. ‘미성년자 관람불가홍보게시판에 붙은 야한 장면사진들을 구경하고, 다음 순으로 양공주 동네로 향한다. 야릇한 냄새가 나는 그 동네 골목을 지나가면서 도랑가에 버려진 콘돔 등을 살펴보고, 마지막으로는 중앙시장에 들러 여기저기 기웃대다가 걸레 빵이나 순대를 사 먹는다.

그러다 보면 저녁이고, 우리는 그제야 헤어졌다.

 

돌이켜보면, 그렇게 저녁 때 쯤에 헤어지던 게 좋았다.

그런데 밤에도 또 만나 어울리면서 우리는 이상하게 변해간 거다.

그렇다. 공설운동장이 문제였다.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더라면……하는 유행가 가사처럼 하필 새끼와 나 사이에 공설운동장이 있었다.

공설운동장은, 내 하숙방에서 창문을 열면 한 눈에 들어왔다. 하숙집이 공설운동장 옆 산동네에 있기 때문이다.

새끼가 자취하는 집은 공설운동장과 평지로 접하는 동네에 있었다. 내 하숙방에서 창문을 열면 우선 공설운동장이 보이고, 그 너머 동네에 새끼가 산다는 얘기다.

그래서 우리는 저녁 때 헤어졌다가, 괜히 밤에 또다시 공설운동장에서 만나기 시작한 거다.

밤의 공설운동장.

정말, 낮과는 딴판인 공간이다.

낮에는 북괴 만행 규탄 시민 궐기대회나 시민체육대회 같은 큰 행사 이외에는 인적 하나 없다. 개 한 마리 다니지 않는다. 그러다가 밤이 되면 달라진다.

어둠이 내리면, 이런저런 사람들이 죽은 개구리 냄새를 맡은 개울가 가재들처럼 슬금슬금 모여든다. 그 거대한 어둠 속에 모습들을 가리고서 유행가를 부르거나 휘파람을 불거나, 부시기를 쪼거나…… 혹은 데이트를 하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하면서 통금 사이렌 직전까지 부산을 떤다.

낮과는 딴 판으로 변하는 그 이상한 세계.

바로 가까이에, 밤마다 그렇게 마술처럼 변하는 세계가 있으니까 새끼와 나는 그냥 방에 쳐 박혀 공부만 하기가 어려웠다. 우리도 가재처럼 기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 때가, 2학기 중간고사 시간표가 발표된 때였다.

 

새끼와 나는 각자 시험공부랍시고 한 시간 남짓 하고는 이내 어두운 공설운동장으로 나와서 한복판쯤에서 만나는 거다.

같이 휘파람 불면서 거들먹거리며 걸어가다가는, 장난을 친다.

각자 그것들을 꺼내어 잠시 밤의 시원한 바깥공기를 쐬어 주고는 다시 얼른 바지 속으로 넣는다. 내가 고안해낸 장난이다. 짧은 순간이지만 스릴이 만점이다.

그런 장난을 치면서 어둠 속을 걸어 다닐 때 늘 아슬아슬하게 지나치는 여자들이 있다.

우선, 화장품 냄새 요란한 양공주들이다. 그녀들 서너 명 정도는 밤의 공설운동장에 나타나 자전거를 탄다. 중고자전거일 게다. 왜냐면 삐거덕거리는 잡음이 늘 나기 때문이다.

공순이들도 있다. 얘들은 합창으로해당화 피고 지는 섬마을에…… 이나 불어라 열풍아. 밤이 새도록……이나 너무나도 그님을 사랑했기에……이나님이라 부르리까 당신이라 부르리까……유행가를 열심히 부르고들 다닌다.

걔네들한테 우리의 장난이 들키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꽥 비명을 지르거나 경찰을 찾지 않을까?

그럴 일이 없도록 우리는 반드시 어두운 주위를 살피며 장난쳤다.

공설운동장에는 여자들만 있지 않았다. 양아치들도 있었다.

걔들은 대개 장발에다가 나팔바지 차림이었다. 낮에는 뭘 하며 보내는지 모르나 밤만 되면 나타나 거들먹거렸다.

걔들 숫자가 대여섯 명이라 우리를 다구리 놓기로 작정한다면 꼼짝 못하고 당할 테다. 그런 일은 아직 없었는데 비록 자기네는 건달이지만 공부 잘한다는 명문고 학삐리들은 그냥 놔두자는 데 뜻을 모은 듯싶었다. 마치 무림세계에서 협객들이 학식 높은 선비들을 아끼듯.

걸맞은 비유일까?

잘 모르겠다.

그런 패거리들 말고도 정체가 분명치 않은 사람들이 저녁 식사 후 바람을 쐰다며 나타나는 밤의 공설운동장. 이 도시에 이만한 넓이의, 밤에 쉬는 공간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여하튼 새끼와 나는 그런 밤의 공간을 한 시간 가까이 돌아치는 것으로 휴식시간을 갖고는 다시 귀가하여 공부했다.

 

돌이켜보면, 그렇게 지낼 때가 좋았다. 그런데 그러지를 못하고 우리는 양아치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중간고사가 끝난 직후였다.

 

양아치들은 늘 부시기를 쪼았다.

산수유열매같이 작고 빨간 부시기 불꽃들을 입에 물고 있다가 불티 같은 재를 떨기거나, 연기로 도넛 모양을 만들어 밤하늘에 올리거나 했다.

나는 걔들과 안면 정도는 트고 지내는 사이였다.

가까운 산동네에서 4년째 하숙하다 보니 자연스레 그리 된 거다. 걔들과 마주치게 될 때 어이!’ 하는 반가운 소리를 하며 지나가는 식이었다.

이제는 나 혼자가 아니라 새끼와 함께 나오면서걔들과 번번이 마주치게 되면서 새끼를 걔들에게 소개시켜줘야 될 것 같았다. 솔직히, 그러면서 새끼한테 내 가우도 한 번 세우고 싶었다.

 

중간고사가 끝난 직후의 어느 날 밤이다.

걔들과 마주쳤을 때 나는 부시기 두 대만 달라고 했다. 나는 전부터 한 달에 한 번 꼴로 걔들한테 부시기를 받아서 같이 쪼곤 했다. 그건 알고 지내는 관계임을 확인하는 행위다.

물론 새끼는 그런 걸 몰랐을 테다.

나는 걔들한테서 건네받은 부시기 두 대 중 하나는 내가 입에 물고 남은 하나는 새끼한테 주었다. 먼저 내가 불을 붙인 뒤 걔들과 함께 쪼기 시작하자, 놀라서 멍하니 서 있던 새끼라니. 얼마 후 새끼도 용기를 내어 부시기를 입에 물고는 내 부시기 끝에 대고 불을 붙였다.

같이 부시기를 빨더니 새끼는 이내 요란한 재치기를 몇 번이고 해댔다. 걔들과 나는 낄낄낄 웃었다. 어둠 속이라 잘 보이지 않지만 매운 담배연기 탓에 눈물이 그렁그렁할 새끼를, 걔들한테 정식으로 소개해 주었다.

나와 학교에서 제일 친한 친구야. 알고들 지내라고.”

서로 악수들을 나눈 뒤…… 걔들과 내가 뿜어대는 부시기 연기, 새끼의 콜록대며 튀어나오는 부시기 연기는 고향의 강가에서 던지던 허연 어망처럼 밤하늘에 흩뿌려져 어딘가로 날아갔다.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걔들의 나팔바지가 펄럭거리며 장발도 따라서 휘날리고 있었다.

 

걔들의 설러벌은 재미있었다.

대개, 깔치를 꼬셔먹었다는 설러벌들인데 주로 공순이나 식순이가 대상이었다. 당일로 먹었다는 경우도 있고 한 달은 걸려서 먹었다는 경우도 있었다.

그럼, 공설운동장에 밤마다 나타나는 공순이들은 아직 먹히지 않은 애들인가?

글쎄, 아무래도 구라치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대놓고정말이냐?’고 물어볼 수는 없었다. 어찌 됐건 그런 설러벌을 재미있어 하면서…… 새끼와 나는 걔들을 닮아갔다.

우선은 나팔바지다. 교복바지를, 세탁소 아주머니한테 부탁해서 밑동이 넓은 나팔바지로 만들어 입었다. 전부터, 걔들이 걸을 때마다 바람을 휘젓듯 펄럭거리는 나팔바지가 늘 부러웠었다.

머리도 스포츠형으로 길렀다. 학교 규정대로라면 바리캉으로 빡빡 밀어야 하지만 사실, 그건 너무 촌스러웠다. 바람 부는 날 같이 부시기를 쫄 때 바람에 날리던 걔들의 장발은 얼마나 폼 나던가.

교복바지도 그렇고 길어진 머리칼도 그렇고, 새끼와 나는 그런 모습으로 교문을 통과하기는 힘들었다. 교문에는 수시로 학생과 꼰대들이 교대로 나와 지켜서기 때문이다. 새끼와 나는 교문 대신에 뒷담을 넘거나 개구멍을 이용했다.

새끼와 나는 교모 안창을 뜯어내고 그 안에 부시기를 숨기는 방법도 터득했고, 미제 면도날을 구해 왼쪽 발목 안에 대고 양말을 신는무장도 마쳤다. 그래야 만일의 경우에 오른손으로 그것을 재빨리 빼내어 사용할 수 있단다.

물론 그럴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건 학교에서 퇴학당할 일이기 때문이다. 단지 면도날을 몸에 지니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든든할 뿐이었다.

공설운동장의 양아치들도 제 각각 잭나이프니 송곳이니, 하나씩은 숨겨갖고들 있었다. 걔들도 굳이 사용하려기보다는 그것을 갖고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는 차원 같았다.

그래야만 밤의 공설운동장을 휘어잡을 수 있지 않나?

괜히 멋모르고, 먼 동네의 애들이 공설운동장에 놀러와 거들먹거렸다가는 걔들한테 다구리 맞고 발길에 차인 똥개처럼 쫓겨나기 일쑤였다.

더러는, ‘애인과 데이트하러 온 사내를 따로 불러서 좋은 말로 부시기 살 돈을 꾸기도 하는 걔들.

그러한 일들은 걔들에게 이 있음으로써 가능했다.

새끼와 나는 걔들한테서 그런 을 배우고 있었다.

 

.

4년 전 내가 이 도시로 유학 오면서, 처음 듣는 이상한 단어 중 하나가 이었다. 이 도시의 애들은 그 단어를 입에 달고 살았다.

도대체 무슨 뜻인지 궁금했으나 물어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 즈음 나는 기죽어 지내는 멸건놈이었으니까.

몇 달쯤 지나자 그 낯선 단어의 뜻을 짐작하게 되었다.

배짱과 비슷하지만 다른 구석이 있는 단어였다. ‘섬뜩한 적의를 품은 배짱이라고나 할까?

체구가 좋다거나 힘이 세다거나 하는 것은 과 상관이 없었다. 오히려 왜소한 체구를 가진 경우에 있는 존재가 되기 쉬웠다. 아무래도 체구나 힘이 달리니 나를 잘못 건드렸다가는 큰 일 날 줄 알라는 섬뜩한 적의를 예비하게 되는 게 아닐까?

그렇다고, 왜소한 체구를 가진 애라면 누구나 이 있는 존재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스스로 이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이 있는 존재가 되려면 다른 있는 존재들과 어울리면서 그 을 자연스레 체득해야 했다. 세계사 시간에 배운 중세 유럽의 도제식 교육처럼 말이다.

새끼와 내가 밤마다 공설운동장에서 어울리는 양아치들이야말로 있는 존재들의 전형이 아닐까?

외양부터 드러나는 섬뜩한 적의.

얼굴의 반 가까이 가리는 장발과 걸을 때마다 펄럭소리 요란한 나팔바지. 그러면서 입에 달고 사는 음담, 수시로 쪼아대는 부시기. 게다가 각자 몸에 숨기고 있는 잭나이프나 송곳 같은 흉기들.

누가 잘못 건드렸다가는 험한 일을 겪을 것임을 직감케 하는 그 섬뜩한 분위기.

물론 새끼와 나도 걔들을 따라하고 있지만 아직은 조심스런 수준이었다. 감히 긴 장발은 못하고 스포츠형으로 한다거나, 나팔바지라 해도 그저 밑동만 조금 넓힌 교복바지라거나, 잭나이프 같은 것은 엄두내지 못하고 숨기기 쉬운 면도날이라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여하튼 새끼와 나는, 양아치인 걔들과는 다른 학생 신분이니까.

이상한 표현이지만 그렇기에 아무래도 새끼와 나의은 조심스런 이었다.

그렇기에 머지않아 정말 깡 있는 놈인지, ‘멸건 놈인지, 시험대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런 날이 다가오고야 말았다.

 

양아치들이 어느 날 한 번 놔야지, 그럼!’하면서 키득키득 한참 웃었는데 그 때는 무슨 뜻인지 몰랐다가, 며칠 후 다시 한 번 놔야 하지 않겠어?’하면서 다시 킬킬킬 웃는 모습들일 때 나는 깨달았다.

그것은 빠구리를 놓자는 뜻이었다. 깔치 하나를 구해 집단으로 그 짓을 하자는 뜻.

새끼는 그런 뜻의 말들이 오가는 줄도 모르고 부시기를 쫘서 도넛 모양 연기를 띄워 올리기 바빴으나 나는 등줄기로 식은땀을 흘렸다.

그렇다.

그런 말들이 오갈 때부터, 양아치들과 거리를 두고 서서히 멀어져야 했다.

내가 새끼한테 걔들이 그런 준비를 하고 있음을 알리고 기말고사 시험공부를 해야 한다며 공설운동장에 나오는 일을 그만 두어야 했다. 물론 기말고사는 한 달 뒤에 치러지지만.

그런데 그러지를 못했다.

내 가우 때문이었다. 새끼 앞에서 내가 멸건 놈처럼 보일 수 없다는 가우.

설마?’하는 마음도 있었다. 양아치들이야 늘 깔치 먹은 얘기를 입에 달고 사는데…… 아무래도 심심해서 구라치는 것 같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자.

그러다가 그 날을 맞이한 거다.

 

그 날도 바람이 불었다.

밤공기가 차가와져 공설운동장에 나오는 사람들이 부쩍 줄어들었는데, 그 날 밤 바람까지 불자 양아치들과 우리와 미친년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미친년이 공설운동장 한 구석에 선, 오래 된 미루나무 아래에 앉아있었다. 가마니 한 장을 바람막이 삼아 두르고서, 둘레가 두 발이 넘는 그 미루나무를 벽처럼 등 뒤로 기댄 채로였다. 어디서 굴러 들어왔는지, 며칠 전부터 공설운동장을 맴돈다는 년. 년을 훤한 낮에 보았다는 누군가의 귀띔에 의하면 인물도 좋다고 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지만 그런 대로 옷가지들도 정갈하게 차려입은 년. 산발에 짝짝이 신발만 아니었더라면 정상인으로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실연에 미치면서…… 가출한 게 아닐까?

년은 자기를 에워싼 우리 패거리들이 무섭지도 않은지 간간이 소리없이 웃었다. 물론 어두운 밤이라, 년의 흰 치아들이 씨익모양 짓는 것을 보며 짐작했다.

양아치들 중 한 녀석이 년이 두르고 있는 가마니를 뺏어 땅바닥에 깐 뒤, 년의 상체를 잡아 눕혔다. 그래도 연실 웃는 년.

마침내 녀석이 허겁지겁 바지를 내리더니…… 년의 치마를 벗기면서 덮쳤다.

짐승의 신음소리를 내면서 하체를 격하게 움직이는 녀석. 내 옆에서 꿀꺽마른 침 삼키는 소리가 났다. 새끼였다.

아흐응 아흐으으흥…….”

년이 고양이 소리를 내며 녀석과 한 덩어리 몸이 되어 퍼드럭거렸다. 그런 어둠 속 광경을 에워싸고 있는데…… 다른 양아치 녀석이 자기 바지의 혁대를 풀면서 두 번째 타자로 뛰려는 채비다.

공설운동장에 바람이 거세지며 미루나무 잎들이 무수히 떨어져 날렸다.

그 중 두어 잎이 년을 덮친 녀석의 허연 엉덩이에 떨어졌다가, 격렬한 엉덩이 움직임 탓에 이내 아래로 미끄러져 버렸다. 얼마 후 그 녀석이 끄응!’외마디 소리를 내며 기절한 듯 년의 몸 위에 엎드려 있자, 두 번째 타자로 준비하고 선 녀석이 이런 말을 하며 나섰다.

내 차례야.”

첫 번째 녀석이 바지를 추스르며 물러나고 두 번째 그 녀석이 하체를 허옇게 드러내고 자빠져 있는 년에게 달려들었다. 그 광경이 뒷다리들을 쩍 벌리고 죽어 자빠진 개구리한테 달려드는 가재와 똑 같았다.

여기저기서 바지의 혁대를 풀면서 다음 순서를 차지하려는데 그 때 내 옆의 새끼가 뇌까렸다. 분명한 발음으로.

이번에는 내 차례.”

끼득끼득 웃으면서 양보하는 양아치들.

나는 더 이상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마려운 오줌이라도 누고 오려는 듯 구부정한 자세로 물러나…… 바람 휘몰아치는 어둠 속을 걸었다.

공설운동장을 벗어났다.

그 때 통금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늑대의 울음처럼 도시의 밤하늘에 퍼졌다.

으허엉으허엉…….”

구불구불하고 비좁은 산동네 골목으로 해서 하숙집으로 들어왔다. 방의 불도 안 켠 채 옷을 갈아입고는, 방문 고리를 안으로 잠근 뒤 이불을 뒤집어쓰고 억지 잠을 청했다.

 

새끼는승냥이가 되었다.

미친년을 집단으로 빠구리 놓던 그 날 밤 이후 얼마 안 지나 양아치들이 새끼한테 붙여주었다는 별명 승냥이'.

나는 그 날 밤 이후 창가 자리에서 복도 쪽 자리로 옮겼으므로 그런 새끼에 관한 소문은 다른 반의있는 애들한테서 들었다. 원래 제멋대로 자리를 바꿀 수 없지만 새끼와 가까이 있기 두려워 복도 쪽의 애와 자리를 맞바꾼 것이다. 그 애는 햇살 따듯한 창가 자리라며 좋아했다.

만일 담임선생이 뭐라 한다면 그 애가 제가 몸이 안 좋아서 따듯한 자리에 앉았으면 했거든요.’이라고 둘러대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담임선생은 뜻밖에 별 말이 없었다. 바빠서인지, 아니면 학생들끼리 자리 바꾼 것도 모를 만큼 무심한지, 둘 중 하나다.

내가 멀리 떨어져 앉자, 새끼가 점심시간에 와서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새끼 얼굴을 마주보기도 두려워, 식곤증으로 졸린 듯 반쯤 눈감고 말했다.

기말고사를 잘 봐야 하거든. 눈부신 창가 자리보다는 여기가 공부 집중이 잘 되겠더라고. 고향 부모님이, 지난 번 중간고사 성적이 엉망이라고 하도 난리를 쳐서…….”

둘러댄 말이지만 반쯤은 맞는 말이다. 새끼가 뭐라 한 마디 하려다가 그냥 돌아설 때 그 등에 대고 이런 말도 덧붙였다.

당분간 공설운동장에도 못 나갈 것 같다야.”

며칠이 지났다.

교실 창가로 들어오는 아침햇살이 달라졌다. 초가을 때에는 1교시 전부터 강하게 들이쳤는데 이제는 2교시가 되어야 약해진 기세로 스며들 듯 한다.

나는, 남의 자리가 된 그 창가 자리를 넌지시 살피며 그런 변화를 깨달았다. 그렇다. 지학시간에 배웠듯이, 가을에서 겨울로 계절이 바뀌려하면서 해의 고도가 낮아진 탓이다.

학기 초에 비해 확실히 한기가 도는 교실.

특히 오전 시간이 그랬다. 그러자, 추위를 타는 애들이 햇볕을 쬐려고 창가로 쉬는 시간마다 몰려들었다. 물론 나는 그냥 어둑한 복도 쪽 내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는데…… 어느 날 무심히 창가 쪽을 보다가 새끼와 눈길이 마주쳤다. 그 짧은 순간 이상하게 빛나던 잿빛 눈동자.

바로승냥이눈이었다. 공설운동장의 양아치들이 새끼한테 딱 어울리는 기막힌 별명을 붙여준 것이다. 암컷의 맛을 본 뒤 발정 난 승냥이.

잠시 후, 새끼는 두 눈을 감고서 두 팔을 책상 위에 올려 베개처럼 만든 뒤 엎드려 자는쉬는 시간 10분을 최대한 활용하는 쪽잠에 들었다.

쉬는 시간마다 쪽잠을 자는 새끼의 모습.

혹시 밤늦도록 빠구리 놓느라 밤잠을 설친 게 아닐까?

 

그 짐작이 맞았다.

새끼는 공설운동장의 색골 승냥이로 소문이 났다.

공순이건 식모건, 일단 접근하면 거의 백 퍼센트 당일치기에 성공한단다. 생각지도 못한 새끼의 놀라운 변신이다. 자신도 몰랐던 잠재능력을 찾은 걸까?

하긴, 새끼는 촌놈 치고는 잘생긴 얼굴이다. 이태리 무법자 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프랑코네로를 연상케 하는 얼굴인데 흔치 않은 잿빛 눈동자까지 닮았을 줄이야.

그런 매력적인 외모에 명문고 학생이라는 신분, 그리고 까지 갖추었으니 어떤 여자이건 한눈에 반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예전에 나를 따라서 주위를 살핀 뒤 얼른 그것을 꺼내어 밤바람 쐬어 주던 장난들을 생각하면그런 스릴 있는 장난을 고안해냈다고 새끼한테 가우 잡던 일들을 생각하면 나는 너무 쪽팔리면서 비참해지기까지 한다.

진짜 멸건 놈은 나였다.

나는 그 집단으로 빠구리 놓던, 바람 불던 날이후로 밤마다 내 하숙방의 창문을 담요로 가리고 지낸다. 공설운동장 쪽으로 난 창문으로 방의 불빛이 내비치면 걔들이 나를 찾아올까 두려워서다. 하숙집 아주머니한테 혹시 누가 저를 찾아오면 무조건 어디 가고 없다고 얘기 좀 해 달라.’는 당부도 단단히 해 놓았다.

양아치들이야 굳이 나를 찾아올 것 같지는 않고 문제는 새끼다. 나와 친하게 지내던 때 수시로 내 하숙방에 놀러오곤 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방문도 안으로 단단히 걸었다.

그러나…… 찾아오는 일이 없는 새끼.

그래도 경계를 늦추어서는 안 된다. 여하튼 해가 져서 서쪽 동네에서 생겨난 시커먼 땅거미가 스믈스믈 우리 산동네까지 기어 올라오면 나는 창을 담요로 가리고 방문까지 잠근다.

창문을 열면 거대한 어둠의 궁전처럼 가슴 뛰게 하던 공설운동장의 밤 풍경을 잃었다.

다른 먼 동네로 하숙을 옮겨야 하나?

고민이 시작되었다.

 

기말고사가 시작되었다.

섬뜩한 일이 생겼다. 새끼가 결석했다.

처음에는 그 사실을 몰랐는데, 시험기간 중에는 책걸상 배열을 다시 해 출석번호순으로 앉기 때문이다. 예전의 창가 자리로 내 자리가 배정되었기에 공교롭다는 생각으로 그럼, 새끼는 어느 자리에 앉나?’둘러보았더니 끝내 보이지 않고 다만 교탁 부근 자리 하나가 빈 채로 1교시 시험이 치러지던 것이다. 그 자리가 바로 새끼가 결석한 자리였다.

2교시에도 새끼는 나타나지 않았다.

 

닷새간의 기말고사가 끝났다.

그 동안 시험공부 하느라고 고생들 많았다는 뜻인지, 3교시로 시험이 종료되자 정상수업으로 잇는 일 없이 그대로 일과를 끝냈다.

내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이번에도 잘 치른 시험 같지 않았다.

시골 고향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적에는 6년 간 1등을 놓치지 않던 나다. 반장도 도맡아 했다.

예전에는 그랬었다.

완전 정복’‘필수’ ‘정석’‘에센스등 갖가지 제목의 참고서나 문제집으로 터질 듯한 책가방을 들고서 교문을 나선다.

이제는 교복바지도 예전처럼 평범한 바지로 환원시켜 놓았다. 머리도 다시 빡빡 깎아 버렸다.

내 그림자를 끌고서 하숙집으로 향하는 발길.

머리가 지끈거린다. 요 며칠 간의 벼락치기 공부에 몸살이 난 걸까?

한낮의 산동네는 적막하다. 하숙집으로 들어와 세수도 않고 그냥 방에 누워 버렸다. 여전히 지끈거리는 머리. 이마에 열도 나는 것 같다.

어떡하나.

갑갑한 마음에 상체를 일으켜 창문을 열었다.

폭우처럼 쏟아지는 한낮의 햇살에 공설운동장이 침몰할 것 같았다. 침몰하는 거선의 돛대처럼 한구석에 서 있는 바람 불던 밤의 그 미루나무. 그 너머, 새끼가 자취하는 동네 풍경.

새끼가 병으로 자퇴한단다.

담임한테 학급일지를 도장 받으러 교무실에 갔다 온 주번 애가 전한 사실이다. 햇살에 눈부신 공설운동장이 달빛이 넘치는 야산 풍경처럼 보이더니 수컷 승냥이가 등장했다. 바람이 불고 있었다. 암컷들을 쫓는 승냥이의 음산한 잿빛 눈, 바람에 찢기듯 날리는 갈기, 드러낸 흰 이빨들, 그리고 마침내 그 부분이 썩어가고 있었다.

매독 걸린 승냥이…….”

나는 창문을 닫고 다시 누웠다. 몸에 오한이 심해지며 낮은 하숙방 천장이 오르락내리락, 시작했다. 나도 공설운동장을 따라 침몰하는 것 같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기말고사가 시작되었다.

섬뜩한 일이 생겼다. 새끼가 결석했다.

처음에는 그 사실을 몰랐는데, 시험기간 중에는 책걸상 배열을 다시 해 출석번호순으로 앉기 때문이다. 예전의 창가 자리로 내 자리가 배정되었기에 공교롭다는 생각으로 그럼, 새끼는 어느 자리에 앉나?’둘러보았더니 끝내 보이지 않고 다만 교탁 부근 자리 하나가 빈 채로 1교시 시험이 치러지던 것이다. 그 자리가 바로 새끼가 결석한 자리였다.

2교시에도 새끼는 나타나지 않았다.

 

닷새간의 기말고사가 끝났다.

그 동안 시험공부 하느라고 고생들 많았다는 뜻인지, 3교시로 시험이 종료되자 정상수업으로 잇는 일 없이 그대로 일과를 끝냈다.

내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이번에도 잘 치른 시험 같지 않았다.

시골 고향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적에는 6년 간 1등을 놓치지 않던 나다. 반장도 도맡아 했다.

예전에는 그랬었다.

완전 정복’‘필수’ ‘정석’‘에센스등 갖가지 제목의 참고서나 문제집으로 터질 듯한 책가방을 들고서 교문을 나선다.

이제는 교복바지도 예전처럼 평범한 바지로 환원시켜 놓았다. 머리도 다시 빡빡 깎아 버렸다.

내 그림자를 끌고서 하숙집으로 향하는 발길.

머리가 지끈거린다. 요 며칠 간의 벼락치기 공부에 몸살이 난 걸까?

한낮의 산동네는 적막하다. 하숙집으로 들어와 세수도 않고 그냥 방에 누워 버렸다. 여전히 지끈거리는 머리. 이마에 열도 나는 것 같다.

어떡하나.

갑갑한 마음에 상체를 일으켜 창문을 열었다.

폭우처럼 쏟아지는 한낮의 햇살에 공설운동장이 침몰할 것 같았다. 침몰하는 거선의 돛대처럼 한구석에 서 있는 바람 불던 밤의 그 미루나무. 그 너머, 새끼가 자취하는 동네 풍경.

새끼가 병으로 자퇴한단다.

담임한테 학급일지를 도장 받으러 교무실에 갔다 온 주번 애가 전한 사실이다. 햇살에 눈부신 공설운동장이 달빛이 넘치는 야산 풍경처럼 보이더니 수컷 승냥이가 등장했다. 바람이 불고 있었다. 암컷들을 쫓는 승냥이의 음산한 잿빛 눈, 바람에 찢기듯 날리는 갈기, 드러낸 흰 이빨들, 그리고 마침내 그 부분이 썩어가고 있었다.

매독 걸린 승냥이…….”

나는 창문을 닫고 다시 누웠다. 몸에 오한이 심해지며 낮은 하숙방 천장이 오르락내리락, 시작했다. 나도 공설운동장을 따라 침몰하는 것 같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새끼는승냥이가 되었다.

미친년을 집단으로 빠구리 놓던 그 날 밤 이후 얼마 안 지나 양아치들이 새끼한테 붙여주었다는 별명 승냥이’.

나는 그 날 밤 이후 창가 자리에서 복도 쪽 자리로 옮겼으므로 그런 새끼에 관한 소문은 다른 반의있는 애들한테서 들었다. 원래 제멋대로 자리를 바꿀 수 없지만 새끼와 가까이 있기 두려워 복도 쪽의 애와 자리를 맞바꾼 것이다. 그 애는 햇살 따듯한 창가 자리라며 좋아했다.

만일 담임선생이 뭐라 한다면 그 애가 제가 몸이 안 좋아서 따듯한 자리에 앉았으면 했거든요.’이라고 둘러대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담임선생은 뜻밖에 별 말이 없었다. 바빠서인지, 아니면 학생들끼리 자리 바꾼 것도 모를 만큼 무심한지, 둘 중 하나다.

내가 멀리 떨어져 앉자, 새끼가 점심시간에 와서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새끼 얼굴을 마주보기도 두려워, 식곤증으로 졸린 듯 반쯤 눈감고 말했다.

기말고사를 잘 봐야 하거든. 눈부신 창가 자리보다는 여기가 공부 집중이 잘 되겠더라고. 고향 부모님이, 지난 번 중간고사 성적이 엉망이라고 하도 난리를 쳐서…….”

둘러댄 말이지만 반쯤은 맞는 말이다. 새끼가 뭐라 한 마디 하려다가 그냥 돌아설 때 그 등에 대고 이런 말도 덧붙였다.

당분간 공설운동장에도 못 나갈 것 같다야.”

며칠이 지났다.

교실 창가로 들어오는 아침햇살이 달라졌다. 초가을 때에는 1교시 전부터 강하게 들이쳤는데 이제는 2교시가 되어야 약해진 기세로 스며들 듯 한다.

나는, 남의 자리가 된 그 창가 자리를 넌지시 살피며 그런 변화를 깨달았다. 그렇다. 지학시간에 배웠듯이, 가을에서 겨울로 계절이 바뀌려하면서 해의 고도가 낮아진 탓이다.

학기 초에 비해 확실히 한기가 도는 교실.

특히 오전 시간이 그랬다. 그러자, 추위를 타는 애들이 햇볕을 쬐려고 창가로 쉬는 시간마다 몰려들었다. 물론 나는 그냥 어둑한 복도 쪽 내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는데…… 어느 날 무심히 창가 쪽을 보다가 새끼와 눈길이 마주쳤다. 그 짧은 순간 이상하게 빛나던 잿빛 눈동자.

바로승냥이눈이었다. 공설운동장의 양아치들이 새끼한테 딱 어울리는 기막힌 별명을 붙여준 것이다. 암컷의 맛을 본 뒤 발정 난 승냥이.

잠시 후, 새끼는 두 눈을 감고서 두 팔을 책상 위에 올려 베개처럼 만든 뒤 엎드려 자는쉬는 시간 10분을 최대한 활용하는 쪽잠에 들었다.

쉬는 시간마다 쪽잠을 자는 새끼의 모습.

혹시 밤늦도록 빠구리 놓느라 밤잠을 설친 게 아닐까?

 

그 짐작이 맞았다.

새끼는 공설운동장의 색골 승냥이로 소문이 났다.

공순이건 식모건, 일단 접근하면 거의 백 퍼센트 당일치기에 성공한단다. 생각지도 못한 새끼의 놀라운 변신이다. 자신도 몰랐던 잠재능력을 찾은 걸까?

하긴, 새끼는 촌놈 치고는 잘생긴 얼굴이다. 이태리 무법자 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프랑코네로를 연상케 하는 얼굴인데 흔치 않은 잿빛 눈동자까지 닮았을 줄이야.

그런 매력적인 외모에 명문고 학생이라는 신분, 그리고 까지 갖추었으니 어떤 여자이건 한눈에 반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예전에 나를 따라서 주위를 살핀 뒤 얼른 그것을 꺼내어 밤바람 쐬어 주던 장난들을 생각하면그런 스릴 있는 장난을 고안해냈다고 새끼한테 가우 잡던 일들을 생각하면 나는 너무 쪽팔리면서 비참해지기까지 한다.

진짜 멸건 놈은 나였다.

나는 그 집단으로 빠구리 놓던, 바람 불던 날이후로 밤마다 내 하숙방의 창문을 담요로 가리고 지낸다. 공설운동장 쪽으로 난 창문으로 방의 불빛이 내비치면 걔들이 나를 찾아올까 두려워서다. 하숙집 아주머니한테 혹시 누가 저를 찾아오면 무조건 어디 가고 없다고 얘기 좀 해 달라.’는 당부도 단단히 해 놓았다.

양아치들이야 굳이 나를 찾아올 것 같지는 않고 문제는 새끼다. 나와 친하게 지내던 때 수시로 내 하숙방에 놀러오곤 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방문도 안으로 단단히 걸었다.

그러나…… 찾아오는 일이 없는 새끼.

그래도 경계를 늦추어서는 안 된다. 여하튼 해가 져서 서쪽 동네에서 생겨난 시커먼 땅거미가 스믈스믈 우리 산동네까지 기어 올라오면 나는 창을 담요로 가리고 방문까지 잠근다.

창문을 열면 거대한 어둠의 궁전처럼 가슴 뛰게 하던 공설운동장의 밤 풍경을 잃었다.

다른 먼 동네로 하숙을 옮겨야 하나?

고민이 시작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그 날도 바람이 불었다.

밤공기가 차가와져 공설운동장에 나오는 사람들이 부쩍 줄어들었는데, 그 날 밤 바람까지 불자 양아치들과 우리와 미친년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미친년이 공설운동장 한 구석에 선, 오래 된 미루나무 아래에 앉아있었다. 가마니 한 장을 바람막이 삼아 두르고서, 둘레가 두 발이 넘는 그 미루나무를 벽처럼 등 뒤로 기댄 채로였다. 어디서 굴러 들어왔는지, 며칠 전부터 공설운동장을 맴돈다는 년. 년을 훤한 낮에 보았다는 누군가의 귀띔에 의하면 인물도 좋다고 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지만 그런 대로 옷가지들도 정갈하게 차려입은 년. 산발에 짝짝이 신발만 아니었더라면 정상인으로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실연에 미치면서…… 가출한 게 아닐까?

년은 자기를 에워싼 우리 패거리들이 무섭지도 않은지 간간이 소리없이 웃었다. 물론 어두운 밤이라, 년의 흰 치아들이 씨익모양 짓는 것을 보며 짐작했다.

양아치들 중 한 녀석이 년이 두르고 있는 가마니를 뺏어 땅바닥에 깐 뒤, 년의 상체를 잡아 눕혔다. 그래도 연실 웃는 년.

마침내 녀석이 허겁지겁 바지를 내리더니…… 년의 치마를 벗기면서 덮쳤다.

짐승의 신음소리를 내면서 하체를 격하게 움직이는 녀석. 내 옆에서 꿀꺽마른 침 삼키는 소리가 났다. 새끼였다.

아흐응 아흐으으흥…….”

년이 고양이 소리를 내며 녀석과 한 덩어리 몸이 되어 퍼드럭거렸다. 그런 어둠 속 광경을 에워싸고 있는데…… 다른 양아치 녀석이 자기 바지의 혁대를 풀면서 두 번째 타자로 뛰려는 채비다.

공설운동장에 바람이 거세지며 미루나무 잎들이 무수히 떨어져 날렸다.

그 중 두어 잎이 년을 덮친 녀석의 허연 엉덩이에 떨어졌다가, 격렬한 엉덩이 움직임 탓에 이내 아래로 미끄러져 버렸다. 얼마 후 그 녀석이 끄응!’외마디 소리를 내며 기절한 듯 년의 몸 위에 엎드려 있자, 두 번째 타자로 준비하고 선 녀석이 이런 말을 하며 나섰다.

내 차례야.”

첫 번째 녀석이 바지를 추스르며 물러나고 두 번째 그 녀석이 하체를 허옇게 드러내고 자빠져 있는 년에게 달려들었다. 그 광경이 뒷다리들을 쩍 벌리고 죽어 자빠진 개구리한테 달려드는 가재와 똑 같았다.

여기저기서 바지의 혁대를 풀면서 다음 순서를 차지하려는데 그 때 내 옆의 새끼가 뇌까렸다. 분명한 발음으로.

이번에는 내 차례.”

끼득끼득 웃으면서 양보하는 양아치들.

나는 더 이상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마려운 오줌이라도 누고 오려는 듯 구부정한 자세로 물러나…… 바람 휘몰아치는 어둠 속을 걸었다.

공설운동장을 벗어났다.

그 때 통금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늑대의 울음처럼 도시의 밤하늘에 퍼졌다.

으허엉으허엉…….”

구불구불하고 비좁은 산동네 골목으로 해서 하숙집으로 들어왔다. 방의 불도 안 켠 채 옷을 갈아입고는, 방문 고리를 안으로 잠근 뒤 이불을 뒤집어쓰고 억지 잠을 청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

4년 전 내가 이 도시로 유학 오면서, 처음 듣는 이상한 단어 중 하나가 이었다. 이 도시의 애들은 그 단어를 입에 달고 살았다.

도대체 무슨 뜻인지 궁금했으나 물어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 즈음 나는 기죽어 지내는 멸건놈이었으니까.

몇 달쯤 지나자 그 낯선 단어의 뜻을 짐작하게 되었다.

배짱과 비슷하지만 다른 구석이 있는 단어였다. ‘섬뜩한 적의를 품은 배짱이라고나 할까?

체구가 좋다거나 힘이 세다거나 하는 것은 과 상관이 없었다. 오히려 왜소한 체구를 가진 경우에 있는 존재가 되기 쉬웠다. 아무래도 체구나 힘이 달리니 나를 잘못 건드렸다가는 큰 일 날 줄 알라는 섬뜩한 적의를 예비하게 되는 게 아닐까?

그렇다고, 왜소한 체구를 가진 애라면 누구나 이 있는 존재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스스로 이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이 있는 존재가 되려면 다른 있는 존재들과 어울리면서 그 을 자연스레 체득해야 했다. 세계사 시간에 배운 중세 유럽의 도제식 교육처럼 말이다.

새끼와 내가 밤마다 공설운동장에서 어울리는 양아치들이야말로 있는 존재들의 전형이 아닐까?

외양부터 드러나는 섬뜩한 적의.

얼굴의 반 가까이 가리는 장발과 걸을 때마다 펄럭소리 요란한 나팔바지. 그러면서 입에 달고 사는 음담, 수시로 쪼아대는 부시기. 게다가 각자 몸에 숨기고 있는 잭나이프나 송곳 같은 흉기들.

누가 잘못 건드렸다가는 험한 일을 겪을 것임을 직감케 하는 그 섬뜩한 분위기.

물론 새끼와 나도 걔들을 따라하고 있지만 아직은 조심스런 수준이었다. 감히 긴 장발은 못하고 스포츠형으로 한다거나, 나팔바지라 해도 그저 밑동만 조금 넓힌 교복바지라거나, 잭나이프 같은 것은 엄두내지 못하고 숨기기 쉬운 면도날이라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여하튼 새끼와 나는, 양아치인 걔들과는 다른 학생 신분이니까.

이상한 표현이지만 그렇기에 아무래도 새끼와 나의은 조심스런 이었다.

그렇기에 머지않아 정말 깡 있는 놈인지, ‘멸건 놈인지, 시험대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런 날이 다가오고야 말았다 

양아치들이 어느 날 한 번 놔야지, 그럼!’하면서 키득키득 한참 웃었는데 그 때는 무슨 뜻인지 몰랐다가, 며칠 후 다시 한 번 놔야 하지 않겠어?’하면서 다시 킬킬킬 웃는 모습들일 때 나는 깨달았다.

그것은 빠구리를 놓자는 뜻이었다. 깔치 하나를 구해 집단으로 그 짓을 하자는 뜻.

새끼는 그런 뜻의 말들이 오가는 줄도 모르고 부시기를 쫘서 도넛 모양 연기를 띄워 올리기 바빴으나 나는 등줄기로 식은땀을 흘렸다.

그렇다.

그런 말들이 오갈 때부터, 양아치들과 거리를 두고 서서히 멀어져야 했다.

내가 새끼한테 걔들이 그런 준비를 하고 있음을 알리고 기말고사 시험공부를 해야 한다며 공설운동장에 나오는 일을 그만 두어야 했다. 물론 기말고사는 한 달 뒤에 치러지지만.

그런데 그러지를 못했다.

내 가우 때문이었다. 새끼 앞에서 내가 멸건 놈처럼 보일 수 없다는 가우.

설마?’하는 마음도 있었다. 양아치들이야 늘 깔치 먹은 얘기를 입에 달고 사는데…… 아무래도 심심해서 구라치는 것 같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자.

그러다가 그 날을 맞이한 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