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후회한다.
그 날 청소검사 때 걔의 뒤에 있던 칠판이 청소가 안 되어 있다고, 뭣 하러 말했나 싶다. 판서를 그냥 내버려둔다 해도, 다음 날 아침이면 주번 애가 1교시 수업 전에 지우개로 스윽스윽 닦아버렸을 텐데……. 힘도 별로 들지 않을뿐더러 제일 간단한 청소가 칠판 청소인데 그걸 뭣 하러 지적했는지.
내가 부질없는 짓을 감행한 까닭은, 걔와 실장에 대해 순간적으로 분노가 치민 때문이 아닐까? 정작 자기 청소 구역도 모르면서 마치 담임처럼 교단에 서서 위엄을 떨던 걔와, 그런 걔의 힘에 기대어 청소검사를 실시하고는 걔가 ‘잘했다.’고 총평하자 수줍은 얼굴로 미소 짓던 실장에 대해 나도 모르게 분노했던 게다. 그래서 결코 잘한 청소가 아니라는 것을 일러줌으로써 두 사람을 무색하게 만들고 싶었던 게다.
지난 4월초에 내 담당이었던 양동이 물 버리기가 걔를 써클에 가입케 하고 급기야는 한 써클의 데빵으로 이르는 출발점이 된 것처럼, 결국 내가 그 날 칠판 청소가 안 되어 있다고 지적한 게 ‘비극적 사건’의 출발점이 된 셈이다.
‘비극적 사건’은 이러했다.
조회시간이었다. 주번이 교무실로 조회 전달사항을 받으러 간 직후, 전 날 칠판 청소도 안 하고 그냥 간 애가 교실로 들어왔다. 뒤 출입구로 조용히 등교한 것이다. 엎드려 있던 걔가 뒤돌아보며 공책에 적어놓은 그 애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그 애가 발걸음을 멈추며 삭막한 어조로 반문했다.
“난데 왜?”
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3학년 선배들에게 책걸상을 쳐들 때처럼 목덜미가 벌겋게 달아오르며 으르렁거렸다.
“난데 왜 부르냐고? 이 개새끼야, 너 왜 칠판 청소도 안 하고 갔어?”
둘의 말소리밖에 다른 소리는 교실에 존재하지 않았다. 모두 숨죽이고 지켜보았다. 키 작은 애는 과연 만만치 않았다.
“그러는 너는 청소 하니?”
“이런 씨발 놈이…… 씨발 놈아, 나는 운동부야. 유도특기자로 입학한 것 몰라?”
“운동부 연습은 방과 후에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래, 7교시 전 청소시간이 방과 후냐?”
걔가 대꾸를 못했다. 고장이 나 멈춰진 영화 장면의 주인공처럼 동작도 정지됐다. 잠시 후 신음소리 같은 한숨을 내쉬고 나서 천천히 뇌까렸다.
“이런 씨발 놈은…… 한 번…… 혼나야 돼.”
그러면서 곰처럼 큰 걔의 두 손이 마치 살쾡이처럼 작은 애의 어깨를 움켜잡았는데, 순간 무엇이 번쩍이며 ‘팍’ 찔리는 소리가 났다. 걔는 잡아 메치려 했던 두 손을 들며 ‘어허?’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어느 새 작은 애 손에 피 묻은 잭나이프가 쥐어있었다.
그길로 출입문을 ‘콰당!’ 열어젖히고 달아나는 작은 애를, 걔가 왼쪽 가슴을 움켜쥔 채 뒤쫓았다. 요란한 발걸음 소리들을 따라 우리도 복도로 나왔다. 복도 바닥에는 핏방울들이 투두둑 흩뿌려져 있었다.
작은 애가 어느 새 교문 밖으로 달아나, 사라졌다. 걔가 가슴을 움켜쥔 모습으로 비틀비틀 쫓다가 멈추어서더니 이번에는 느리게 돌아가는 영화 장면처럼 천천히 고꾸라졌다.
그 날은 비가 오지 않았다. 모처럼 화창한 날씨였다. 우리가 1층으로 내려가 고꾸라져 있는 걔한테 달려갔을 때 걔 몸 주위로 번지는 검붉은 핏물에 아침 햇빛이 반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