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걔가 교실로 귀환하던 날은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그 탓에 교실이 어둑해져, 자기 책상에 상체를 엎드리고 앉은 걔를 나는 뒤늦게 발견했다. ‘그간 잘 지냈니?’라고 묻기도 그렇고 해서 이렇게 간단히 물었다.
“끝났니?”
걔는 엎드린 채 고개만 끄덕였다. 솔직히, 근신을 받던 얘기라도 듣고 싶었으나 당사자가 그러니 어쩔 수 없었다. 실장도 다가와 ‘별 일 없었니?’하며 말을 걸었으나 걔는 고개만 끄덕거렸다. 예전처럼, 공책 하나 책상 위에 놓고 엎드려 있는 모습으로 조용히 귀환한 것이다.
담임선생이 걔를 교실에서 발견한 것은 사흘 뒤 윤리시간이었다. 담임선생은 걔를 보고 놀라서 물었다.
“너, 언제 들어왔니?”
그 날부터 쉬는 시간마다 인상이 안 좋아 보이는 2학년, 3학년 선배들이 하나 둘 걔를 찾아와 포옹하고 돌아갔다. 그럴 때만 걔는 자기 책상 옆에 바로 서서 실눈으로 잔잔하게 웃으며 포옹에 응했다.
나는 깨달았다. 걔는 이제 한 써클의 데빵이었다. 먼저 데빵이 권고전학을 가면서 걔가 승계한 것이다.
그래서 써클 회원들이 새 데빵의 징계 마침을 축하하고자 다녀가는 모습이었다. 자기들도 징계 받는 중일 텐데 그렇듯 짬을 내어 ‘알현’하고 있었다. 걔는 1학년생임에도 전교를 제압할 어둠의 제왕으로 등극한 것이다. 그럴 만했다. 대단한 체구, 험상궂은 인상, 유도 2단의 실력, 깡다구에다가 ‘근신’일망정 데빵으로서 필수적인 처벌 전력까지 갖추었으니.
장마로 이어지려는지 비가 계속 구질구질 내리는데 어둑한 교실의 뒤편에서 쉬는 시간마다 다져지던 음산한 우의(友誼)들.
실내에 습기가 차 눅눅해진 데다가 갖가지 쓰레기들이 발에 걸릴 정도로 바닥에 넘쳐났다. 걔가 쉬는 시간에 한 마디 외쳤다.
“실장!”
복도로 나가려던 실장이 놀란 얼굴로 달려왔다. 걔가 이어서 말했다.
“요새 청소들 안 하냐? 왜 이리 바닥에 쓰레기 천지냐?”
사실 그런 말은 담임선생이나 할 말이다. 그러나 실장은 답했다.
“애들이 내 말을 안 듣거든.”
“그래? 그럼 오늘 종례하자.”
“알았어.”
실장은 차마 걔가 소집한 종례라는 걸 밝히지 않고 마치 담임선생이 전하는 것처럼 “오늘 종례는 절대 빠져서는 안 된다!”고 쉬는 시간마다 외치는 한편, 칠판 구석에도 ‘오늘 종례 있음’이라 적어 놓았다.
마침내 우리는 오랜만에 종례시간을 가졌다. 전원, 아니 한 명만 빠지고 다 참석했다. 오랜만의 종례라 긴장한 표정들로 앉아 있는 우리를 보며 실장이 비장한 어조로 말했다.
“요즈음 우리 반이 너무 엉망이라서 내가 종례시간을 갖고자 했다. 학급비 얼마 안 되는 것도 제대로 걷히지 않고 교실청소도 개판이라 쓰레기 천지이고……참으로 이런 문제들을 한 번 의논해야 하지 않냐?”
그쯤에서 걔가 “실장, 나 좀 한 마디!”하며 발언권을 얻더니 공식적으로 으르렁거렸다.
“너희들, 실장 말 잘 들어! 말 안 듣는 새끼는 나한테 혼날 각오해! ……그리고 이런 종례 때 그냥 무단으로 불참한 한 새끼는 누구냐? 그 새끼, 내일 각오하라 그래.”
그러고는 자기자리에 앉았다. 너무 세게 앉았는지 의자에서 삐걱 소리까지 났다. 얼어붙은 교실 분위기라 참았지만 사실 배꼽 잡고 웃을 일이었다. 바로 걔 자신이 종례 때 무단 불참을 일삼지 않았나?
우리는 실장의 종례 의도를 눈치 챘다. 실장은 한 번은 짚고 가려고 벼르던 것들을 ‘걔’라는 막강한 힘에 기대어 터뜨리고 있었다.
“독일어 선생님 문제도 그렇다. 그 선생님이 우리 반에 수업 들어오기가 무섭다는 거야. 나를 따로 불러서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 아무리 나이 어린 처녀선생이라도 그렇지, 우리가 너무 말들 안 듣고 놀리는 게 아니니? 앞으로는 ‘쎅스 하다가 독일어로 무엇입니까?’하는 그런 이상한 질문도 삼가고, 책을 읽으라 지시하면 딴 짓 하면서 시간을 끌지 말고 틀리더라도 읽고 그러자고…….”
그 외에도, 평소에 느낀 서너 가지 문제점을 격하게 발언하더니 마지막으로 차분한 어조로 바꿔 말했다.
“오늘 교실청소는 다시 해야겠다. 너무 지저분해서 안 되겠어.”
마치 담임선생이라도 된 듯 그러는 데에 경악한 교실청소 담당 애들. 웅성거리며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걔가 다시 으르렁거리며 진압했다.
“까라면 까, 씨발 놈들아!”
복도청소와 특별구역(학교에서 학급 별로 배정한 실외구역으로서, 우리 반은 강당 앞 정원이다.) 청소 애들은 먼저 귀가하고 교실청소 담당 애들만 남아 다시 청소가 시작되었다.
나는 교실청소 중 ‘막대걸레 닦기’였다. ‘책걸상 나르기’ 애들이 책걸상을 교실 앞 쪽으로 옮김과 동시에 ‘빗자루 쓸기’ 애들이 바닥의 쓰레기들을 교실 뒤쪽으로 쓸어나가고, 그 다음에 ‘막대걸레 닦기’들이 교실바닥을 물걸레질하는 것이다.
막대걸레 다섯 자루의 걸레들이 모두 새까매지고…… 빗자루로 쓸어 모은 쓰레기들의 양도 엄청났다. ‘쓰레기통 비우기’두 명이 쓰레기들을 강당 뒤에 있는 소각장에 갖다 버리느라 네 번이나 쓰레기통을 들고 그 먼 길을 다녀야 했다. ‘책걸상 나르기’애들이 책걸상들을 원 위치로 다시 날라 놓느라 바쁠 때, 막대걸레를 적시느라 먹물처럼 된 양동이 물을 내다버리려고 ‘양동이’가 나섰다. 그 때 걔가 외쳤다.
“그거 내가 할게.”
교단에 의자 놓고 앉아서 청소상황을 지켜보느라 심심했던 게 아닐까? 걔는 땟물이 가득한 양동이를 한 손으로 가벼이 들긴 했는데 ‘복도로 해서 1층까지 내려가 하수구 구멍에 쏟아버리고 와야 하는 지겨운 일’이란 생각이 뒤늦게 들었는지 잠시 주춤거렸다.
‘막대걸레 닦기’‘책걸상 나르기’ ‘빗자루 쓸기’등 교실청소에 속하는 모든 애들이 걔의 다음 행동을 주시했다.
걔는 이윽고, 창가 쪽으로 걸었다. 하지만 전과 다르게 3학년 선배들이 없는 순간을 살핀 뒤 냅다 창밖으로 양동이 물을 쏟아버렸다.
“이러면 빠르잖아?”
교실청소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정말 오랜만에 교실청소가 잘 이뤄졌다. 걔가 교단에 의자 하나 놓고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교실청소가 잘 이뤄지다니……. 오랜만에 실장도 제 역할을 수행하였다. 형식적이긴 하지만 담당 별로 검사를 한 뒤 귀가시켰다.
오후 늦도록 비 내리는 구질구질한 날씨였지만 교실에는 새벽처럼 신선한 공기가 들어찬 듯싶었다. 바닥에 작은 휴지 하나 떨어진 게 없을뿐더러 물걸레로 잘 닦은 덕에 기름칠한 듯 빛났다. 실장과 함께 교단에 서 있던 걔가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총평했다.
“잘했는데!”
실장은 걔 앞에서 수줍은 낯으로 미소 지었다. 그 때 나는 보았다, 청소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한 곳을. 실장과 걔가 서 있는 바로 뒤 칠판이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마지막 수업의 판서가 허연 백묵 자국 그대로 남아 있을 줄이야.
“칠판은 하나도 안 되어 있는데?”
내 말에 걔가 뒤돌아보더니 얼굴이 벌겋게 되어 으르렁거렸다.
“실장, 어떤 씹새끼가 안 한 거야?!”
실장이 급히 ‘청소구역 별 배정표’를 보고 답했다.
“아하, 아까 종례를 받지 않고 그냥 간 애야. 그러니까 이렇게 다시 청소하는 줄도 몰랐겠지.”
“그래? 그 개새끼, 이래저래 손 좀 봐 줘야겠구먼. 어디, 이름 좀 보자고. 내가 실장 대신 혼내줄 거니까. ……어, 이런 새끼가 우리 반에 있었어? 처음 보는 이름 같은데?”
“우리 반 애 이름, 맞아. 얘는 창가 쪽 분단 맨 앞에 앉지.”
실장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일러주었다.
“알았어, 알았어.”
걔가 오랜만에 제대로 몸의 힘을 쓸 기회를 맞았다는 듯, 어깨를 두어 번 으쓱거리며 교단에서 내려섰다. 그 때에 맞춰 주번이 걔와 실장을 두루 보며 물었다.
“이제 교실 문을 닫아도 되니?”
실장은 말로써 허락했고 걔는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허락했다. 마치 둘 다 담임 같았다.
다른 때와 다르게 주번이 교실 앞뒷문을 잠그는 것은 물론, 열린 유리창까지 찾아서 닫는 것을 보며…… 나는 실장과 걔의 발걸음에 맞춰 셋이 함께 복도를 걸었다. 나와 실장은 책가방을 들었지만 걔는 빈손이었다. 잠시 같이 가는 길이지만 분위기가 무거워 내가 웃길 목적으로 걔한테 말을 걸었다.
“너, 책가방 어디에다 두었냐?”
걔가 실눈으로 웃으면서 답했다.
“나는 공책 한 권이면 돼.”
우리 셋은 ‘와하하!’ 웃었다. 어둑한 복도에 웃음소리들이 울려 펴졌다. 1층으로 내려가서 밖으로 나서는 출입구에 섰을 때 걔가 어이없다는 듯, 그러나 자랑스러움이 묻어 있는 음성으로 말했다.
“내가 형들한테 오늘은 먼저 가라고 했는데도 저렇게 교문에서 기다리고 있잖아? 이러니 내가 공부할 시간이 어디 있겠어?”
교문 옆에 같은 써클 회원으로 보이는 선배 서너 명이 서 있었다. 우산 하나를 펼치고 몰려 있어서 시커먼 덩어리 같았다. 걔가 달려가자, 우산 바로 아래로 ‘모신’ 뒤 자기들은 부분적으로 비를 맞으며 함께 사라져갔다. 지켜보던 실장이 걱정스런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오늘 청소도 안 하고 간 애가, 키는 작지만 만만치 않거든. 그 애가 순순히 매 맞을 것 같지 않아 걱정이야. 그 애가 역전 동네에 사는데 거기 깡패들과 친하다는 말이 있어. 우리 반 애들이 그걸 잘 모르지. 왜, 언젠가 누군가 담임 말투를 흉내 내어 담임이 열 받은 적 있었잖아? 바로 그 애야. 그 애가 ‘오토바이 소리 아닌교’ 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