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되었다.

다른 어느 날 밤보다도 떠들썩한 소리들이 사무실 방 쪽에서 나고 있어서, 내 철장 쪽으로 조심스레 다가오는 멍청이의 발걸음 소리는 아예 없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조금은 술 냄새를 풍기는 멍청이였다.

사실은, 멀리 바깥에서부터 곡마단 천막 쪽을 향해 걸어오던 멍청이를 나는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체취는 모르지만 멍청이의 체취라면 아무리 멀어도 맡을 수 있는 내 코였다. 다른 때와 달리 술 냄새까지 풍기는 멍청이인지라 나는 ‘이상하다’는 생각이었다.

이제는 수명이 다 됐는지 화면이 수시로 흔들리다가 제자리를 잡기도 하는 철장 앞의 텔레비전. 그래도 그 화면의 빛들이 천막 안의 어둠을 나지막하게 밀어내고 있어서 가까이 선 멍청이의 하체를 비쳐준다. 그러니까 나는 멍청이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채로 텔레비전을 지켜보고 있다. 그 때 사무실 방 쪽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들. 야아아 슛꼴인!…… 아이구 놓쳤네…… 그래그래 다시 슈웃 꼴!…… 아이구 아이구!

그런 요란한 소리들일 때 멍청이가 철장 문을 찰칵 따고 들어와서는 내 목의 끈을 조심스레 잡아당긴다. 나는 철장을 빠져나와서 둥근 마당에 들어섰다. 내가 보던 텔레비전이 그대로 켜져 있어서 등진 화면 빛에 내가 엎드려 있던 굴속이 훤하다. 멍청이는 잠시 망설이더니 되돌아가서 텔레비전을 꺼 버렸다.

몇 달째 생각 없이 눈뜨고 있던 텔레비전 놈이 잠들었다.

객석에 가득 찬 어둠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멍청이는 철망 울타리에 난 작은 출입구로 나를 끌었다. 이미 열려 있는 출입구이다.

꼴인! 꼴인! 와하하!

다시 요란한 사무실 방 소리들을 뒤로 하고 우리는 천막의 큰 출입구도 빠져나왔다. 이 출입구는 단장이 의자를 놓고 앉아서 입장객들의 돈을 받던 곳이다.

곡마단 천막 안의 어둠 따위는 비교조차 안 될 엄청난 밤의 어둠이 밖에 있었다. 아아 이 맑고 서늘한 밤. 그 언제던가, 기차로 곡마단이 이동하던 어느 날 밤에 열린 차창으로 이런 밤을 본 적이 있었다. 나는 코를 벌름거리며 시원한 밤공기를 들이마신다.

멍청이는 나를 잡아끌어 찝차 안의 뒷좌석에 앉혔다. 단장의 차인지 단장의 퀴퀴한 몸 냄새가 역력하다. 잠시 후 차는 푸르륵 몸을 떨더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우리의 차가 곡마단 천막을 떠나 부근에 있는 마을의 앞 도로를 조용히 지나가고 있을 때에도 ‘야하하! 아이고 저런저런 ’하는 등등의 탄성들이 모든 집들에서 동시에 나다가 가라앉다가 하고 있었다.

마을을 반 넘게 지나쳐 갈 즈음이었다. 어느 집 개 한 마리가 요란하게 짖기 시작하니까 덩달아 다른 개들도 따라 짖기 시작했다. 멍청이는 차의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어느 집 개인지 타다닥 도로를 내딛는 발소리까지 내면서 우리 차를 따라오고 있었다. 나는 허옇게 살아나는 본능으로 이빨들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멍청이는 나를 달래는 ‘자 자 자 자’소리를 내면서 더욱 차의 속력을 높인다.

차는 마을을 훨씬 벗어나 벌판길로 들어섰다.

밤하늘과 그대로 맞붙은 채 펼쳐진 벌판. 곡마단 천막 위에 매단 장식등 같은 별들이 밤하늘에 숱하게 매달려서 반짝이고 있다.

따라오던 개의 발걸음 소리는 사라져 버렸다. 간간이 덜컹거리기도 하면서 달리는 차.

멍청이가 나 들으란 듯이 뇌까린다.

“이상하단 말이야. 어느 때부턴가 네가 사람처럼 느껴진단 말이야. 네가 텔레비전을 보고 있을 때는…… 꼭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 사람 같더라니까. 그러니, 내가 너를 그런 백정 놈한테 팔려가도록 그냥 있겠니?”

나는 지금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어 안타깝다. 다른 때 같았으면 표정 손짓 등을 살피면서 당신이 하는 말의 뜻을 헤아릴 텐데, 당신이 운전하느라 앞을 보며 말하니까 뒷자리의 내가 볼 수가 있어야지. 나 참, 참으로 답답하네 답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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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나는 객석 쪽을 살펴볼 겨를이 없었다.

당신네 사람들에게는 자전거 타는 일이 아무 것도 아니겠지만, 나와 같은 곰에게는 얼마나 고되고 혹독한 일이겠는가. 뭉툭한 앞발로 손잡이를 쥐고 뒷발로는 쉼 없이 페달들을 밟아가며 앞으로 나아간다는 일은 ― 내 몸과 자전거와의 균형까지 조절하면서 쓰러지지 않고 나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복잡하고 힘든 일이겠는가. 그러느라 나는 미처 객석의 상황을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곡마단 사람들의‘곰을 팔아치우자’는 뜻을 감지한 뒤 비로소 나는 객석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자전거 타기가 끝난 뒤 객석을 향해서 멍청이를 따라 인사할 때였다. 살펴보았더니 과연 머리털 허연 노인들 몇몇만 앉아 있었다.

그 옛날 객석이 미어지게 들어차던 손님들이 아니었다.

정말 나는 미련한 곰이었다.

객석의 변화조차 이제야 깨달았으니 말이다. 객석 상황이 그런 즉, 경각에 달려 있는 내 운명이었다.

매일 하던 공연도 사흘에 하루 꼴로 줄여서 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공연을 쉬는 날의 곡마단 안 풍경이란…… 딱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나는 나대로, 곡마단 단원들은 단원들대로 제각기 하릴없이 텔레비전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풍경이니 말이다. 공연자인 나는 굴속 바닥에 엎드려서 철장 밖 텔레비전을, 공연 스텝인 그들은 천막 안 사무실 방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그 방안이 보이지는 않지만 동시에 웃거나 떠드는 소리들이 나는데다가, 플라스틱류(類)가 전열에 달궈진 냄새가 내 코까지 풍겨오므로 텔레비전을 종일 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냄새에, 쉴 새 없이 피워대는 그들의 담배 냄새까지.

어느 날이다. 그 날도 공연 없이 쉬는 날이었다.

그렇게 전해오던 그 방 쪽의 냄새들에 다른 냄새 뭉치가 섞여서 전해왔다. 특유의 체취, 그건 나와 같은 곰들의 냄새였다. 나는 아연 긴장해서 코를 벌름거리며 그 냄새의 방향을 쫓는다.

얼마 후 그 냄새가, 아니 그 냄새를 풍기는 낯선 사내 하나가 나타났다. 곡마단 단장이 그 사내를 데리고 내 철장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낮은 소리로 으르렁거리며 이빨까지 드러내었다.

철장 앞에 선 단장이 그런 나를 보며 말했다.

“얘가 벌써 눈치 챘나 보네요.”

사내가 이빨 새로 침을 찍 갈기며 말했다.

“곰들이 냄새를 잘 맡거든…… 그런데, 얘는 너무 늙었네. 늙은 놈은 약효가 떨어지는데.”

단장이 벌게진 얼굴로 말했다.

“기껏 열 살 정도밖에 안 됐거든요.”

사내가 다시 이빨 새로 침을 찍 갈기며 말했다.

“내가 뭐 한두 해 이런 장사 한 줄 아슈? 탁 보면 안다니까. 최소한 스무 살은 된다니까. 맞지?”

“뭐, 그렇게 보신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만…… 값 좀 잘 쳐 줘요. 그 가격 갖고는 단원들 밀린 임금의 반이나 줄까…….”

“글세…… 웅담이란 게 팔팔한 곰한테 나온 게 좋은 거지, 이렇게 다 늙은 거야 원.”

“발바닥도 알아주는 약이라던데…….”

“뭐, 긴 소리 할 게 뭐 있소? 내가 말한 가격대로 팔 생각이면 넘기고 그렇지 않으면 그만 둡시다.”

“그러면, 하루 지나서 다시 연락할 게요. 우리 단원들의 의견들을 다시 들어봐서 자기들 임금을 덜 받더라도 좋다면 그 가격에라도 하지요.”

“아니, 하루 지나서 연락할 게 뭐 있어? 지금 당장 단원들 의견을 들어보지?”

“‘멍청이’라고, 이 곰을 맡은 녀석이 어디로 샜는지 통 낯짝을 볼 수 없거든요. 그래도 그 녀석이 이 곰의 아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그 녀석 의견을 들어보는 시늉이라도 내야죠.”

사내는 단장과 악수를 하고는, 바깥의 해가 저무는지 어둑해지는 천막을 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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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은 나만 변화시킨 게 아니다.

우리 곡마단 전체를 변화시켰다. 아니, 세상사람 모두를 변화시켰다. 이런 놀라운 사실조차 텔레비전을 통해서 안 것이다.

이 놀라운 사실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처음 곡마단이 등장했을 때 세상 사람들은 환호했다. 나라에 큰 잔치가 베풀어질 때마다 초대받고 가는 단체가 곡마단이었다. 그런 잔치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너나없이 곡마단을 찾아가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맛보았다. 말 그대로 만백성의 사랑을 독차지한 곡마단이었다. 하지만 곡마단의 영광은 근대에 이르러 된서리를 맞는다. 과학문명의 발달과 함께 등장한 영화에 세상 사람들이 매료되기 시작한 때문이다. 곡마단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반 이하로 줄어들었으나 그래도 필름으로 보여주는 착시현상에 불과한 영화에 맞서 생생한 눈앞의 현장이라는 장점 하나로 곡마단은 가까스로 버텨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텔레비전이 등장하여 각 가정에 보급되기 시작하자 영화를 상영하던 극장이란 공간은 물론, 곡마단까지 사라질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이제 소수로 남은 곡마단조차 문 닫을 위기에 처한 것이다.’

내가 있는 곡마단이 그 소수로 남은 곡마단 중 하나일 줄이야! 식자우환이라더니, 텔레비전을 통해 세상일을 알면 알수록 더욱더 깊어지는 나의 절망감이었다.

그래서 내게 주는 먹이가 점점 더 열악해지는 걸까? 사과나 감은 늘 주지만 파인애플이나 벌꿀 같은 별미 먹이는 사라진 지 오래다.

예전에는 말들이 둥근 마당을 도는 공연순서가 있었는데 그조차 사라진지 오래다. 물론 말들의 행방도 보이지 않는다. 말들뿐인가, 간단한 숫자 더하기 게임을 보여주던 염소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거꾸로 서서 두 발로 통을 굴리던 사람도, 입에서 석유 불을 내뿜던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이미 우리 곡마단이 문 닫는 수순에 들어간 것이다.

나는 애써 탈출을 꾀하지 않아도 이 곡마단을 벗어날 판이 아닌가?

이 어처구니없는 현실! 내 앞날은 어떻게 될까? 탈출은커녕 불확실한 앞날을 걱정할 판에 내가 처해 있었다.

알면 알수록 요지경 속인 세상의 가장자리에 내가 엎드려 있었다. 내가 엎드려서 철장 밖에 놓인 텔레비전을 보는 굴속이 바로 세상의 가장자리였다. 내가 ‘곰이 자전거를 타는 유서 깊은 곡마단’의 마지막 모습으로 사라질 참이었다.

텔레비전이 태풍처럼 휩쓸면서 변해버린 세상의 가장자리에 곡마단 천막이 놓여 있고 그 가운데에 내가 누워서 문제의 낡은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 될까?

나는 곡마단 사람들의 거동을 살펴보았다. 그들은 ‘언어적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고 나는 ‘본능적 생각’을 가진 짐승이니까 나는 그들의 떠드는 언어를 알아들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떠들고 있을 때 그 억양이나 어조, 내 쪽을 우울하게 보며 말하는 표정, 깊은 탄식 소리 등등을 종합해서 나는 그 뜻을 파악하였다.

그건 이런 뜻이었다. ‘저 곰 새끼를 팔아치우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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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막혀 죽을 것 같은 절망감에서 나는 곡마단 탈출을 생각해 내었다. 겹겹이 둘러싼 철장 안 생활이, 숨 막혀 죽을 것 같은 절망감 그 자체로 느껴졌는지 모른다. 그간 숱하게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광활한 자연 속의 곰들 장면. 풀들로 덮였거나 눈으로 덮였거나, 광활한 터전에서 내 종족인 곰들은 마음껏 먹이를 사냥하고 잠을 자고 번식하는 모습들이었다. 몹쓸 사냥꾼의 장총에 처참하게 목숨을 잃기도 하지만 그건 문제가 아니었다. 단 한 번이라도 광활한 자연에서 살아볼 수 있다면 나는 여러 번 총을 맞아도 좋았다.

어디서 어떻게 태어났는지 모르는 채로 내 눈에 처음 보인 풍경은 곡마단 안이었으니까. 멍청이의 넓적한 얼굴이 나를 들여다보며 우윳병을 내 아가리에 물려주고 있을 때 주위로 줄무늬 천막이 드리워져 있었는데 나중에 알았지만 바로 내가 평생을 보낼 여기 곡마단 안 풍경이었다.

이런 답답한 천막 안에서 내 삶이 마감될 거라니, 어떻게 해서든지 여기를 탈출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답답한 천막 안 공간도 그렇고…… 항상 똑같이 반복되는 일과에서도 나는 벗어나고 싶었다.

나의 일과는 이랬다.

‘멍청이가 철장 안으로 들어오기 전에 사과 한 알같이 간단한 먹이를 던져준다. 나는 굴속에서 나와 그것들로 요기를 해결한 뒤 멍청이가 목의 줄을 잡아끄는 대로 철장을 나선다. 철장을 나서면 넓고 둥근 마당이다. 이 마당은 촘촘한 철망 울타리로 둘러쳐져 있어서 그 밖으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멍청이가 가져온 자전거에 걸터앉은 나는 두 발로 페달을 밟아가며 둥근 마당을 열 번은 돈다. 그럴 때 숨죽이고 지켜보던 울타리 밖 사람들이 환호하며 박수를 친다. 그런 식으로 서너 가지 곡예를 보이고서 다시 멍청이가 잡아끄는 대로 철장으로 되돌아온다. 철장 안에는 아까와 달리 맛있는 먹이들이 푸짐하게 놓여 있다. 나는 이 먹이들을 먹게 된다는 기대감에 힘든 곡예를 해내는 것이다. 사과, 복숭아, 생선 등등의 맛있는 먹이들을 다 먹고 나서 나는 다시 굴속으로 들어가 엎드린 채 텔레비전을 보다가 잠이 든다.’

멍청이의 검던 머리칼들이 허옇게 센 지금까지, 내 일과가 그러했다.

별 생각 없이 지내온 일과였지만‘생각하기’시작하면서 이제는 지루하고 따분해서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운 일과다. 나는 탈출할 길을 찾고 있다. 언젠가 멍청이가 실수로 철장 문을 닫는 것도 잊고 둥근 마당의 출입문까지 열어 놓은 적이 있었다. 그러했음에도 무심하게 굴속에 엎드려 텔레비전만 보던 나 자신이라니……. 이제는 그런 절호의 기회를 다시는 놓치지 않을 것이다.

여태껏 나를 길러주고 먹여주고 재워준 곳에서 탈출할 생각까지 품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변화인가.

이런 변화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게 텔레비전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텔레비전.

얼마나 기막힌 사물인가.

자기는 아무 생각 없으면서 남의 갖가지 생각들을 다 갖다 보여주는 물건.

자기 수명이 다할 때까지 갖가지 장면들을 하나도 빠트림 없이 보여주는 그 우직함. 게다가, 끝없이 반복해 보여주는 단순함. ‘미련하다’는 말은 우리 같은 곰이 아니라 저런 텔레비전에게 해야 옳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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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부부는, 이랑을 낸 밭에 비닐을 다 깔았다. 이 과정을 생략했다가는 벌떼같이 자라나는 잡초들 탓에 옥수수가 싹을 틔우기도 어려워진다. 800평 밭에 멀칭 작업을 하다가 날이 금세 어둑해졌다. 부부는 밭 한 쪽에 놓은, 5평 되는 컨테이너 농막에서 옷들을 서둘러 갈아입고 차를 타고 밭을 떠났다. 밭에서 차도(車道)까지는 자갈 많은 하천 길을 십 분쯤 나와야 한다. 차도에 다 와서 아내가 말했다.

“휴대폰을 농막에 두고 나왔어. 이걸 어째!”

남편의 마음 같아서는 욕이라도 푸짐하게 퍼붓고 싶었지만 참았다. 퇴직한 늙은 남편이 그런 만용을 저지를 수는 없다.

“뭐, 다시 농막으로 돌아가면 되지.”

하고는 좁은 하천 길에서 차를 간신히 돌렸다. 다시 농막에 갔을 때만 해도, 멀리 산 아래 동네 풍경이 그런 대로 보였다. 그런데 아내가 농막 안에 들어가 제 때 휴대폰을 못 찾으면서 동네 풍경이 하나도 안 보이는 밤이 금세 된 것이다.

“어떻게 된 거야? 빨리 찾아.”

“조금만 기다려요. 조금만.”

도시 근교에 있는 산속 밭이 순식간에 깜깜한 세상이 될 줄은 몰랐다. 몇 년 전만 해도 멧돼지가 출몰했다니…… 깜깜한 숲 어디서 그 멧돼지가 불시에 나타날지도 모르겠다. 남편은 겁이 나서 자기도 농막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것을 겨우 참는다. 남자 체면이 있지 않은가.

한 십 분 걸려, 아내가 휴대폰을 찾아들고 농막에서 나왔다.

“글쎄, 한복바지 주머니에 있더라고요.”

한복바지란, 부부가 농사지을 때 편히 입으려고 산 개량한복바지를 말한다.

그런데 멀리 산 아래 동네의 불빛은 보이지만 부부가 있는 산속에는 단 한 점의 빛도 없었다. 부부는 칠흑 같은 밤에 낙오돼 있었다. 남편이 차의 시동을 켜고 전조등을 밝히자 그제야 깜깜한 어둠 속에 불빛뭉치가 한 가닥 등장했다. 그래도, 도대체 차를 몰고 나갈 농로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럴 만했다. 하찮은 농로이지만 날이 훤할 때나 보이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일대가 깜깜한 어둠에 휩싸이자 그 농로는, 밭은 물론 근처 숲과도 구분되지 않았다. 아내가 뇌까렸다.

“이거 어떡해?”

이럴 때일수록 남자는 중심을 잡아야 한다.

“뭘 어떡해? 내가 아주 천천히 차를 몰고 갈 거니까, 당신이 앞에서 농로를 안내하면 되지 않겠어?”

아내가 차에서 내려 남편의 말대로 하는데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농로가 바르게 된 길이 아니라 구불구불하기 때문이다. 결국 차의 앞바퀴가 농로에서 벗어나 숲에 빠졌다. 남편이 후진 기어를 넣고 애를 써도 차는 꿈쩍도 않았다.

“어떡하지?”

“119를 불러. 그런데 여기가 제대로 된 길이 아니라 하천 길로 들어오는 거라서 그 사람들이 찾아올지 걱정이네.”

“여보. 휴대폰 밧데리가 다 나갔나 봐.”

남편이 본색을 드러냈다.

“에이 ㅅㅍ. 칠칠맞지 못하긴.”

“어떡해야 해?”

부부는 깜깜한 어둠속에 망연하게 서 있다가, 자칫했다가는 조난사(遭難死)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였다. 체면불구하고 산 아래 동네 쪽을 향해 목청껏 외치기 시작했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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