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부부는, 이랑을 낸 밭에 비닐을 다 깔았다. 이 과정을 생략했다가는 벌떼같이 자라나는 잡초들 탓에 옥수수가 싹을 틔우기도 어려워진다. 800평 밭에 멀칭 작업을 하다가 날이 금세 어둑해졌다. 부부는 밭 한 쪽에 놓은, 5평 되는 컨테이너 농막에서 옷들을 서둘러 갈아입고 차를 타고 밭을 떠났다. 밭에서 차도(車道)까지는 자갈 많은 하천 길을 십 분쯤 나와야 한다. 차도에 다 와서 아내가 말했다.

휴대폰을 농막에 두고 나왔어. 이걸 어째!”

남편의 마음 같아서는 욕이라도 푸짐하게 퍼붓고 싶었지만 참았다. 퇴직한 늙은 남편이 그런 만용을 저지를 수는 없다.

, 다시 농막으로 돌아가면 되지.”

하고는 좁은 하천 길에서 차를 간신히 돌렸다. 다시 농막에 갔을 때만 해도, 멀리 산 아래 동네 풍경이 그런 대로 보였다. 그런데 아내가 농막 안에 들어가 제 때 휴대폰을 못 찾으면서 동네 풍경이 하나도 안 보이는 밤이 금세 된 것이다.

어떻게 된 거야? 빨리 찾아.”

조금만 기다려요. 조금만.”

도시 근교에 있는 산속 밭이 순식간에 깜깜한 세상이 될 줄은 몰랐다. 몇 년 전만 해도 멧돼지가 출몰했다니…… 깜깜한 숲 어디서 그 멧돼지가 불시에 나타날지도 모르겠다. 남편은 겁이 나서 자기도 농막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것을 겨우 참는다. 남자 체면이 있지 않은가.

한 십 분 걸려, 아내가 휴대폰을 찾아들고 농막에서 나왔다.

글쎄, 한복바지 주머니에 있더라고요.”

한복바지란, 부부가 농사지을 때 편히 입으려고 산 개량한복바지를 말한다.

그런데 멀리 산 아래 동네의 불빛은 보이지만 부부가 있는 산속에는 단 한 점의 빛도 없었다. 부부는 칠흑 같은 밤에 낙오돼 있었다. 남편이 차의 시동을 켜고 전조등을 밝히자 그제야 깜깜한 어둠 속에 불빛뭉치가 한 가닥 등장했다. 그래도, 도대체 차를 몰고 나갈 농로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럴 만했다. 하찮은 농로이지만 날이 훤할 때나 보이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일대가 깜깜한 어둠에 휩싸이자 그 농로는, 밭은 물론 근처 숲과도 구분되지 않았다. 아내가 뇌까렸다.

이거 어떡해?”

이럴 때일수록 남자는 중심을 잡아야 한다.

뭘 어떡해? 내가 아주 천천히 차를 몰고 갈 거니까, 당신이 앞에서 농로를 안내하면 되지 않겠어?”

아내가 차에서 내려 남편의 말대로 하는데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농로가 바르게 된 길이 아니라 구불구불하기 때문이다. 결국 차의 앞바퀴가 농로에서 벗어나 숲에 빠졌다. 남편이 후진 기어를 넣고 애를 써도 차는 꿈쩍도 않았다.

어떡하지?”

“119를 불러. 그런데 여기가 제대로 된 길이 아니라 하천 길로 들어오는 거라서 그 사람들이 찾아올지 걱정이네.”

여보. 휴대폰 밧데리가 다 나갔나 봐.”

남편이 본색을 드러냈다.

에이 ㅅㅍ. 칠칠맞지 못하긴.”

어떡해야 해?”

부부는 깜깜한 어둠속에 망연하게 서 있다가, 자칫했다가는 조난사(遭難死)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였다. 체면불구하고 산 아래 동네 쪽을 향해 목청껏 외치기 시작했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