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막혀 죽을 것 같은 절망감에서 나는 곡마단 탈출을 생각해 내었다. 겹겹이 둘러싼 철장 안 생활이, 숨 막혀 죽을 것 같은 절망감 그 자체로 느껴졌는지 모른다. 그간 숱하게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광활한 자연 속의 곰들 장면. 풀들로 덮였거나 눈으로 덮였거나, 광활한 터전에서 내 종족인 곰들은 마음껏 먹이를 사냥하고 잠을 자고 번식하는 모습들이었다. 몹쓸 사냥꾼의 장총에 처참하게 목숨을 잃기도 하지만 그건 문제가 아니었다. 단 한 번이라도 광활한 자연에서 살아볼 수 있다면 나는 여러 번 총을 맞아도 좋았다.

어디서 어떻게 태어났는지 모르는 채로 내 눈에 처음 보인 풍경은 곡마단 안이었으니까. 멍청이의 넓적한 얼굴이 나를 들여다보며 우윳병을 내 아가리에 물려주고 있을 때 주위로 줄무늬 천막이 드리워져 있었는데 나중에 알았지만 바로 내가 평생을 보낼 여기 곡마단 안 풍경이었다.

이런 답답한 천막 안에서 내 삶이 마감될 거라니, 어떻게 해서든지 여기를 탈출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답답한 천막 안 공간도 그렇고…… 항상 똑같이 반복되는 일과에서도 나는 벗어나고 싶었다.

나의 일과는 이랬다.

멍청이가 철장 안으로 들어오기 전에 사과 한 알같이 간단한 먹이를 던져준다. 나는 굴속에서 나와 그것들로 요기를 해결한 뒤 멍청이가 목의 줄을 잡아끄는 대로 철장을 나선다. 철장을 나서면 넓고 둥근 마당이다. 이 마당은 촘촘한 철망 울타리로 둘러쳐져 있어서 그 밖으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멍청이가 가져온 자전거에 걸터앉은 나는 두 발로 페달을 밟아가며 둥근 마당을 열 번은 돈다. 그럴 때 숨죽이고 지켜보던 울타리 밖 사람들이 환호하며 박수를 친다. 그런 식으로 서너 가지 곡예를 보이고서 다시 멍청이가 잡아끄는 대로 철장으로 되돌아온다. 철장 안에는 아까와 달리 맛있는 먹이들이 푸짐하게 놓여 있다. 나는 이 먹이들을 먹게 된다는 기대감에 힘든 곡예를 해내는 것이다. 사과, 복숭아, 생선 등등의 맛있는 먹이들을 다 먹고 나서 나는 다시 굴속으로 들어가 엎드린 채 텔레비전을 보다가 잠이 든다.’

멍청이의 검던 머리칼들이 허옇게 센 지금까지, 내 일과가 그러했다.

별 생각 없이 지내온 일과였지만생각하기시작하면서 이제는 지루하고 따분해서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운 일과다. 나는 탈출할 길을 찾고 있다. 언젠가 멍청이가 실수로 철장 문을 닫는 것도 잊고 둥근 마당의 출입문까지 열어 놓은 적이 있었다. 그러했음에도 무심하게 굴속에 엎드려 텔레비전만 보던 나 자신이라니……. 이제는 그런 절호의 기회를 다시는 놓치지 않을 것이다.

여태껏 나를 길러주고 먹여주고 재워준 곳에서 탈출할 생각까지 품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변화인가.

이런 변화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게 텔레비전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텔레비전.

얼마나 기막힌 사물인가.

자기는 아무 생각 없으면서 남의 갖가지 생각들을 다 갖다 보여주는 물건.

자기 수명이 다할 때까지 갖가지 장면들을 하나도 빠트림 없이 보여주는 그 우직함. 게다가, 끝없이 반복해 보여주는 단순함. ‘미련하다는 말은 우리 같은 곰이 아니라 저런 텔레비전에게 해야 옳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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