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에서 동물의 머리에 해당되는 부분이 뿌리다. 뿌리를 다치면 그 식물은 생존이 어렵다.

 

지난 해 겨울이 닥치기 전, 춘심산촌 농장의 칸나 구근들을 캐내서 집에 가져온 건 그 때문이다. 구근이 얼면 칸나가 죽는 것이기 때문이다. 구근들을 상자에 담아 선선한 창고 한 편에 놓았는데… 눈에 뜨일 때마다 왠지 섬뜩하다. 마치 인간의 영생을 도모해 따로 보관하는 뇌수들을 보는 것 같아서다.

이제 완연한 봄 날씨가 됐으니 불원간 춘심산촌으로 옮겨다 심을 것이다. 그러면 섬뜩한 구근들은커녕 화려한 아름다운 붉은 꽃들이 춘심산촌 어귀를 찬란히 장식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산골짜기이지만 넓이가 800평 되는 밭이다 보니 잡초 김매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밭두둑에는 비닐 멀칭을, 밭고랑에는 잡초방지매트를 깔아서 기본적인 대처를 했지만 문제는 밭 가장자리와 농로와 농막 주변이다. 비닐 멀칭이나 방지매트를 깔 수 없어 잡초들이 기승이다. 그대로 방치했다가는 이내 무성하게 자라서 뱀이 스며들까 두려울 정도다. 그렇기도 하고 깔끔 떠는 아내가 성격상 견디지 못한다. 밭에 가기만 하면 그것들을 김매는 일부터 매달린다.

​나는 나대로 예초기까지 동원해 최소한 나흘에 한 번은 쳐낸다. 우리 밭의 김매기는 이를테면 국지전과 전면전을 병행하는 격이다. 아내는 하나하나 김매는 국지전이고 나는 전반적으로 김매는 전면전인 거다.

웃기는 일화가 있다. 내가 작물에 물 주느라 바빠서 나흘이 됐는데도 예초기를 못 돌리고 그냥 귀가하던 차 안에서 아내가 이렇게 물었다.

​“참, 벌써 나흘이 된 것 같은데 당신 언제 털을 깎을 거야?”

​‘풀’을 ‘털’로 잘못 말하는 바람에 나는 어이없는 웃음을 허허허 웃고 만 거다. 그러고 보면 내가 면도하는 주기도 나흘이었다. 나흘을 그냥 지나가면 금세 수염이 덥수룩한 게으른 사내 인상이 되고 만다. 몸의‘털’이나 밭의‘풀’이나 나흘째 방치하면 무성해진다. 이 이상한 동류감(同類感).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지난번에 우리 아들이 어릴 때 강릉 안목 바닷가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을 sns에 올렸는데… 그 까닭이 있다. 귀여운 그 사진을 사진첩에 두고 지내기가 아까워서 거실 책상 위, 유리판 밑에 놓고 지냈더니 알게 모르게 빛 바래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는 어느 시점에서 사진 속 모습이 바람처럼 사라지고 말 게 분명했다. 무슨 좋은 방법이 없나 생각 끝에 ‘가상의 공간인 sns에 올려놓는다면 영원히 보관될 거’란 판단 아래 그리 조치한 것이다.

 

몇 장 안 되는 내 대학 시절 사진 중 한 장을 이번에 sns에 올리는 건 그 때문이다. 1973년에 강대 중앙 게시판 앞 벤치에서 찍은 사진으로 나는 기억한다. 사진첩 속에서 반세기나 보관돼 있었기에 사진은 낡고 금도 가 있다. 하지만 고뇌 많던 20대 중반의 내 모습이 생생하다. 반세기 전의 내게 이제 나는 위로의 말을 건넨다.

“너는 지금 잘 사는 편이야. 아암 그렇고말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춘심산촌 주위 숲에 갖가지 나무가 자생한다. 그 중 개옻나무가 있다. 막내 동생이 어릴 적에 봉의산에 놀러갔다가 옻이 올라 한 달 가까이 병원 다니며 고생한 적이 있어, 나는 그 나무를 항상 조심해서 피한다. 그런데 개옻나무 줄기에 특이한 무늬들이 있다는 사실.

바로 하트 무늬의 엽흔(葉痕)이다. 독성이 서려 있는 개옻나무에 ‘사랑’무늬들이 있다니… 참 얄궂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사기접시 하나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산산조각 나버렸다.

K는 이상하게도, 그 소리가 편하게 들리던 것이다. 물론 멀쩡한 접시 하나를 잃었다는 손실감과, 산산조각 난 것들을 어서 방비로 쓸어 담아서 쓰레기통에 넣어야 한다는 수고로움은 일단 배제하고서 하는 말이다.

사기접시가 산산조각 날 때 소리가 마냥 편하게 들리던 이상한 심적 상황을 K는 곰곰이 헤아려보았다.

아아 그건 사기접시가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소리로 들렸기 때문인 것 같다. 사기접시의 원래상태― 찰흙 한 줌으로 환원되는 그 편안함!

인간은 삶을 다할 때, 태어나서 이뤘던 그 동안의 모든 것(가족, 재산, 친구사이, 증오와 사랑, 등등)을 손놓아버리질 않던가. 바로 그런 편한 운명(殞命)의 모습을 사기그릇이 깨지는 소리들로 전해주었다.

사기접시 하나가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나 버렸다. 자신을 빚어준 자연으로 편히 돌아갔다. K는 아내가 놀라서 ‘여보. 뭘 깨뜨렸나?’외치는 소리도 귓전으로 넘긴 채 깊은 상념에 잠겨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