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당신 등에 뭔가가 매달려 있다. 평생 당신 등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듯 온힘을 다하여 매달려 있는 것이다. 기겁한 당신은 죽어라고 몸을 흔들며 비틀며 난리친다. 운 좋게 그 뭔가가 당신 등에서 떨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그렇지 못하다. 결국 지치고 만 당신은 그 뭔가에 항복한다. 항복이라기보다는 체념이란 표현이 더 적합하지 않을까.

그 순간부터 당신 등은 당신뿐만 아니라 지겨운 그 뭔가의 소유도 될 것이다.

 

말이 자기 등에 올라탄 카우보이를 어떻게든 떨어뜨리려고 난리치는 장면이 바로 로데오 경기의 장면이다. 관객들은 그런 말의 몸부림을 즐겨보지만 사실 말의 입장에서는 끔찍한 순간일 뿐이다. 애당초 말은 사람을 등에 태우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말은 단지 대지를 마음껏, 홀가분하게 내달리고 싶었다. 그런데 죽어라고 자기 등에 물귀신처럼 달라붙은 사람이란 이물(異物).

우리는 이빨 새에 오징어의 작은 찌기 하나가 끼어도 견디기 힘들다. 이쑤시개를 찾아 어떻게 해서든지 그 찌기를 빼내려 애쓰게 된다. 과장된 표현 같지만 그 순간 사력을 다한다. 이물감이란 정말 견딜 수 없는 그 무엇이다.

 

말이 숙명적인 이물감에 굴복하는 순간― 사람에게 등을 허락하는 순간은 사실 홀가분하게 대지의 자연을 누리고 싶은 천성을 포기하는 것이다. 물론 대신, 사람한테서 사료 공급 같은 보상이 뒤따른다. 사람을 자기 등에 태우고 하자는 대로 걷거나 달리거나, 멈추거나 하는 말의 숙명. 우리는 그것을 한자어로 순치(馴致)라 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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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밭가는 일만 힘든 게 아니다. 간 밭의 두둑마다 검정비닐도 씌워야 한다. 이를 멀칭이라 하는데 만일 멀칭을 하지 않으면 무섭게 기승을 부릴 잡초들을 각오해야 한다. 얼마 안 가 밭의 작물들은 무성한 잡초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다. (이를 소재로 한 작품이 ‘잡초’이다.)

두둑들에 검정비닐을 씌우는 일도 쉬운 건 아니다. 바람이라도 불면 허공으로 날아가려는 비닐의 끝자락을 잡고 난리다. 가수 김조한의 ‘이 밤의 끝을 잡고’란 노래가 있지만, 밭에서는 ‘검정비닐의 끝을 잡고’ 헤매기 일쑤다.

멀칭이 끝나면 그 때부터는 비닐에 일정 간격으로 구멍을 내 파종하거나 모종해야 한다.

4,5월은 이런 일들로 밭에서 고생해야 한다.

 

우리 선인들이 (晝耕夜讀)이라 했다. 낮에는 농사짓고 밤에는 공부한다는 뜻으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공부하기를 잊지 않는 자세를 일컫는다. 그런데 이런 의문이 고개를 쳐들었다.

“주경야독이란 게 가능할까?”

밭농사를 하는 중에는 제대로 책 한 권을 읽거나, 글 한 편을 쓰지 못하고 마는 경험만 있어서다. 몸이 지친 탓도 있겠지만 이상하게도 머리의 뇌가 정신적인 활동을 주저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무심의 경험으로는, 뇌는 몸이 농사 같은 고단한 일에 매이지 않을 때에나 제대로 활동했다. 몸이 마냥 편안한 일상에 있을 때 뇌가 비로소 기지개를 켜고 작동하던 것이다.

주경야독.

실제로 가능한 일이라기보다는 ‘농사짓고 살아야 하는 고달픈 삶에서도 책 읽기를 잊지 말자’는 소망 차원의 경구가 아니었을까?

 

부처님 예수님 공자님 모두, 고된 육체노동보다는 몸을 편안히 하는 상태에서 명상과 사색 끝에 귀중한 깨달음들을 얻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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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중반, 춘천은 인구가 10만도 안 됐다. 텔레비전 있는 집도 귀하던 그 시절, 나는 여름방학만 되면 동네 애들과 소양강에 가 헤엄치다 오는 게 일과였다. 아마 ‘시내버스’란 것도 없었을 것 같은데 만일 있었다 해도 차비 걱정에 탈 엄두를 못 냈을 게다. 우리 동네에서 소양강까지는 십여 리 산길, 동네 애들과 땡볕에 땀을 뻘뻘 흘리며 그 먼 산길을 단지 '헤엄 치고 싶어서' 걸어 다녔다.

그 날도 소양강 변까지 힘겹게 걸어간 뒤 모래밭에 옷들을 벗어놓고는, 강물로 시원하게 뛰어들었다. 우리가 헤엄치는 장소는 외진 곳으로 사실, 수영금지 구역이었다. 요즘이야 경찰서장 이름으로 ‘수영금지 구역’팻말이라도 세워놓겠지만 그 시절에는 그런 게 없었다. 그나마 안전하게 물놀이를 하려면 당국에서 관리하는, 소양강 다리 건너 물 얕은 강변까지 가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땡볕에 몸이 지쳐있는 데다가 너무 멀었다.

동행하는 어른도 없이 아이들끼리 다니는 수영금지 구역이라, 언제고 한 번은 사고가 날 수밖에 없었다. 강물이 회오리처럼 빙빙 도는 데도 있고 강바닥을 준설했는지 수심이 갑자기 깊어지는 데도 있던 그 구역.

다른 날에는, 그런 위험한 데를 조심하며 헤엄들 치다가 강변으로 잘 나왔었는데 그 날은 그렇지 못했다. ‘동연’이란 아이가 헤엄치는 방향을 잘못 잡았던지 수심이 깊은 데로 휘말리듯 들어가더니 얕은 데로 나오질 못하고 얼마 후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놀라 강변으로 뛰쳐나와 우왕좌왕하는데 그 때 부근에서 낚시하던 웬 아저씨가 상황을 알아채고는 바지 입은 차림으로 강물에 뛰어들더니 동연이 모습이 사라진 쪽으로 급하게 헤엄쳐갔다. 평일 낮에도 강가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던 모습으로 봐, 직업도 없이 소일하던 사람 같았다. 그 시절에는 무직자가 많았다.

그 아저씨가 깊은 강물 속에서 동연이를 찾아는 냈으나 이미 움직임 하나 없이 축 늘어진 모습이었다. 내가 난생처음으로 주검을 목격한 순간이다.

“얘네 집이 어디냐? 앞장들 서라.”

우리는 옷들을 챙겨 입고는, 축 늘어진 동연이를 두 팔로 안은 아저씨의 앞장을 섰다. 다른 날 같았으면 헤엄치느라 기진한 몸으로 걸어가느라― 그것도 땡볕 아래 십여 리 산길을 다시 걸어가느라 몹시 고달팠을 텐데 그 날은 그런 느낌도 잊었다. 좁아서 한 줄로 걸어갈 수밖에 없는 산길을 우리가 앞장서고 뒤로 한 어린애 주검을 두 팔로 안은 채 묵묵히 따라오던 그 아저씨.

우리가 나이가 어려서들 무심했는데 사실 얼마나 고맙고 대단한 어른이었던가. 우리와 일면식도 없었음에도 낚싯대도 팽개친 채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서서 한 어린애의 주검을 수습해 그 먼 땡볕 아래 십여 리 산길을 동행해 주었으니.

동연이네 집 앞에 이르렀다. 대문이 없었다. 직감이었을까, 우리가‘동연이 어머니!’라고 부르자 뒤란에서 나타난 그녀는 신발도 흘린 맨발로 허겁지겁 뛰어나오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낯선 사람의 두 팔에 안긴, 축 늘어진 동연이의 모습에 그녀는 이미 넋이 반은 나간 모습이었다.

 

오랜 세월이 흘렀다. 외동아들을 순식간에 잃고 넋이 나간 모습으로 울부짖던 동연이 어머니 모습도 선하지만…… 낯모르는 아이의 사고에 조금도 망설임 없이 강물로 뛰어들던 그 아저씨 모습 또한 선하다. 어디 그뿐인가. 아이의 주검을 두 팔로 안고서 땡볕의 십여 리 산길을 걸어와 유족에게 전하기까지.

60년대 중반의 춘천은 모든 게 미비했다. 텔레비전은 물론이고 시내버스도 보기 힘들었고, 위험한 강가에서 ‘수영금지 구역’ 팻말 같은 건 더욱이 기대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남의 일이라도 자기 일처럼 여기는 아저씨 같은 분들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그 시절의 춘천을 생각하면 한 아이의 익사 사건이 있었음에도 왠지 그리워진다.

 

(자식을 가슴에 묻고 여생을 살았을 동연이 어머니께 정말 너무 늦었지만, 애도를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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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한반도를 산자수명(山紫水明)한 곳이라 자랑한다. 나이 어릴 적에는 자화자찬하는 말인 줄 알았다. 나이가 들자 과연 산자수명한 땅임을 실감한다.

살고 있는 데에서 조금만 가면 해발 1000미터 안팎의 산이 있으며 항상 강물이나 내가 흐르는 산자수명한 땅 한반도.

그 때문일 게다. 무심은, 우리나라에서는‘산’을 평범하게 표현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부산에 ‘산복도로(山腹道路)’가 있다. 산의 중턱을 지나는 도로라는데, 분명 산을 사람의 몸처럼 여겨 중턱 부분을 배〔腹〕로 비유한 말이다.

그런가 하면 '산허리'란 말도 있다. 이 또한 산을 사람의 몸처럼 여겨 허리처럼 중간쯤 되는 산의 지점을 가리킨다. “산중턱에 걸려 있는 달”보다 “산허리에 걸려 있는 달”이란 표현이 훨씬 맛있다.

‘산자락’이란 말도 있다. ‘자락’은 ‘옷자락’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 옷이나 피륙 따위의, 아래로 드리운 넓은 부분이다. ‘산자락’이란 산이 평지에 드리운 넓은 지대를 표현한 말인 것이다.

‘산등성’이란 말도 있다. 사람이 엎드려 있으면 등이 나온다. 산을 엎드려 있는 사람처럼 본 데서 나온 말이 ‘산등성’ 일 게다.

 

‘산’을 아기자기하게 표현한 우리말이 더 있을 듯싶다. 우선은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적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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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는 자기 음식 앞에서 잠시도 경계의 눈빛을 거두지 않는다.  만일 개가 음식을 먹을 때 당신이 다가간다면 금세 ‘으르릉’거리며 허연 이빨들을 다 드러낼 것이다. 자기 음식을 지키려는 개의 욕심일 것 같아 나는 그 모습이 딱해 보였다. 마음 편히 음식 한 번 먹지 못하다니 얼마나 불쌍한가.

 하지만 요즈음 다른 생각이 들었다. 개가 음식 먹을 때 경계의 눈빛을 거두지 않는 것은 적에게 방심의 기회를 주지 않으려는 본능일 거라는 생각이다. 음식 섭취는 모든 생명체의 존재 방식이다. 음식 섭취가 이뤄지지 못하면 그 생명체는 유지되지 못한다. 동물이 음식을 대하는 순간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하는 까닭이다.

그렇기에 그 순간은 적에게 기습의 호기(好機)다. 동물이 음식을 먹는 순간 잠시도 방심할 수 없는 건 그 때문이다. 야생동물의 생태를 찍은 영화를 보면 ‘보잘 것 없는 먹이에 다가가는 순간에도 사방을 살피며 경계하는 야생동물의 모습’이 역력하다.

 

“그러에도 불구하고” 음식을 먹을 때 경계심이 없는 동물이 있다. 애완견들 중에 있다. 그건 오랜 세월 인간들에게 길들여져서 순치된 결과다. 따라서, 음식을 먹을 때 가까이 다가가도 별 일 없는 애완견이 있다면 그 애완견은 생명체로서의 존재방식마저 잃은 딱한 경우다. 나는 단언한다. 동물의 야성 정도(程度)는 그 동물이 음식을 먹을 때 얼마나 주위를 경계하느냐로 결정된다고 말이다

그렇기에 사람이 음식을 먹을 때 다른 사람들과 대화는 물론 그 음식을 나눠먹기도 하며 조금도 경계하지 않는 것을 나는‘야성에서 그만큼 멀리 떠나온 모습’이라고 여긴다. 그런 모습을 우리는‘문화’라 부르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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