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밭가는 일만 힘든 게 아니다. 간 밭의 두둑마다 검정비닐도 씌워야 한다. 이를 멀칭이라 하는데 만일 멀칭을 하지 않으면 무섭게 기승을 부릴 잡초들을 각오해야 한다. 얼마 안 가 밭의 작물들은 무성한 잡초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다. (이를 소재로 한 작품이 잡초이다.)

두둑들에 검정비닐을 씌우는 일도 쉬운 건 아니다. 바람이라도 불면 허공으로 날아가려는 비닐의 끝자락을 잡고 난리다. 가수 김조한의 이 밤의 끝을 잡고란 노래가 있지만, 밭에서는 검정비닐의 끝을 잡고헤매기 일쑤다.

멀칭이 끝나면 그 때부터는 비닐에 일정 간격으로 구멍을 내 파종하거나 모종해야 한다.

4,5월은 이런 일들로 밭에서 고생해야 한다.

 

우리 선인들이 (晝耕夜讀)이라 했다. 낮에는 농사짓고 밤에는 공부한다는 뜻으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공부하기를 잊지 않는 자세를 일컫는다. 그런데 이런 의문이 고개를 쳐들었다.

주경야독이란 게 가능할까?”

밭농사를 하는 중에는 제대로 책 한 권을 읽거나, 글 한 편을 쓰지 못하고 마는 경험만 있어서다. 몸이 지친 탓도 있겠지만 이상하게도 머리의 뇌가 정신적인 활동을 주저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무심의 경험으로는, 뇌는 몸이 농사 같은 고단한 일에 매이지 않을 때에나 제대로 활동했다. 몸이 마냥 편안한 일상에 있을 때 뇌가 비로소 기지개를 켜고 작동하던 것이다.

주경야독.

실제로 가능한 일이라기보다는 농사짓고 살아야 하는 고달픈 삶에서도 책 읽기를 잊지 말자는 소망 차원의 경구가 아니었을까?

 

부처님 예수님 공자님 모두, 고된 육체노동보다는 몸을 편안히 하는 상태에서 명상과 사색 끝에 귀중한 깨달음들을 얻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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