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킬로미터 중 반은 넘게 오지 않았을까?’

현재 시각이 열 시 반이다. 열 시쯤 진입했었으니 삼십 분쯤 운행한 듯싶었다. 이차선 지방도였다면 백 리는 갔을 시간이었다. 기가 막혔다.

엔진이 바람 앞 촛불처럼 푸득거리기 시작했다. 계속 일단 기어로 오자 엔진에 무리가 온 듯싶었다. 촛불을 살리듯 가속페달을 살살 밟으며 가는데 뭐에‘그윽!’ 긁히는 소리가 차 밑바닥에서 나더니 엔진까지 꺼졌다.

차에서 내리려는데 문이 쉬 열리지 않았다. 길옆 무성한 수풀더미 탓이었다. 갑자기 힘주어 열면 문이 우그러질지도 몰랐다. 그는 두 손으로 천천히 힘주어 차 문을 열어, 생긴 틈으로 간신히 비집고 내렸다.

차체 밑을 살폈다. 길바닥의 웅덩이진 데서 솟은 큰 돌에 차의 밑바닥이 걸려있었다.

“젠장!”

애당초 차대가 높은 지프차가 아니라면 들어올 길이 아니었다.

다시 차를 탄 뒤 시동을 걸었다. 다행히 엔진이 ‘부릉!’ 하고 되살아났다. 천천히 후진시킨 뒤 기어를 다시 일단으로 바꿨다. 길옆 숲으로 앞바퀴 한쪽을 밀어 넣듯 조금 나아간 뒤, 아슬아슬하게 그 돌 옆으로 지나갔다. 숲으로 들어갔던 차 옆면이 싸리나무가지들에 ‘우두두둑!’긁혔다.

돌에 밑이 찢기고 싸리나무가지들에 옆이 긁히기까지.

나중에 차를 살펴보겠지만 수리비가 만만치 않게 들 것이다.

“이건 행복 생태학교가 아니라 생지옥 가는 길이구먼!”

그는 푸념까지 하며 다시 앞으로 운전해 가는데 길의 웅덩이들이 잦아져, 수시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놓았다 하느라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다.

브레이크가 과열될 듯싶어 다시 차를 세웠다.

아파트가 그리워졌다. 거실 소파에 앉아 보내던, 무료한 생활이 그리워졌다. 오늘 운전 일을 맡지 않았더라면 이 시간쯤 혼자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졸지 않았을까? 무료하긴 해도 이렇게 고생하는 시간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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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었다. 늦게 잠들었어도 오늘 아침 여섯 시, 그는 새벽같이 잠에서 깨어난 것이다.

일곱 시 반에 아내를 자가용 뒷좌석에 태운 뒤 그는 시동을 걸었다.

천천히 아파트 주차장을 떠났다. 휴일만 되면 장거리 운전여행을 즐기던, 어느 한 때의 추억도 있는 그였으므로 오늘 가는 지방이 낯선 곳은 아니었다.

정확히 아홉 시 오십 분에 목적지인 관광호텔 정문 앞에 도착했다. 아내가 차에서 내리며 그에게 말했다.

“그럼, 혼자 시간을 잘 보내세요. 나하고 오후 네 시경에 이 자리에서 다시 만나는 거, 잊지 않겠죠?”

정문 안으로 부지런히 들어가는 아내의 뒷모습을 보며 그는 차를 돌렸다. 마침내 혼자, 먼 타지에서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다.

‘우리 고장의 명소’들을 들러보거나, 이웃한 대관령을 넘어 동해 바닷가에서 회라도 한 접시 먹고 돌아오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기로 계획했었는데…… 그는 갑자기 의욕이 사라지며 어느 선택도 내키지 않았다.

편견일 수 있지만 군 단위 지역에 있는 명소들이 오죽하겠는가. 인구도 삼 만밖에 안 되는데‘우리 고장의 명소’라니?

‘대관령을 넘어 동해 바닷가에서 회라도 한 접시 먹고 돌아오는 일’도 그렇다. 왕복하는 데만 네 시간이 걸릴 텐데 그러면 종일 차만 몰고 다니다 만단 말인가?

소풍 가기 전 날 밤의 아이처럼 들떴었던 그가 이제는‘오후 네 시 전까지 이 시골구석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걱정까지 하며 운전석에 무력하게 앉아 있었다.

궁여지책으로, 다시 ‘우리 고장의 명소’자료를 보았다. 그 중 굳이 한 곳을 고른다면‘행복 생태학교’였다. 학교 이름이 재미나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가라앉은 기분을 전환시키고자 일부러 소리 내어 자료를 읽었다.

“행복 생태학교는 해발 오백 미터에 자리 잡고 있으나 낮은 봉우리들로 둘러싸인 분지라 높아도 춥지 않기 때문에 새나 곤충 등 생물이 살기에 아주 적합한, 행복한 곳이다. 지난 천구백구십년 유월에 김용석님이 사재를 털어 ‘자연과 생명의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문을 열었다. 다양한 나무들이 심어져 있는‘나무 나라’, 수서 곤충과 양서류를 볼 수 있는 ‘연못 나라’, 나비들을 한데 모은‘나비 나라’, 잠자리의 일생을 볼 수 있는 ‘잠자리 나라’, 풍뎅이 모양을 한 교육 센터 등이 만여 평 공간에 흩어져 있다.”

만여 평이라니, 삼십 평 아파트에서 사는 그에게 상상도 되지 않는 넓이였다. 김용석이란 사람이 산속에 과천 대공원 비슷한 것을 만들어 놓았다는 얘기일까?

그는 이 지방의 약도까지 조수석에 펼쳐놓았다. 약도 속의‘행복 생태학교’는, 조금 전 아내와 헤어진 관광호텔에서 오 킬로미터쯤 되는 거리에 있었다. 그렇다면 그는 근처에 와 있었다.

시동을 걸어 일 킬로미터쯤 운행하자 과연, 초록색 페인트 글씨로‘행복 생태학교 약 2KM’라 쓴 나무 팻말이 나타났다. 이차선 지방도에서 곁가지처럼 난, 비좁은 일방통행로를 그 팻말이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귀부터 비포장 흙길이었다.

‘여기 말고 다른 데로 갈까?’

고민했으나, 이런 식으로 오락가락했다가는 하루 종일 아무 데도 들러보지 못할 것 같았다. 오후 네 시 전까지는 아내를 태우러 관광호텔 앞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사실, 오가다 보면 여유시간이 넉넉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괜한 헛기침까지 한 번 한 뒤 행복 생태학교 진입로로 운전대를 돌렸다. 비포장 길일망정 평탄하게 닦여 있어서 쉬 목적지에 닿을 듯싶었다.

나중에 발견했지만, 어귀에서 십여 미터까지만 평탄하게 닦인 길이었다. 행복 생태학교 교장이 외부 사람들을 유인(?)하기 위해 잔머리를 쓴 걸까? 어쨌든 그가 차를 되돌리기에는 이미 늦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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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아내가 그에게 제의했다.

“여보. 내가 내일 하루, 먼 데 출장가야 하는데 운전해줄 수 있어요?”

머뭇대는 그에게 눈치 빠른 아내가 단서를 달았다.

“당신이 하는 일에 지장이 없다면 말이죠.”

그제야 그는 고개를 끄덕여 제의를 받아들였다. 사실, 그는 한가했다. 아내의 직장 출퇴근 시간에 맞춰 거실 컴퓨터를 켰다 껐다 하는 게 그가 하는 일의 전부라면 지나친 말일까? 물론 세 달 전 시작하다 만 장편소설의 첫머리가 컴퓨터에 한글 파일로 내장돼 있긴 했다.

종일 직장에 나가있는 아내로서는 당연히 그가 아파트에 틀어박혀 컴퓨터로 소설을 쓰며 지내리라, 알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소파에 앉아 졸며 종일을 보낼 때 켜놓은 컴퓨터의 바탕화면도 껌껌해진 꼴로 주인을 따라 함께 존다는 사실이다. 절전기능 때문이었다. 아내가 귀가했음을 알리는, 현관문이 찰칵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그는 부리나케 컴퓨터의 자판을 손가락으로 툭 건드려 껌껌하게 졸던 화면을 생생하게 깨워 놓았다.

‘거리의 끝에서부터 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은 휴지와 라면 봉지와 빈 캔과 짝 잃은 양말 한 쪽까지 훑으며, 사내가 멈춰 서 있는 데까지 끌고 오고 있었다.’

두 줄 나가다 만 장편소설의 첫머리가, 환하게 깨어난 컴퓨터 화면에서 커서 불빛까지 깜빡이며 세 달째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아내가 현관으로 들어와 하이힐을 벗고 거실로 들어서면 그는 늘 한 마디 물었다.

“별 일 없었어?”

그러면 아내는 거실 구석에서 커서를 반짝이는 컴퓨터 화면을 힐끗 보며 말했다.

“별 일 없었어요. 당신, 소설은 잘 되요?”

“잘 되다 말다 하지, 뭐.”

사실, 그가 아내한테 거짓 광경을 연출할 필요는 없었다. 컴퓨터를 꺼 놓고 텔레비전이나 종일 보는 모습이라 해도 뭐라 그럴 아내는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무위도식하지 않는다.’는 자존심 때문에 그는 단 하루도 ‘아내의 출퇴근 시간에 맞춰 컴퓨터를 켜고 끄는 ’짓을 잊은 적이 없었다.

그 쑥스런 짓을 내일 하루 안 해도 되었다.

아내는 길눈이 어두웠다. 출장지인 모 관광호텔이 이백 리쯤 되는 먼 지방에 있자, 그에게 운전을 부탁한 것이다. 당신 혼자 이른 새벽에 일어나 시외버스라도 타고 가면 될 일인데 굳이 자가용 운전을 부탁한 것은 ‘답답한 아파트에 틀어박혀 소설 쓰느라 고생 많은 남편’이라 여겨 바깥바람 한 번 쐬어주기 위함일 수 있었다.

그는 소풍 가기 전 날 밤의 초등학생처럼 마음이 들떴다.

인터넷으로, 아내가 출장 가는 지방에 대한 갖가지 정보부터 검색했다. 그 지방은 태백산맥이 가까운, 인구 삼 만이 조금 넘는 시골 군이었다. 지방자치제의 성과인 듯 홈페이지까지 마련해, ‘우리 고장의 음식’‘우리 고장의 역사’‘우리 고장이 낳은 위인’ ‘우리 고장의 자연’등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는 ‘우리 고장의 명소’에 주목했다. 참나무 숯 공장, 삼국시대의 산성 유적, 향토박물관, 행복 생태학교 순으로 나열된 자료를 프린트로 뽑았다.

아내의 출장은, 그 지방에 있는 모 관광호텔 컨벤션홀에서 ‘오전 열 시부터 오후 네 시까지’받는 업무 관련 교육 때문이었다. 아내가 교육을 받는 동안 그는 호텔 밖에서 혼자 여섯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는 그 시간 동안 차를 몰고 ‘우리 고장의 명소’를 들러보거나, 이웃한 대관령을 넘어 동해 바닷가에서 회라도 한 접시 먹고 돌아오거나, 둘 중 하나를 내일 선택하기로 마음먹었다.

‘선택에 따라, 다르게 전개될 내일 하루다!’

아내는 벌써 안방에서 잠들었는데 그는 괜히 들떠 혼자 거실을 서성이다가 늦게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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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고 꼬불꼬불한 일방통행로였다. ‘행복 생태학교’를 산속 깊은 곳에 세우며 진입로를 열악하게 닦아놓은 것이다. 교장이 사비 들여 닦은 게 아닐까?

이 길로 들어오기 전에는 다니기 편한 이차선 지방도였다. 그 도로로 차를 되돌리고 싶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후진해야 하는데, 잘못했다가는 차가 숲에 빠지거나 나무그루들에 뒤 범퍼를 부딪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계속 앞으로 가야만 했다.

행복 생태학교는 산속 분지에 있다고 자료에 소개돼있었다. 혹시 깊은 골짜기를 분지라고 둘러댄 건 아닐까? 차가 앞으로 나아갈수록 길을 에워싼 숲이 점점 더 울창해지는 게, 골짜기로 내려가는 것 같아서다.

어서 빨리 행복 생태학교라는 데에 도착해야 차를 돌리든지 할 텐데, 곳곳이 웅덩이진 길이라 속도도 낼 수 없었다. ‘행복 생태학교 약 2KM’란 팻말이 선 어귀부터 지금까지 그가 차를 일단 기어로만 몰고 온 건 그 까닭이었다.

‘이러다가 다른 차와 만나면 어떡하지?’

벼락같이 떠오른 걱정이었다. 수소들이 뿔을 대듯 앞 범퍼를 맞대고 싸울 수도 없고 천생 어느 한 쪽의 차가‘비켜설 공간이 있는 곳’까지 후진해 줘야 해결되지 않을까? 비좁은데다가 꼬불꼬불하기까지 한 길에서 과연 어느 쪽의 차가 선선히 후진해줄까?

급격히 불안해진 마음에 그는 차를 세웠다. 시동까지 껐다.

차창을 조금 열어, 혹시 다른 차의 엔진 음이 들려오나 귀 기울였다. 부근 숲에서 무언가, 산짐승 같은 게 푸다닥 나뭇잎들을 떨어뜨리며 달아났다. 다른 차의 엔진 음은 들리지 않았다.

그는 다시 차의 시동을 걸어 앞으로 나아갔다. 어서 부지런히 가는 게 최선이었다. 더워도 차창들을 꼭 닫은 것은, 길 옆 무성한 풀줄기들이 차 안으로 들이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지만 적막한 산속 분위기가 두려운 까닭도 있었다. 여태 행인 하나 만나지 못했는데…… 정작 행인을 만난다면 그 행인이 더 무서울 것 같은 적막함.

‘내가 이 킬로미터 중 얼마나 들어왔을까?’

차 안이 못 견디게 더워졌다. 그는 에어컨을 틀었다. 잠시 시원해졌지만 다시 꺼야 했다. 에어컨 작동 부담에 엔진 음이 요란해져, 다른 차의 소리를 못 들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랬다가는 ‘비좁은 산길에서 차끼리 충돌하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찜통처럼 변해가는 차 안이지만 참고 갈 수밖에 없었다.

목덜미와 겨드랑이에 땀이 축축하게 배더니 이마에서도 땀방울이 흘러내려 시야를 가렸다. 운전하랴 눈가의 땀을 훔쳐내랴, 그는 혼자서 여간 바쁘지 않았다.

앞의 모퉁이를 돌자, 뱀 같은 게 길바닥에 있었다.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잘 살펴보니 검게 썩은 마른 나뭇가지였다. 식은땀이, 더워서 흘린 땀과 뒤범벅될 것 같았다.

‘아파트에서 편히 잘 지내던 내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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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을 숭배할 수 있을까?’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무심은 생각한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할 수는 있지만 숭배한다는 것은 착각이거나 허위일 거라고 믿는다. 한 나라의 독재체제가 붕괴하는 순간 숭배 받던 독재자가 온 국민한테 철저하게 지탄 받고 버림받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입증되지 않나.

물론 사람이 신을 숭배하는 것은 납득할 수 있다. 무심 자신은 무신론자이지만 말이다.

같은 연장선상일까, 무심은 다른 사람을 쉬 존경하지 못했다. 그런데 대하장편소설‘토지’의 작가 박경리씨를 존경하게 되었다. 그가 유언처럼 남긴 시(詩) ‘옛날의 그 집’에서 이런 말씀을 했기 때문이다.

​

“(상략)

모진 세월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이렇게 후회 없는 삶을 살 수가 있을까? 이렇게 늙음을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무심은 그를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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