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이었다. 늦게 잠들었어도 오늘 아침 여섯 시, 그는 새벽같이 잠에서 깨어난 것이다.

일곱 시 반에 아내를 자가용 뒷좌석에 태운 뒤 그는 시동을 걸었다.

천천히 아파트 주차장을 떠났다. 휴일만 되면 장거리 운전여행을 즐기던, 어느 한 때의 추억도 있는 그였으므로 오늘 가는 지방이 낯선 곳은 아니었다.

정확히 아홉 시 오십 분에 목적지인 관광호텔 정문 앞에 도착했다. 아내가 차에서 내리며 그에게 말했다.

“그럼, 혼자 시간을 잘 보내세요. 나하고 오후 네 시경에 이 자리에서 다시 만나는 거, 잊지 않겠죠?”

정문 안으로 부지런히 들어가는 아내의 뒷모습을 보며 그는 차를 돌렸다. 마침내 혼자, 먼 타지에서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다.

‘우리 고장의 명소’들을 들러보거나, 이웃한 대관령을 넘어 동해 바닷가에서 회라도 한 접시 먹고 돌아오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기로 계획했었는데…… 그는 갑자기 의욕이 사라지며 어느 선택도 내키지 않았다.

편견일 수 있지만 군 단위 지역에 있는 명소들이 오죽하겠는가. 인구도 삼 만밖에 안 되는데‘우리 고장의 명소’라니?

‘대관령을 넘어 동해 바닷가에서 회라도 한 접시 먹고 돌아오는 일’도 그렇다. 왕복하는 데만 네 시간이 걸릴 텐데 그러면 종일 차만 몰고 다니다 만단 말인가?

소풍 가기 전 날 밤의 아이처럼 들떴었던 그가 이제는‘오후 네 시 전까지 이 시골구석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걱정까지 하며 운전석에 무력하게 앉아 있었다.

궁여지책으로, 다시 ‘우리 고장의 명소’자료를 보았다. 그 중 굳이 한 곳을 고른다면‘행복 생태학교’였다. 학교 이름이 재미나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가라앉은 기분을 전환시키고자 일부러 소리 내어 자료를 읽었다.

“행복 생태학교는 해발 오백 미터에 자리 잡고 있으나 낮은 봉우리들로 둘러싸인 분지라 높아도 춥지 않기 때문에 새나 곤충 등 생물이 살기에 아주 적합한, 행복한 곳이다. 지난 천구백구십년 유월에 김용석님이 사재를 털어 ‘자연과 생명의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문을 열었다. 다양한 나무들이 심어져 있는‘나무 나라’, 수서 곤충과 양서류를 볼 수 있는 ‘연못 나라’, 나비들을 한데 모은‘나비 나라’, 잠자리의 일생을 볼 수 있는 ‘잠자리 나라’, 풍뎅이 모양을 한 교육 센터 등이 만여 평 공간에 흩어져 있다.”

만여 평이라니, 삼십 평 아파트에서 사는 그에게 상상도 되지 않는 넓이였다. 김용석이란 사람이 산속에 과천 대공원 비슷한 것을 만들어 놓았다는 얘기일까?

그는 이 지방의 약도까지 조수석에 펼쳐놓았다. 약도 속의‘행복 생태학교’는, 조금 전 아내와 헤어진 관광호텔에서 오 킬로미터쯤 되는 거리에 있었다. 그렇다면 그는 근처에 와 있었다.

시동을 걸어 일 킬로미터쯤 운행하자 과연, 초록색 페인트 글씨로‘행복 생태학교 약 2KM’라 쓴 나무 팻말이 나타났다. 이차선 지방도에서 곁가지처럼 난, 비좁은 일방통행로를 그 팻말이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귀부터 비포장 흙길이었다.

‘여기 말고 다른 데로 갈까?’

고민했으나, 이런 식으로 오락가락했다가는 하루 종일 아무 데도 들러보지 못할 것 같았다. 오후 네 시 전까지는 아내를 태우러 관광호텔 앞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사실, 오가다 보면 여유시간이 넉넉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괜한 헛기침까지 한 번 한 뒤 행복 생태학교 진입로로 운전대를 돌렸다. 비포장 길일망정 평탄하게 닦여 있어서 쉬 목적지에 닿을 듯싶었다.

나중에 발견했지만, 어귀에서 십여 미터까지만 평탄하게 닦인 길이었다. 행복 생태학교 교장이 외부 사람들을 유인(?)하기 위해 잔머리를 쓴 걸까? 어쨌든 그가 차를 되돌리기에는 이미 늦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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