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에 가 살고 있는 후배 허진이 사진 여러 장을 SNS에 올렸다. 나는 그 중 나무와 사람사진이 가장 마음에 든다. 왜 그럴까. 생각을 해 봤다.

우선 푸르게 등장하는 게 일반적인 나무들이, 사람과 함께 검게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사람과 나무 모두, 같은 존재임을 느끼게 한다. 하긴 땅에 태어나 어느 순간 사라지고 만다는 생명의 숙명에서 사람과 나무는 어느 하나 벗어나지 못한다. 동일 운명체다. 그래서일까 사진 속의 사람과 나무들은 모처럼 기념사진이라도 찍듯 함께 나란히 서 있다는 느낌이다.

칼라로 찍은 사진인데 장소가 그늘져서 흑백으로 나왔는지. 아니면 본래부터 흑백 사진을 찍은 건지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 하나는, 사람과 나무는 같은 운명의 것이란 사실. 그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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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넓은 찻길을 달리는 차들. 찬란한 전등불빛. 4층 높이나 되는 역사(驛舍).

이런 풍경은, ‘군데군데 파인 아스팔트 도로에, 약간 기운 전봇대에, 역사마저 단층이던 때와 너무 다르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제는 역사 부근에 카페와 고깃집이 널려 있다. 출입문부터 삐걱거리던 낡은 다방이 주요한 풍경이던 때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K는 발길을 멈추고 서서 잠시 어리둥절하지만젠장, 세월이 몇 십 년 흘렀다는 것을.

 

(197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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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My Name Is Nobody’1976년경 우리나라에서무숙자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 나는 춘천의 소양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았다.

잭 뷰리가드(헨리 폰다).

전설의 총잡이로서 이제는 너무 늙어 은퇴할 시점인데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닥친다. 장난기 많은 젊은 총잡이노바디(테렌스 힐)’, 잭 뷰리가드가 악당 150명과 한판 대결을 벌이도록 수작을 벌인 것이다.

말 타고 달려오는 악당 150명을 바라보며 자신의 최후를 예감하는 잭 뷰리가드.

 

바로 이 순간의 장면이 내 마음에 든다. 마음에 드는 이유를 거창하게 말한다면 자기 운명에 직면한 인간의 실존적(實存的) 모습같아서다.

피하려 하지 않고 허허롭게 서 있는 잭 뷰리가드. 그는 사실 생사의 경지를 벗어났다.

이 때 웨스턴 음악의 명장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이 흐른다. 너무나 내 마음에 드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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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 날아오는 것은 새들만이 아니다. 전파도 날아온다. 우리 동네 공원에서 와이파이 시설을 발견했다. 날아오는 전파를 잡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공용 와이파이 시설. 낙엽 물든 나무 옆 기둥에 설치돼 있어서 얼핏 봐선 모른다. 내가 부근 벤치에 앉아 스마트 폰으로 음악을 들으려는 순간 전파들이 새들처럼 날아드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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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K의 고개 (1)에는 그리스신화의 오르페우스 얘기가 인용된다.

   

 

……오르페우스는 악기를 잘 다뤘다. 어느 날 사랑하는 아내가 독사에 물려 갑자기 세상을 뜬다. 깊은 슬픔에 빠진 오르페우스는 악기의 선율에 그 슬픔을 담아 아내를 살려달라고 온 세상을 향해 호소한다. 그래도 소용이 없자 그는 결심한다.‘마지막으로 저승의 신들께 부탁해 보자. 우여곡절 끝에 어둡고 험한 저승세계로 간 오르페우스는 저승의 신들 앞에서 자신의 애달픈 사연을 악기에 담아 노래 부른다. 저승의 신들이 감복하여 아내를 지상으로 데려가도 좋다고 허락한다. 다만 지상에 도착하기까지는 절대로 뒤돌아보아서는 안 된다는 단서를 단다. 오르페우스가 앞서고 아내가 뒤따르면서 어둡고 험한 저승세계를 걸어 마침내 지상세계로 나가는 출구에 닿았다. 아내가 뒤따라오나 궁금해진 오르페우스가 뒤돌아보는 순간 그녀는 다시 저승으로 끌려가고 말았다…….

   

 

라오스에 가 살고 있는 후배 허진이 얼마 전 긴 나무다리(2)사진들을 보내왔다.

오르페우스가 아내를 데리고 가는 장면의 배경 사진 같았다.


(1) 무심 이병욱의 대표 소설

(2) U - bein Bridge in the rainy season. Myanmar Mandalay.
우기철의 우베인 다리. 만달레이 근교, 미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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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11-14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보고 직접 찍으신 줄 알았습니다 ㅎㅎ

무심이병욱 2019-11-15 10:15   좋아요 1 | URL
아직 그곳에 여행도 못 갔습니다. ㅎㅎㅎㅎ. 장편 쓰느라 두문불출하며 지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