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랑정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임경화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사진을 스캔할 일이 있었다. 스캐너도 없고 할 줄도 몰라 다른 과 조교선생에게 부탁을 했다. 그전에도 두어번 같은 부탁을 한 적이 있기에 다음날 올 때 문화상품권을 몇장 선물했다. 그녀도 가만 있지 않았다. 고맙다면서 내게 책 두권을 선물했으니까. 그 중 하나가 바로<회랑정 살인사건>이었다. 내가 그렇듯이 그녀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이었는데, 그녀는 내가 이 책을 읽었을까봐 걱정했다고 수줍게 말했다.

내가 요즘 산 책들의 운명이 다 그렇듯이, 그 책은 며칠간 내 연구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오늘, 난 연구비 때문에 대전에 갈 일이 있었고, 며칠간 읽던 책을 출근길에 다 읽었기에, 대전행 버스를 타러 갈 때는 <회랑정 살인사건>을 가져갔다. 그 덕분에 대전을 오가는 동안 난 전혀 심심하지 않았고, 연구비 발표를 하는 동안에도 책을 읽고 싶어서 안절부절했다. 내일까지 마감해야 할 논문이 있는지라 다시 학교로 돌아왔는데, 한 네시간 정도는 써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난 유혹에 저항하지 못했고, 중간까지 읽었던 그 책을 다시금 집어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오후 7시 반, 써야 한다는 고찰 부분은 아직 한줄도 못썼다 (딱 한 단어, ‘The’만 써놨을 뿐이다). 과연 오늘 밤 안에 집에 갈 수 있을까? 아마도 틀린 것 같다. 새벽 두시 경에라도 집에 가려면 지금부터 한눈 팔지않고 논문을 써야 하지만, 그래도 시원하다. <회랑정>을 다 읽어버렸으니까. 책을 읽지 않고 버텼다면, 논문은 계속 쓰지 못한 채 책만 바라봤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인가? 외딴 섬에서 사람이 하나씩 죽어나가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이 있었다. 난 그걸 소설로 읽지 않고 어릴 때 5회로 연재된 라디오 극으로 들었는데, 어찌나 무섭던지 그 닷새간 잠을 설쳤다. <회랑정>을 읽으니 그때 생각이 난다. 이 책은 그러니까 급히 해야 될 일이 있는 사람은 읽어선 안된다. 시간이 많고 무료할 때, 특히 주말에 읽을 것을 권한다.

요즘 우리나라에선 추리소설이 잘 안팔린단다. 그래서인지 추리소설을 쓰는 작가도 거의 없다시피하다. 혹자는 우리나라가 추리의 불모지가 된 게 음모로 얼룩진 우리 정치판 때문이라고 하던데, 감히 장담하건데 우리 정치판이 아무리 재미있어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만은 못하다. 그나저나 논문을 써야 하는데, 18분을 또 리뷰 쓰는 데 허비했으니 귀가 시간은 더 늦어질 전망이다. 미녀 아내를 혼자 남겨둔 비정한 남편, 그 아내는 내가 이런 짓을 하느라 늦게 가는 걸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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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4-24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이지 읽다 만 추리소설을 두고 다른 일을 한다는 게 더 비정한 남편일지도 몰라요!ㅎ
그래서 저는 추리소설을 잘 안 읽어요. 애들한테는 열심히 사주지만...
댓글에 답은 안하셔도 돼요. 그 시간만큼 빨리 귀가해서 미녀 부인과 함께 하시라고요. ^^

비로그인 2008-04-24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정한 남편이 주인공인 책 이야기인줄 알았어요.
저 순진하지요?

비로그인 2008-04-25 0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베스트는 어디까지나 아가사 크리스티의 `쥐덫'이었어요. 강력히 추천!

마태우스 2008-04-28 0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드님/쥐덫 그거, 예전에 읽었지요^^ 잘 지내시나요 세댁님^^
승연님/제가 제목으로 님을 낚은 겁니다^^
순오기님/좀 늦게 댓글 달아요 그날 결국 열한시 반에 왔어요 몸이 아팠는데 제가 나빴어요 흑....

다락방 2008-04-28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딱 한 단어, ‘The’만 써놨을 뿐이다.-->아, 너무 재밌어요 마태우스님.
:)

마태우스 2008-05-02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제 유머를 알아주는 분은 역시 다락방님밖에...^^

카프리 2008-05-20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볼까말까 고민하던 책인데 꼭 봐야겠네요. ^^ 참, 늦어서 엉뚱한 소리로 들리시겠지만 정말 결혼 축하드려요. :D 행복이 배로 늘어나서 더 즐거워보이시고 그런 모습이 참 좋아보인답니다.

다락방 2008-05-20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거 마태우스님의 리뷰에 땡스투하고 읽었는데요. 재미있긴 했지만 너무 슬펐어요. ㅜㅜ
 

지난 일요일, 아내가 목동에 간다기에 데려다 주려고 차를 몰았다.
슬리퍼를 신고 운전을 했더니 발등이 까졌더라, 이 말을 하려는 게 아니라
목동까지 가는 길이 어찌나 막히던지, 무슨 사고라도 크게 난 줄 알았다.
하지만 사고는 아니었다.
목동이 막힌 건 순전 목동 운동장 때문이었고, 그 시각 그곳에서는 롯데와 우리 히어로즈의 야구 경기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날 밤 인터넷을 보니 롯데 팬들 때문에 목동에 많은 관중이 운집했고, 일요일엔 첫번째 매진이 되었단다.
목동 운동장은 프로야구 경기가 열리기에는 시설이 여러가지로 부족해, 차들이 차도를 점거하고 주차를 해야 했고,
차가 밀린 건 그 때문이었다.

롯데와의 세경기 때 온 관중들 숫자가 그 이전 아홉경기 때 관중보다 더 많다니 롯데 팬들의 열기는 정말이지 대단했다.
이토록 대단한 팬들을 거느린 롯데는 불행히도 2000년대 들어 성적이 별반 좋지 않았다.
2001년부터 4년간 꼴찌를 했고
2005년 5위를 했다가 그 이듬해 다시 7위로 미끄러진데다,
지난해에도 7위에 그쳤으니 좋지 않은 정도가 아니다.
이름하여 7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여덟 팀 중 무려 네팀이 포스트시즌에 나가는데 7년간 거기 끼지 못했다니,
인터넷에 떠도는 ‘꼴데’라는 비아냥이 자연스럽게 들린다.
언젠가 경기장에 붙은 ‘가을에도 야구하자!’라는 플래카드는 이제 롯데 팬들의 염원이 됐다.

야구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만, 부산 사람들만큼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다.
아주 오래전 롯데가 8연승을 했을 때 부산의 분위기를 전하는 기사는
경기가 있을 때마다 상가가 문을 닫는다고 했다.
출신지가 부산(경남)이라는 이유로 롯데만을 좋아해야 하는 팬들,
4위만 해달라는 기대에 늘 부응하지 못하건만 그네들은 그래도 롯데를 좋아한다.
그렇다고 롯데의 전력이 안좋았던 건 아니다.
선수 면면을 따져봤을 땐 적어도 3위는 해야 할 전력이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우수한 선수가 롯데로 가면 제 실력을 발휘 못하는데,
롯데에서 헤매다가 한화에 와 에이스로 거듭난 문동환이 그 한 예고,
1번타자로는 최고의 기량을 가진 정수근이 부산에 간 뒤 술먹고 싸운 거 말고는 한 게 없었던 것도 또다른 예다.
그래서 난 고향이 부산이라고 하면 늘 위로의 말을 건내곤 했는데
그때마다 상대방은 맑은 소줏잔을 앞에 놓고 그간 마음 속에 도사리던 응어리들을 내뱉었다.

올해, 롯데는 로이스터라는 외국인 감독을 데려왔다.
하지만 롯데팬을 제외하면 올 시즌에도 롯데가 4위 안에 들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팀이 그대로인데 감독을 바꾼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초반에 롯데가 연승가도를 달릴 때에도 난 저러다 말겠지, 했다.
하지만 롯데의 돌풍은 사그라들지 않았고, 가장 먼저 10승 고지를 밟은 팀은 바로 롯데였다 (참고로 10승에 먼저 도달한 팀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확률은 90.9%란다).
어제 지긴 했지만 롯데는 현재 2위라는, 최근 8년간 기록하지 못했던 순위를 달리고 있는데
롯데 팬들이 로이스터를 ‘히딩크’라 부르며 좋아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난 두산을 좋아하지만, 두산이 롯데에게 9-0으로 이긴 날
실망하는 롯데 팬들의 얼굴을 보면서 무지하게 미안했다.

우리 프로야구가 살려면 엘지와 롯데가 잘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열성적인 팬들이 경기장도 찾고 분위기도 띄워야 선수들도 경기할 맛이 나는 건 당연한 일,
올해, 롯데가 계속 이 성적을 유지해 팬들의 오랜 숙원을 풀어주길 기대해 본다.
파이팅, 롯데. 올 가을엔 꼭 야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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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04-22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적 개판일때 롯데 사직구장에 걸린
"늬들이 응원해라 우리가 야구할께" 를 보고 한참 웃었던 기억이..ㅋㅋ

전 두산팬이지만 올해만큼은 롯데가 우승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순오기 2008-04-22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초창기에 인천 살았으니까 삼미를 응원했던 기억만...^^ 광주 와서 17년전인가 해태경기 한번 본 게 끝이군요.ㅠㅠ 자아~~ 롯데 우승 기원합시다!^^

무스탕 2008-04-23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고향도 서울이고 살기도 서울살다 경기에 사는데 프로야구 원년부터 해태팬이었어요.
이유없이 해태를 좋아했지요.
요 몇 년 해태도 빌빌거려 팬 그만할까 싶기도 하지만 쌓인 정이 있다보니.. ^^;

마태우스 2008-04-23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님/오오 님도 두산팬? 반갑습니다. 그리고 마음도 같군요^^
순오기님/아아 삼미를 응원하셨다니, 마음고생이 지인짜 많으셨겠어요. 아무튼 결론은 롯데!
무스탕님/이상하게 기아로 옮긴 다음부터는 좋은 선수도 많이 뽑는데도 성적이 안나오데요. 역시 해태의 헝그리정신이 좋은 성적의 원인이었는 듯....

바람돌이 2008-04-23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동네에선 롯데 야구가 잘되는 해에는 부산지역 고3학생들 수능 성적이 떨어진다는 설도 있답니다. (저 역시 롯데가 우승하던 해에 임용고시 시험 준비했는데 날마다 그놈의 롯데 경기보러 다닌다고 시험에 똑 떨어졌던 아픔이 있군요. ㅠ.ㅠ)

2008-04-24 0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08-04-24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음 그렇군요. 뭐 두산도 썩 잘한 건 아니지만, 올해는 롯데에게 양보하고시퍼요
바람돌이님/야구열기가 그정도군요. 유전자에 야구가 각인되어 있는 건가요...어쩜 그리들 야구를 좋아하는지...
 
스나크 사냥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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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작가의 책을 계속 읽다보면 지겨워질 때가 있다. 예컨대 나랑 동갑에다 미모며 별 거 아닌 스토리로 책 한권을 만드는 재주가 있는 아멜리 노통은 열권 가까이 읽었더니 이젠 이름만 들어도 멀미가 난다. 한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라고 떠들고 다녔던 베르베르와는 <뇌>를 끝으로 결별했다. 이와 반대로 읽을수록 저자에게 빠져들고, 다음 책을 빨리 내줬으면, 하는 작가들이 있는데, 미야베 미유키가 바로 그런 작가다. 특히 <이유>라는 작품은 결정적으로 미미여사를 존경하게 만든 작품. 그 후부터 미미여사가 쓰면 난 산다,는 단순한 원칙을 실천하며 살고 있다.


<스나크 사냥>을 읽은 건 대략 한 달쯤 전이다. '스나크'가 뭔지도 모르면서 책을 산 이유는 위에서 언급한 내 원칙 때문인데, 알고보니 스나크는 루이스 캐롤이 창안한 괴물로, 그 괴물을 잡으면 잡은 사람이 형체도 없이 사라져버린단다. 스나크가 언제쯤 나오려나 책장을 넘기다, 이야기에 빠져들어 스나크가 나오건말건 상관없다는 태도로 책을 읽은 기억이 난다. 미미여사의 뛰어난 점은 스피디하게 사건을 전개함으로써 하려던 일을 작파하고 책을 읽게 만든다는 것도 있지만, 무릎을 치게 만들만큼 표현력이 출중하다는 것도 또다른 장점이다. 예컨대 남자가 여자를 이용해 먹고 버렸을 때, 미미여사는 이런 표현을 썼다.

"오빠는 그녀를 완전히 버렸다. 대기권을 빠져나간 로켓이 필요 없어진 연료 탱크를 떼어 버리듯이.(49쪽)"

아류작을 만들어 보려고 노력하다 보면, 저 표현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을 거다.

"오빠는 그녀를 버렸다. 2층에 올라간 헤밍웨이가 사다리를 치워버리듯이"

쓰고나니 괜찮은 아류작 같다는 생각이 든다. 또다른 구절을 보자.

"노리코는 입을 다물었다. 무슨 이야기를 할까? 마치 커다란 케이크를 통째로 주고 자, 마음대로 잘라라,하는 말을 들은 다섯 살 어린애같은 심정이었다(207쪽)."

한 2-3분 머리를 굴렸지만 이건 아류작도 못만들겠다. 이런 표현을 하기 위해 미미여사는 얼마나 부단한 노력을 했을까?


번역자 혹은 작가의 재미있는 표현을 하나만 더 옮겨본다. 상황은 신랑과 신부가 막 결혼을 한 상태.

"신부는..오늘 밤은 푹 자고 싶다고 했다. 기분이 아니야. 상관없잖아. 어차피 처음 하는 것도 아니고."

그걸 '한다'고 표현하는 사람이 또 있어서 반가웠지만, 그보다 '할'과 '하는' 위에다 점을 찍어 강조를 한 게 웃겼다. 대체 점은 왜 찍어놓은 걸까? 읽다보니 다른 대목에도 강조를 해놓은 게 있었지만, '하는'에 찍어놓은 점은 읽는 내내 웃겼다. 내가 요즘 너무 밝히는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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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8-04-13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하. 마태우스님. 이 리뷰 너무 재미있잖아요!
저는 미미여사의 책을 몇권 안 읽었는데요, 제가 읽은 것 중에서는 [화차]와 [모방법]이 좋았어요. 모방범은 세권인데도 완전 팔랑팔랑 책장이 넘어가더군요. 읽으면서 내내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이제 이 책도 읽어봐야겠군요!! 리뷰, 정말 좋아요. 흣 :)

야클 2008-04-13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 양반이 어부인 깨시기 전에 저녁밥 지을 생각은 안하고 리뷰나 쓰다니...

밥할 기분이 아닌가? 어차피 처음 하는 것도 아니라서? ^^

마태우스 2008-04-13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글게 말이오... 밀린 리뷰가 많다보니 기회를 엿보게 되더이다^^ 사실 전 설거지랑 쓰레기 치우는 담당이라 밥은 아직 해본 적이 없다는...
다락방님/재밌다고 해주셔서 감사! 미미여사를 알게 된 게 작년 후반기인지라 많이 못읽었어요 일단 모방범을 주문하려고 합니다 추천해주신 거 다 읽어볼께요 !

Mephistopheles 2008-04-14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자질쟁이가 되고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저 역시 마태님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어둠의 서재생활인이기에 그냥 공감만 할래요..ㅋㅋㅋ

순오기 2008-04-14 0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에 댓글 다는 나도 어둠의 서재생활인?ㅋㅎㅎ

2008-04-18 14: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08-04-23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님/공감버튼은 네이버 댓글에만 있는데 님이 혹시 그 유명한 네이버 댓글러?^^
순오기님/아아아 새벽에 댓글다는 건,.... 저보다 더 어둠의 서재생활이시군요
 
방황하는 칼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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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 X의 헌신>으로 날 열광케 한 히가시노 게이고, 나에게 그는 새책이 나오면 무조건 사는 작가들 중 하나다."
이렇게 쓰려고 했는데, 프로필을 보니 쓴 책이 매우 많은데 반해 읽은 건 별로 없다. <붉은 손가락>과 <괴소소설>이 <용의자>와 더불어 내가 읽은 전부, 그러니 이번에 읽은 <방황하는 칼날>은 내가 접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4번째 소설이다.


그의 다른 소설들이 추리소설에 걸맞게 '범인이 누굴까?'라는 호기심을 갖게 하는 데 반해 이 책은, 일본 사회의 법체제에 대한 저자의 깊은 회의가 담겨 있는 스릴러다. 범인은 이미 밝혀지며, 법이 하지 못하는 처벌을 위해 피해자의 아버지가 나선다. 그도 그럴 법한 것이, 범인은 여고생을 성폭행하다 죽음에 이르게 하는데, 그는 이미 수많은 성폭행을 저지른 파렴치범이지만, 일본의 법에 따르면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몇 년 안있어 출소를 할 예정이다. 여기서 의문이 제기된다. 피해자와 그 가족이 받는 고통에 비해 그가 받는 처벌은 너무도 가볍다. 그리고 십중팔구 그는 감옥에서 나오면 새로운 희생자를 찾아 눈을 번뜩이리라. 이 과정에서 법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걸까?


얼마 전 우리나라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한 변태가 혜진양과 예슬양을 성폭행한 뒤 살해하는 엽기적인 사건이 벌어진 것. 다행히 국민여론이 비등해 아동성폭행범에게 좀 더 가혹한 처벌을 할 예정이지만, 우리나라 법이 이런 류의 범죄에 지나치게 관대했던 건 사실이다. 예컨대 5살짜리 여자아이를 성추행해 구속된 전과 9범 신발가게 아저씨가 있었다. 그는 집행유예로 풀려난 지 5개월만에 더 큰 범죄를 저지르는데, 동네에 사는 열한살짜리 여학생을 성폭행하고 불에 태워 죽인 거다. 그로 인해 그 아저씨는 중벌을 받겠지만, 전과가 아홉이나 있는 상습적인 범죄자를 집행유예로 풀어줌으로써 애꿏은 여학생이 살해된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법은 사회구성원들간의 약속이지만, 법의 형평성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가 제기되는 건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대부분 사회에서 강자에 속하기 때문이리라. 특히나 성폭행에 대해 관대하기 짝이 없는 이유는 법을 만든 사람들이 죄다 남자라는 것도 이유가 될 것이다. 평소 이런 법의 한계에 대해 회의를 갖고 있었기에 난 책에 나오는 피해자의 아버지가 복수에 성공하기를 바랐다. 그 결말이 어떠할지 궁금하신 분은 책을 읽으시라. 우리나라 뿐 아니라 일본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게 조금은 위안이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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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8-04-14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잽싸게 리뷰를 두편이나 쓰실 수 있으시다니!!!

L.SHIN 2008-04-14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동성범죄, 성폭행, 살인 등은 아무리 엄격하게 처벌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는데 말이죠.
법은 바뀌어야 합니다.

그런데, 왜 '아내가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잽싸게' 써야 하는거에요, 리뷰우~?

마태우스 2008-04-22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Lud-S님/음...아내가 깨어 있으면 인터넷하기가 미안해요. 같이 놀아야죠
브리니님/부끄럽습니다. 환경이 열악하면 잽싸집니다^^
 

노무현이 대통령을 하던 시절, 이런 생각을 했다.

"아, 다음 정권은 무조건 한나라당이고 총선도 한나라당이 압승하겠구나! 최소한 10년은 그네들이 다 해먹겠구나!"

그래서 난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이 과반의석을 넘느니 하는 말이 나왔을 때도 시종 담담했고,

선거 결과가 그에 근접하게 나온 지금도 하등의 동요가 없다.

 

근데 내가 한가지 예상 못했던 일이 발생해 날 당혹케 했는데

그건 바로 전여옥이 내가 이사온 선거구에서 출마를 한 것.

그녀의 면상이 담긴 포스터를 보는 순간, 기권 또는 무효표를 던지려던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전여옥이 아닌 그 누가 우리동네에 출마했었어도 무뎌져 버린 내 정치적 감수성을 건드리지 못했을 거다.

근데 전여옥이라니!

얼굴만 봐도, 이름만 들어도 날 열받게 하는 거의 유일한 국회의원...

왜 그녀가 내가 막 전입신고를 한 이곳에 기어들어온 걸까?

노숙자 정리 발언 당시의 전여옥

 

그런데...그녀가 지지도 1위를 달리고 있다는 소식은 날 절망시킨다.

주변에 한나라당을 좋아하는 애가 득실대지만 그래도 전여옥 정도는 싫어할 줄 아는 이성을 지녔던데

도대체 누가 그녀를 지지한다는 걸까?

한나라당이 298석을 먹더라도 전여옥만 안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오늘 아침, 투표용지에 뭐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는 기호 1번에 표를 던졌다 (정당투표는...진보신당에게...)

늘어지게 자다가 네이버에 접속해 보니 '전여옥 의원은 득표율이 50%가 넘어 당선이 확실시된다"는 기사가 뜬다.

어떤 이가 댓글을 달았다.

"영등포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기에 전여옥같은 애를 당선시키냐?"

 

정말이지 나도 궁금하다.

어떤 애들이 전여옥에게 표를 던졌는지.

그간 내게 잘해주던 이웃들이 갑자기 무서워진다.

"니네 때문에 나까지 욕먹잖아!

니네 나보다 잘사는 것 같지도 않은데 왜 상위 5%를 위한 정당에 표를 던지는 거야?"

전입신고 괜히 했나보다.

총선 후에 할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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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04-09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똑같이 진행되지 않을까 싶어요. 과반석이라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서 비리, 뇌물 등등으로 하나 둘 잘려나가면서 보궐선거 들어가겠죠..^^ 문제는 노무현정권때처럼 언론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까발려주냐?가 문제가 되겠습니다.^^

마태우스 2008-04-09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님/그러게 말입니다 집안사정으로 할수없이 중앙일보 보는데 가관이더군요 어찌나 칭찬만 해대는지.. 그야말로 환상의 커플이더라고요. 또 저는 우리 민중들을 안믿는지라, 앞으로의 전망은 회색빛입니다 ㅠㅠ

웽스북스 2008-04-09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 마태우스님을 조금 불쌍히 여겨도 되겠습니까?
물론 우리 다 불쌍하긴 하지만
마태우스님이 어째 쫌 더 불쌍하게 느껴집니다 ㅜㅜ

앞으로 이웃들 볼 때마다
저사람 전여옥 찍었을거야, 저사람은 안찍었을것 같아, 라고 생각하며 다니시게 되는건 아닌지....

sweetmagic 2008-04-09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우찌 !

마늘빵 2008-04-10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랑 같은 선택을 하셨군요. :) 제가 영등포에 살지 않아 다행입니다. 우리 지역은 어떻게 됐나 모르겠어요. 여론조사상으로는 다행히 최악은 면한 듯 했는데 결과는 어찌 됐을지.

soyo12 2008-04-10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초 박빙지역에 살거든요.
게다가 민주당 의원님을 나름 좋아해서
방금 그 속에서 떨어지신 그분 때문에 너무 슬펐는대
마태우스 님을 보니 위안을 얻었습니다.
죄송하지만......
음.......삼척 분들 다음으로 안되셨어요.^.~

하늘바람 2008-04-10 0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나라당 만세더군요. 아주

순오기 2008-04-10 0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반에 결과 보다가 살맛 안나서 자버렸습니다.
남편이랑 결과보다가 "헉~ 영등포사람들 정신나갔군!"이랬다는...
전, 녹색지역 살지만 밥맛 없기는 여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에휴~

조선인 2008-04-10 0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영등포주민이셨군요. 이제 님의 카리스마를 발휘해 보세요. 혹 알아요. 다음번 판세를 바꾸는 일등공신이 될지. =3=3=3

토토랑 2008-04-10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ㅜ.ㅜ 저두.. 영등포 구민...이에요..

저두 전여옥씨는 싫지만..
선거 리플랫만 놓고 보면.. 전여옥씨께 제일 나았다는거 ㅜ.ㅜ 내용이나 편집이나

그리고 선거인사 하러다니는데도.. 좀 전략적이랄까 그렇더군요..
민주당에서 조금만 괜찮은 사람 내보냈어도.. 기호 1번 지금 국회의원이신 분이
정책적으로 했다고 공로 내세우는데 학교 잔디 깔기가대표적인 거였거든요

4번인 민노당 대변인은 영 정책 방향을 좀 너무 큰걸로만 잡으셨구요.

저두 초반에 전여옥이 이 지역구에 나온다는 얘기 들을때부터 뜨어 하고
다른 후보 진영에 가서 자원봉사라도 할까 생각을 했지만..
점점 선거기간 동안에 다른 후보들 하는거 보니
전여옥씨가 굳히기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안타까웠어요 ㅜ.ㅜ

비공개 2008-04-10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등포엔 어떤 사람들이 살길래 그여자를 뽑았나 했더니..
마태우스님도 살고 계셨군요.
전여옥 최연희가 당선되고 노회찬 심상정이 낙선하는 이따위 총선이라니.. 휴...

paviana 2008-04-10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새사실,최연희도 당선되었군요.
어쨋든 님이랑 제가 똑같은 선택을 했다니 다행이네요.
한선교보다 더 챙피한게 전여옥인데, 제가 그나마 좀 낫군요.
실은 딴나라당 후보가 연대교수에다 하바드대 박사라서 선전할 줄 알았는데,하여간 아줌마들이 무서워요.(저도 아줌마지만...)
하긴 유정현이랑 김을동아줌마도 국회의원되는 마당에..에효.

전호인 2008-04-10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녀옥이 영향아래(?) 있는 마태우스님과 이런 곳에 같이 있기 싫어집니다 그려. ㅋㅋ

클리오 2008-04-10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째 가만보니 비례대표 진보신당 찍은 사람들은 여기 전부 꽤 많이 몰려있는듯한... --;

하얀마녀 2008-04-10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투표율이 46%더군요.
둘 중에 한 명은 안 했단 뜻인데... 오늘도 퇴근하면서 주위 사람들 보면서 저 생각을 했더랍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암담합니다.
3당합당이라는 일이 있을 당시 전 고1이었고 그 땐 정말 아무것도 몰랐었는데 그 때도 이렇게 암담했을까요?

마태우스 2008-04-11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녀님/안녕하셨어요? 음, 3당합당 때는 놀랐긴 하지만, 민중들에 대한 믿음이 있을 때였던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은 오직 경제, 또 경제 뿐이더군요 ㅠㅠ
클리오님/역시나 책을 많이 읽으면 좌파가된다는...
allnaru님/그러게 말입니다. 국회의원 전여옥을 4년간 또 봐야 한다니....
전호인님/어어.... 그러심 안되죠!!!! 어차피 우린 다 한나라당의 영향권 안에 있는 거잖아요 대통령이 MB니!
파비님/앗 김을동이 국회의원 되었나요? 무슨 당으로 되었죠? 정말 신기하네...
jshin님/정말 무서운 건, 겉보기엔 다들 멀쩡해 보인다는 거죠...
토토랑님/글게 말입니다 민주당이 1번을 좀만 괜찮은 사람으로 내보냈다면, 예컨대 유시민-전여옥이 토론이 아닌 선거에서 붙었다면 어땠을까 싶어요. 이번에 표차가 생각보다 안커서 3% 이겼던데...
조선인님/유동인구가 워낙 많은 동네라 제가 판세를 뒤엎기엔 역부족...당산역 앞이 저희 집인데 정말 바글바글합니다
순오기님/부군께 잘 말씀드려 주세요 제 맘은 그렇지 않다구요...
하늘바람님/흠, 한나라당 세상이지만 아직 이너넷은 그렇지 않네요. 여기서 우리끼리 신세한탄이라도 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소요님/호홋 그래도 삼척이 있어서 조금은 위안이 되네요. 전 제가 젤 불행한 주민인 줄 알았다는...
아프님/그래도 진보신당 한석도 못얻었더군요. 진보 분들이야 나름의 논리가 있겠지만, 사실 전 총선 전에 갈라서는 게 좀 뜬금없었어요. 총선 후로 미루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구요.
매직님/그래도 소신투표를 했으니 후회는 없....진 않습니다. 전입신고 늦게할걸.
웬디양님/그래도...제가 살아갈 동네니 그러려니 하고 살아야겠어요 흑. 4년 후엔 전여옥이 선거구를 바꾸길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