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아내가 목동에 간다기에 데려다 주려고 차를 몰았다.
슬리퍼를 신고 운전을 했더니 발등이 까졌더라, 이 말을 하려는 게 아니라
목동까지 가는 길이 어찌나 막히던지, 무슨 사고라도 크게 난 줄 알았다.
하지만 사고는 아니었다.
목동이 막힌 건 순전 목동 운동장 때문이었고, 그 시각 그곳에서는 롯데와 우리 히어로즈의 야구 경기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날 밤 인터넷을 보니 롯데 팬들 때문에 목동에 많은 관중이 운집했고, 일요일엔 첫번째 매진이 되었단다.
목동 운동장은 프로야구 경기가 열리기에는 시설이 여러가지로 부족해, 차들이 차도를 점거하고 주차를 해야 했고,
차가 밀린 건 그 때문이었다.

롯데와의 세경기 때 온 관중들 숫자가 그 이전 아홉경기 때 관중보다 더 많다니 롯데 팬들의 열기는 정말이지 대단했다.
이토록 대단한 팬들을 거느린 롯데는 불행히도 2000년대 들어 성적이 별반 좋지 않았다.
2001년부터 4년간 꼴찌를 했고
2005년 5위를 했다가 그 이듬해 다시 7위로 미끄러진데다,
지난해에도 7위에 그쳤으니 좋지 않은 정도가 아니다.
이름하여 7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여덟 팀 중 무려 네팀이 포스트시즌에 나가는데 7년간 거기 끼지 못했다니,
인터넷에 떠도는 ‘꼴데’라는 비아냥이 자연스럽게 들린다.
언젠가 경기장에 붙은 ‘가을에도 야구하자!’라는 플래카드는 이제 롯데 팬들의 염원이 됐다.

야구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만, 부산 사람들만큼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다.
아주 오래전 롯데가 8연승을 했을 때 부산의 분위기를 전하는 기사는
경기가 있을 때마다 상가가 문을 닫는다고 했다.
출신지가 부산(경남)이라는 이유로 롯데만을 좋아해야 하는 팬들,
4위만 해달라는 기대에 늘 부응하지 못하건만 그네들은 그래도 롯데를 좋아한다.
그렇다고 롯데의 전력이 안좋았던 건 아니다.
선수 면면을 따져봤을 땐 적어도 3위는 해야 할 전력이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우수한 선수가 롯데로 가면 제 실력을 발휘 못하는데,
롯데에서 헤매다가 한화에 와 에이스로 거듭난 문동환이 그 한 예고,
1번타자로는 최고의 기량을 가진 정수근이 부산에 간 뒤 술먹고 싸운 거 말고는 한 게 없었던 것도 또다른 예다.
그래서 난 고향이 부산이라고 하면 늘 위로의 말을 건내곤 했는데
그때마다 상대방은 맑은 소줏잔을 앞에 놓고 그간 마음 속에 도사리던 응어리들을 내뱉었다.

올해, 롯데는 로이스터라는 외국인 감독을 데려왔다.
하지만 롯데팬을 제외하면 올 시즌에도 롯데가 4위 안에 들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팀이 그대로인데 감독을 바꾼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초반에 롯데가 연승가도를 달릴 때에도 난 저러다 말겠지, 했다.
하지만 롯데의 돌풍은 사그라들지 않았고, 가장 먼저 10승 고지를 밟은 팀은 바로 롯데였다 (참고로 10승에 먼저 도달한 팀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확률은 90.9%란다).
어제 지긴 했지만 롯데는 현재 2위라는, 최근 8년간 기록하지 못했던 순위를 달리고 있는데
롯데 팬들이 로이스터를 ‘히딩크’라 부르며 좋아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난 두산을 좋아하지만, 두산이 롯데에게 9-0으로 이긴 날
실망하는 롯데 팬들의 얼굴을 보면서 무지하게 미안했다.

우리 프로야구가 살려면 엘지와 롯데가 잘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열성적인 팬들이 경기장도 찾고 분위기도 띄워야 선수들도 경기할 맛이 나는 건 당연한 일,
올해, 롯데가 계속 이 성적을 유지해 팬들의 오랜 숙원을 풀어주길 기대해 본다.
파이팅, 롯데. 올 가을엔 꼭 야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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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04-22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적 개판일때 롯데 사직구장에 걸린
"늬들이 응원해라 우리가 야구할께" 를 보고 한참 웃었던 기억이..ㅋㅋ

전 두산팬이지만 올해만큼은 롯데가 우승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순오기 2008-04-22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초창기에 인천 살았으니까 삼미를 응원했던 기억만...^^ 광주 와서 17년전인가 해태경기 한번 본 게 끝이군요.ㅠㅠ 자아~~ 롯데 우승 기원합시다!^^

무스탕 2008-04-23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고향도 서울이고 살기도 서울살다 경기에 사는데 프로야구 원년부터 해태팬이었어요.
이유없이 해태를 좋아했지요.
요 몇 년 해태도 빌빌거려 팬 그만할까 싶기도 하지만 쌓인 정이 있다보니.. ^^;

마태우스 2008-04-23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님/오오 님도 두산팬? 반갑습니다. 그리고 마음도 같군요^^
순오기님/아아 삼미를 응원하셨다니, 마음고생이 지인짜 많으셨겠어요. 아무튼 결론은 롯데!
무스탕님/이상하게 기아로 옮긴 다음부터는 좋은 선수도 많이 뽑는데도 성적이 안나오데요. 역시 해태의 헝그리정신이 좋은 성적의 원인이었는 듯....

바람돌이 2008-04-23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동네에선 롯데 야구가 잘되는 해에는 부산지역 고3학생들 수능 성적이 떨어진다는 설도 있답니다. (저 역시 롯데가 우승하던 해에 임용고시 시험 준비했는데 날마다 그놈의 롯데 경기보러 다닌다고 시험에 똑 떨어졌던 아픔이 있군요. ㅠ.ㅠ)

2008-04-24 0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08-04-24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음 그렇군요. 뭐 두산도 썩 잘한 건 아니지만, 올해는 롯데에게 양보하고시퍼요
바람돌이님/야구열기가 그정도군요. 유전자에 야구가 각인되어 있는 건가요...어쩜 그리들 야구를 좋아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