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을 떠난 지 보름 정도 지났을 무렵, ‘알라딘 직원입니다’라는 제목의 메일이 왔다. 자신을 김정아라고 밝힌 그 직원은 내게 다음과 같은 얘기를 해줬다. 내가 나간 후부터 알라딘의 하루 방문객 숫자가 평소 30만명 수준에서 20만명 가량으로 30% 이상 줄어들었으며, 매출액의 감소는 훨씬 더 크다는 것.
“저도 이게 단지 마태우스님 때문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마태우스님의 서재 방문객 숫자가 하루 300명이 못되는 수준인데, 저렇게까지 영향을 미칠 것 같지는 않거든요. 원래 연초에는 책 판매량이 줄어들기도 하고요. 근데 저 통계가 작년 동기와 비교한 것이고, 마태우스님이 나가시고 사흘 후부터 매출액이 떨어져서 다른 이유를 찾지 못하겠어요. 평범하고픈 콸츠님이 나가신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요.”
메일을 읽다가 좀 황당했다. 나한테 이걸 믿으라고? 혹시 돌아오게 하기 위한 계략이 아닐까?
“그래서... 저희들끼리 회의를 한 결과 제가 님한테 메일을 보내는 겁니다. 님이 미녀를 좋아하신다고 하셔서 미모가 좀 되는 저한테 책임을 맡긴 거죠. 마태우스님, 2월도 되고 했으니 이제 돌아와 주세요. 저희가 굶게 생겼어요.”
장고에 장고를 한 끝에 난 이런 답장을 썼다.
“제가 존경하는 로쟈님이 한달에 150만원 내외의 매출을 좌우하신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땡스투로 판단컨대 저는 기껏해야 한달에 열권 내외의 책 판매에 영향을 미칠 뿐이지요. 그래서 전 님이 제시하신 통계를 믿을 수가 없습니다. 더 믿을 수 없는 건 님의 미모 여부입니다. 최소한 사진이라도 제시하시고 그런 말씀을 하셔야지 않겠습니까? 제 복귀 여부는 사진을 보고 판단하겠습니다.”
답장을 하고 후회를 했다. 내가 너무 냉정한 건 아닌지, 진짜 미녀면 어떡해야 하는지 등등. 이따금씩 메일 확인을 했지만 그녀로부터 연락은 오지 않았다. 난 다른 알라디너가 직원을 사칭해 작전을 한 걸로 결론을 내렸다. 그로부터 사흘 후, 다시금 메일이 왔다.
“마태우스님, 사진을 보내려고 몇 번이나 시도하다 관두기로 했어요. 그래요, 님 말씀대로 전 미녀가 아니어요.”
이런이런, 날 속이려고 하다니! 잠시 부르르 떨다가 나머지 글을 읽었다.
“회의를 다시 한 결과 저희 사장님이 나서기로 했어요. 조유식 사장님 아시죠? 그분과 마태우스님이 술 대결을 벌여서 이기는 사람 마음대로 하는 거 어떠세요? 물론 술값은 저희 사장님이 다 부담하고요.”
난 조유식 사장님을 만난 적이 있었다. 목동 어디쯤에서 소주를 마셨었다. 난 한병반을 마셨고, 조 사장님은 두잔인가를 마시고 얼굴이 붉어지셨다. 그리고는 내가 빈 잔을 채우려 할 때 손을 내저으셨다. 난 그때를 떠올리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지옥훈련을 하셔도 내가 이긴다...
꺼진 불도 다시보자. 내가 늘 마음에 새기는 경구다. 난 그때부터 몸을 만들기 시작했다. 집에 일찍 들어와 저녁을 먹었고, 저녁 식사 후 샤워를 한 뒤 소주 석잔을 원샷으로 들이킨 후 잠자리에 들었다. 그렇게 열흘이 지났다. 난 소주 네병도 거뜬할 정도로 몸이 완성되어 있었다.
종로의 ‘얄리성’이라는 중국집에 도착한 건 약속시간보다 3분이 늦은 후였다. 조사장님은 먼저 와 계셨다. 모자를 푹 눌러쓴 그분은 내 생각보다 몸이 불은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마태우습니다.”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 난 앗 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는 조유식 사장이 아니었다. 그가 호탕한 웃음소리를 냈다.
“껄껄껄. 내가 누군지 아느냐?”
“너, 너는... 알코올계의 대부 바람구두? 여긴 웬일이냐?”
바람구두는 다시금 껄껄 웃었다.
“넌...오늘 나와 대결해야 한다.”
속았다는 걸 알고 도망치려는 순간, 여러 명의 사람들이 달려들어 날 결박했다. 메피스토, 울보, 스텔라, 물만두.... 심지어 해적님은 채찍까지 들고 휘둘러 댔다. 난 꼼짝없이 자리에 앉았고, 알코올계의 대부와 고량주로 원치 않는 대결을 해야 했다. 탕수육 몇 개를 집어먹은 것, 그리고 내가 메피스토님한테 혹시 가발 아니냐고 물은 것, 이런 것들 외에 별로 기억나는 게 없다. 잠에서 깼을 때 난 낯선 방에 있었고, 내 옆에는 야클님이 자고 있었다. 머리 위에 있는 쪽지가 눈에 띄었다.
[넌 졌다. 돌아와라 -바람구두-]
2월 26일 오후 한시, 난 떨리는 손으로 카테고리를 하나씩 열었다. 마태우스의 제2기가 시작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