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만드는 학교 공간 이야기
고은석 외 지음 / 북트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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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본 학교공간개선 책들은 사실 장밋빛 같았다. 책에 수록된 사진 하나하나가 정말 예뻤고, 이런 학교라면 학생, 교사, 학부모 모두가 만족하며 아름다운 교육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런 학교를 짓기 위해서 수면 아래서 열심히 그리고 처절하게 갈퀴를 휘저어야 하는 사람들의 어려움이 책에 수록되었다. 책 표지에는 교육청 추천도서인데 정말 처절하게 교육청을 비판한다. 

 아직 학교공간 개선이 어색하던 2017년 한적한 광주광역시의 작은 시골학교에 한 선생님이 학교공간 개선을 추진한다. 혁신교육감이 등장하고, 학교 공간에 대해서도 윗선에서 나름 떠들고 약속도 하던터라 기대에 부풀었다. 힘들게 선생님들, 학부모들,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거 거의 교육기부다 싶은 금액으로 업체도 입찰한다. 이 모든걸 학교 선생님이 했는데 그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한데 교육청이 어깃장을 놓는다.

 분명 사용자 참여설계를 한다고 했는데 그들의 의견도 물어보지 않고 자기들 마음대로 원하는 실과 교실 갯수를 물어보고 총액을 설정해버린다. 교육주체들의 의견이 반영된 주요 시설들도 안전을 이유로 관행을 이유로 법을 이유로 퇴짜놓아 버린다. 아마 지금 어른들은 잘 모를 것이다. 일선 학교에 그네가 없다는 사실을. 대충 10여년 전인가 한 아이가 그네에서 놀다 다쳤고 그후로 안전을 이유로 학교에선 그네가 사라졌다. 그 뿐이 아니다. 십수년을 멀쩡히 있던 놀이터를 갑자기 안전진단을 했고 그 멀쩡한게 대부분 안전진단 불합격을 하자 반년 혹은 수개월을 펜스를 쳐놓고 아이들이 이용못하게 했다. 그리고 돈을 들여 기존 것과 거의 다를바 없는 새로운 놀이터를 구축했다. 이게 현장에서 일어난 일이다. 

 하여튼 건축에서도 비슷했나보다. 벽돌을 흰색으로 하고 싶다는데 자기들 마음대로 단가를 맞추느라 붉은 벽돌을 가져오고, 간신히 주무관을 가르치고 시선을 유도해놓으면 어느샌가 보직이 변경되어 다른 사람이 와서 다시시작하게 만든다. 교육장이나 장학사니 하는 사람들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선생님은 상당히 직설적으로 그들을 비판하는데 이런건 정말 필요하다. 잘못한 사람은 잘못했다고 호되게 나무라고 비판해야 한다. 언제까지 한국 사회 모든 분야에서 기계적 균형이나 맞추고 앉아야 할까나.

 학교공간 개선에 있어 저자는 학생, 교사, 학부모를 대상으로 워크숍을 진행한다. 그 단계가 유용해보인다. 우선 학생 워크숍

1. 기억하자

-일상을 기억하고 학교를 들여다보기

2.탐색하자

-학교지도 표현하고 장소 소개하기

3.만들자

-내가 바라는 학교 전체 모습 구상하기

4.상상하자

-키워드 배치를 바탕으로 학교 공간 모형 만들기

5.공유하기

-우리가 바라는 미래 학교 이야기하기


교사 워크숍

1.학교 살펴보기

-학교에 대한 이미지, 우리 학교에 해당하는 단어, 교사들의 장소 인식 및 현황 해석

2.학교의 구조, 공간과 행위

-학교의 구조 파악, 우리 학교에서 원하는 활동과 공간의 해석

3.학교의 환경 비전과 요구

-우리 학교 기대공간과 공간 내 활용

4.교실 보기와 학교공간 구성

-학교 교실 활용 현황과 관련 영역 확인


학부모 워크숍

1.학교 일상의 기억

-학교에서 가장 기억나는 하루 표현하기, 학교 지향점 공유

2.학교 공간의 탐구

-교육 지향점에 따른 공간 키워드, 키워드가 담긴 학교 공간 이미지 표현하기

3.교육 공동체속 학교 공간의 지향점 찾기

-학교교육 공동체의 의미와 지향점, 교육 공동체의 구체적 역할 놀이

4.다시 만든 학교에 가기

-학교 공간 디자인 이슈 발견하기, 학교 필요공간 도출, 교실의 역할과 범위 논의


책은 학교 공간개선에 관한 책이지만 학교교육과정에 과한 논의도 깊다. 양자가 함께 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근무한 학교는 분교였다고 다시 본교가 될정도로 무척 작은 학교였다. 그 작은 학교를 살리기 위해 정말 많은 예술활동과 도전활동이 학교교육과정에 들어차있었다. 때문에 담임교사가 무엇을 할 여지가 거의 없는 수준이었는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학교교육과정은 목표와 방향성만을 제시해야지 지나치게 촘촘하면 안된다고 한다. 

 또한 학교교육과정에 안식년도 필요하다고 한다. 첨 듣는 주장인데 신박하다. 모두가 과도한 교육과정에서 버리기를 해야한다고 하는데 사실 다 필요해서 뭣하나 버릴게 없다. 이럴때 다 같이 한번 유예하는 안식년을 두자는 것이다. 아무래도 한 번 안해보면 그 필요함과 필요없음에 대해 절감하지 않을까나. 

 마지막으로 재밌던건 학교 공간 개선 과정에서 남향건물에 대한 포기였다. 건축업체는 관성처럼 남향 교사건물을 디자인해왔는데 그리되면 아이들이 운동장으로의 접근성과 동선이 크게 퇴행하였다. 때문에 건물을 서향으로 바꾸어 동선을 확보했다. 또한 학교 교실이 남향일 경우 수업시간인 낯시간에 해가 강하게 들이쳐 하루종일 블라인드를 해야한다는 점. 그리고 남향이 가장 효과적인 겨울철 정작 학생을 방학이라 학교에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참 좋았다. 또한 최근 학교공간 혁신에서 아이들의 운동장 및 숲속, 텃밭등으로의 접근성을 강조해 교실을 1층에 배치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이 학교 아이들은 작은 학교 아이들이어서인지 1층 교실을 싫어했다. 높은 곳에서 학교의 풍경을 조망하고 싶어했고 그 결과 3-6학년 학생들은 2층에서 생활하게 건축이 진행되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다들 아파트에 살아서 익숙해서 그렇지 어릴적 단독 살땐 항상 높은 풍경을 그리워했다. 높은 곳이 주는 묘미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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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학교를 바꿨어요! - 공간 디자이너가 된 아이들 내가 바꾸는 세상 5
배성호 지음, 서지현 그림 / 초록개구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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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선생님이 아이들을 가르치며, 그리고 가르치기 전에 아이들이 볼만한 책이다. 서울 삼양초등학교 아이들이 학교 곳곳을 둘러보며 건축학과 대학원생들 그리고 선생님, 건축전문가와 함께 학교 공간을 바꾼 사례다. 

 나아가는 과정이 재밌다. 먼저 아이들의 생활을 관찰하며 그들의 말 하나하나를 기록했다. 공동의 아이디어를 마련하기 위해서인데 말에 대해서 공유하는 시간도 가졌다. 그리고 프로젝트 참여자인 6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그들이 학교를 가장 잘 아는 '전문가'임을 인정해주고 학교에서의 시간과 공간 놀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은 놀이다. 좋아하는 피구, 학교 어딘가에서 누워서 자기, 수다떨기 등을 한다. 학교 다닐때 정말 하루종일 하고 싶었던 것들이다. 

 밑밥을 그만 깔고 이제는 활동을 본격화하여 쉼, 바람, 추억으로 주제를 나누어 팀별로 학교를 탐색했다. 같이 공간을 탐색하면서 어린이들이 주목하는 장소가 발견되었다. 그 장소에서 다른 친구들이나 동생들이 어떻게 노는지도 관찰했는데 이러한 수많은 학교 공간 중 개선할 곳 3곳을 정했다. 그리고 개선하고 싶은 아이들의 디자인을 받고 의견을 나누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시공이었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던 공간이 더 그럴싸하게 원하는 목적으로 바뀐 것을 보고 자신들의 힘과 공간의 변화가 주는 힘이 놀라워한다. 최근 학교 공간 개선이 많이 이뤄지는데 전면 구축이 아니더라도 부분 개선도 충분한 효과가 있음을 보여주는 셈이었다. 

 학교공간 개선 하면 전체적인 공간에 대한 공사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책을 보면 당장 학급에서라도 충분히 가능해보였다. 아이들과 의견을 나누고 배치를 바꾸어 본다던지, 텐트를 놓는다던지, 학교 어딘가에서 굴러다니는 버려진 소파를 놓는다던지, 아니면 벽면을 같이 도색을 해본다던지 이런 작은 실행 가능한 변화가 그 시작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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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공간, 이렇게 바꿨어요! - 미래 학교 만들기 프로젝트
권미나 외 지음 / 창비교육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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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OECD 컨퍼런스에서 학교공간의 중요성이 대두되었다. 이는 한국의 혁신교육에 학교 공간의 중요성에 대해 일깨움을 주는 사건이었다. 학교공간은 학생들의 학습과 정서적 성장, 태도에 이르기까지 생각보다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기에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물리적 조건과도 얼추 맞아들어간다. 통계에 의하면 한국 학교 중 40년 이상 경과한 노후 건물은 무려 20%에 달한다. 그리고 딱 5년만 지나면 그 비율은 무려 30%에 육박한다. 자연스런 대규모 재건축, 리모델링 시기와 학교공간의 혁신에 대한 현장의 요구가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다. 

 공간혁신 접근법은 다음의 순서에 따른다. 우선 학교고유의 교육적 가치와 목표를 설정한다. 이 교육적 목표와 가치의 실현에 적합한 교육공간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교육적 목표와 가치 달성을 위한 교육과정 디자인이 필요하다. 그리고 세부적 실현을 위한 교수학습방법과 학교운영방식도 결정해야 한다. 세 번째는 현재 학교의 건물과 대지가 이러한 교육적 가치와 목표의 실현에 적합한지 재검토하는 것이다. 목표에 부합한다면 감히 새로 짓거라 굳이 리모델링할 필요는 없다. 검토가 끝나면 이를 바탕으로 중기장기 마스터 플랜을 실행한다. 그리고 마지막은 완성한 혁신적 공간을 학생들이 직접 사용하면서 그 성과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여 계속 수정 보완해나가는 것이다.

 공간혁신 접근법중 사용자에 중점을 둔 사용자 참여 설계의 단계도 있다. 우선 '시작하기' 단계에서는  TF팀을 구성하고 사업개요를 교직원과 학생들에게 안내하며 전체적인 학교공간 혁신진행 일정을 협의한다. '이해하기' 에서는 학교 공간에 대한 학생들의 생각, 교사들의 생각, 학부모의 생각을 듣고 서로 공유한다. '탐험하기'에서는 이해를 바탕으로 학교공간을 혁신한 다른 학교 공간 탐방을 진행한 다음 관찰한 내용과 공간 탐방 결과를 정리하고 공유하여 의견을 나눈다. '상상하기' 에서는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구체화한다. '만들기'는 건축사가 지금까지의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공간을 설계하고 시공, 감리를 진행한다. 마지막 '돌아보기'에서는 실제 변화한 학교 공간을 사용한 후 학교 구성원에게 만족도 조사를 실시한다. 

 학교공간 혁신에서 교사가 하는 일은 학생들의 시선에서 관찰을 하고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의미 있는 지점을 찾아 거기서 확장된 생각을 구체화하고 실현할수 있게 연결짓는 것이다. 그리고 이의 실행을 위해 많은 대화의 시간과 교육과정 디자인을 통한 학교공간변화 수업이 진행될 필요가 있다. 

 공간혁신에서 학교는 복합적 생활 공간이 되어야 한다. 학생의 일과를 분석해보면 학생들이 학교공간에서 주로 어떤 활동을 하는지 알수 있는데 공부하는 곳일 거라고 교사, 학부모의 생각과 달리 학생들에게 공간은 집과 같은 생활공간에 가깝다. 공부도 하지만 놀이와 관계, 쉼이 꾸준히 일어난다. 그래서 학교는 수업 ,학습 ,놀이 등의 여러 기능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지는 공간이 되고, 각 공간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그 효율성과 활용도가 높아진다. 

 학교공간을 혁신하는 과정에서는 언급한 것처럼 학생, 학부모, 교사간의 의견과 철학이 매우 상이할수 있으며 같은 교사, 학부모 집단안에서도 그것이 매우 달라질수 있다. 이 경우 공간 혁신과정에서 적잖은 마찰이 일어난다. 원하는 것을 모두 구현한다면 좋겠지만 그렇게 한다면 효율성과 연결성이 문제가 생기고, 실제 예산과 공간도 부족해 기본적으로 불가능한 문제다. 이렇게 공간에 대한 생각이 다를때의 판단 기준은 공간의 유연성과 공간의 다목적성, 그리고 지역사회의 특성을 살려 학교공간을 디자인하자는 마음이다. 하지만 이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의 마음과 의견이다. 이를 토대로 한다면 갈등상황에서도 원만한 해결이 가능하다. 

 학교공간을 혁신하는 중요한 이유중 하나는 미래학교 구축이다. 최근 교육계에서는 혁신학교 이후의 미래학교를 고민하고 있는데 양자는 다른 것은 아니며 연속성상에서 새로운 미래 요소를 더해나가는 것이다. 생각은 좀 다르지만 미래학교가 무엇인지 지금 시점에서 정의한다면 미래 기술도 중요하지만 그것 하나하나에 집착하기 보다는 미래 기술을 학생들이 활용하고 공유하는 태도를 갖게 하는 곳이다. 학생은 미래학교의 공간에서 미래기술을 활용하면서 유연한 사고와 모둠끼리의 협업태도, 간단한 기술을 활용해 창의적 결과물을 생산 공유할 수 있다. 

 학교공간의 혁신은 많은 변화를 불러 온다. 서울 당곡고의 경우 공간을 구성하니 학생의 자치활동이 크게 증가했다. 그리고 공간의 변화는 기존의 강의식 수업에서 토의토론이나 프로젝트 수업등 학생 중심 수업으로의 변화도 가지고 왔다. 그리고 학생이 학교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졌고 그에 따라 학교내에서 무언가를 하려는 자발적 시도가 학생과 교사 양집단에서 늘어났다. 학생들과 학부모 교사 모두 학교에 대한 자부심이 커졌고, 다양한 교육과정과 교육활동들이 이전보다 늘어났다. 

 이처럼 학교공간은 많은 긍정적 변화를 불러온다. 하지만 학교의 구성원은 시간이 지나면 모두 바뀐다. 때문에 철학과 비전, 지역의 요구를 바탕으로 학교 공간을 새로이 하는 것은 좋지만 지나치게 특수하면 곤란하다. 그래서 만드는 과정에서 미래 사용자에 대한 배려도 요구된다. 그리고 이는 학교 공간의 유연성으로 이어지는데 이는 유동성과 다용도성, 확장성, 수정가능성, 전환성이다. 특수하되 일반적이면서 혁신적이고 전환가능해야 하는 것이다. 

 이 책에는 이런 일반적 이론 외에도 다양한 초중고교들의 학교공간 혁신 과정과 그 결과물이 수록되어있다. 사진자료도 풍성한 편이다. 학교공간에 관심이 있는 모든 교육주체들이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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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학교를 만드는 공간 혁신 - 학교 공간 개선 솔루션
서예식 외 지음 / 해냄에듀(단행본)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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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신교육에서 최근 화두는 학교공간의 변화다. 수업의 변화, 교육과정의 변화에 이은 제 3탄인데 학교공간을 제3의 선생님으로 칭하기까지 한다. 인간이 공간에 의해 얼마나 영향을 많이 받는지는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학교가 전인적 인간교육을 표방하는 만큼 학교의 공간 역시 교육의 본질적 요소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최근의 당연한 견해다. 

 사실 그간 국내에서 교육의 변화는 수업방법의 변화와 교육과정의 변화에만 치우쳤다. 학교공간은 공간으로 보기보다는 사실상 환경으로만 치부했다. 그나마 신경을 쓴 것이 교실 뒷편이나 앞부분 칠판을 제외한 양 공간이었고 환경미화나 학급환경이란 말로 그 평면에 무엇을 부착하느냐를 갖고만 고민했던 것 같다. 

 연구에 의하면 건물상태가 최악인 경우와 최고인 경우 학업성취도는 4-9%의 차이를 보였으며 건물 상태가 가장 오래된 경우와 최신인 경우는 5-9%차이를 보였다. 공간에 학업성취도에 상당한 영향력을 보인 셈인데 이런 인지적 부분 외에도 정서적인 부분도 감안한다면 그 영향력을 더욱 클 것으로 생각된다. 

 이에 교육부는 2021년에서 2025년까지 18조의 예산을 투입하여 학생중심의 미래 건물을 구축하는 사업을 시행한다.현재의 학습공간 중심에서 학생의 휴식과 소통의 생활공간 비중을 늘리고 정서적 안정과 미래교육에 적합한 학교공간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구체적 사업명을 그린스마트스쿨인데 친환경에너지 절약형의 건물과 더불어 학생의 미래교육에 적합한 환경을 구성하겠다는 계획이다. 

 학교공간을 개선하는데는 최근 사용자 참여형 공간 개선 사업이 눈길을 끈다. 이는 교육과정을 통해 사용자인 학생과 선생님이 자신들의 창의적 제안과 아이디어를 제시하여 이를 실제 설계로 바꾸는 행위를 통해 학교공간이 바뀌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학생과 교사는 학교공간에 대한 강한 주인의식을 갖게 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소수의 사용자를 배려하는 유니버셜 디자인 개념도 도입해야 하고, 구축한 공간이 입김이 강한 소수의 학생만을 만족시키는 결과가 초래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도 있다. 또한 소음과 분진 발생으로 인하 정독성의 훼손이나 사용의 지속가능성도 고려의 대상이다. 

 요소를 구체적으로 살피면 우선 학교휴게 공간이다. 학교는 학습에만 초점을 맞추어 쉬는시간도 무척 적지만 쉴만한 공간도 마땅치 않다. 하루종일 공부한 자기 책상에서 쉬고 싶은 학생은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휴게 공간은 교실에서 가까운 것이 이상적인데 학교의 특정한 곳에 배치되거나 좌석이 적으면 다수의 학생이 공간을 평등하게 사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휴식공간을 별도로 마련하기 어려운 경우라면 복도 양쪽으로 창턱에 의지하여 일자형 선반 테이블을 설치하는 것도 좋다. 학생들의 이동장애를 최소화하며 공간확보를 가능하게 한다. 학교 밖 풍경을 즐기며 창안에 앉아 담소를 나눈다면 마치 카페에 온 느낌이 들것이다.

 학생자치실은 많은 학교에 없거나 있어도 매우 협소하거나 빈 쓸모없는 공간을 주기 마련이다. 아직 학교가 학생자치회의실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지 못한다는 반증이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학생자치실은 잘 정리정돈이 안되고, 더러우며, 관리가 안되기 마련이다. 실제 학생들이 자치회으실보다는 오히려 카페에서 회의를 하고 싶어한다고 한다. 그래서 학생자치회의실은 깨끗하고 정리정돈되고 시설이 충분하고 넓어야 한다. 학생자치회의실에는 전체회의 공간, 소그룹회의공간, 특별활동공간이 필요하다. 수납함과 컴퓨터를 비롯한 회의도구와 칠판등이 잘 갖추어지면 자치회의실은 빛나게 된다. 

 공간을 굳이 만드는 것 외에도 도색을 하는 것도 비교적 적은 예산으로 공간을 변화하는 방법이다. 다만 이경우 기존의 색과 같은 도색은 금지다. 변화가 없어 만족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색채디자인 업체에 설계를 맡기는게 좋은데 이 경우 전문가의 참여로 만족도가 높기 때문이다. 비용은 10%정도 더 필요하다. 교실이나 교무실, 특별실의 경우는 색을 구분하여 지정해주는게 좋고 복도나 계단도 색을 달리하는게 좋다. 층마다 설치된 방화문과 문틀도 별도의 색이 좋으며 페인트는 오염이 던되는 작서방지용 페인트나 친환경 무독성 페인트를 써야한다. 

 학교공간 프로젝트는 많은 돈이 드는 장기사업이다. 하지만 적은 돈으로도 당장 단위교실부터 학생을 위한 작은 공간을 마련하고 꾸며나갈수 있다. 그과정에서 학생과 선생님 학부모가 머리를 맞대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성공이 가능해보인다. 이 책은 중등중심으로 사례를 재구성했는데 그러다보니 미술과 기술교과의 도입이 많았고 학생 스스로 시공을 하는 경우도 나온다 하지만 그것이 어려운 초등사례의 책도 볼 필요가 있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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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전환점으로 읽는 제2차 세계대전
필립 M. H. 벨 지음, 황의방 옮김 / 까치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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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차 세계대전이 끝난지도 80년 가까이 되어간다. 아마 직접 겪은 사람은 이 세상에 거의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유럽과 북미, 극동을 중심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 이 전쟁은 그 이전의 그리고 그 이후의 전쟁을 모두 덮어버린 듯한 인상을 준다. 아마 관련 국가들이 전쟁 중 2차대전과 관련한 책이나 영화, 만화 등을 가장 많이 만든다는게 그 반증일 것이다.(미드웨이, 진주만, 퍼시픽, 라이언일병구하기, 밴드오브 브라더스가 모두 2차대전 영화 드라마다.) 2차대전이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 것은 지금의 세계를 만든게 바로 2차대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전쟁으로 미국은 정치, 경제, 문화, 산업의 패권국으로 떠올랐고, 아직도 그 지위를 유지중이다. 소련은 해체되었지만 러시아가 그 뒤를 이어받아 여전히 군사적으로 강력하다. 그리고 패전국이었던 독일과 일본은 2차대전후 냉전의 그늘하에 오히려 더 경제적으로 부강해졌다. 아마 이 질서를 뒤흔들어 재편할 만한 나라는 중국이 될 것이다. 그리고 미중 경쟁으로 세계질서가 재편된다면 아마 2차대전도 잊혀지지 않을런지.

 하여튼 그 2차대전의 주요 흐름을 잘 짚어 정리한 책이 이번에 읽은 12전환점으로 읽는 2차세계대전이다. 전쟁의 발발부터 종전까지 주요 전환점을 잘 짚어냈다. 읽으면서 2차대전을 잘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미국이 2차대전 관련 저작물을 많이 만들어내다보니 그들이 무수한 희생을 치르고 전쟁을 끝낸것 처럼 느껴지지만 2차대전 당시 미군 전사자는 27만에 불과했다. 1000만에 달하는 소련을 생각하며 우스운 정도인데 이것도 미국이 영화를 많이 만들고 2차세계 대전의 수혜를 가장 많이 입은 결과가 아닐까 생각된다.


1. 전쟁의 시작과 프랑스 점령

 2차 대전의 시작은 역시 독일이다. 1933년 독일에서 히틀러가 권좌에 오른다. 야욕을 숨기지 않은 그는 1935년 이후 빠른 속도로 재무장을 시작한다. 1938년엔 오스트리아를 병합했고 같은 해 9월 체코의 수테텐을 차지한다. 1939년 2월엔 체코의 나머지 지역도 병합했고 같은 해 9월엔 폴란드를 침공해서 겨우 5주만에 점령해버린다. 이런 야욕에도 1차대전의 트라우마가 컸던 영국과 프랑스는 유화정책으로 일관해 이런 독일의 세력확장을 초기해 견제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만다.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의 경제를 봉쇄하고자 했는데 한발 빨랐던 히틀러는 소련과 불가침조약을 맺고 그들로부터 막대한 양의 자원을 공급받기로 한다. 스탈린 역시 공산주의 정권을 안정시키기 위해 국경의 안정이 필요했다. 양자의 이해가 일치한 셈이다. 

 독일의 야욕이 눈앞에 드러나자 프랑스는 마지노선을 구축하고 방어계획을 세운다. 1차대전에서 서 최전선으로 워낙 고생했지만 무너지지 않았던 프랑스는 마지노선을 방어하고 네덜란드와 벨기에로 빠르게 군대를 진군시켜 독일을 막을 작정이었다. 그런데 독일이 허를 찌른다. 바위지대로 진군이 어렵다고 생각했던 아르덴 지역으로 기갑사단을 진군시킨 것이다. 이 곳은 실제로 진군이 어려워 독일은 많은 교통체증을 일으켰지만 연합군은 이를 발견하지 못한다. 1940년 5월 13일 독일은 뫼르 강에 도착해 프랑스 진지를 1500대 가량의 폭격기로 맹폭한다. 벙커안 프랑스군은 56명만 사망할 정도로 피해가 적었지만 그들의 정신이 붕괴된다. 55보병사단이 전의를 잃고 와해되었으며 지상의 철저한 파괴로 통신이 두절된다. 독일은 빠르게 진군하여 대서양에 도착해 프랑스를 남북으로 분단시켜 버린다. 5월 24일 독일 기갑군이 덩캐르크로부터 불과 16km 떨어진 곳에 도달하지만 폰 룬트슈테르의 사령부와 히틀러는 너무나도 빠른 진격이 걱정스러웠는지 부대를 정비하기 시작한다. 이 귀중한 시간동안 연합군은 영화 덩케르트에 나온 것처럼 무려 22만의 영국군과 11만의 동맹군을 영국으로 귀환시킬수 있었다. 물론 무기는 모두 버리게 되었지만 말이다. 

 전쟁초기 프랑스는 이렇게 무력하게 빠른 시간안에 무너졌지만 갖고 있던 전력은 만만치 않았다. 프랑스는 탱크 3250기로 독일의 2440기보다 많았고 오히려 탱크의 성능도 우수했다. 하지만 프랑스의 탱크는 연료통이 작아 작전반경이 좁았고, 무전시설도 없어 전장에서 고립시 지휘체계가 붕괴되는 일이 많았다. 결국 전쟁초기 독일군의 우세는 전력자체보다는 아르덴을 통과하는 전략적 사고와 그 기세를 이어 대서양까지 프랑스를 횡단해버려 적을 포위해버린 과감성,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 한 부대의 기동성에 있다 하겠다. 

 패전한 프랑스는 독일과 강화를 맺는다. 협정은 굴욕적이었다. 프랑스는 전 영토의 2/3을 내어주었고 육군은 10만으로 감축한다. 함대는 무장해제당했으며 독일의 점령비를 부담했고 무려 180만의 전쟁포로는 평화시까지 수감되었다. 600만의 피란민이 발생했고 수도 역시 파리에서 온천도시인 비시로 옮겨졌다. 자유평등박애의 국가모토는 노력, 가족, 조국으로 변화했으며 이는 민주주의 질서의 파괴를 의미했다. 

 이런 독일의 전격적 승리에 세계는 동요했다. 파시즘은 과거 나폴레옹의 자유주의 처럼 새로운 질서로 세계를 뒤흔들 것처럼 느껴졌다. 이탈리아는 17년간의 파시즘으로 전쟁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음에도 참전하여 지중해와 북아프리카로 전선을 확대시켰다. 반면 스페인의 프랑코는 참전의 대가로 프랑스의 식민지와 영토, 전쟁보급품을 요구했다. 독일이 이를 거절하자 그는 참전하지 않고 추축국에 제한된 협조만을 하기로 한다. 겁을 먹은 영국은 한 때 독일과 강화를 할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러한 유혹을 현명하게 실행하지 않았다. 소련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스탈린은 애초 1차대전 처럼 독일과 영국프랑스가 오래도록 싸우며 힘을 빼는 사이 국력을 키울 심산이었다. 하지만 서유럽이 붕과히자 스탈린은 독일과 대치하는 상태가 되었다. 누가봐다 다음 차례는 자신들이었다. 미국 역시 고민에 빠졌다. 대서양이라는 자연 장벽이 있었지만 프랑스가 붕괴한 이상 프랑스의 서아프리카 식민지와 카리브해 식민지에서 독일이 미국본토를 충분히 공격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이에 미국은 대서양을 포기하여 영국을 버릴 것인지 아니면 참전할 것인지를 두고 고민하기 시작한다. 아시아의 상황은 무주공산이었다. 유럽 열강들이 독일로 인해 혼이 빠진 사이 그들의 아시아 식민지를 무방비가 되었다. 일본은 약간의 의지만 보이면 이들은 곧 일본차지가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2. 바다사자작전

1940년 5월-6월은 히틀러가 영국을 침공하기 좋은 시기였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승리에 놀란 히틀러는 이 시기를 놓친다. 그는 영국이 겁을 먹고 강화에 나설거라 생각했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으며 히틀러가 망설이는 사이 영국은 빠르게 해군력과 공군력을 강화한다. 육상전력은 형편없었지만 영국의 공군과 해군은 달랐다. 영국의 스핏파이어기는 독일의 ME109, M110E보다 속도와 성능이 우수했다. 거기에 영국은 레이더를 개발해 최장 160km까지 적기의 탐지가 가능해졌다. 

 초기 독일은 영국의 비행기지와 분소들을 공격해나갔다. 독일은 영국의 공군력을 무력화하고자 했는데 실수로 런던을 공격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에 영국이 즉각 베를린을 폭격했는데 두 사건 역시 피해가 미미했다. 하지만 격분한 히틀러는 보복으로 대규모 런던 공습을 감행한다. 이에 영국공군은 기지를 회복할 시간을 갖게 되었고 지속적인 소모전을 벌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영국 공군은 마침내 독일공군에 우위를 갖게 된다. 히틀러는 1940년 9월 17일 영국침공계획인 바다사자작전을 조용히 포기한다. 공군의 특성상 전사자는 양측다 극히 적었지만 현대전에서 공군의 역할을 감안한다면 큰 패배였다. 


3.바르바로사 작전

바르바로사는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1세의 이름이다. 히틀러는 소련 침공작전을 이 이름으로 정한다. 1941년 6월 22일 독소조약을 깨고 히틀러가 310만의 독일군과 65만의 동맹군으로 소련을 침공한다. 아직 기계화가 미미해 탱크는 4천대에 불과했고 수송은 주로 말이 담당해 무려 75만 마리나 되었다.

 히틀러는 비스물라강과 우랄산맥 사이의 영토를 병합하여 천년 제국의 기초수립을 구상했다. 이는 삶의 공간이었고 독일 민족의 우수성과 경제적 자급자족, 세계권력에 대한 히틀러의 세계관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독일이 침공한 우크라이나 지역을 비롯한 소련의 서쪽 지역들은 소련의 압제로 인해 독일군을 환영하는 상태였다. 초기 독일군은 점령지에서 격한 환영을 받았다. 하지만 히틀러는 인종적 광기로 이 분열을 전혀 이용하지 못한다. 오히려 점령지에서 인종청소를 감행하여 환영을 증오로 바꿔버리며 이는 큰 패착이 된다. 

 개전초기 히틀러의 침공을 걱정했음에도 스탈린은 침공의 현실을 부인하며 빠르게 대응하지 못한다. 그러는 사이 소련 공군은 출격하지도 못하고 지상에 묶인체 1800대의 공격기가 파괴된다. 초기 공군력을 상실한 소련은 이후 독일의 항공기 공포에 상당기간 시달리게 된다. 독일은 프랑스의 경우처럼 속도와 소련군을 포위한다. 중부전선에서 75만 키예프에서 66만을 포로로 잡았으며 소련군 전사자는 200만에 달했다. 독일은 소련 포로를 방치하다시피해 이들중 상당수가 사망하게 된다. 독일의 진격을 매우 빨라 중앙집단간이 6주간 무려 700km를 이동해 모스크바를 350km남겨두게 된다. 그 기세였다면 모스크바 점령은 시간문제였지만 히틀러는 공격목표를 왜인지 레닌그라드로 바꾼다. 이 망설임이 시간을 주어 소련은 반격의 시간을 갖게된다.

 소련은 초기에 군이 궤멸되고 주요 산업시설을 모두 빼았겼지만 빠르게 우랄 시베리아 지역으로 산업생산시설을 이전한다. 500만의 예비군이 동원되었고 산업생산도 빠르게 회복되었다. 소련의 무기 생산과 병력은 독일을 크게 상회하게 되었으며 이 소모전에서 기세가 점차 역전되기 시작한다.


3. 진주만 

일본은 1937년 중국 본토를 침공해 1939년 말이면 중국 영토의 1/4가량을 점령한다. 유럽 열강은 여력이 없어 이를 방관하는데 일본은 영국으로 하여금 장제스를 지원하는 버마 로드의 폐쇄를 요구하고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반도에 진입한다. 일본은 1940년 9월 삼국동맹을 결성한다. 하지만 독일의 기세가 주춤하자 영국은 다시 버마로드를 재개하였고 미국은 일본에 대한 고철수출과 석유수출을 전면 금지한다. 이에 일본은 동남아를 노리게 된다. 후방의 안정이 필요했던 일본은 소련과 마찰이 없기를 원했지만 독일이 말도없이 소련을 침공하자 당황한다. 1941년 일본은 제국회의에서 결국 소련을 침공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석유확보를 위해 인도차이나 남부를 점령하는데 그간 일본의 행보를 방관하던 미국은 이례적으로 신속히 반응한다.

 미국은 미국내 일본의 자산을 동결하였고 석유수출을 전면금지하였다. 일본은 미국과 협상하면서 3가지 요구를 하였는데 미영의 장제스 돕기 중지와 미영의 중국, 태국, 동인도 제도의 군사기지 설치 금지, 미영의 일본과의 교역 회복이었다. 반면 미국은 장제스 정권 인정, 1900년 이후 중국에서 얻은 조차지의 모두 반환을 요구했다. 양국의 간극인 너무 컸던 셈이다. 협상은 결국 결렬되고 일본은 미국과의 전쟁을 선택한다. 

 일본 연합함대 사령관인 야마모쿠 이소로쿠는 항공모항의 새로운 역할을 인식한 사람이었다. 그는 항모가 함대의 우산이 아닌 독립적 타격군이라 생각했고 1938년 일본 해군은 이 새로운 전략개념을 받아들여 대형항모를 생산한다. 1941년말 일본 해군은 항모를 10척 보유하기에 이르는데 당시 미국의 항모는 겨우 5척이었으며 태평양엔 그나마 3척이 전부였다. 

 진주만 공격은 사실 동남아사이 방어 전략의 일환이었다. 일본의 목표는 미 태평양 함대를 무력화하여 남쪽으로의 대규모 병력 이동을 막는 것이었다. 야마모트는 미국의 장기적 산업생산능력을 파악하고 있었으므로 장기전이 불리하기에 단기전으로 끝낼 생각을 갔고 있었다. 

 진주만은 일본에서 무려 5600km거리에 있어 재급유가 작전에 중요했다. 공격방법도 고민이었는데 급강하와 어뢰를 통한 공격이 모두 고민이었다. 급강하는 행위 자체가 위험했고 어뢰는 진주만의 얕은 해안에서 잘 먹힐지 의문이었다. 때문에 일본은 강도 높은 개인훈련과 기동훈련을 실시한다. 일본해군 정보국은 미주재대사를 통해 진주만 해도를 입수한다. 미 정보장교는 이를 파악했지만 이를 군에 전달하지 못했으며 미 장교 일부의 진주만 주변 정찰요구도 이뤄지지 못한다. 

 1941년 11월 미 최고 사령부는 일본의 공격이 임박했음을 감지했지만 목표를 알아낼 수 없었다. 미국 정보망엔 구멍이 많았는데 일본 1,2사단의 항모 4척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11월 26일 일본군은 나구모 제독의 지휘 아래 쿠릴열도의 한 섬인 에도로푸 섬에서 북쪽 항로를 따라 하와이로 항진한다. 6대의 항모, 2척의 전함, 13척의 손양함, 그외 다양한 작은 전함과 상선으로 이뤄진 대규모 선단이었다. 항모에 탑재된 항공기도 450기였다. 

 이 기습은 알려진 대로 큰 성공을 거둔다. 8척의 미 전함중 6대가 침몰하고 나머지 2대도 항행불능상태가 된다. 11척의 작은 전함이 손상되었으며 188대의 항공기가 파괴되고 사망자가 2403명에 달한다. 일본의 피해는 고작 29대의 항공기 파괴와 6척 잠수함 손실이 고작이었다. 일본은 재공격하여 진주만의 기름탱크를 파괴하지 않았는데 여기에 엄청난 비축유가 있었음을 알지 못했다. 

 진주만 이후 일본은 승승장구하여 홍콩과 괌을 점령하고 필리핀을 침공한다. 말레이 싱가폴 보호를 위해 온 영국의 프린스 오브 웨일스 호와 리펄스 호도 침몰시킨다. 1942년 싱가폴을 점령하였고 다수의 영국군 포로를 잡는다. 호주의 북부도시 다윈도 폭격하는데 이로써 동남아 전역이 일본의 수중에 떨어지게 된다. 


4.미드웨이

미드웨이는 태평양 한복판의 작은 섬으로 32대의 장거리 비행정과 23대의 폭격기가 있는 중요하지 않은 곳이다. 일본은 미드웨이에 대한 공격가능성이 회의적으로 공격을 주저한다. 하지만 진주만 이후 감행한 둘리틀 부대의 도쿄 폭격으로 미드웨이 공격이 결정된다. 

 일본은 호주 근방 코럴해에서 렉싱턴 호를 침몰시킨다. 하지만 일본은 렉싱턴과 요크타운 2항모를 침몰시킨 것으로 착각하였는데 미군은 거짓 교신으로 이를 더욱 믿게 만든다. 당시 일본은 항모4척과 소형항모 2척, 전함 9, 순양함 12, 구축함 44로 항모 3, 순양함 8, 구축함 15에 불과한 미해군을 전력에서 압도하고 있었다. 

 일본은 6월 4일 나구모가 이끄는 함대로 미드웨이를 폭격한다. 미군 기지는 큰 피해를 입었으며 나구모는 다시 미드웨이를 폭격하려다 미 전함이 등장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뢰를 항공기에 설치한다. 하지만 생각이 바뀌어 다시 폭격을 준비한다. 이런 윗선의 혼란에 갑판과 아래층은 혼선에 빠진다. 미국은 51기의 폭격기가 어뢰로 일본 항모를 공격한다. 어뢰 폭격기는 당시 수면에 수평으로 저공비행을 하였기에 전함의 공격에 속수무책이었다. 7척만 남고 모두 파괴되었으며 전과가 없었지만 철통같던 일본함대의 방어진형을 흐뜨려놓는데 성공한다. 일본 전투기들 역시 이 어뢰폭격기를 격추하느라 수면 근처로 내려와있었는데 이 때 돈트리스 하강폭격기 54기가 일본 함선으로 급강하한다. 순간 무방비였던 일본 해군은 무차별적 폭격을 당하고 소류, 아카기, 카가 등 4항모를 모두 잃게 된다. 이후 양국의 해군 전력은 역전되는데 일본은 이후 10척 정도의 항모를 더 건조하지만 같은 기간 미국은 무려 90척의 항모를 더 건조하기 때문이다. 


5. 대서양전쟁

 대서양에선 태평양같은 격렬한 해전은 없었지만 꾸준한 소규모 전투가 있었다. 바로 독일 U보트에 의한 전투다. 2차 대전중 영국은 북미에서는 물자로 전쟁을 수행하고 있었는데 독일 입장에선 이 공급을 해상에서 끊는게 중요했다. 독일은 2차대전중 무려 1150척의 U보트를 건조한다. 군인도 4만 900명을 배치하였는데 초기 U보트의 성과는 매우 경이적이었다. 독일의 U보트 사용은 노르웨이 점령과 프랑스 점령으로 대서양 주요 항구를 사용할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1940년 58만톤, 1941년에는 100만톤의 선박을 침몰시틴다. U보트는 항속거리가 길고 속도가 대부분의 상선보다 빨라 매우 위력적이었다. 다만 어뢰공격을 위해서는 수면 가까이로 부상해야하는 약점이 있었다. 독일 U보트는 암호정보로 호송대의 위치를 알아낸뒤 일군의 U보트를 집단파견하여 공격하는 이리전술로 재미를 보았다. 이처럼 독일 U보트는 매우 성공적이었지만 꾸준히 소모되어 몇년 만에 주요 잠수함의 함장이 모두 20대의 어린나이로 채워지게 된다. 

 U보트의 위력에도 불구하고 상선호위는 상당히 효과가 있었는데 호위시 생환율은 80%였던 반면 호위가 없는 상선은 고작 20%만이 살아남았다. 영국은 블레츨리 파크에서 독일군 암호를 해독하는데 성공한다. 이에 연합군은 호위함 호위기를 늘리고 호위거리의 갭을 없애고자 노력한다. U보트는 그로 인해 점차 위력을 잃게된다. 거기에 U보트 상당수가 지중해와 이탈리아, 북아프리카로 파견되어 롬멜을 지원하게 되었고, 소련 침공을 위해 노르웨이로 배치되어 대서양에서 더욱 힘을 잃게 된다. 

 전세는 점차 역전되어 1943년 ONS 5 호송대 전투에서 독일은 U보트 41척을 출동시켜 12척 이상의 상선을 침몰시키지만 U보트가 9척 침몰하고 5척이 심한 손상을 입는다. 1:1의 손실비율이라면 독일입장에선 큰 손실이었다. 연합군은 독일 암호의 해독으로 인한 정보전의 승리와 공중전력으로 대서양전쟁에서 승기를 가져가기 시작한다. 대서양 전투에선 무려 2828척의 상선과 148척의 전함이 침몰하였다. 사망자도 5만을 넘는다. U보트는 1131척중 754척이 침몰하였고 4만의 군인중 무려 3만이 전사한다. 독일의 손실 역시 만만치 않았던 셈이다. 


6. 노르망디 상륙

1943년 1월에서 1944년 5월 사이 140만의 미군이 영국에 상륙한다. 그리고 1944년 900만 톤의 보급품도 대서양을 건넌다. 상륙전을 위해 연합군은 약 7천척의 전함과 수송선, 상륙용 주정을 집결시킨다. 해군작전은 조수와 달에 의존하는데 상륙부대들이 해안의 장애물을 처리하려면 조수의 상태가 최선이어야 하고 ,낙하산이나 글라이더를 이요한 공정부대의 침공에는 좋은 시야가 필요해 만월일때가 좋았다. 1944년 6월에 조수가 가장 좋은 때는 5-7일, 18-20일이였다. 그리고 우여곡적끝에 D-day는 6일로 결정된다. 

 독일은 엽합군이 드칼레로 상륙할 것으로 예상했다. 영국에서 최단거리해로이고, 항공기 지원이 용이하며 독일로 진군하기도 좋아 여러모로 최적이었다. 독일의 롬멜은 적이 상륙하여 정비하기전 해안에 기갑부대를 배치에 다시 해안으로 몰아넣는 방어계획을 주장했고, 폰 룬트슈테른은 적 상륙후 주력을 파악한 후 기갑부대로 집중공격하는 방어계획을 주장한다. 히틀러는 어리석게도 양자를 모두 채택해 안그래도 부족한 기갑부대를 프랑스 전역에 분산해버린다. 

 연합군은 노르망디의 다섯개 해안에 상륙하는데 유타와 오마하에는 미군이 골드에는 캐나다가 주노와 소드에는 영국이 상륙한다. 독일은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했음에도 이를 연막으로 여기고 드칼레에 집중해 초기 대응을 놓치고 만다. 거기에 독일 21기갑사단의 선택은 더욱 아쉬웠다. 이들은 초기 발빠르게 진군에 캐나다와 영국군 사이를 갈라놓았지만 상륙하는 엄청난 수의 연합군을 목도하고 퇴각해버린다. 

 이에 6월 16일까지 영국군은 2개 기갑사단 등 7개사단을 미국은 11개 사단을 상륙시킨다. 무려 50만의 병력과 7만 7천대의 차량이었다. 


7. 원자탄 투하

 레이테만 전투에서 일본은 전함 3척 쾌속항모 4척 순양함 16척 구축함 9척을 잃어 사실상 해상전력이 궤멸된다. 미국의 상륙 및 점령만이 남았는데 이게 쉽지 않았다. 이오섬 전투에서는 11만 미해병이 상륙행 5천이 전사하고 1만5천이 부상당한다. 오키나와에서도 17만이 상륙하여 1만2천이 전사하고 3만 6천이 부상당한다. 엄청난 비율의 손실에 미군은 일본 점령에 대한 손실이 큰 부담으로 다가오게 된다. 

 대서양 전투처럼 미국인 해상전력이 궤멸한 일본이 상선을 마음껏 유린한다. 미 잠수함은 1943년 180만 톤 1944년 390만 톤의 일본 상선을 침몰시킨다. 거기에 일본 근해에 기뢰까지 부설하여 이본의 해로를 막아버린다. 사실상 봉쇄된 일본은 자원 부족과 식량부족에 시달리게 된다. 

 1944년 마리아나 군도에 비행장이 완성되어 일본 본토 폭격이 시작도니다. B29 폭격기는 일본의 주요도시를 폭격하였는데 30-80만이 사망하고 800만이 집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미군은 일본의 건물이 주로 목조건물이어 소이탄을 많이 사용하였는데 이로 인한 화재 피해가 엄청났다. 

 미국은 맨하탄 프로젝트를 끝내고 원자탄을 개발한다. 히로시마에 원폭을 가했는데 7만 6천채의 건물중 6채만 남고 파괴되었으며 인명손실도 7-13만에었다. 두번째 원폭은 나가사키였다. 원래 목표는 코쿠라였는데 날씨 문제로 목표가 나가카시카 바뀐다. 나가카시는 지형이 능성이 있고 계곡이 있어 핵폭풍피해가 반감되었다. 인명 피해는 3만에서 7만이었고, 이 무시무시한 두 폭판으로 일본은 항복을 결정하며 2차대전이 끝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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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1-04-16 09: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실질적으로 독일을 상대로 가장 큰 피해
를 치르고, 독일군 주력을 격파한 나라는
소련이었는데 너무 연합국 위주로 전쟁사
가 편중된 그런 느낌입니다.

1944년에 소련에서 개시한 바그라티온
작전이 빠진 게 아쉽네요. 실제로 독일
을 그로기 상태로 몰아 넣은 작전이었
는데 말이죠.

닷슈 2021-04-16 10:57   좋아요 1 | URL
책에 바그라티온 작전은 책에 실려 있었습니다. 제가 리뷰에서 뺀 거죠.
말씀하신 것처럼 소련이 엄청난 희생을 치르며 4년여를 버텨냈고 일본의 후방을 견제했기에 승리할수 있었던 전쟁입니다. 저도 소련의 공로를 의식하면서도 전황을 극적으로 바꾼게 미국인지라 편향된듯 합니다. 미국의 희생이 고작 27만이란건 참.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