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9일엔 대선이 있었고 알다시피 윤석렬이 승리했다. 표차는 겨우 0.7%정도로 역대 가장 적은 박빙의 승부였다. 방송3사의 디시전 K는 통상 5%면 당선 유력. 20%면 당선 확실을 예측하는데, 이번 경우 개표가 거의 80%에 이르러서야 간신히 당선 유력을 예측할 수 있었다. 그만큼 이긴 측엔 정말 짜릿하면서도 위기감이 강하게 느껴지는 승리였고 패자 쪽에게는 무척이나 아쉬움이 남는 뼈저린 패배였다. 보수계열은 징역 20년짜리 실패한 대통령을 연속 두 번이나 내세우는 실정을 저질렀음에도 5년만에 정권을 되찾아왔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1. 민주당이 진 이유

 가. 정체성이 애매하다.

 사실 나는 보수쪽에 비해 민주당이 늘 정체성이 애매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는 한국의 정치적 상황 때문인 것 같은데 야당으로써 보수와 대결할때는 진보적인 시각과 사회적 약자를 많이 고려하며 정치개혁도 늘 염두에 두지만 정작 여권이 될 경우 좀처럼 이를 실행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실제 민주당은 좌파로 여겨지지만 그 안에는 언제든 보수로 넘어갈수 있는 인사와 중도, 그리고 일부 좌파로 구성되어있다. 그리고 한국은 정치 스펙트럼이 세계적으로 볼 때 우편향 되어 있어 실제 한국의 민주당은 진보라기보다는 중도우파나 잘해봐야 중도좌파정도로 분류된다. 사실 스펙트럼상 좌파는 정의당 계열이다. 

 이는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세 정권에 모두 해당이 되며 특히나 이번엔 지난 보수 정권 10년으로 쌓인 게 많았던 터라 이런 부분에서의 강한 해소가 필요했다. 하지만 비정규직의 상황, 사회적 약자의 권리 해결, 정치개혁등이 여전히 해결되지 못했으며 이는 실제 민주당이 이런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라는 강한 의구심이 들게 만들었다. 정의당이 유독 이번 정권에서 민주당에 반감을 갖고 나왔던 것은 이런 것에 대한 실천의지에 강한 의심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 결과 대선토론과정 내내 정의당 대선 후보는 대척점에 있는 보수후보보다 오히려 민주당쪽 후보를 더 많이 공격했다. 이렇게 된데는 비례대표사건이 무엇보다 더 컸었다고 본다


 나. 청년을 빼았겼다.

 2000년대 초반 보수진영은 처음으로 정권을 빼앗기고 강한 위기감을 느꼈다. 20-30대 젊은 층에서 큰 폭의 패배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당시 그들은 젊은층의 지지를 되찾지 못하면 결국 당이 사라질 것으로 파악했다. 나이든 사람은 결국 늙어서 사라지고 젊은 층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기에 매우 당연한 예측이었다.(물론 실제론 그렇지 않다. 사람은 나이들면 보수화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보수계열은 정말 오랜만에 젊은 층에서 사실상 승리를 거두었다. 이전처럼 젊은 층에서 지지를 얻었다면 승리는 진보쪽이었을 것이다. 여기엔 이준석 대표가 시작한 젠더갈라치기가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이렇다할 국회의원자리 하나 없이 방송계를 떠돌며 이리저리 전전하던 이준석은 사실 여러차례 남여논쟁에 패널로 등장한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남성의 입장을 강하게 대변하곤 했는데 이 때문큼은 진보성향의 남성조차도 이준석을 지지하는 모습을 볼 수 있곤 했다.

 아마 여기서 힌트를 얻지 않았는가 싶다. 그는 남여차별이 구조적으로 존재하는 나라에서 성차별해소를 위한 시도를 역차별로 몰아갔고 이 틈새공략이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 덕에 그는 최연소 당대표가 될 수 있었고, 아마 국회의원 자리도 쉽게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 젊은 남성들은 성차별을 쉽사리 경험하지 못한다. 어려서부터 그렇고 남여평등적 교육 및 집안환경에서 자라왔을 가능성이 크며 대학진학이나 취업에서 여성보다 이득을 경험했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하지만 그들은 군대라는 큰 차별을 경험해야하며 사회에 존재하는 유리천장이라는 것은 사회상층정도로 진입해야만 느낄수 있는 것들이다. 아직 그들은 그럴만한 나이도 경험도 갖고 있지 못하기에 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현정권의 노력이 강하게 역차별로 다가왔을 것이다. 이들을 어루만졌어야만 했다.

 

 다. 반면 여성의 집결은 너무 늦었다.

 매우 불리한 구도속에서 그래도 박빙의 패배를 거둘수 있었던 것은 막판 젊은 여성의 표심집결이라는게 전문가들의 공통의견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일주일 정도만 선거가 늦춰졌어도 결과는 알수 없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너무 늦은 아쉬움은 여성들에게 이재명에 대한 강한 향수와 애착현상으로 발전하고 있는데 이미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격이다. 

 하지만 여성의 늦은 결집은 역시 결국 민주당의 탓이다. 남성 입장에선 민주당은 여성친화적 정권으로 느껴지지만 실제 여성들에겐 그렇지 않았다고 본다. 박원순, 오거돈, 안희정으로 이어지는 핵심 여권 인사들의 성추행 사건들 그리고 그 후속 조치들은 여성들에게 강한 반감을 가져왔을 것이며 민주당에 대한 의심을 하게 했을 것이다. 

 때문에 여성들은 보수진영이 초반부터 강하게 반여성적으로 움직였음에도 집권이 가능한 현실적 대안세력에게로 빠르게 결집하지 못했다. 일부 민주당, 일부 정의당, 일부 국민의 당 쪽으로 흩어져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안철수의 단일화, 그리고 패배를 막기 위해 막판에서야 어쩔수 없이 민주당 쪽으로 움직인게 아닌가 싶다. 좀 더 정략적으로 빠르게 판단하고 민주장 쪽에 힘을 싫어 초반부터 지지율을 대등하게 끌어올려주었다면 다른 결과를 도출할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라. 대통령의 답답한 인사

 문재인 대통령은 상당히 온화한 성품으로 원칙주의자로 보인다. 민주당 계열 대통령이 그렇듯 강한 리더쉽보다는 수평적이고 절차적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노력했다. 이는 옳은 방향이지만 이번 정권 내내 민심을 이반시킨 여러 인사를 고집하는 패착을 나았다고 본다. 우선 조국이다. 개인적으로 조국을 옹호하고 그가 저지른 여러 흠에 비해 개혁반대세력에 의해 테러에 가까운 피해를 보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보수진영과 보수언론은 한국인이 가장 민감한 입시사건으로 조국에 치명상을 입혔다. 그 박근혜 마져 무너뜨린 것은 최순실의 다른 엄청난 비리가 아닌 그 딸 정유라의 이화여대 부정입학 사건이었다는 것을 감안했어야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해 정략적으로 대통령의 빠른 판단이 필요했다고 본다.

 인사를 고집한 패착은 국토부장관 김현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보수언론과 야당의 공세가 옳건 그르건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실패로 국민들에게 여겨져왔고 폭등하는 집값에 악화하는 여론에 대해 뭔가 조치가 필요했다. 김현미 장관의 경우 필요 이상으로 오랜 임기를 보장했고 사실 그 대가로 얻어낸 것도 없었다. 

 윤석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추미애 윤석렬 갈등이 불거진 시점부터 빠르게 대통령이 둘을 동시 해임하는 결과로 문제를 마무리 했어야 한다. 필요이상으로 임기를 오래 보장하며 윤석렬을 키웠고 그 결과는 정권을 빼앗기는 것이었다. 

 물론 대통령의 입장은 이해가 가는 측면이 많다. 원칙을 지키고 싶었고 절차적 민주주의를 보장하고 반대하는 사람이라도 그것을 보장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 하고 싶었던 탈원전, 검찰개혁은 이루지 못했고 결과는 참담하다. 무척이나 아쉬운 측면이 아니랄수 없다.


마. 부동산 폭등

 한국의 부동산은 정권과 역방향으로 흘러왔다. 역사적으로 우파는 시장주의자들이기에 부동산에 대한 규제를 가급적 풀고 상승을 유도하는 정책을 많이 사용한다. 반면 좌파는 평등주의자들이기 불로소독이자 계급적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부동산에 대해 강한 규제와 세금을 부여하곤 한다. 하지만 부동산가격은 이런 정부정책에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세계적 흐름을 탄다. 미국이 양적 완화를 한 2000년대 초중반 부동산은 크게 올랐고, 경기가 쇠퇴한 2010년대 중반은 하락했으며 다시 양적완화를 크게 시도한 2010년대 후반에서 2020년대 초반 크게 올랐다. 

 역설적이게도 한국의 경우 상승기엔 김대중 노무현이 하락기엔 이명박 박근혜가 다시 상승기엔 문재인이 다시 오고 있는 하락기엔 윤석렬이 대권을 잡았다. 때문에 부동산은 결국 정부의 정책탓을 하기엔 어려운 면이 있다. 그져 애써 물살에 따라 크게 움직이는 방향키를 애써 반대방향으로 잡는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의지와 방향성에서 모두 아쉬움이 남는다. 

 적어도 시장에 강한 규제 신호를 주고, 부동산에 대해 공적인 역할을 많이 강조하며 더불어 과감하게 공급을 하고자하는 시도를 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 이는 가장 큰 패착으로 사실상 정권이 넘어가는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바. 한국의 고령화

 언급한 것처럼 20년전 한국의 보수진영은 젊은 층의 이탈을 가장 큰 문제로 여기고 강한 위기감을 느꼈다. 노인을 결국 나이들어 사라지고 그 자리를 꾸준히 공급되는 청년층이 차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보수진영은 당시 진보성향을 가진 젊은이들이 많아지면 이들이 나이 들어서도 자신들을 지지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보수화되기 때문이다. 이는 노인도 청년처럼 공급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 2000년대 초반 김대중 노무현에게 표를 던진 40대들은 지금 60대가 되었고 이들은 강력하게 보수를 지지한다. 이는 과거 보수정권이 예측하고 우려했던 것과는 다르게 초고령화하는 한국사회의 유권자층이 앞으로 보수에 유리하게 흐를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젊은 연령층은 그 수가 적고 이념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이 약화하고 있으며 반면 보수성향을 가진 노인층은 다수의 인구가 향후 수십년간 꾸준히 공급될 예정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이것이 아주 큰 영향력을 미치진 않았지만 앞으로 두고 봐야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모든 악재로 인한 강한 정권 교체여론에도 불구하고 민주진영은 약간의 차이로 패배했다. 물론 여기엔 전문가들이 언급한 것처럼 정치초보이고 그에 걸맞게 무수한 실수를 저지른 윤석렬에 비해 도덕적으로 흠결이 많았지만 실력있어 보이는 이재명쪽이 인물에서 크게 앞섰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번에도 보수와 진보는 총집결하여 사실상의 양자대결을 펼쳤는데 박근혜 문재인 때는 진보가 총집결했음에도 과반을 넘지 못하고 패배했었다. 하지만 이번엔 정의당의 표를 진보로 받아들인다면 진보가 얻은 총 지지는 과반을 살짝 넘게된다. 어찌보면 진보진영이 패배했음에도 역사상 처음으로 과반의 득표를 얻은 첫번째 선거가 아니었나 싶다. 그만큼 한국사회가 보수가 매우 유리한 구도에서 서서히 진보가 유리한 구도로 변화하는 과정에 있는 것이란 생각이다. 때문에 패배했음에도 이번 선거는 진보쪽에 의미있는 선거였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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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설계자들 - 학병세대와 한국 우익의 기원
김건우 지음 / 느티나무책방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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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9년은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하지만 당시 현정부는 야당과의 분쟁을 피하고 정치적 개혁과제의 원만한 수행을 위하여 건국 100주년 기념을 대대적으로 하지 않고 비교적 조용히 지나갔다. 이는 헌법에 대한민국의 정부가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있음을 천명하고 있음에도 이를 인정하지 않는 세력이 국내에 상당함을 보여주는 반증이었다.

 이를 반대했던 세력은 현 한국사회의 우익세력인데 상당히 아이러니 한 것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좌파가 아닌  반공, 기독교, 민족주의 특징을 지닌 전형적인 우익세력이 중심인 집단이었다는 점이다. 현 한국의 우익세력이 대한민국의 건국을 굳이 1919년이 아닌 1948년으로 잡고 싶은 것은 1948년의 정부세력이 전통적인 관점의 우파세력이라기 보다는 냉전질서에 기초해 당시 한국에 강한 세력을 행사하던 친미, 친일에 기초한 집단이었기 때문이며 이들이 현 한국 우익의 조상격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현 한국 우익세력은 우익임에도 불구하고 사상의 중심에 자국 민족주의가 최우선이 아닌 친미 친일에 기초한 외교관계나 그들에 대한 의존이 더 우선시 되는 경향이 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과거 이런 의존이 그들 집단의 생존과 권력을 보장해주었기 때문이다.

 책 '대한 민국의 설계자들'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해방 후, 남한 사회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진정한 보수우익들에 대해 살핀 책이다. 이들은 사상적으로 반공, 기독교, 반일, 민족주의에 기초한 당시의 진정한 보수주의자들이지만, 해방 후엔 미국과 연합한 친일 세력 중심의 이승만 정권, 그리고 이후엔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박정희 정권의 주류세력에 편입되지 못함으로써 한국 우익의 적장자들이 되지 못했다. 이는 한국사회의 안타까운 대목으로 아직도 진정한 민족주의의 실현의 어려움과(과거 독재정권과 지금의 보수는 민족주의를 매우 강조하지만 이는 독재 및 정권을 연장하기 위한 수단, 다수의 시민을 경제적으로 희생시켜 상위층이 주로 이득을 향유하는 불공평한 경제성장을 위한 수단으로만 사용되어왔다) 한국사회의 정치적 스펙트럼이 다른 나라에 비해 우측으로 지나치게 편향되는 불균형성을 야기하였다.

 책이 주목하는 초기 우익들은 주로 평안도와 황해도에 근거하는 우익 기독교인들로 이들은 대개 지주나 상공인 출신이었다. 분단과 함께 진영재편이 이뤄지면서 탄압을 받은 이들은 일찌기 공산주의의 좋지 못한 점을 경험하고 한국전 이전에 이미 반공정신을 투철하게 갖게 된다. 이들은 일제 시기 평양을 근거로 하는 도산 안창호의 실력 양성론의 영향을 받았으며 이들 중 여러가지 이유로 일제에 협력하지 않은 이들이 이후 건국의 주체로써 떠오르게 된다. 평안도에 기독교가 광범위하기 퍼져있었던 것은 이 지역이 조선시대 내내 차별을 받았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중국과 연결되어 있어 조선후기 실학이 꽃피던 시절부터 외부세계의 문명이 들어오는 입구로 작용하였다. 이로 인해 서북은 일찍이 상공업이 발달했고 ,개화 계몽기에는 기독교가 빠르게 수용되었다. 기독교를 통한 서북의 개화는 사립학교의 대거 설립으로 이어졌는데 일제 말 각종 사립학교의 70% 이지역에 집중하였다. 서북인들은 과거 조선과는 다른 새로운 국가를 꿈꾸었고 이것이 이들이 발빠르게 개화한 주 이유였다. 

 책은 이런 인사들로 정치쪽에서는 장준하, 김준엽, 서영훈, 장기려, 선우휘, 김성한, 양호민, 류달영을 꼽는다. 그리고 종교인으로는 김수환, 지학순을 문인으로는 조지훈, 김수영을 언론인이나 학계에선 천관우, 이기백을 종교사상가로는 류영모, 함석헌, 김재준을 꼽는다. 이들은 일제말 제국의 학문을 접할수 있었던 매우 소수 엘리트로 1917-1923년 정도에 출생하여 학병으로 강제징집되는 나이대의 인물이었다. 어렸기에 친일을 강요당하거나 친일을 할만한 기회가 없었고 이로 인해 깨끗하고 주체적인 건국세력으로 물망에 오르는게 가능했다.  

 장준하는 학병으로 징집되어 탈출 후 대한광복군에 들어갔다. 박정희와 대립하며 자신의 광복군 출신임을 자랑했던 그였지만 당시엔 광복군의 현실에 적잖이 실망하였다. 광복군은 말로만 군대였지 훈련 및 시설이 매우 열악하여 제대로된 군사훈련을 커녕 도수제련이 고작인데다고 미약한 세력임애도 3개의 지대가 서로 파벌싸움을 하고 있었다. 장준하는 반공정신을 가진 인물로 이 중 김원봉이 이끄는 제1지대에 대해서 상당한 경계심을 갖고 있었다. 

 장준하는 백범 김구계로 알려져있지만 사실 이범석 계로 실제 그는 이범석이 해방 후 귀국하여 조선민족 청년단을 조직하자 여기에 합류한다. 장준하는 반공정신이 강했기에 통일정부를 구상한 김구와는 다르게 남한의 단독 정부수립에 의미를 부여하였다. 하지만 이런 장준하의 생각은 박정희의 독재와 1960년대 중반부터 함석한과 한국신학대학 계열 인사들과 교류하며 바뀌게 된다. 1972년 7.4남북 공동선언 때에 이르면 장준하는 중도통일 노선을 표명하고 한국사회의 모든 적폐와 문제점은 분단에서 기원함을 주장하고 이로인해 남북 통일을 민족 최대의 지상과제로 주장할 정도로 바뀌게 된다.  

 장준하가 한국사회에 기여한 큰 공로는 사상계의 출간이다. 사상계는 1950-60년대 대한민국의 싱크탱크 역할을 한 지식인 잡지로 1952년 4월 장준하와 서영훈이 '사상'을 출간하며 시작되었다. 사상의 발간에는 미국 공보원이 후원할 정도였는데 서북세력을 경계하던 이기붕과 박마리아에 의해 견제받아 폐간된다. 하지만 장준하의 은사 백낙준이 사상에 이은 사상계를 출간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백낙준은 한국사회에 뿌리 깊은 족적을 남겼는데 현재까지 이어지는 대한민국의 교육 목표인 홍익인간의 이념이 그의 작품이다. 홍익인간은 민족을 넘어선 세계주의적, 보편주의적 가치관을 표방하는 것이다. 그는 도마다 1개의 국립대학을 설치하는 정책을 추진하여 실현시키기도 했다. 

 사상계는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전성기엔 발행부수가 1만부에 달하였다. 하지만 처음부터 말기까지 주요 인사가 서북출신에 편중되었다는 한계가 있었다. 사상계의 편집 방향은 다섯 갈래로 민족의 통일, 민주사상, 경제발전, 새로운 문화창조, 민족적 자존심이었다. 이는 한국사회의 총체적 근대화 방향을 제시한 것이었다. 이들은 국가이념의 모델로 서구자유주의를 설정하였으며 이는 이들 지식인들이 미국식 자유주의에 다소 경도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상계는 박정희 군사정부와 날을 세우게 되었고 군사정부는 세무사찰과 반품작전으로 이들을 압박하였다. 결정적 타격은 주로 대학교수였던 편집위원들을 압박하여 이들을 이탈시킨 것이었는데 이는 당시 한국사회에서 교수들의 역할이 변하던 흐름과 맞물리기도 한다. 1960년대 이전의 대학교수들은 실천적 지식인에 가까웠다. 하지만 1960년대부터 정부가 급여이외에도 연구비를 지급하기 시작하면서 연구자로써 그리고 정부정책을 옹호하고 따르는 집단으로 변모하게 된다. 

 박정희의 5.16 군사쿠데타는 이런 실천지식인들에게 처음엔 환영받았다. 1960년대의 우익 지식인들은 이승만 정부를 구태세력으로 보았다. 그럴만도 한것이 그 중심세력이 청산되지 못한 친일세력에 국가를 잘못 경영하여 후배들에게 망국에서 자라나는 아픔을 선사한 망국세력이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당시의 우익 지식인들은 새롭게 등장한 정치세력이 근대화를 열망하는 자신들과 결합하여 민족 근대화를 이뤄야한다고 생각했다. 무력을 가진 고려말 이성계와 신진사대부의 결합이 생각나는 지점이다. 때문에 당시 그들은 5.16을 무려 4.19의 연장선으로 바라보았다.

 사상계의 경우에서 언급했던 해방후 1950년대의 우익 지식인들은 근대화를 서구의 것을 따라가야하는 것으로만 파악하는 경향이 있었다. 망국의 아픔과 설움이라는 시대상황 속에 가질 수 밖에 없는 배경이었다. 하지만 이후 1960년대에는 근대화를 민족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변화가 생겨난다. 근대화의 맹아를 무조건 서구에서 찾기보다는 우리 본연에도 그러한 것이 있음을 바라보게 된것이다. 역사시간에 흔히 배우는 조선 후기 실학에서 자주적 근대화의 요소를 학습하게 되는 것은 이시기에 이뤄진 성과다. 

 한국우익 중에서는 무교회주의자들도 깊은 족적을 남겼다. 이들의 사상적 근원은 일제시대 일본학자 우치무라 간조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치무라 간조는 무교회주의 창조자로 천황에 대한 교육 칙어 불경사건과 러일전쟁 반대로 일본사회에서 찍힐대로 찍힌 인물이었다. 훗날 한국의 잡지 성서조선의 김교신, 양인성, 함석헌, 류석동, 정상훈, 송두용등이 그의 제자였다.

 성서조선은 한국 기독교 정신주의의 가장 비타협적 지점에 위치한다. 이들은 기독교 신앙을 바탕하면서도 자신의 삶 전체를 민족을 위해 헌신하고자 했다. 제도권 기독교와는 갈등관계였는데 그럴만한 것이 이들은 신앙공동체 자체를 교회로 파악하여 성직 제도나 예배당을 불필요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류달영은 5.16군사정부에서 국민재건운동을 이끌었다. 그는 덴마크 모델에 기초한 국민교육, 농수로 제작과 농지개간을 하는 향토개발, 주택과 식생활과 환경을 개선하는 생활혁신, 도농자매결연, 결식아동급식등의 사회협동을 주장했다. 그는 가정의례준칙을 수립하고 각종 의식을 간소화했다. 무척 길던 결혼 예식을 지금수준으로 30분정도로 줄인 것은 그가 한 일이다. 그의 이런 사상은 훗날 박정희 정권의 새마을 운동의 모델이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류달영은 국가주의자들과 사상적으로 부딪혀 정권에서 밀려나게 된다. 그는 마을금고라는 이름의 신용조합을 만들어냈고 평생교육이라는 개념도 최초로 사용한다. 

 이찬감은 1958년 충남 홍성 홍동면에서 지금도 매우 유명한 풀무학교와 풀무공동체를 설립한 사람이다. 풀무공동체는 무교회주의자들의 세계관 가치관 방법론을 집약한 곳으로 녹슨 쇠붙이를 녹이고 정련해 새로운 농기구를 만든다는 뜻으로 '풀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우치무라 간조의 위대한 범인과 함석헌의 씨알 개념을 사용하여 위대한 평민을 교훈으로 삼았다. 풀무공동체에서 학교는 하나의 마을이자 생활의 공동체로 이는 지금 한국 혁신 교육의 마을교육공동체와 이론적 실천적으로 연결된다. 지금은 유명한 유기농 역시 이 집단에서 시작되었다.

 함석헌은 우치무라보다 류영모에게 영향을 받았다. 류영모는 노자를 예수만큼 중시했는데 그는 참된 삶이란 신앙적인 진리 정신과 서민적인 근로정신이 일치해야 한다고 보았다. 함석헌의 씨알도 류영모에게 온 것으로 씨는 생명, ㅇ은 하늘, ㅏ는 극소이자 소우주인 자아, ㄹ은 활동양태다. 즉. 씨알은 우주의 생명의 내려와 인간의 얼이 된 존재다. 

 한국천주교는 개신교보다 그 역사가 오래됨에도 사회적 영향력이 미비했다. 이는 개별 교회가 각자 따로 노는 개신교에 비해 천주교가 로마바티칸을 중심으로 강한 통일성과 방침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즉, 지역성을 갖기 어려웠던 셈인데 1960년대에 이르러서야 로마교회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현대세계에 발맞춰 변화를 선택하면서 상황이 변하게 된다. 이 회의에서 기존 성직자 중심을 평신도 중심으로 이동시키고 미사에서 라틴어 외에 모국어도 사용하게 하였다. 이러한 변화를 김수환과 지학순은 사회 참여로 이해하였다. 

 김수환은 독일 요제프 회프너에게 기독교 사회학을 공부하였다. 그는 이런 학문적 배경을 바탕으로 1970-80년대 민주화운동에 참여한다. 김수환은 1968년 세계 최연소로 추기경이 되었으며 1972년 미사생중계때 정부의 국가호위 특별 조치법을 대놓고 비판함으로써 정부의 눈밖에 나게 된다. 하지만 추기경이라는 막강한 위치덕에 군사정권도 그를 어찌하지 못했는데 그 덕에 명동성당은 민주화 운동 인사들의 일종의 피난처 역할을 하게 된다. 김수환은 1972년 남북이 야합한 공동성명에 대해서도 남북의 정권을 연장하고자 하는 적대적 공존 수단으로 파악하여 비판하였다. 김수환은 자연법을 근거로 유신을 비판하였는데 자연법은 신적 정치에 기초해 모든 실정법 위에 존재하는 원리로 국가의 법이 이에 비치되면 그것은 악법이자 무효가 되는 것이었다. 김수환은 반공주의자로 민주화 운동 인사였음에도 공산주의에 대해 경계하는 발언을 하였다.

 지학순은 카톨릭이 평신도 위주로 가야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1966년 원주에 신용협동조합을 설립하는데 이것이 지금도 존재하는 한살림의 전신이다. 그는 1970년대 라틴아메리카의 해방신학을 수용하였으며 1974년엔 최초로 유신헌법에 대항해 최초의 양심선언을 한다. 양심선언은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켜 그로부터 2개월후 지금도 존재하는 천주교의 정의구현사제단이 결성된다. 

 천관우는 1954년 한국일보 논설위원, 1958년 조선일보 논설위원이자 편집국장, 1963년 동아일보 편집국장으로 활약할 만큼 젊어서부터 언론인으로 성공했다. 그는 자유언론의 전통을 세웠는데 언론 자율과 자유 수호를 매우 중시했다. 그는 1960년대 중반 정권에 대한 날을 세우다 밀려났는데 이는 당시 일련의 흐름과 관계한다. 1950년대만 해도 언론에서는 언론을 만들어내는 기자나 편집인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1960년대 중반부터 언론이 대형 기업화하면서 경영진이나 소유주가 편집인보다 우위에 서기시작했으며 이로 인해 정권은 언론의 통제를 기존 기자통제에서 경영진을 통제하는 형태로 구조변경을 시도한다. 이런 언론 권력의 변화흐름에서 천관우는 힘을 잃는다.

 천관우는 뛰어난 언론인이기도 했지만 우수한 역사학자이기도 했다. 그의 학부 졸업논문이 실학의 개념과 발전과정을 최초로 이론화한 것인데 이는 세계사적 근대화의 맹아가 조선말 외래 유입에서 온 것이 아닌 자생적으로 생겼음을 주장하는 최초의 패러다임 변화였다. 언급한 것처럼 1960대는 학계에서 자생적 발전론에 주목하기 시작했는데 이른 당시 한일 협정이라는 사회적 반감과도 관련한다. 

 책 대한민국의 설계자들은 언급한 사람들 외에도 사상적 흔적과 업적을 남긴 다양한 전통 우파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들은 현재 우파의 적장자가 되지 못해 크게 잊혀진 존재로 책을 읽어나가면서 이들에 대한 배경과 업적에 대해 많은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이들이 성공하여 현재 우파의 사상적 직계 조상으로 자리매김했다면 지금의 한국사회가 어땠을까라는 상상을 해보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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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은 아이는 외로운 어른이 된다 -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 관계를 치유하는 시간
황즈잉 지음, 진실희 옮김 / 더퀘스트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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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은 어른에게 완벽함을 요구한다. 공정하며 일관적이고 완벽한 조건없는 사랑, 즉, 어른스러움이다. 그런데 완전한 어른은 사실 없다. 어른은 그저 다른 어른들이나 사회적 기대 혹은 자신이 어릴 때 본 것처럼 완전해보이는 어른을 흉내내는 것 뿐이다.(그 어른도 사실 뭔가를 매우 잘 흉내낸 것에 불과했을 것이다.) 어찌보면 전혀 잡히지 않는 어른스러움을 평생 갖고 있는 것처럼 연기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실제 어른에 가깝다고 본다. 그리고 그런 어른이 진짜 어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 어른은 대부분 완벽하지 못한 어른을 만나며 어린시절을 보낸다. 그리고 그렇게 불완전한 어른이 되어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불안하게 아이를 대하게 된다. 일종의 악순환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책은 이런 것에 대한 내용이며 대인과정이론이라는 것에 근거한다. 대인과정이론은 모두가 건강한 개인이라고 전제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못한 것은 환경이나 상대방이 바뀌었음에도 전략을 적절하게 변경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한다. 미국의 심리학자 해리 스택 설리반은 어린 시절 부모와 반복적으로 겪은 상호작용이 인격과 자아를 형성한다고 본다. 타고난 성격요인에 부모라는 초기 환경요인이 결정적으로 작용하고, 이후 다른 대인과 환경이 개인의 성격을 형성한다는 것으로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다. 

 많은 부모는 언급한 것처럼 완벽한 부모를 만나지 못했고, 그로 인해 자신의 불완전성은 더욱 커졌기에 자신의 생의 아픔을 감당하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대부분이 자기 자신조차 사랑하기가 버겁고 그로 인해 아이를 사랑해주기가 매우 어렵다. 하지만 부모이고 어른스러운 척을 해야하기에 부모는 억지로라도 나는 부모다라는 설득을 통해 아이에게 사랑과 곁을 내주는게 가능해진다.  

 반면 건강한 사람은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는데 하는 일이나 장소,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습을 드러내는 편이며 이로 인해 유연하고 성공적인 관계를 맺는게 가능하다. 

 책에는 부모가 아이를 고통스러벡 하는 상황이 나오는데 유념할만 하다. 

 부모가 정서적 대응, 일분배, 가사분담 및 의사표현등에서 분명하게 의사표현을 하지 못하는 경우, 부모가 지나치게 감정적, 변덕으로 아이에게 일관된 감정경험을 주지 못하는 경우, 부모가 권위를 내세워서 아이를 휘어잡고 붙잡으려 하지만 아이가 막상 곁에 머무르면 소홀리 대하거나 감정적으로 협박하고 아이를 소유물로 간주하는 경우, 부모가 미숙하여 아이를 물심양면으로 배려하지 못하고 오히려 아기가 부모의 욕구를 지나치게 배려하는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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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 물질과 공룡 - 우주를 지배하는 제5의 힘
리사 랜들 지음, 김명남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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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어떤 책을 읽으며 재밌는 의견을 본 적이 있다. 지구 빙하기는 규칙적으로 찾아오는 편인데 이는 태양계가 은하계를 공전하며 태양 빛을 많이 산란시키는 짙은 가스층이나 성운주변에 주기적으로 들어가 발생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런 층에 들어가게 되면 태양과 지구사이에 빛을 막는 물질의 농도가 짙어지게 되고 이로 인해 지구로 들어오는 태양 빛이 줄어 그 기간 빙하기가 찾아온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태양이 멈춰있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태양계 전체는 상당히 빠른 속도로 우리 은하를 공전하고 있다. 다만 태양계 전체가 태양에 딸려 다같이 움직이기에 태양은 우주 한 가운데 멈춰있고 지구 같은 행성들만 태양주위를 공전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기적인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지구와 소행성들의 충돌 빈도다. 내가 어릴적만 해도 공룡의 갑작스런 멸종 이유는 의문에 가까웠으며 그나마 유력한 이론은 갑작스레 찾아온 빙하기로 인해서였다. 하지만 지금은 6600만년전 거대한 소행성이 유카탄 반도에 떨어져 궤멸적인 파괴현상이 일어났고 이로 인한 대멸종으로 공룡이 사라졌다는 것이 정설이 되었다. 책의 저자 리사 랜들은 지난 2억 5천만년동안 발생한 지구의 크레이터(소행성의 충돌 흔적이다)를 바탕으로 충돌의 빈도가 주기성을 갖고 있으며, 그 이유는 우리 은하에 존재하는 암흑물질이라는 이론을 내세웠다. 책 '암흑 물질과 공룡'은 그 과정하나하나를 밣아가는 책으로 우주의 기원부터 생명의 기원, 태양계,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 우리 은하 등 관련 지식과 이론을 체계적으로 다룬다.  


1. 암흑 물질

 우주는 암흑에너지 69%, 암흑물질 26%, 물질 5%로 구성된다. 은하나 별, 그리고 우리 같은 생명을 구성하는 물질이 고작 5%에 불과하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하지만 암흑에너지나 암흑물질의 존재를 가정하지 않고서는 우주의 팽창과 팽창에도 불구하고 은하가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 그리고 우주의 총물질량과 에너지량이 이론과 도무지 맞지 않기에 이들은 실제 관측이 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존재하는 것으로 인정된다. 

 이중 암흑물질은 사실상 우리 주변 어디에나 존재하며 심지어 우리 몸을 실시간으로 통과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지만 보통물질과는 거의 상호작용하지 않아 감지조차 되지 않는다. 암흑물질은 빛과 상호작용을 하지 않기에 사실 전혀 보이지 않으며 관측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암흑물질도 물질이기에 자기들끼리 뭉쳐 한곳에 집중되며 그 결과 강력한 중력효과를 나타낸다. 이런 암흑물질의 성질덕에 우리 은하를 비롯한 우주 초기의 은하단이 생성될수 있었다. 

 암흑물질의 중력으로 인해 이들이 있음을 알아낼수 있기도 하다. 먼저 1970년대 루빈과 켄트 포드는 별들이 은하중심에서 멀리 떨어졌음에도 회전 공전 속도가 중심부와 거의 같음을 발견했다. 사실 이 정도 거리면 은하중심의 중력이 거의 미치지 않아 이 별들은 은하 바깥으로 튕겨야만 했다. 하지만 보통물질 이상의 물질이 은하내에 존재해 더 강한 중력이 작용한다면 이들이 이렇게 붙어 있는 이유가 설명된다. 때문에 이는 암흑물질의 존재를 입증하는 하나의 증거가 된다. 

 암흑물질의 존재를 설명하는 또 다른 증거는 중력렌즈다. 빛은 직진하지만 중력이 큰 부분을 지나게 되면 그것에 이끌려 휘게 된다. 지구와 일직선상에 놓은 별이 방출하는 빛은 가운데 커다른 은하가 있다면 그것에 가려 원래 보이지 않게 된다. 하지만 은하 위 아래로 지나가는 빛이 은하의 중력에 이끌려 아래로 휘게되고 그 결과 일직선상에 가려져있던 지구에도 별의 빛이 도달하게 된다. 다만 위 아래에서 오기에 그 별이 두개로 보이게 된다. 이 휘는 정도로 은하단이 갖는 질량의 계산이 가능해지는데 그 결과 은하단의 중력은 보통물질보다 훨씬더 강한 것으로 계산되며 이 역시 암흑물질이 은하내에 존재한다는 강한 증거가 된다.

  

2. 우주의 시작과 암흑물질

 우주의 나이가 십의 -43승 도 안되고 우주의 크기가 십의 -33승 cm도 에 불과한 시점에 빅뱅이 시작되었다. 초기 우주는 1조*1조배의 온도와 수많은 입자로 구성되어 있는 고밀도 에너지 덩어리였으며 이 입자들이 광속으로 날아다니며 서로 상호작용하고 소멸하여 엄청난 에너지를 형성하였다. 하지만 빅뱅으로 인한 팽창으로 우주가 식자 에너지 밀도가 큰 무거운 초기 입자가 더 이상 생성될수 없었다. 이 무거운 입자들은 반입자와 같이 소멸하여 에너지로 전환되었고, 이 에너지가 남아 있던 가벼운 입자에게 에너지를 주었다. 빅뱅 후 몇분이 지나자 양성자와 중성자는 온도가 충분히 떨어져 날아다니기를 멈추고 강한 핵력으로 뭉쳐 원자핵을 형성한다. 원래 양성자와 중성자는 수가 같았으나 중성자가 약한 핵력에 의해 붕괴하여 양성자가 되어 둘의 상대적 존재비가 달라지게 된다. 하지만 중성자는 매우 느리게 붕괴하므로 충분히 남아 양성자와 함께 원자핵에 흡수된다. 헬륨이나 중수소, 리튬의 원자핵이 형성되고 이 때 오늘날 우주에 남은 이 원소들의 양이 결정되었다. 

 우주가 더 식어 빅뱅후 38만년이 지나자 양전하의 원자핵과 음전하인 전자가 결합하여 중성원자를 이룬다. 마침내 우주는 전기적으로 거의 중성이 되어 전자기력을 전달하는 입자인 광자가 하전입자들에 더는 포섭되는 일 없이 우주를 산란없이 직진하게 되었다. 이 최초의 복사가 우주배경복사로 현재까지 관측이 가능하게 된 이유다. 초기의 빅뱅은 무거운 초기 물질을 파괴했지만 식으며 우주를 메울 물질들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우주는 초기에 급팽창했기에 매우 균일하고 평평하다. 현재 우주는 급팽창으로 1%수준으로 평평하다. 하지만 완전히 균일하지는 않았는데 이로 인해 은하의 별이 탄생하게 된다. 

 항성계는 우주의 밀도가 낮아지고 물질이 복사보다 에너지가 많아진 시점에야 생성되었다. 복사가 더 강한 시점엔 물질이 뭉치는 것을 마구잡이로 부딪히며 방해했기 때문이다. 우주는 평평하고 균일했지만 작은 밀도 요동은 있었고 여기서 부분의 밀도가 커지기 시작했다. 중력은 물질을 당기고 복사는 물질을 밀어내는데 질량이 어느정도 커지게 되면 밀어내는 힘을 능가하여 물질이 계속 뭉치게 된다. 암흑물질은 이 과정에서 복사의 영향을 받지 않기에 보다 수월하게 인력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암흑물질은 지금도 중력을 발휘하여 별이 날아가지 않도록 하게 하고 초신성에서 분출된 물질의 일부를 은하로 도로 끌어당기기도 한다. 그 결과 은하는 이후에 별형성 및 생명형성에 필요한 중원소들을 보유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우주에서는 저밀도 지역이 더 빨리 팽창하고, 고밀도 지역은 느리게 팽창한다. 그 결과 저밀도 지역이 더 팽창해 고밀도 지역을 부피로 압도하여 고밀도지역은 저밀도 지역의 가장자리에 실처럼 몰리게 된다. 그리고 고밀도 영역은 저밀도 지역의 부피에 눌려 섬유처럼 형성되고 이런 섬유들이 만나는 지역이 상당한 고밀도가 된다. 이 지역이 바로 은하형성의 시작점이다. 


3. 은하와 태양계의 형성

 이 고밀도 지점에서 보통물질은 뭉치는데 특이하게도 항성이나 행성처럼 공모양이 아닌 원반형태가 된다. 이는 회전때문인데 그 회전은 물질이 형성될때 모인 가스구름으로부터 물려 받은 성질이다. 물질이 식으면 붕괴에 대한 저항이 낮아져 한 방향으로 붕괴하는데 이는 나머지 방향으로의 붕괴가 가스의 회전에서 생기는 원심력으로 방지되거나 약화되기 때문이다. 일단 회전을 시작한 물질은 최초의 각운동량을 보존하므로 가스는 수직으로는 붕괴해도 방사상으로는 붕괴하지 않는다. 그래서 원반이 되어 납작해지는 것이다. 

 이 은하에서 형성된 태양은 초속 220km로 은하를 공전한다. 이런 엄청난 속도에도 은하자체가 상당히 크기에 한번 공전하는데 무려 2억 4천만년이 소요된다. 태양이 형성되자 태양의 강한 하전입자에 의해 수소와 헬륨이 바깥으로 날아가고 고온에서도 녹지 않는 철이나 니켈, 규산염, 알루미늄만이 가까이에 남아 응축되어 내행성의 재료가 되었다. 이런 태양의 하전입자로 날아간 풍부한 재료로 인해 외행성계는 중력이 낮아 물질이 부족했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풍성한 재료가 넘치는 지역이 되었다. 그래서 외행성들은 크기가 크고 수소를 잔뜩 축적하여 상당히 빠르게 형성되었다. 이들은 형성 직후 갑작스레 움직였는데 목성은 태양계 안쪽으로 나머지들은 바깥으로 이동하게 되는데 이들의 강력한 중력에 딸려 소행성들도 같이 움직이게 되었다. 이 갑작스러운 이동으로 상당히 많은 수의 소행성들이 궤도에서 벗어나 태양계 안쪽으로 향하게 되었는데 지구와 달, 수성등에 남아있는 후기 대충돌에 의한 크레이터들은 대부분 이때 형성된 것이다. 

 이는 상당히 파괴적이었지만 지구에 긍정적 역할도 남겼는데  생명과 물, 귀금속 자원의 형성이다. 초기의 하전입자로 인해 지구에는 내부에 약간정도의 물만 남아있는 것이 가능했는데 외부에서 날아온 소행성에 의해 상당량의 물을 축적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이로 인해 물의 양이 적당하여 행성 일부는 물에 잠기고 일부는 드러나 향후 다양한 생명의 분화가 가능하게 되었다. 또한 인류문명에 상당히 유용하게 사용된 무거운 금속원소들도 이 때 충돌로 축적된 것이다. 지구가 생성되며 무거운 원소들이 지구중력에 의해 핵근처로 말려들어갔는데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내외부의 금속들은 대부분 소행성충돌로 생성되 지구지각 내외부에 축적되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생명의 형성이다. 소행성에는 아미노산이 충분히 있는데 이 아미노산이 충돌과 더불어 역시 지구에 대규모로 쏟아져내린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는 확실한 것이 아니며 그것만으로 생명의 기원했다고 보기엔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지구 최초의 생명이 35억년전에 발생한 것과 후기 대충돌이기가 40억년전으로 시기적으로 비교적 유사한 것은 묘한 여운을 남기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하여튼 태양계는 형성되어 내행성과 소행성대, 외행성대 카이퍼대, 오르트구름대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목성은 외행성계의 대장으로 소행성대를 강력한 중력으로 묶어두어 내행성계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이중 단주기 혜성과 소행성들은 카이퍼대에서 주로 공급되며 안정적 궤도를 갖는다. 하지만 장주기혜성은 오르트 구름대에서 공급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오르트 구름대는1000에서 5만 천문단위거리에 있다.


4. 은하 중심의 암흑물질과 소행성의 흔들림

 지구에서 생명은 35억년전에 처음 생겼지만 5억4천만년전 캄브리아기에 생명이 지금처럼 대폭발했다. 이후 생명은 환경의 급변에 의해 대규모로 혹은 부분적으로 멸종하였는데 환경의 급변은 크게 지구내부의 지각변동에 의해서 그리고 외부 소행성과의 충돌이라는 두 가지 방법에 의해서 발생했다. 지금까지 다섯번 정동의 대규모 멸종이 발생했는데 이중 3번은 지구내부의 지각 변동에 의해서 그리고 나머지 두번은 외부 소행성충돌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학자들은 이런 대규모 혹은 부분적 종의 감소나 멸종이 지질조사 결과 2700만년 정도의 주기 또는 6200만년 정도의 주기를 갖고 발생하는 것으로 밝혀냈다. 지구 내부의 지각변동도 주기성을 어느정도 갖기는 하지만 이 책에선 소행성의 주기적 충돌에 주목한다. 그리고 지구 궤멸적 효과를 갖는 충돌은 소행성보다는 혜성일 것으로 추정한다. 이유는 두 가지로 우선 소행성 충돌은 주기성을 갖기 어렵기 때문이며, 무엇보다도 충돌 에너지가 혜성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충돌에너지는 충돌체의 질량과 속도와 관련하는데 혜성은 속도가 최대 초속 70km까지 나오는 반면 소행성은 10-30km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크기 역시 상대적으로 혜성이 더욱 큰 편이다. 

 혜성의 발생은 소행성의 무작위성에 비해 주기성을 가질 확률이 높은데 이는 혜성이 오르트 구름대에서 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언급한 것처럼 오르크 구름대는 태양의 중력이 간신히 미치는 곳으로 아주 작은 다른 별이나 은하에 의한 섭동에 의해 소행성들이 충분히 교란되어 그 궤도가 바뀔수 있는 지역이다. 궤도가 바뀌면 태양계 바깥으로 벗어나거나 안쪽으로 향하게 되는데 태양계 안쪽으로 궤도를 향하여 안쪽까지 도달하는데 수천년이 걸리게 된다. 만약 이런 섭동에 주기성이 있다면 태양계 안쪽으로 혜성들이 떼를 지어 주기적으로 대규모 충돌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며 지구같은 별에는 주기적 멸종을 갖고 오게 된다. 

 태양계는 은하주위를 공전하는데 나선면을 따라 수평으로만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수직으로도 요동친다. 태양은 은하주의를 2억4천만년간 공전하면서 3회에서 4회정도 수직으로도 수직 이동을 한다. 수직이동을 하게 되어 은하의 나선 위아래로 향하면 태양계는 상대적으로 밀도가 낮은 지역으로 향하게 되는 것이며 은하나선면 중심을 향하며 밀도가 높은 지역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 밀도가 높은 지역을 만나게 될때 오르트 구름대의 천체를 흐트러뜨릴만한 섭동이 일어나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 은하의 보통물질의 밀도만을 생각한다면 태양계 외곽을 흐뜨러트릴만한 조력이 충분치 않다는 것이 있고, 또 다른 문제는 보통물질 은하의 수직두께는 200광년정도의 크기인데 이 두께와 지구의 멸종주기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 있다. 일치하려면 은하의 두께는 더 얇아야 한다. 

 리사랜들이 이 문제에 대해 제시한 해법은 바로 암흑물질이다. 리사랜들은 책에서 우리 은하에는 보통물질 은하보다 훨씬 얇은 원반형의 암흑물질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리사랜들은 암흑물질 전체가 상호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소수만이 상호작용할 가능성이 있고, 이 경우 상호작용하는 이들만이 에너지를 방출할수 있어 보통물질처럼 같은 원리로 식어서 원반을 형성할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암흑물질은 보통물질보다 입자질량이 100배정도 클 것으로 추정되는데 보통물질과 암흑물질이 같은 온도로 식어있고 같은 속도로 은하로 회전하려면 은하의 두께 역시 100배 얇아야만 한다. 그러면 암흑원반의 두께는 2광년정도로 줄어들고 섭동을 일으킬만큼 강한 중력을 띠어 지구의 멸종주기와 일치하게 된다. 이 경우 태양계가 암흑원반을 통과하는 시기는 100만년에서 200만년정도가 되며 섭동에 의한 유성체의 흐트러짐과 이어지는 대충돌은 약 3200만년 정도의 주기를 띠게 된다. 그리고 태양이 은하평면을 왔다갔다 수직이동하는 주기는 3000만에서 3500만년정도로 모든 것이 대개 일치하게 된다.

 즉, 정리하면 지구의 멸종은 주기를 갖는데, 이는 유성체와의 충돌에 의한 것이다. 충돌유성체는 오르트 구름대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발생주기는 태양이 은하를 공전하며 암흑물질로 이뤄진 농도짙은 암흑원반을 지나는 시기다. 그러므로 우리 은하내의 암흑물질이 지구 생명을 멸종시키는 충돌유성체를 주기적으로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신비의 물질은 암흑물질과 지구의 생명기원과 멸종을 주기적으로 연결시킨 아이디어가 놀라운 책이었다. 더 나아가 은하들도 서로 움직이면서 충돌하곤 하는데 더 큰 스케일에서 은하들의 움직임이 발생시키는 무언가도 지구나 태양계의 역사에 주기적은 뭔가를 일으키지도 않을까란 생각이다. 아니면 이 스케일은 시간적으로 너무커서 지구나 태양계의 역사를 넘어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비교적 간단했지만 리사랜들은 이 과정을 하나하나 설득하듯 지난하게 그 과정과 이론적 배경을 설명한다. 아무래도 암흑물질이란 것 자체가 신비롭다보니 이론 자체게 학계에서 받아들여지기 어려워서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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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인구는 거의 80억에 도달했고 가까운 시일내에 100억 돌파도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 문제는 지구가 이 모든 걸 부양할 만큼 그리 크지 않고 인간은 개체수가 본래 가장 적어야할 최상위 포식자라는 점이다. 이런 무리한 부양을 위해 인간은 현재 태양이 매일 제공하는 에너지를 사용할 능력이 부족하자 과거 지구가 축적한 에너지인 화석에너지를 이용했고 자연순환 이상의 질소고정을 하여 식량을 증대했다. 그리고 나머지 동물군과 식물군의 서식지를 파괴하고 여기에 식량작물과 가축들을 배치하여 지구상의 생물에너지 대부분을 자신의 식량에너지로 삼고 있다. 현재 지구상의 동물군의 무게는 인간자체와 인간에게 에너지를 직접 제공하는 가축이 99%를 차지한다. 나머지는 수만 많고 적은 개체수를 간신히 유지하며 에너지와 자원을 인간에게 모두 빼앗기고 있는 셈이다. 

 이런 형태의 식량증대 방법은 지구 환경과 식량이 되는 동물에 엄청난 고통을 가하는 윤리적 문제를 가져왔다. 책 '잡식동물의 딜레마'는 자연순환에서 농경순환 그리고 산업화와 화석에너지를 식량으로 변환하는 산업화된 순환의 문제점에 대해서 지적한다. 그리고 책 '값싼 음식의 실제가격'은 우리가 실제 먹는 수많은 식물, 동물음식이 사실 화석연료와 보조금에서 비롯된 것이고 그것이 환경에 가하는 부담과 보조금으로 인한 가격이므로 실제로는 엄청나게 비싼 가격을 초래하는 것임을 밝힌다. 규격화되지 않았거나 약간의 손상이 있기에 상품화되지 않고 버려지는 음식도 엄청나다. 그리고 반대쪽에서는 그것이 없어 굶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에서는 69년을 기점으로 인간이 개체수가 늘어나고 풍요로워지면서 반대로 얼마나 지구가 끔찍해졌는지를 수치로 담담하게 제시한다. '고기로 태어나서'를 한국의 책으로 작가 자신이 닭, 돼지, 소, 양계, 식용개를 다루는 축산업계에 직접 취업하며 겪은 동물들의 끔찍한 삶을 가감없이 드러낸책이며, 피터싱어의 '동물 해방'은 공리주의에 입각하여 쾌락과 동물을 충분히 겪는 동물의 이익도 도덕적으로 고려해야함을 주장하는 책이다. 

 이 책들은 매우 설득력이 있으며 독자로 하여금 강한 문제의식을 갖고 하고 환경과 윤리적 문제에 대한 영감을 준다. 하지만 해결은 매우 어렵다. 상당수의 인간이 자신의 잡식동물로서의 본능을 포기하고 채식으로 돌아서거나 아니면 감당이 가능할 정도로 인구의 수를 줄여야 한다. 그러나 이중 어느 것도 인간의 본능에 부합하지 않는다. 인간은 열량이 높은 육류를 선호하고 갈망하며, 환경이 좋아져 경제성장이 되면 충분히 번식하고자 하는 욕망을 갖는다. 때문에 육식의 포기는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실제로도 그래왔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발달로 등장한 세포배양육은 이런 모든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가능성을 갖고 있다. 세포배양육은 글자 그대고 동물의 세포를 배양하여 식용이 가능한 고기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기술은 10년정도 전에 실체를 조금씩 드러냈지만 당시만 해도 무척 비쌌다. 세포배양육이 모습을 드러냈을때 치킨 너겟단가가 500g당 무려 120만 달러였다. 그야말로 요리사가 살 떨며 조리할만한 가격이었는데 2019년엔 그 가격이 500g당 1000달러 선으로 크게 내려갔다. 치킨 너겟 개당 가격 50달러 수준인 셈이다. 아직은 치킨 너겟 한 개당 한화 5-6만원 수준으로 비싼 수준이지만 가격이 감당할 만한 수준으로 내려가는 것은 시간 문제이며 재생에너지의 가격이 화석에너지의 가격보다 싸진 것처럼 배양육의 가격이 재래식 축산육의 가격보다 내려가는 날도 가까운 시일내에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언급한 것처럼 세포배양육은 재래식 축산업이 야기하는 환경파괴의 문제와 동물에 대한 윤리적 문제 두 가지를 모두 해결할 수 있다. 현재 축산업은 전 세계가 배출하는 온실가스량의 무려 14%를 배출한다. 그리고 이는 축산업계의 반발로 제법 보수적으로 추정한 수치다. 이 온실가스의 총량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차량과 선박, 기차, 비행기에서 내뿜는 온실가스의 배출량을 상회한다. 재래식 축산업은 인간이 배출하는 온실 가스중 이산화 탄소의 9%, 메탄의 37%, 아산화 질소의 65%를 차지한다. 재래식 축산업중 온실가스 배출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것은 소다. 이는 소개 네 개의 위를 통해 음식을 발효하기 때문이고 그 과정에서 메탄가스가 대량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소는 메탄가스 배출기계나 다름이 없는데 500kg의 소가 무려 100kg의 메탄가스를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재래식 축산업은 가성비가 매우 떨어진다는 약점도 지닌다. 소고기 450g을 얻기 위해서는 사료가 2.7kg이 필요하며 돼지고기 500g을 위해서는 사료 1.6kg, 닭고기 500g을 위해서는 사료 900g 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사료는 굶주리는 가난한 나라의 사람이 식량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즉, 현재의 축산업은 부유한 국가 시민의 입맛을 충족시키기 위해 가난한 국가사람들을 부양하지 않는 것에 식량체계에 기반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재래식 축산업은 식량 뿐만 아니라 상당한 양의 토지와 물을 소모한다. 매우 밀도 높은 공장식 축산업이긴 하지만 그래도 지구상의 가축수가 엄청난 만큼 상당한 양의 토지와 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래식 축산업은 그 대상인 가축에게 엄청난 고통을 가져온다. 생물은 자신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태어나며 그를 위한 본능과 그것이 충족될 때 갖는 기쁨이 있다. 하지만 공장식 축산업은 그 모든 것을 박탈한다. 소는 더이상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풀을 뜯을 수 없으며 돼지는 흙목욕을 하지 못하며 심지어 뒤를 돌아보지도 못할만큼 좁은 공간에 갇혀 그 스트레스로 다른 돼지의 꼬리를 물어뜯는다. 닭은 발톱으로 땅을 긁을 수 없으며 날개짓조차 하지 못한다. 이들 모두는 인간을 위해 새끼와 자신의 고기, 우유나, 달걀 등을 착취당하며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죽음을 맞게된다. 이는 상당한 윤리적 문제를 일으켰다. 물론 식물이 아닌 동물의 하나로서 인간은 지구상의 다른 생명을 자신의 에너지원으로 바꾸어 생명을 유지할수 밖에 없으며 이는 다른 동물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이는 윤리의 영역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인간의 축산행위가 윤리의 영역이 되는 것은 인간은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충분히 생존을 유지할수 있는 다른 방안과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인간은 채식을 통해서도 충분한 단백질과 다른 영양분을 얻을 수 있으며 육식을 포기하지 않더라도 지금처럼 광범위한 극도의 고통을 주는 형태를 유지하지 않아도 된다. 

 세포배양육은 이런 문제를 모두 해결한다. 세포배양육이 재래식 축산업을 대체할 경우 같은 고기를 생산하는데 에너지의 45%, 온실가스 배출의 96% 토지사용이 99% 물 사용량이 96% 감소할 것으로 예측된다. 무척이나 인상적인 수치다. 또한 고기를 만들어내는데 동물의 본능의 박탈과 고통의 증가, 죽음이 없기에 윤리적 문제도 제기되지 않는다. 

 여기에 몇 가지 장점이 더 있다. 제공되는 고기가 매우 안전하고 친환경적이라는 것이다. 자연상태이건 축산업이건 동물은 외부환경에 노출되며 이로 인해 기생이 발생하거나 세균에 고기가 오염된다. 우리는 도축 및 유통과정에서의 위생강화와 조리과정에서 충분한 열을 통해 고기를 요리함으로써 이 문제를 상당부분 해결하지만 완전하지는 않으며 이로 인해 가끔 식중독등의 사건이 발생한다. 하지만 세포배양육은 무균환경에서 배양되기에 유통과정에서의 관리만 잘 이뤄지면 매우 안전한 고기가 공급된다. 공장식 축산업에서 알게모르게 들어가게 되는 환경호르몬이나 항생제등의 문제에서도 자유롭다. 

 세포배양육이 제공할만한 또 다른 장점은 식량 위기의 극복이다. 기존 축산업은 상당한 식량자원과 수자원을 소모한다. 때문에 지금처럼 계속 인구가 늘어나고 기후위기가 닥칠 경우 충분한 인구 부양력을 가질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공장식 밀집 사육으로 인한 잦은 질병의 발생도 문제다. 또한 근본적으로 기존의 축산업은 수많은 기술발전에도 불구하고 해당 지역의 기후에 크게 의존한다. 실제로 세계적 축산 국가는 미국이나, 호주, 유럽, 아시아 지역 등 동물사육에 적합한 온대기후지역이다. 건조지역이나 한대, 열대지역에서 채산성있는 축산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공장이나 다름 없는 실내 건물에서의 세포 배양은 이런 나라도 기술만 충분하다면 세계적 축산국으로 변모시킬수 있다. 

 세포배양육은 기술적으로 3가지 요소를 갖는다. 세포, 배양액, 바이오 리액터다. 세포는 동물의 세포로 보통 동물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생체검사를 통해 얻는다. 배양육 업계는 최근 여러 종의 동물세포를 보관하고 있는 기관이나 업체로부터 안정적으로 세포를 공급받고 있기도 하다. 세포배양은 기본적으로 세포분열을 통해 고기를 얻는데 문제는 세포가 자연상태에서 보통 50회만 분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충분한 단백질과 항산화제 보충 배양액을 이용하면 이 횟수를 10회정도 더 늘릴 수 있으며 좀 더 증식하는 특정 종류의 동물 세포군의 세포 사용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고 있다. 

 배양액은 현재 각 회사마다 비밀로 붙이고 있는 부분이다. 동물의 세포는 당연히 다르기에 소, 돼재, 오리, 닭의 세포에 적합한 배양액은 각각 다르다. 특히, 조류의 세포보다는 포유류의 세포가 더 민감하기에 고도의 기술을 적용한 배양액이 필요하다. 초기 배양액은 소의 태아 혈청을 사용했지만 가격이 4컵 정도에 1150달러정도로 매우 비싸다. 지금은 기술개발로 배양액의 가격이 업체마다 다르긴 하지만 리터당 1-5달러 정도로 저렴해졌다. 600리터 정도의 배양액이면 닭 1500마리 정도의 고기 생산이 가능하다.

 바이오리액터는 배양액 안에서 세포가 헤엄치며 자라는데 필요한 환경을 구현한 기계장치다. 바이오 리액터는 산소와 영양분이 고르게 분포하도록 휘젓는 제트기류를 꾸준히 발생시키며 그 강도가 세포의 성장을 방해하지는 않을 정도로 적당히 조정된다. 바이오리액터는 일정 온도와 PH를 유지하며 산소의 농도와 영양도의 농도를 꾸준히 감지하며 관리한다. 

 세포배양육은 이런 가능성을 갖고 있지만 넘어야 할 한계도 존재한다. 우선 기술적 개선이다. 현재 세포 배양육은 근육조직을 배양한 것이다. 하지만 재래식 축산업은 이 근육과 지방이 적절히 혼합된 것이다. 그리고 사실상 고기의 맛과 풍미는 지방이 좌우한다. 사실 지방이 없다면 소나, 돼지, 닭, 오리의 맛은 구분이 어려울 정도다. 때문에 고기로서의 경쟁력은 지방이 좌우한다고 볼 수 있는데 아직 배양육은 근육조직과는 다르게 지방세포부분에서는 연구가 미흡하다.

 다른 장벽은 사회적 편견과 재래식 축산업계의 반발이다. 재래식 축산업계는 세포 배양육이 가격경쟁력과 품질경쟁력을 갖출 경우 그 어떤 카드도 갖고 있지 못하게 된다. 윤리적 문제와 환경파괴라는 치명적 문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들은 각국의 정부에 강한 압박과 로비를 가하고 있으며 세포배양육을 고기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저자는 축산업이 발달한 미국에서 이런 강한 압박을 겪었는데 상대적로 환경파괴 문제에 민감한 유럽이나 식량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아시아에서는 큰 환대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사람들의 고기에 대한 전통적 생각도 넘어야할 문제다. 세포배양육이라는 명칭 자체는 그 고기가 갖는 친환경성과 안전성에도 불구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뭔가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고기처럼 여겨져 강한 거부감을 갖게 한다. 특히, 세포배양육을 장기섭취했을 경우 인체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지에 대한 연구도 전무한 것이 사실이다. 

 재밌는 가능성은 세포배양육이 특정 종교의 계율로 인한 음식문화를 바꿀 가능성도 있다는 점이다.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돼지 고기를 금기시하며 힌두교에서는 소를 금기시한다. 전통 유대 율법에 기반한 코셔시장 규모는 연간 240억달러수준이며, 무슬림 율법 식단인 할랄은 시장 규모가 무려 1조6천억 달러에 달한다. 이 종교들의 계율에선 돼지고기를 금기시한다. 하지만 세포배양육을 통해 만들어진 돼지 고기 역시 기존의 돼지로 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들의 종교지도자들이 이것을 허용한다면 그야말로 수천년만에 이들의 식생활에 지각변동이 생겨날 것이다. 살생을 금지하는 불교에서도 고기의 허용을 금지한다. 생명을 죽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명을 죽이지 않는 세포배양육을 불교의 승려가 거부할 이유는 마땅지 않다. 이 부분에서도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언젠가 가까운 미래에 인간은 세포 배양육으로 만든 다양한 고기를 즐기며 과거 동물을 잔인하게 도축하고 무리하게 개체수를 불려 지구 환경을 파괴했던 야만스러운 시절을 과거의 일로만 회상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축산업의 농장이 차지했던 자리는 숲으로 돌아가 자신의 에너지를 빼앗겼던 다른 생물들이 다시 차지하게 될 것이며 생겨난 숲은 탄소를 흡수해 지구온난화를 조금이나마 막아줄 것이다. 비건이라는 선의로 시작된 좋은 용어도 사라지게 될 것이고 오직 건강상의 이유로만 채식을 즐기는 소수의 사람만 남게 될 것이다. 그런날이 머지 않아 올것으로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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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버 2022-02-22 14: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포배양육에 대해서 어렴풋하게만 알고 있었는데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아 갑니다. 특히 지방세포부분에서 연구가 미흡해서 재래식 축산업의 고기와 맛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습니다. 어서 빨리 기술이 발달할 날이 오면 좋겠네요!

닷슈 2022-02-22 21:20   좋아요 1 | URL
저도 그날이 빨리 오길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