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는 오를 곳만 오른다 - 경제의 신과 함께 하는 앞으로 5년, 돈 버는 알짜 부동산 20
김학렬 지음 / 페이지2(page2)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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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동산 시장을 보면 화가난다. 실물경제와 국민소득과 상당한 괴리를 보일만큼 엄청나게 오른 서울 집값. (둘다 연봉 5천이상의 상위 5%이내의 맞벌이 부부가 10년을 한푼도 안써야 간신히 살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그걸 놓쳤다는 엄연한 사실(돈도 없고, 지방에 산다.) 게다가 MBC 스트레이트를 보며 지금의 집값상승의 시발점이 2014년 부동산 재개발재건축 완화 3법에 기인한다는 생각때문이다. 물론 그게 다는 아닐 것이다. 여기엔 사람들의 욕망과, 한방향으로의 쏠림, 무엇보다도 유동성의 대폭적 증가, 현 정권의 다소 안일한 태도도 복합적으로 자리했을 것이다. 

 현 정권은 정말 강력한 법안으로 그간의 상승을 막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은 관성적으로 집값이 더 오를 거라 말한다. 홍콩도 그렇고 런던이나 시드니, 미국의 샌프란시스코를 예로 든다. 하지만 거기엔 외국의 자본이 많이 들어왔고, 홍콩은 더 나아갈때 없는 섬이다. 그리고 소득이 많은 사람들이 갑작스레 몰린 지역이다. 대한민국의 서울이 이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지는 의문이다. 

 하여튼 이 책은 서울의 각 구와 경기도의 주요 지역, 그리고 비수도권에서는 세종시만을 다룬다. 물론 구는 강남, 서초, 송파의 강남삼구를 시작으로 마용성인 마포구, 용산구, 성동구, 광진구, 강동구, 중구, 강서구, 영등포구, 서대문구, 동작구, 양천구를 다룬다. 각 지역의 주요 시세와 앞으로의 교통이나 개발호재 같은 알짜 정보가 많다. 그 지역 거주하면서 청약을 노리는 사람이라면 주목할 만하다 하겠다. 서울은 이미 상당히 발전한 도시임에도 각 지역의 연결성을 높이기 위해 기존 지하철 이외에도 트램이나 지역 경전철이 많이 계획되고 있었다. 거기에 주요 지역의 역세권 개발과 대규모 첨단 대기업 위주의 단지 개발이 많다는걸 알 수있었다. 그리고 주거지역으로서의 쾌적함을 높이기 위해 준공업지역이나 혐오시설이 점차 사라지는게 경향성이었다. 

 경기도에서는 과천시, 성남시, 하남시, 광명시, 고양시를 다룬다. 과천은 오랜 주공아파트가 대규모로 재개발되고 과천지식정보센터 구축으로 적은 인구가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있는것이 호재다. 성남은 분당구 이외에도 다른 오랜 구가 개발되는 것. 그리고 주거, 인구, 일자리가 완비된 도시라고 본다. 하남은 서울과 가깝고 지하철교통망이 확충되고, 주거 , 일자리, 인구가 늘어나면 과거 분당이 개발되는 것처럼 될 것이고 강남의 확장지역이 될 것이라고 보낟. 광명은 모든 지역이 재개발되고 서울의 웬만한 지역과 견줄 만한 지역이고 탄탄한 수요지역이라고 본다. 고양은 인구가 많지만 수요가 몰릴만할때마다 주변 평야지역인 김포, 검단, 파주가 개발되며 수요가 분산되었다고 보다. 고양은 좋은 지역이지만 지금도 재개발이 많아 옥석을 고르기 쉽지 않다고 본다.

 부동산 투자에 대한 생각은 많은 기대와 욕심이 제각각일 것이다. 때문에 이 책도 지난 몇년간의 폭등기처럼 뭔가를 노리기 보다느 내가 살 지역 혹은 내가 살고 싶은 지역의 주요 변화와 특징을 알아가는 차원에서 본다면 좋을 것 같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이득을 본다면 그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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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차일드 (리커버 에디션) 옥타비아 버틀러 리커버 컬렉션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 비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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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타비아 버틀러의 킨을 보고 이번에 나온 이 강렬한 표지의 리커버 판에 낚였다. 제목도 블러드 차일드라는게 의미심장해보였다. 하지만 킨을 본 사람이라면 그와 비슷한 무언가를 이 책에서 기대하면 좀 곤란할 것이다. 이 책은 단편집이고 거기에 SF이기 때문이다. 하긴 킨도 어찌보면 SF 같은 느낌이 좀 들었다. 소재는 인종차별이지만 70년대의 사람이 갑작스레 수백년전으로 타임워프한다는거 자체가 SF이지 않은가.

 이 책엔 여러 단편집이 수록되어 있는데 번뜩이는 거도 그냥 그런것도 있었다. 우선 타이틀인 블러드차일드. 최근 본 단편집중 타이틀을 차지한 단편이 가장 맘에 드는 경우는 드물었는데 이번엔 괜찮았다. 이유는 모르지만 인간은 외계인과 공존하고 있다. 물론 가축돼지와 인간의 관계를 공존이라고 인정할수 있을 경우만 그럴 것이다. 이 외계인들은 긴 촉수를 가진 표면이 매끈한 큰 생물들이고 지성적 존재로 인간과 대화하고 교감한다. 이 녀석들은 자신들의 알을 인간에게 제공하고, 촉수의 침으로 마약같은 효과도 누리게 해주는데 다 목적이 있다. 인간은 이 외계인이 가장 적합하게 번식하는데 훌륭한 숙주기 때문이다. 녀석들의 알은 왜인지 인간을 반쯤 맛이 간 황홀경에 빠지게 하고 수명마저 놀랍게 늘려준다. 

 이렇게 다 좋은데 문제가 있다. 숙주가 되서 이 외계인의 새끼를 낳는 과정이 죽음에도 이를 수 있는 무척이나 위험한 과정이라는 것이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무려 이 짓을 세번이나 했다. 물론 그 덕에 평균수명의 세배를 살긴 했다. 사실 숙주로 더 적합한 것은 남성보단 여성이다. 하지만 인간이 가축에게도 그러하듯, 여성은 숙주인 인간의 새끼를 재생산해야하기에 소모되는 것은 수컷인 남성이다. 인간이 키운 가축수컷의 운명도 대개 거세후 고기가 되지 않던가. 하여튼 외계인의 촉수로 남성이 숙주가 되거 알이 깨어나 애벌레가 되어 적절한 시기가 디면 이 외계인은 남자의 배를 가른후, 피흘리는 인간의 살속에 파고든 애벌레를 하나하나 꺼낸다. 그 후 치료를 받아 인간 남자는연명하게 되는데 이 것이 제목이 블러드 차일드가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과거 인간은 항거한듯 하기도 한데. 어찌된 일이지 외계인에게 제압당해 공존의 길을 택하게 된듯 하다. 그래서 인간 가정에 라이플 같은 무기는 금지다. 

 다음 재미난 이야기는 신이 나타난 이야기다. 일상생활을 하던 작가인 나아게 어느날 신이 나타난다. 그리고 나에게 과거의 선지자들처럼 막강한 전권을 주겠단다. 내가 인간의 일정부분을 원하는데로 바꿀수 있는데 이를 통해서 공멸의 길로 나아가는 인간을 구원해보라는 것이다. 어찌해야 할까? 주인공은 일단 인구증가가 위험이라는 점에서 모든 사람이 둘만 아이를 낳으면 저절러 생식기능이 사라지는 생각을 한다. 신은 바로 반박한다. 강간 당하는 사람은? 장애를 가진 아이를 낳은 사람은? 두 아이를 사고로 모두 잃은 사람은? 그리고 상식적으로 출산률이 2를 다소 넘어야 인구가 유지되는데 딱 2라면 장기적으로 인간 종은 생존이 어려운데? 

 주인공은 말문이 막힌다. 그외 여러 대안을 생각하는데 하나같이 어렵다. 인간종은 그만큼 복잡하고 고려해야할점이 많았다. 다른 동물이라면 이리도 어려울까나. 결국 생각해낸게 꿈이다. 꿈에서라도 행복하고 원하는 걸 하게 해준다면 실상에서의 많은 갈등과 폭력이 줄지 않을까? 하지만 그러다 꿈에서 깨어나길 원하지 않고 일상을 포기하는 사람이 속출한다면? 신은 바로 반박한다. 어렵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 방법을 택한다. 물론 결과는 나오지 않는다. 독자에게 맡긴걸까? 

 위 두 글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고민을 하게 한다. 나라면 자유인으로 외계인을 거부하고 죽음을 각오하고 싸울까? 아니면 노예같지만 수십년에 한 번 오는 큰 고통을 참아내고 긴 수명과 가족의 안락함을 보장 받을까? 내게 인류를 변화시킬 전권이 주어진다면 무얼바꿀까? 일본을. 트럼프를. 일본을 바꿀까? 아니면 집안일부터 해서 문제 교회들을 바꿀까?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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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만든 공간 - 새로운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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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현준의 책은 알뜰신잡에 나온 이후 것들만 봤다. '도시는 무엇으로 살 것인가'는 꽤 괜찮은 책이었고 후작인 '어디서 살 것인가'는 잡탕 느낌이 많은, 기존의 그의 책들을 큰 차이가 없어 굳이 나올 필요가 없는 책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이번 책이 좀 불안했는데 다행이 '공간이 만든 공간'은 제법 괜찮은 책이었다. 건축에 대한 유현준의 인류사적 생각이 드러난 책이었고, 그래서인지 역설적으로 정작 건축자체에 관한 내용은 의외로 별로 없는 느낌이었다. 동양과 서양의 차이를 잘 드러낸 십여년 전에 나왔던 책 '동과 서', '생각의 지도'같은 책을 보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인류사적 느낌이 나듯 저자는 인류의 초기부터 짚어나가며 책을 연다. 지구는 어느정도 질량을 가진 행성이 그렇듯 구의 형태다. 그리고 다들 그런것처럼 항성을 중심으로 공전하고 스스로 자전도 한다. 그런데 자전축이 기울어져 계절 변화가 일어나고, 과거 얼음 소행성과 많이 충돌해 물도 많다. 이게 극적 변화를 일으킨다. 태양의 에너지를 받는 부분간의 차이를 이 물이 구름이 형태로 변해 바람따라 운반해주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지형이란게 생기고 기후도 생긴다. 그리고 자신이 갇힌 좁은 기후대에서 생존해야 하는 인간은 자신의 적합도를 높이기 위해 건축이란걸 한다. 

 그러니 건축은 기후은 어찌보면 기후에 적응한 인간의 산물인 셈이다. 그리고 기후에서 중요한 건 기온과 강수량이다. 특히 강수량이 중요한데 현대에 이르러서도 방수와 누수, 그리고 침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한다면 매우 당연한일이겠다. 단순하게 나누어 인간이 재배하는 곡물은 밀과 벼인데 비가 연간 1000mm이상 강수량이 있다면 벼를 키우고, 그 이하이면 밀을 경작한다. 양 곡물은 큰 차이를 보이는데 벼는 키우기가 무척 어렵고, 파종시기나 수확시기, 그리고 물을 준비하는 시기와 키우는 과정에서 물의 확보및 차단이 무척 중요해 집단적이며 노동집약적인 농사형태를 갖게 된다. 반면 밀은 키우기가 쉬우며 대충 밭에 씨를 뿌리면 된다. 그렇다보니 벼농사지역엔 집촌이 형성되어 사람들이 모여사는 반면 밀농사지역에 넓은 밭에 농가가 띄엄띄엄하다. 서양영화보면 실제 그렇다. 

 그리고 이는 생각의 차이를 불러왔다. 집단적 협력이 중요한 벼농사 지역은 농사와 치수에 협력이 중요해 집단적이고 관계를 중시하는 사고가 형성되었고, 밀농사 지역은 개인주의적 사고가 형성되었다. 때문에 동양에서는 관계를 중시하기에 절대적인 법칙 보다는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는 중용같은 가치를 중시되었고, 서양에서는 개인에 방점을 두어 모든 것을 개별화하고 원자화했으며 절대적 법칙이나 선을 강조한다. 때문에 이 코로나 형국에서도 한국에선 자신을 희생해 남을 위해 마스크를 쓰고, 서양지역엔 남들의 안위보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자유롭게 다닐 자신의 권리를 더 부르짖는 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기후는 건축양식에도 차이를 가져왔다. 동양은 비가 많이 내리니 땅이 자주 무르고 땅과 닿는 부분이 손상될 우려가 컸다. 때문에 기초가 되는 돌을 땅에 깊숙히 박고 그 위에 기둥을 세워 건축하는 양식이 발달했다. 그리고 비를 막기 위해 경사진 지붕을 크게 지었다. 거의 건축의 입면 절반가까이가 지붕이 된다. 그리고 집단적 사고는 집에도 영향을 미친다. 관계를 중시하고 상대적 사고를 하기에 집안에서 자연을 보고 집과 자연의 경계가 벽이 없는 기둥건축이기에 모호하다. 한국의 단청은 얼핏보면 단조로운 집의 색과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튀는 강력한 보색이지만 집안에서 바깥은 바라보면 단청과 자연의 색이 하나과 되어 집의 안팎경계를 무너뜨리는 작용을 한다. 그리고 자연과 집이 어울리기에 집의 형태를 없는 편이었고 자연을 따라 건물이 뻗어나가는 형태가 없는 건축이었고 빈공간을 중시했다. 반면 서양의 건축은 비가 적게 내려 땅이 단단해 벽이 힘을 받는 내력벽 건축이다. 비가 적게오니 지붕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고 집안이 벽으로 막혀 실내장식에 치중을 많이 했다. 또한 건물도 자연과 어울리기봐는 건물 자체를 바깥에서 보는 것이기에 외관 장식도 신경썼다. 그리고 창은 당시 유리가 비싸고 벽이 무게를 받기에 수평으로 길게 내거나 크게 만드는게 어렵고 수직으로 창을 작게 내고 거의 항상 닫고 있었다. 절대법칙을 선호하기에 원이나, 사각형, 삼각형 등의 기하학적 형태로 황금비율을 고려하여 건축했다. 이렇듯 건축은 동양의 비가 많이 내리는 기후와 관계와 비움을 중시하는 사고, 그리고 서양의 비가 적게 내리는 환경과 개인주의적 사고, 절대법칙과 윤리를 반영했다.

 하지만 교통수단이 발달하며 변화가 일어난다. 과거 동서양의 교역은 육상 실크로드를 통한 비단과 향신료였다. 둘은 귀하기도 했지만 장거리 교역에 적합하고 가볍고, 잘 썩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다 오스만에 의해 지중해 항로를 통한 교역이 막히자 네덜란드 지역에서 역풍에도 배를 전진시키는 삼각돛이 개발된다. 삼각돛은 베르누이의 원리에 의해 작동하는데 역풍이 불면 삼각형의 불룩한 부분과 오목하게 들어간 부분의 바람속도가 다르다. 튀어나온 부분은 빠르게 바람이 지나가고 오목한 부분은 그렇지 않다. 그러면 오목한 부분으로 공기가 몰려 양력이 생겨 밀어내는 힘이 생겨나는데 그렇게 역풍에도 전진하게 되는 것이다. 다만 구조상 비스듬히 가게 되니 일정 시간이 지나면 돛의 방향을 바꾸어서 오른쪽으로 갔다 왼쪽으로 갔다 이런식으로 지그재그 전진이 된다. 하여튼 그렇게 아메리카에 도착하고 동남아시아 및 동아시아에도 유럽인이 도착해 배를 통한 교역이 시작된다. 중국에서의 주요 수입품은 도자기였는데 도자기 자체도 유럽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지만 도자기에 그린 그림도 이에 못지 않았다. 그림에는 서양과는 전혀 다른 정원과 집들이 그려져있는데 텅빈 공간과 자유로운, 관계적 요소가 서양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다만 중국은 17세기 들어 도자기 산지에서의 반란과 만주족의 반란으로 도자기 생산지대가 초토화된다. 이 점을 파고든게 국제교역망의 끝부분에 자리 잡은 일본이다. 때문에 일본은 조선이 비해 떨어지는 도자기 생산기술을 갖고도 무역에 참여하였고, 부를 쌓게되며 이후 산업화의 길도 걸을수 있게 된다. 일본은 도자기를 포장할때 판화하고 남은 종이를 많이 사용하였는데 이 판화도 유럽으로 건너가 영향을 미친다.

 서양의 정원은 기존에 기하학적 형태를 갖고 전지적 시점에서 만든 정원이었다. 하지만 동양의 도자기의 영향으로 자연과 어울리고 1인칭 시점과 빈공간을 지닌 픽쳐레스크 형식의 정원이 생겨난다. 우리가 아는 센트럴 파크도 픽쳐레스트 형식이다. 동양과 서양건축의 융합은 초창기 유럽에서 생겨났다. 유럽이 먼저 동양으로 진출했고, 산업혁명과 기술발달로 역량을 쌓아올렸기 때문이다. 미스반데 로어는 초기 벽구조 기반의 서양건축에서 기둥 중심의 동양식 공간감을 쌓는 건축을 한다. 그의 허블하우스는 개인적 공간은 벽으로 막고, 부엌이나 거실 같은 공용공간은 기둥을 이용한 개방적 공간으로 설계되었다. 판스워스 하우스는 침수를 피하기 위해 기둥구조를 이용하여 집은 반쯤 올려놓았는데 그 설계 방식이 한옥과 매우 유사하다. 

 르코르뷔지에는 근대건축의 5대원리로 필로티, 옥상정원, 자유로운 평면과 입면, 리본 수평창을 내세웠는데 이는 산업혁명 이후 건축에 철근콘크리트 구조가 사용되었기에 가능했다. 옥상정원은 철근 콘크리트와 방수재료의 발달로 옥상에 지붕이 필요없어져 가능한 것이며 자유로운 입면과 평면도 철근 콘크리트 건축으로 벽이 힘을 받지 않게 되어 가능해졌으며 리본형의 긴 수평창도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이중 필로티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요소가 기존 동양건축 요소라는 점에서 산업화 초기 서양건축은 동양의 기둥건축의 영향과 그 구현을 물리적으로 가능하게 해준 산업혁명기술의 융합이라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20세기 후반에 들어 문화간 융합 건축은 그 수명을 다한다. 국제주의적 양식이 등장하는데 이는 철근콘크리트로 사각형 모양의 세계어디서나 똑같은 건물이 들어서는 형국을 말한다. 당연히 지역색이 없고, 실용성만이 강조되는데 이는 개성과 다양성의 말살이기도 하다. 그러나 기존 전통건축이 자연에 대응하는 것인데 반해 기술이 충분히 발달한 현대의 건축기술로는 굳이 자연에 대응하지 않고도 극복이 가능하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일수도 있어 양면성이 있다. 1970년대 건축은 철학에서도 길을 모색해 해체주의가 반영되었는데 지나치게 해체적이거나 기괴한 모양이 많아 오히려 사용자의 편의성이나 집의 기능 자체를 떨어뜨리는 모순이 있었다. 

 최근의 건축동향은 컴퓨터 기술과의 결합이다. 수치를 입력하여 프로그램으로 디자인을 하는 파라메트릭 디자인 기법이 있고, 다양한 캐드 프로그램으로 건축 디자인의 효율성과 독창성이 극대화 되었지만 반면 서로 비슷한 프로그램을 이용하다보니 비슷한 건축이 나오는 단점도 등장한다. 인상적인 부분은 쉐임 그래머란 방식인데 컴퓨터가 한 건축가의 양식이나 설계방식의 데이터를 학습하여 그가 설계하는 방식의 과정과 의도를 이해하고 재현하는 것이다. 이 방식으로 과거 건축가의 양식으로 컴퓨터가 건축디자인을 할 수 있으며, 현존하는 건축가가 건물을 짓다가 중대한 결함의 발견으로 문의 방향이나 위치를 수정할시 오랜 시간이 걸리는 반면 이 프로그램은 그 과정을 시뮬레이션 할 수 있었기에 마치 이 건축가가 원래 그렇게 설계했던 식의 도면을 쉽게 제공한다. 

 책의 말미엔 지금의 디지털 공간을 건축으로 보는 재밌는 관점도 등장한다. 인간은 항상 자신의 외부와 내부를 관찰하고 탐구했는데 최근의 급격한 디지털화로 인간은 외부 세계를 잃고 있다. 디지털화가 진행될 수록 자신마저 데이터화되는데 이런 반작용으로 최근 과거 복고문화나 아날로그가 역설적으로 강조되는 것이다. 때문에 디지털 세계에서의 건축이 아무리 강조되어도 결국 아날로그적 건축이 살아남고 강조되리란게 저자의 생각이다. 아무리 디지털 공간에서 친숙해지고 기회가 많아져도 그것이 물리적 공간만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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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0-09-01 21: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간과 건축은 문외한이라서 그런지 항상 흥미롭습니다.
좋은 글 잘 봤습니다. ^^

닷슈 2020-09-02 00:21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재밌습니다. 다이제스터님이 가볍고 흥미롭게 볼만한 책입니다.
 
인구 감소 사회는 위험하다는 착각 - 저출산, 저성장 시대를 맞이하는 미래 세대를 위한 처방전
우치다 타츠루 외 지음, 김영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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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주요 선진국중 앞으로 인구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나라는 미국이 유일하다. 앞으로 7천만이나 늘어날 예정인데 공교롭게 앞으로 사라질 일본과 한국의 인구수를 합친 것과 거의 엇비슷하다.감소 속도의 차이가 있을 뿐 주요 선진국들은 인구감소는 수치상 기정사실이다. 인구의 감소는 국민경제규모의 감소를 의미하고 시장의 축소와 생산력의 감소를 의미하기에 각국은 위기감을 갖는다. 하지만 그게 꼭 나쁜 것일까? 인구가 감소한다면 개인은 훨씬 비경쟁적 사회에 놓인다. 앞세대가 죽어서 버리고 간 자원과 통화가 그의 것이고, 취직도 쉬우며, 부동산 가격도 쌀 것이다. 사회적 대접도 지금 같지는 않을 것이며 환경오염도 덜 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선진국의 이야기일 뿐이다. 전세계적으로는 아직 선진사회에 도달하지 못한 지역의 인구가 계속 늘어날 것이기에 세계인구는 100억을 돌파할 것이다. 책은 무려 2100년에 이르러야 세계인구가 정점을 찍고 감소할 것이라고 보는데 선진국의 인구라도 줄어서 그정도 일것이다. 그 전에 지구가 인간을 견뎌낼지 모를일이다. 

 어쨌든 이 책은 인구감소를 옹호하는 책 같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인구감소를 막는 방법과 인구감소가 불러오는 사회변화에 주목한 책이다. 더구나 한명이 쓴 책이 아닌 여러분야의 사람이 인구감소를 주제로 자신의 전문분야와 관련에 썰을 풀어낸 책이라 일관성도 없다. 여러모로 기대와 다른 책인셈. 재밌는 저자의 글만 좀 뽑아봤다.

 공동 저자중 한명은(이름이 기억나질 않는다.)미래 자본주의 사회가 두뇌자본주의 사회로 변모할거라 한다. 지금까지는 노동자의 수가 아무래도 전체 생산규모를 크게 하고 시장도 크게하기에 중요했는데 이젠 머릿수가 아닌 질적인 두뇌수준이 그 나라의 경제규모를 결정할 것이란 이야기다. 특히, 앞으로 모든걸 다할 수 있는 범용인공지능이 개발될 경우 이 범용목적기술을 활용해 먼저 생산활동의 급격한 변혁에 성공한 국가가 패권국가가 될거라 보았는데 매우 그럴듯하다. 앞으론 인구규모보단 4차산업혁명 기술을 성공적으로 도입해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는 기술 혁신이나 생산력 증가를 불러오는 나라가 세계패권국가가 될 것이다. 아직은 그 과도기라 세계기술패권국가인 미국과 저렴한 노동력을 가진 개발도상국만 경제가 성장하는 듯하다. 

 여기엔 나름 논리가 있는데 농업혁명시기엔 토지와 노동이 투입되어 생산활동이 이루어지고 그 산물이 농작물이었다. 토지가 정해져 있고 노동을 아무리 늘려도 그 결과 먹을 입도 늘기에 경제성장이 좀처럼 이루어지지 못했다. 산업혁명 시기가 되자 생산요소로 토지에, 기계, 그리고 노동이 추가된다. 기계는 노동이 늘어도 소모되지 않고 기계가 기계자체를 생산하기에 자본이 무한 증식이 가능했다. 처음엔 고성장이 가능하고 경쟁이 심화되고 기술적으로 무르익으면 지금처럼 2%수준으로 경제성장이 수렴한다. 그리고 이 시기에 기술을 가진 나라와 아닌 나라간에 대분기가 일어났다. 그리고 앞으로 올 시기엔 생산요소로 노동이 빠지고 인공지능과 로봇기계가 들어선다. 이들은 만든 생산품 자체가 투자요소가 되므로 산업혁명초기처럼 무한 성장이 가능하다. 제2차대분기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고 사람은 제품개발이나 인공지능, 로봇관리, 경영관리의 역할만 하게 된다. 이렇기에 빨리 통일을 해야할 듯 하다. 북한과의 결합이 불러오는 주요 장점중 하나인 저렴한 노동력은 이런 사회가 올 경우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다음으로 인상 깊은 글은 저출산을 막기 위해서는 사회구조와 그에 걸맞는 윤리의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이 사람은 한국일본 같은 유교전통사회와 프랑스, 스웨덴 같은 유럽 사회를 비교하는데 한국, 일본은 저출산 문제가 심화된 반면 프랑스, 스웨덴 같은 유럽의 저출산 국가들은 1.5이상의 출산률로 나름 선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보기에 양자의 차이는 혼인 관계에 대한 집착의 유무다. 동아시아 국가는 결혼제도를 중시하고 저출산 대책도 혼인한 부부에게 초점을 둔다. 하지만 유럽 국가들의 경우 이미 혼외자녀가 50%이상에 가까울 정도로 높고 그만큼 혼인을 강요하거나 윤리적으로 여기지도 않으며 지원도 같은 수준으로 이루어진다. 즉, 한국과 일본 같은 나라가 출산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혼외자녀 같은 다양한 가족 구조를 인정하고 윤리적으로 옹호하며 지원도 같은 수준으로 이뤄져야한다는 것이다. 매우 그럴듯한 생각이다. 

 또 다른 인상 깊은 생각은 지방과 사람관계에 대한 생각이다. 자본주의는 무연고 사회로 돈만 있으면 사실 사회적 관계가 그렇게 필요치 않다. 이게 사람간의 단절을 불러왔는데 지방의 여러 1차산업종사자와 도시민들의 연결을 해보자는게 저자의 생각이다. 그들은 건강에 좋지만 당연히 시장성은 없을 제대론 된 가격의 1차상품을 만들고 도시민들은 직접 가서 일을 돕기도 하고, 그것을 사먹으며 네트워크를 형성해 지방을 살리자는 것이다. 이는 저출산 대책의 하나가 지방으로의 인구회귀라는 점에서 나온 생각이다. 지방엔 적절한 수준의 사회 인프라도 필요한데 주로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어머니의 관심은 결국 육아지원과 교육수준, 의료, 문화시설인데 이를 지방에 갖추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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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0-09-01 2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제목에 백퍼 동의합니다.
닷슈님의 낮은 평점에 약간 불안하지만 제목만큼은 엄청 끌리는 책 입니다. ^^

닷슈 2020-09-02 00:20   좋아요 0 | URL
저도 제목에 동의하는 편입니다. 제목은 좋지만 내용은 좀 부족합니다. 다이제스터님 성에 차지 않을 것입니다. 비추입니다. 일본 학자들 책은 일본식 한자때문인지 아니면 스타일에 안맞는 건지 맘에 드는 경우가 이상하게 적네요.
 
떠오른 국가와 버려진 국민 - 메이지 이후의 일본
강상중 지음, 노수경 옮김 / 사계절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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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작가는 47년 생으로 재일 교포다. 일본에서 나고 자랐지만 부모가 한국인이다. 대학의 교수로서 일본사회의 주류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출신이 철저히 변경인 재일 교포인 것이다. 재일한국인이나 조선인은 아직도 일본에서 외국인 등록증명서를 받는다. 거기엔 다양한 정보와 동시에 상륙허가와 재류기간이 써있는데 당연히 자이니치들은 국적만 한국이나 북한일뿐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라 앞으로도 살아갈 사람들이니 굳이 필요가 없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마치 일본에 잠시 들르는 외국인처럼 상륙기간과 재류기간을 표기한 외국인 등록증명서를 준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인 셈이다. 본인들도 억지인걸 아는지 물론 재류기간과 상륙기간에 별표시가 되어있기는 하다.

 자신들의 식민지 만행으로 생겨난 자이니치에게도 이런 대접을 하는 일본에 저자는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이 과연 약자인 국민과 변경인들에게 어떤 대우를 했을지 살펴볼 필요가 들었던 것 같다. 2차대전의 패전, 미나마타병, 미카와탄광폭발사건, 후쿠시마원자력발전소 폭발등 이런 끔찍한 사건은 대체 왜 일본에서만 반복되는지도 저자의 주요의문이었다.

  역사가 보여주듯 메이지이후 150년간 일본의 역사는 떠오르는 역사였다. 아시아 최초로 산업화에 들어섰고, 그 힘으로 아시아의 많은 지역을 지배했다. 패전 후 몰락할 것만 같았지만 한국 특수로 다시 기사회생하여 60년대에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서서 거의 50년간 그 자리를 유지했다. 그리고 쇠퇴의 기미가 역력하지만 여전히 3위의 경제대국이다. 그렇게 국운이 욱일승천하는 동안 그 나라를 위해 일하고 전쟁에 참여한 국민들, 그리고 특히 약자들은 어떠했을까? 그리고 국운을 올리는 것만이 제일 목적인 나라에서 뒤틀린 부분은 어떤 것이었을까?

 우선 일본은 교육부터 뒤틀려 있다. 패전 이후 68혁명을 통해 자신들의 과오를 반성하고자 현대사의 아픈 부분을 집중 교육하는 독일에 비해 일본은 전쟁이전의 메이지유신까지의 역사만 집중적으로 다룬다. 일본의 교육은 상당히 국가주의적이고 다양성을 거의 허용하지 않는데 외세의 강한 힘과 영향으로 인해 교육의 주체성이 가장 담보되지 못했던 메이지 유신 초기와 패전 직후의 시대가 일본 교육이 가장 다양하고 교육적 자유가 보장되던 시기였다는게 아이러니다. 하지만 미국으로부터 나라의 운영권을 되찾은 52년부터 일본의 권력층은 바로 교육 검토에 들어갔고, 1970년대부터는 일본의 교육이 권리만 강조하고 의무는 방기한다. 애국심이 부족하다는 등 과거로 급격히 회귀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후 점차 검정교과서의 기준과 절차가 엄격해지고 교사의 지도방침에 대한 점검도 강화되어등 일본의 교육은 우경화와 더불어 급속히 뒤틀린다.

 일본은 지진이나 해일, 화산등 자연재해가 그 어느나라보다도 많으면서도 이를 무시한 개발을 진행해왔다. 저자는 자연에 반한 이런 인간의 세공, 잔꾀 등이 지진의 운동에너지가 될 위치에너지를 키워다고 말한다. 즉, 지진으로 더 큰 피해가 될만한 인재로서의 잠재적 에너지를 더 키워단 셈이다. 지진해일이 많은 나라가 원전을 하는게 그런게 아니겠는가. 하여튼 저자는 재난이 날때 그 지역, 사회, 국가의 본성이 드러난다고 본다. 25년전 고베에 대지진이 일어났다. 지진이 일어나는 순간은 무척 짧지만 그 여파는 수십년을 간다. 일본정부는 붕괴한 해당지역에 집단 이전이나 토지정리, 부흥재개발 등으로 복구를 추진했는데 문제는 그 과정에서 지역민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는 점이다. 때문에 이런 복구방식에서 지역 커뮤니티의 재생이 방해되었고, 서로 연결되어 버티며 재기해야할 사람들이 유리화되었다. 때문에 해당지역의 가설주택과 공영주택에서는 한해 이재민 고독사가 천명 넘게 발생한다고 한다. 이런걸 복구라 말할 수 있을까.

 문제가 하도 많은 아베총리의 외할아버지도 기시 노부스케도 총리였고, 한국을 무시하는 일본 외무상 고노의 아버지는 아들과 다르게 일본의 가해행위를 인정한 고노담화를 한 그 고노였다. 이처럼 일본은 한국과 다르게 정치가 세습된다. 일본은 정치를 개혁한다는 명분으로 94년 정치개혁 4법을 통과시켰는데 명분과는 다르게 그 법은 자금의 운용과 인사발탁의 기능이 정당 지도부로 집중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때문에 각 지역 의원은 일본 국민이 아닌 정당의 지도자에 충성하게 되는 구조가 만들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 법의 통과후 정치세습현상이 더욱 심화되었는데 96년 이후 일본 총리10명중 8인이 무려 정치가 집안 출신이다. 중의원의 세습률은 25%를 넘어서가 집권당인 자민당은 경우가 더 심해 30%를 넘어선다. 2017년 11월엔 총리를 포함해 내각의원의 절반 이상이 세습의원으로 구성되었다고 하니 정도가 점점 심해진다 할수 있겠다. 정당지도부의 권한을 강화하는 법의 통과후 세습의원이 많아 진것은 정당이 가족 정치인들에게 선거에 유리한 지명도와 자금, 지원조직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일본 정당은 정권을 얻어 국민의 민의를 반영하기 보단 관직임명권을 얻고 권력이 당 지도부에 집중되고, 각 의원들이 지역이나 국민의 생각보다는 정당지도부의 명령에 복종하는 형태가 된다. 제대로 튀틀린 셈이다. 

 변경민과 약자에게도 국가주의앞에 그저 도구일 뿐이다. 일본은 52년에 본토를 미국으로부터 찾았지만 오키나와를 찾는데는 그로부터 20년이 더걸렸다. 2차대전때 본토보다 먼저 공격당해 점령당한 오키나와는 당시 전인구의 1/4정도가 죽었다. 미군이 죽인 것보다 옥쇄당한 이들이 훨씬 많았을 것이다. 전후 주일미군의 대부분이 오키나와에 주둔한 것도 오키나와가 일본이면서도 일본이 아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이니도 그렇다. 그들은 비록 이등국민이긴 했지만 일본제국의 신민이었다. 그러다 패전하니 자동으로 외국인이 되어버렸다. 어째서 일본은 동화의사가 없으면서도 한국이나 북한으로의 귀순을 희망하지 못하거나 안한 이들에게 이중국적을 부여하지 않았을까? 농민도 약자이다. 일본은 식량자급률을 높이고 쌀값안정은 도모하면서도 수입품과의 경쟁에서 이겨내기 위해 농민들에게 쌀생산 제한을 강요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농민간의 이합집산이 일어났고 자기들끼리 싸우게 만들었다. 후쿠시마에서 원전으로 재산과 터전을 잃은 사람들은 어째서 도쿄의 불을 밝히기 위해 자신들이 그런 꼴을 당해야 했는지를 묻는다. 이는 하시마탄광의 일본, 조선, 중국인 노동자들 그리고 사양화되던 탄광산업으로 인해 예산이 줄어 위험속에서 작업하다 희생된 미카와 탄광의 노동자들, 그리고 미나마타만의 어부들도 했던 말일 것이다. 

 이 책을 메이지 유신이후 상당히 많은 일본의 뒤틀린 역사와 현재, 희생된 사람들을 현장을 찾으며 기리고 성찰한다. 저자가 보기에 일본은 메이지 유신당시 화혼양재를 택했다. 과거 중국을 배우자는 화혼한재에서 한을 양으로 바꾼 것이다. 한국의 동도서기나 중국읜 양무운동과 괘가 같다. 이는 기존의 정신문명을 보존하면서 서구의 과학기술만을 따르자는 것인데 일본의 경우 두 나라와는 달리 성공하면서 오히려 동아시아의 전체주의적 사고에 서구문명기술만 발달한 기형아를 낳은 셈이 되고 말았다. 때문에 메이지유신의 성공부터 일본의 뒤틀림은 배태되었다는게 저자의 생각이다. 정신문명의 변화까지 이어지지 않았기에 민주주의도, 문화주의도, 성찰과 반성도 없다. 더구나 최근 버블경제의 붕괴와 저출산 고령화, 지방의 쇠퇴, 감각적 충동의 해방, 국권과 민권의 분열, 국가와 자본의 유착, 도쿄로의 부와 인구의 쏠림, 미국만의 추동과 다른 나라의 무시, 계급 격차의 확대라는 문제가 전방위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 같은 문제는 오히려 과거로 회귀에 더욱 국가주의로 경도되고 그 수단인 국민의 순수성을 더욱 강조하는 방향으로 치닫는다는게 저자의 해석이다. 

 재밌고, 한국에게도 공통되는 부분이 있어 상당히 반면교사가 되는 책이지만 많은 주제를 다루면서 상세하고 깊이 있는 서술이 좀 부족해 이해가 어려운 면이 있었다. 지금 책의 두배 볼륨으로 두껍게 서술했다면 더욱 나은 책이 되지 않았을까 한다. 거기에 일본학자이니 당연히 일본식 한자를 많이 썼는데 이 부분이 이해하기 어렵기도 했다. 여러모로 아쉬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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