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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민 - 어리다고 견뎌야 할 말은 없습니다
아거 지음, 최진영 그림 / 창비교육 / 2018년 10월
평점 :
적어도 2010년대 이전까지 한국의 학생들은 고교를 졸업하기전까지 일종의 유예와 예속에 가까운 상태로 살아왔다. 스포츠머리와 단발머리외엔 허용이 되지 않았고, 옷도 교복만 가능하며, 학교와 학원, 공부외에 다른 생각과 행동에 대한 자유는 사실상 없었다. 모든 것이 공부와 너의 미래를 위하여란 이름하에 희생되어 왔던 것인데 학생들도 이를 내면화하며 살아왔고 어른이 되어서도 학교와 비슷한 억압적 사회에서 이를 재현해왔다.
이런 억압과 예속을 위한 폭력은 학교에 만연했다. 학생을 인격적 존재로 대우하는 존중어는 언감생심이었고 폭력이 당연시 되었으며 학교에 학생을 위한 민주적 공간은 없었다. 자신들의 대표도 회장이란 대표성보단 학급담임의 대리 성격을 띠는 반장이란 이름으로 선출되었고 후보도 학업과 성적이 우수한 아이들만 입후보가 가능했다. 90년대 중반부터 학생에게 존중어를 사용하란 명령이 적어도 서울에서는 교육청에서 내려온듯 한데, 그 때 이를 두고 많은 문제점을 열거하던 고교 윤리 선생님이 생각난다. 폭력은 정말 많았다. 너무 일상적으로 맞아와 많은 것들이 생각나지 않지만 충격적이던 폭력 두 가지가 아직도 생각난다. 하나는 초등 1학년때 무려 15개나 되는 반중에 하나에 들어가 모르는 아이들 사이에 낯설어하다 쉬는 시간에 만난 유치원 친구를 보고 반가와 따라 들어갔다 그반 담임에게 따귀를 맞은 일이다. 이유는 뭐, 남의 반에 함부러 들어가서다. 다른 하나는 중학교 2학년 때 개교기념일에 동네를 거닐며 집 근처 중학교를 지나가는 중이었는데 마침 체육수업을 하던 그 학교 중학교 선생이 나를 불러세운 일이었다. 평일 오전에 학생으로 보이는 녀석이 학교에 없으니 뭔가 문제가 있는 아이로 나를 보았던 듯하다. 개교기념일이고 학교까지 말하여 이렇다할 트집이 없자 그는 왜 수업중에 학교를 지나가냐며 다른 중학생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내 옆머리를 잡아당겼다. 물론 매우 수치스러웠다. 지금같으면 고발 감이다.
하여튼 책 '어린 시민'의 저자는 우리가 민주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진정한 시민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아이들을 어릴적 부터 마땅히 생각과 언행에 자유를 갖고 인권을 존중받으며 이를 펼칠수 있는 민주적 장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생각한 듯 하다. 무척 당연한데 가정과 학교 및 사회는 사실 전혀 그렇지 않다.
학교나 가정에서 아이는 흔히 말을 잘 들어야하는 존재로 취급받는다. 우리나라의 아이들은 졸업식이나 입학식에서 소감을 말 할때 공부를 잘 하거나 어른이나 선생님 말씀을 잘 듣겠다고 말하는데 이렇게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나라가 세계적으로 드물지 않을까 싶다. 유럽이나 미국의 아이라면 내가 좋아하는걸 하고 싶다거나 재밌게 지내거나 친구들을 많이 만나고 싶다고 하지 않을까. 하여튼 아이의 의견을 묵살하여 이렇게 존엄성을 무시하는 이유는 아이들의 순종과 복종을 원하고 아이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며, 아이를 생각과 인격이 없는 소유물로 보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이런 모든 행위를 아이를 위하여란 말로 포장하고는 하는데 이 위하여에 정작 아이 본인의 의사가 빠져 있다는게 문제다. 즉, 언제든지 어른들의 입맛과 생각을 위해 아이들을 다루게 되기 쉽다.
저자는 책에서 체벌에 대해서도 당연히 반대한다. 저자는 악몽같은 체벌을 겪었는데 저자는 원래 남앞에 나서서 뭔가를 하고 조직하여 행동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고교시절 저자는 부학생회장이었는데 회장과 더불어 학생들의 서명을 받아 일요일 자율학생 폐지를 학교장에 건의했다. 학교장은 젠틀하게 회장과 부회장을 맞이했고, 분위기도 훈훈하여 저자는 기대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월요일이 되자 방송으로 회장과 더불어 호명이 되었고, 교무실에 도착하자 네 까짓게 뭐냐라는 교사의 말과 함께 폭행이 이뤄졌다고 한다. 아마 회장은 공부를 잘하거나 집이 잘 살았는지 폭행은 저자의 몫이었다고 한다.
체벌은 즉각적이고 문제를 바로 해결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부작용이 훨씬 더 많다. 학생이든 가정의 부모든, 교사든 체벌은 갈등상황을 힘으로 해결하여 민주주의의 문제해결 방식인 대화를 통한 갈등조절의 기회를 상실하게 한다. 오히려 성인이 되어 힘에 의한 해결을 선호하는 계기를 주게 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체벌은 맞을 짓이 있다는 생각을 때리는 사람이나 맞는 사람, 보는 사람에게 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체벌은 맞은 사람에게 폭력의 상흔을 정신에 영구히 남기며 그로 인해 폭력이 향후 재생산하는 악순환을 불러온다. 맞아본 사람이 더 잘 때리게 되는 법이다.
저자는 아이들의 노동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한국의 사용자들은 최저임금을 잘 안지키고 편법을 쓰는 걸로 유명하지만 그 대상이 성인이 아니고 학생이면 더 심하다. 그냥 노동한 것에 대해서 계약한대로 법적으로 규정된대로 급여를 주면 되는데 꼭 돈을 왜 버냐고 물어보며, 그리고 공부하지 않고 저녁에 돈을 버는 학생을 문제아 취급한다. 한국의 근로기준법은 15세 이상에게 노동을 허락하면서도 18세 이하에겐 누구나 노동을 하는 경우 부모나 후견인의 동의를 받게 한다. 저자는 이를 학생을 보호하기 보다는 청소년을 예속의 존재로 보는 또 하나의 시선으로 파악한다.
책은 작년에 읽은 '어린이라는 세계'와 더불어 학생을 보는 시각을 잡아주는 좋은 책이다. 어린이라는 세계가 좀 더 어린 아이들의 눈과, 그것에 대한 존중과 이해, 동심을 불러일으켜준다면 이번 책은 어린이를 하나의 시민이자 시민으로 완성되어가는 과정으로 보고 이에 대한 생각을 고취시켜주는 책이다. 좋은 책으로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