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도 페이퍼로 작성한 적이 있는 아래의 연주를 오늘도 이렇게 페이퍼로 쓰는 것은 그리모와 예르비에게서 느끼는 '경지에 다다름' 때문이다. 지금 이시간에도 지구의 그 어디에선가는 연주가 행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DVD 혹은 Blu-Ray등의 포맷으로 출시되고 있는 연주들을 헤아일  수도 없을 것이다. 그 중에서 내게 수도(修道)의 경지를 느끼게 하는 연주는 흔하지 않다. 때로 몰아의 경지를 느끼게 하는 연주들은 흔히 찾아 볼 수 있지만 이는 수도의 경지와는 또 다른 측면의 것이다.

 

동양에는 수도(修道)라는 말과 구도(求道)라는 말이 있다. 구도란 佛法의 용어로 道를 '탐구한다'거나 '구한다'는 말이므로 수도와는 구별되는 용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수도라는 말을 사용할까 한다.

 

동양의 수도(修道)라는 용어와 상응하는 서양의 용어를 찾기란 용이한 것이 아닌 듯 하다. 물론 문장으로 풀어서 설명하는 방법이 있기는 하겠지만 마땅한 하나의 용어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수도'라는 말은 명사로 인식될 수 있는 용어이지만 '도를 닦는다'는 의미로 보아 결코 명사라고만 주장 할 수도 없는 말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 중에는 명사이면서도 명사가 아닌 것들이 흔하다. '자연'이라는 말도 명사이지만 명사가 아니기도 하다. 그 뜻을 풀어보면 '스스로 그러하다'이기 때문이다. 

 

서양에는 수련(training)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즉, '그 능력을 고양시켜 끌어 올린다'는 말 쯤으로 이해하면 될 듯싶다. Training을 다른 표현으로는 풀어본다면 '단련, 훈련' 정도가 될 것이다. 피아노를 잘 치기위해서는 그러한 수련, 단련, 훈련 또는 연습(exercise)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반복적인 연습은 어느 한 분야의 경지로 끌어 올리는데 필수적인 과정일 수 밖에 없다. 수많은 형태의 운동은 물론 학교 공부도 일종의 연습이 아닌 것이 없다.

 

그런데 수도(修道)라는 의미가 함의하고자 하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수련, 단련의 의미와는 확연히 다른 용어이다. 물론 우리들에게 수신(修身)이라는 용어는 매우 익숙하다. 이 수신이라는 말도 수도라는 말에서 사용하는 수(修)를 쓴다는 점이 특이하다. 그렇다면 수(修)라는 말은 어떤 뜻일까...아마도 이 修라는 말이 '닦는다'는 말이라는 것을 모르는 분들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사용하는 修는 '닦는다, 잘 가다듬어 고친다'는 뜻이다.

 

여기서 더불어 한가지 기어해두어야 할 것은 '닦는다'는 말의 의미이다. 즉, 修는 운동의 능력이나 피아노를 치는 등과 같이 후천적인 능력을 강화시킨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점이다. 동양에서는 자연의 상태를 완벽한 상태로 보았다. 자연의 섭리라는 그 이치를 완벽한 것으로 인식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 완벽함을 회복하기 위해서 '더러워지고 어긋나고 치우친 것들 닦아내고 바로하는 것'이라는 의미가 바로 수(修)이다. 그러므로 修를 행하는 길이 곧 修道인 것이다.

 

하여 동양에서는 '수련'이란 '원래대로 되돌아감을 목적으로 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수련 혹은 수도의 과정이란 '자기 정화'의 작업이므로 그 무엇인가를 스스로에게 보태어 크게 확장시키는 과정이 아니라 '인생을 살아오면서 잘못된 것들을 닦아내는 과정'인 것이다. 그 무엇인가를 얻는 과정이 아니라 그 무엇인가를 버리는 과정이 수도인 것이다. 그렇다면 수도의 과정을 바르게 거치면 어떻게 될까...물론 나는 수도를 한 사람이 아니라 알 수는 없지만 들리는 바에 의하면 아집, 자신의 가치관이 무너지는 경지라 한다. 한마디로 수련이란 무너지는 과정이라고 한다.

  

이는 곧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의 경지가 아닐까..생각한다.  내게 그런 깨달음의 경지를 느끼게하는 연주가 바로 그리모와 예르비의 이 연주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니 보고 또 볼수밖에는...

 

 

 

 

 

 

 

그리모의 특별수업은 자서전적 출간물이지만 일대기를 다룬 책이 아니다. 예술인으로서 느끼는 그 어떤 '벽',  혹은 '한계'에 다다르면서 스스로 마주하는 딜레마를 극복하는 과정이 담긴 책이다. 그리모 역시 피아노를 치는 예술가로서 그들이 느끼는 딜레마와 싸우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이들의 삶이 그러하듯이 그리모 역시 특별할 것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 수업이라 한 것은 자신에게 있어서 특별한 것이며 타자 개개인들에게 그 스스로의 것들은 모두 특별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것이어서 특별한 것이라기보다는 타자의 것이므로 특별하다고 전하는 그리모는 참으로 멋진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저마다 특별한 일상이 있고 고뇌가 있고, 즉 삶이 있다. 그 삶에서 그리모는 어떤 것을 깨닫는지 잘 보여준다. 그리고 그리모의 깨달음은 우리 모두에게도 아주 필요한 깨달음이라는 공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더불어 과연 그리모가 저렇게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이제는 알 것도 같다...그리모의 연주는 修를 보여주는 연주라고 느끼는 이유이다...그 얼마나 정갈하고도 그야말로 성스러운 연주인가... 나는 그리모와 예르비의 연주에서 늘 성스러움을 느낀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음을데려가는人 2012-05-11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련이란 본래 자기 안의 놀라운 능력을 발견해나가는 것이군요.
보태고 더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겐 도대체 얼마나 많은 능력이 내재돼 있는 걸까요?
우리를 둘러싼 편견 사회적 요구 상처 등등을 걷어내면
정말 예상치도 못했던 자유로운 재능이 펼쳐지겠지요?

차트랑 2012-05-12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은 저도 잘 모른답니다 ㅠ.ㅠ
인간이 분명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요^^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세상이 평화로워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기도 한답니다^^
이것이말로 말씀해주신 재능이 아닐까...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보고요.
저의 서재를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마음을 데려가는 人 님~
 

'다산의 마음'이라는 제목의 책을 읽었다.. 책을 읽었으니 리뷰를 써도 되겠다 싶어서 쓰려고 하니 워낙 널리 알려진 분이라 고민고민하다가....차라리 페이퍼로 작성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그렇다면 제목은 또 뭘로하나...갈수록 태산이다... 막상 페이퍼를 써놓고 보니 더 고민스럽다...그러다가 결국은 '호와 당호'라는 제목을 붙이기로 했다..그러다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는 그런 페이퍼가 되고 말았다. ㅠ.ㅠ

 

 

 

'다산'이라는 호로 널리 알려진 정약용선생님은 국민의 선생님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냥 '다산'이라고 부르기 보다는 '다산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더 붙이는 것을 보면... 더불어 독자로서 '다산선생님'을 존경하는 마음은 우리나라의 대다수 국민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기도 하다. 그만큼 '다산선생님'의 일생은 국민과 떨어질 수 없는 생애를 사셨기 때문이다. 

 

 

독자로서 나는, 선생님을 존경하는 한 사람으로 '다산'이라는 호칭 보다는 '여유당'이라는 호칭을 더 좋아한다. 조선의 선비들은 부르는 이름이 여러 개인 경우가 많았다. 아호가 있고, 자가 있고, 호가 있고, 당호가 있는 경우도 많았다. 예로 '추사'선생님의 당호는 '완당'이다. 그래서 추사 혹은 완당이라는 호칭으로 부르곤 한다. 그런데 호가 여러개인 분들도 있었다. 완당선생님의 경우는 예당(禮堂)·시암(詩庵)·노과(老果)·농장인(農丈人)·천축고선생(天竺古先生) 등 호가 100여개에 달했다고 한다. 호가 워낙 많은 분이다보니 백호당 (百號堂) 이라고 불리기가지 했다고 한다. 그러면 완당 선생님의 호는 더합 101개인가?? 어떤 이는 완당의 호가 500개도 더 넘었다고 하니, 정말 호가 많았던 분임에는 틀림이 없다.

 

 다음은 세한도를 읽으면서 나의 독서 노트에 기록해둔 추사선생님의 호칭에 대한 설명이다..


 

자와 호

사람이 태어나면서 부모가 어른들이 지어주는 이름을 아명이라 한다. 성인이 되면 관례를 올릴 때 지어준다는 의미로 관명(冠名)이라고 하는데 보통 그사람의 이름이 된다. 김정희의 정희가 관명인지는 확인 할 길이 없다.

 또한 자字라는 것이 있다. 이 또한 이름과 유사한 형태인데, 친구들은 보통 이 字로 서로를 부른다. 字나 號는 보통 스승님이나 덕망있는 어른들이 지어준다. 그 사람이 성인이 되어 지침이 될 수 있는 의미를 이름에 담는 것이다. 추사의 경우 자가 원춘(元春)인데, 元 도 봄을 상징하고 있으므로 결국 원춘은 봄의 의미가 담겨있다.

 號는 또다른 의미를 담고있는 별명과 비슷한 것이지만 별명보다는 고급스러운 의미이다. 김정희의 號는 秋史인데 秋자는 字가되는 春자와 짝을 이룬다. 그의 자호에는 春秋 가 들어가 있는 것이다. 春秋는 歷史를 의미한다. 추사의 자호로 이런 해석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秋史와

추사는 별호이고 완당은 당호이기 때문에 약간 사용이 다를 수 있다. 阮堂書 라고 하면 완당이 썼다는 의미도 되고, 완당에서 썼다는 의미도 된다. 완당은 당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秋史書라는 말은 추사가 썼다는 의미만 담고 있다.

 또 완당의 경우 阮堂老人처럼 다른 글자를 붙여 쓰기도 하고 阮老라고 줄여 사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추사는 다른 늘 단독으로 사용된다. 추사의 동료들이나 친구들은 주로 추사라 했고, 추사의 제자들이나 후학들은 완당이라는 당호를 사용했다. 직접 부르기 보다는 ‘완당에 거처하는 분’ 이란 의미와 함께 존경의 의미가 담겨있다. 추사는 제자들이나 후학들에게는 불경스러운 일로 여길 수가 있어 ‘완당에 거처 하는 분’이라는 완곡한 표현을 사용했다.

 

 

 이렇게 하여 개인적으로는 호를 부르기보다는 당호인 '여유당'이라고 부르는 것이 정약용선생님에 대한 존경의 의미를 담고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여유당은 애써 설명할 필요가 없는 우리 역사의 인물이 아닌가 생각한다. 여유당께서 워낙 국민들에게 유익한 책들을 저술한 것도 그렇지만 현대에 와서 여유당에 대한 저술들도 상대적으로 적인 편은 아니며 많은 독자들에게 널리 읽혀온 인물이기때문이다.

 

'다산의 마음'은 여유당의 마음을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가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준다. 여유당 자신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낸 산문집이기 때문이다. 마치 알라디너들이 자신의 생각을 페이퍼 작성하여 업로드하듯이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떠오르는 생각 혹은 주변의 사건들을 매개로 쓴 글인 것이다.

 

그리고 세한도와 완당평전, 이 두 권의 책은 우리가 완당을 우리의 선조라고 말할 수 있는 지긍심을 심어줄 수있는 세계적인 업적을 남겼지만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을 뿐더러 사실은 우리들도 잘 알고있지 못하다는 커다란 아쉬움을 주는 책이다. 우리의 초중고에서 가르치는 교과서를 강력하게 지적하고 싶은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들의 훌륭한 선조들이 수없이 많건만 제대로 알고 졸업시키는 교과내용과는 거리가 너무 멀기만하다.

 

 물론 외국의 학문과 정신을 배울 필요가 있다는 점은 공감하고도 남음이 있다. 우리의 것 뿐 아니라 타자의 것들도 배워 알고있어야한다. 그러나 우리의 것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남의 것을 배운들, 제대로 소화가 될까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결코 몰라서는 안될 우리 선조들, 그들의 훌륭한 정신과 문화가 참으로 유익한데 우리가 배우지 못하고 있고, 그 아쉬움을 달릴 길이없어 안타깝기만 하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늘바람 2012-05-05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유당 이라는 이름을 소리내어 부르면 그 뜻을 떠나서 말에서 들리는 대로 여유가 와닿는 것 같아 참 좋아요

차트랑 2012-05-06 00:16   좋아요 0 | URL
옳으신 말씀입니다.
항상 조심하는, 여유하라는 말씀이라고 합니다.
그럴려면 여유도 좀 가지고 있어야 할것 같아요^^

마녀고양이 2012-05-06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정말 부끄럽기 짝이 없는게,
우리 선조에 대한 지식이 미약한 정도를 넘어서고 있답니다.
변명같지만 내내 IT를 하다가, 이제는 심리학 공부를 하는데 모두 기원은 외국이네요.

어쩐지 저는 뿌리도 없이 허공을 둥둥 떠다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즐거운 한주되셔요.

차트랑 2012-05-07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고, 무슨말씀을요 마녀고양이님...
저도 마찬가지 입장인지라
저 스스로 자성하는 의미를 가진 글이라고 생각해주십시요 ㅠ.ㅠ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마녀고양이님

2012-05-07 17: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5-07 2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slmo 2012-05-07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와 호와, 당호...이런 것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재미있지만,
알라딘 서재의 닉을 가만 들여다보고 있어도 재밌다는 생각이 듭니다.
근데,'차트랑공'님은요...전혀 미루어 짐작할 수 없다는~--;

2012-05-08 0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앙콜을 10번도 더 받아주는 키씬,

아르헤리치의 자애로운 눈길에 끄덕도 하지 않는 간큰 키씬,

저렇게 젊은 나이에 카라얀을 협연자로... 간이 부은 키씬

 

쟁쟁한 러시아 선배들을 닮았나...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늘바람 2012-05-01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좋은 음악을 감상하네요

2012-05-04 18: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늘바람 2012-05-05 09:52   좋아요 0 | URL
깜짝 놀랐어요 어디가 아프셔서 입원하신 거여요? 괜찮으신가요?
아프신데 답장을 무슨
저는 알라딘에 오랜 동안 마음을 두고 있어서 항상 그곳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답을 안 달아주셨다고 해서 섭섭해 하지 않아요.
그나저나 빨리 쾌차하셔야지요

2012-05-06 0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틈틈히 시간이 나는 대로 짭은 여행을 자주 하는 편이다. 사실은 여행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대부분 선생님을 찾아 뵙기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에는 서재에 짧은 여행기를 써보하야겠다 라고 생각한 것은 선생님과의 추억을 기록하는 버릇에서 온 것이다. 선생님께서 가르쳐주신 좋은 말씀을 기록장에 기록하여두고는 수시로 펼쳐보는 것이 버릇이 된 것이다.

 

 

내게는 정확하게 말하지만 스승님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옳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요즘에 스승님이라는 말보다는 선생님이라는 표현이 더 일반적이므로 선생님이라고 쓰는 것이다. 선생님은 모두 세분이 계시는데, 가까이에는 대전에 계시고, 멀게는 지리산의 깊은 산중에 두분이 계신다.

 

대전의 선생님께는 세달에 두번 정도 찾아뵙고 가르침을 받으며, 지리산 깊은 산중에 계신 선생님께는 일년에 서너차례 찾아뵙고 가르침을 받는다. 지리산의 깊은 산중에는 전화기를 사용할 수 없어 처음에는 불편한 감이 있지만 10수년을 거치면서 오히려 좋구나..싶다. 지리산의 스승님은 춘추가 높으신 분과 이제 막 24의 젊은 스승님 두 분이 계신다. 춘추가 높은 스승님에 대한 이야기를 페이퍼에 쓰기는 송구하므로 24세의 젊은 스승님에 대한 이야기는 이 글과 관련하기 때문에 쓰지 않을 수 없다...

 

 

 

 

 

春氣櫮花 (춘기악화) 봄기운이 꽃을 활짝 피우게 하니
人人各基 (인인각기) 사람들도 저마다
開花心中 (개화심중) 마음에 꽃을 피우는 구나...


비록 24세의 젊은 나이지만 주역의 이치와 시전의 내용을 제자에게 가르치시니 나에게는 그 어느 스승님 못지않게 큰 분이시다. 그러나 한학이 가진 이치를 잘 모르는 제자가 아직 어리석어 그 뜻을 제로 받들 줄 모르니 가히 불초할 따름이다...

 

주역은 周나라의 易으로 자연 혹은 우주의 섭리를 담고있는 책이라고 한다. 때로는 점괘를 알아보는 용도로도 쓰이지만 지혜를 구하는 책으로 인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생각한다. 자연의 섭리대로라면 바로 봄의 기운이 모든 생명에게 그 기운을 주고 꽃을 피우는 식물들은 어김없이 꽃을 피운다. 자연의 생물들은 스스로 그 시기를 알고 행한다.

 

자연의 이치를 설명할 능력이 나에게는 없지만,  저렇게 말로 설명할 수 없이 이쁘고 화사한 꽃을 피우는 것은 자연의 섭리인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흔히 자연스럽다는 말이 있다. 우리말로 바꾸어본다면 '스스로 그러하다' 는 뜻이겠다. 흔히 '순리'라고도 한다. 이는 '이치를 따른다'는 뜻일 것이다. 그 이치는 바로 자연의 이치를 말하는 것이겠다...

 

자연의 섭리에는 잘못된 것이라고는 없다...

 

여하튼 그 24세의 나의 스승님과 함께 외출을 했는데 길을 걷다가 저 꽃들을 만났다. 참으로 봄의 기운이란 신묘하다는 생각을 했다. 매년 바라보는 꽃이건만...하여 스승님께 '봄기운이 꽃을 활짝 피우게 하니, 사람들도 저마나 마음에 꽃을 피우는구나...'라는 말을 한자로 번역해달라고 청했더니, 스승께서는 ' 春氣櫮花  人人各基   開花心中' 이라고 그자리에서 말씀해주셨다.

 

바로 수첩에 말씀을 적었다. 그래서 수첩은 나의 필수품이다. 언제 어느 곳에서 좋은 말씀과 가르침을 받을 지 알수가 없는  것이다..봄의 나날들은 세상에 생기를 주고, 그 생기를 받은 만물은 스스로를 움직여 제각기 해야할 일들을 한다. 과실나무는 꽃을 피워 열매를 맺을 준비를 한다. 산 속의 동물들은 또 그들이 해야 할 일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자신들이 하도록 되어있는 일들을 자연의 이치를 말없이 온몸으로  행하니, 그 자연스러움 속에 잘못된 것이라고는 없다.

 

지연의 식물과 산과 바다의 동물들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그 동물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 우리 사람들도 그러하다. 저마다 해야할 일이 있고 그에 알맞는 의미가 있을 것이고, 그것이 인생일 것이다. 저마다 나무들이 다른 꽃을 피우듯이 사람들도 저마다 각기 다른 인생을 살아간다. 그러나 그 이치는 자연의 섭리를 벗어 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스러움은 어떤 것일까...

 

 

물이 흐르다 그치는 곳...法

 

한자에는 법(法)이라는 말이있다...물(水)이 그친다(去)는 의미를 가진 말이라고 한다. 우리는 흔히 '법대로 하자'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법대로하자는 말은 왠지 상당히 부담스럽게만 들린다. 인정 사정 안봐주겠다는 말로 들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래의 의미대로 해석하자면 '법대로하자'는 말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방법을 택하자, 즉 순리대로 하자는 뜻인데 말이다..그 法이라는 말이 인간을 돕는 역할로 자리잡기 보다는 인간을 구속하는 말로 인식되기 때문은 아닌가 싶다.

 

물을 흔히 자연의 순리에 비견하는 경우가 있다. 도가의 '상선약수'가 대표적인 말일 것이다. 물은 절대로 거꾸로 오르는 법이 없다. 아래로 흐르다가는 장애물이 나타나면 빙 돌아서 흐르고, 경사가 급하면 폭포수가되어 아래로 떨어진다. 그 어느 경우라도 절대로 물은 다투는 일이 없다. 이를 부쟁이라고 한다. 그러다가는 깊은 곳을 만나면, 그 물을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장소를 만나면 그 물은 비로소 그치게 된다.. 물론 그만큼 만이다. 그렇게 물이 정지하여 그치는 그곳,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자연스러움을 거치고 거쳐 정지하는 곳...바로 法인 것이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1: 물의 법칙

 

 아미달라 여왕이 다스리는 나부 행성에 살고 있는 존재는 육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부행성의 물 속에는 건간족이 살고있다. 지상족과 수중족인 건간족은 역사적으로 서로 사이가 좀 나빴던 것 같다. 아미달라 여왕이 위기에 처한 나부의 행성을 수호하고자 건간족의 통치자를 만나 협력 방어에 나서자는 제안한다. 그러나 건간족의 대표는 처음에는 이를 거절한다. 유리한 공동 방어의 합의를 이끌어 내는데 애를 먹는 것을 보면...

 

여기서 주목해도 좋은 대목은 건간족에 투영된 물(水)의 상징성이다. 水의 이치를 자연의 섭리라고 볼때, 매우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는 장면이 나온다.

 

 

 

 사진: 방어태세에 나선 건간족

 


이들의 전투 대형은 전형적으로 방어를 목적으로 한다. 공격적인 전투를 펼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매우 독특한 그들 만의 방어막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격을 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항해 돌진하는 전투 대형을 유지해야하고,  따라서 일사분란하면서도 침투와 후퇴가 신속정확하게 이루어져야 하며, 선봉부대라는 특수 임부를 띈 특공대를 필요로 한다. 적을 교란시키면서 적의 날카로운 예봉을 무력화 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에서 흔히 만나는 중세식 전투 장면은 동양의 그것 과는 달리 드넓은 야전장, 일련의 응집된 군대끼리 정면 충돌하는 장면을 흔히 만나기는 한다. 그러나 건간족이 위의 사진에서 처럼  전형적인 중세식 충돌 전투대형을 짜고 있는 것은 중세식 전투 형태를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다.  이는 그들이 전투시 가질 수 밖에 없는 특징인 방어적 전투형태이기 때문이다. 


건잔족에게는 그들만의 특별한 방어막이 있다. 그것은 눈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왜냐면 그 방어막이 물의 원리를 가진 방어막 이기때문이다. 그 방어막을 벗어나면 자신들의 전투력으로는 상대방에게 쉽게 제압당하기 때문에 일련의 중세식 전투대형을 유지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는 공격형 전투대형이 아니라 전적으로 수비형이다. 게다가 상대는 우주의 제왕을 꿈꾸며 상상할 수도 없는 강력한 화력과 전투력을 지닌 드로이드 군대가 아니던가...

 

건간족의 방어막은 그들이 수중에 존재하는 종족인 만큼, 투명한 물의 성질을 상징하는 방어막이다. 그리하여 제 아무리 강력한 화포를 쏘아댄들 끄덕도 하지 않는다. 공격적으로 강타하는 힘이 강력하면 강력할 수록 방어막은 더욱 강한 힘으로 이를 되받아친다. 그 되받아치는 탄성력은 공격해오는 힘의 크기와 정비례한다. 그러니 그 어떤 힘을 가진 공격력도 물의 원리로 적절하게 물리쳐 낼 수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 어떤 공격도 죄다 물리칠 수 있는 이 방어막보다 더 완벽한 것은 없어보인다. 

 

 그러나 이 방어막의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조용히...부드럽게...그리고 천천히 방어막을 통과하면 그 방어막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상대방의 그 미약한 힘을 방어해내지 못하는 것이 그것이다. 강자에게는 한 없이 강력한 힘을 보여줄 수 있지만 약자에게는 한 없이 약한 것이 건간족인 것이다. 강자에게 비굴하고 약자에게 잔인한 그런 건간족이 절대로 아니다. 진정한 힘은 그 부드러움에 있다. 이를 잘 보여주는 방어막이 바로 건간족의 것이다. 도가의 능유제강(能柔制强)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이 방어막은 지극히 물이 가지는 특성과 이치를 반영한 상징성을 보여주고 있다. 물은 무겁고도 커다란 철갑선을 띄울 수 있지만 우리들의 작은 발 하나를 지탱하지 못하고 그 속에 담그게 한다.  물론 감독이 이러한 상징적 표현을 의도한 것인지 나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나는 건간족의 방어막이 가지는 특성을 보면서 물의 본성, 즉 자연의 이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여 자연스러움을 벗어난 행위는 그에 상응하는 부작용을 일으킬 여지가 많은 것 같다.

 

더불어 물의 이치는 法이라는 말을 충분히 설명해준다. 법은 어쩌면 물의 이치요 만물이 살아가는 이치인지도 모른다. 이점을 노자는 우리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여하튼 봄이다. 모든 생물이 춘기를 얻고 자신이 해야할 일은 준비하는 봄이다. 그 자연스러움에 따르는 조화로움 속에서 진정 우주의 이치이며 자연의 섭리이고 물의 본성을 들여다 볼 수도 있을 것만 같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녀고양이 2012-05-06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제가 읽다가 너무 많은 생각을 하는 바람에, 일단 감탄사부터 터졌네요.
'법대로 하자'가 그런 의미였군요. 순리대로 하자, 이치대로 하자, 흐르는대로 하자.
자연스러움 이라는 단어를 다시 한번 음미하는 중입니다. 자연스러움이란 무엇인가를요.

건간족 이야기를 읽으며,
부러지는 강함과 휘어지는 약함을 생각했습니다.
세상이 변화할 때 가장 무서운 것은, 조용히 다가오는 말없는 파장 같습니다. ^^

차트랑 2012-05-07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보잘 것 없는 글에 감탄을 해주시고...ㅠ.ㅠ
저의 글을 늘 좋게만 봐주셔서
저게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요..

건간족의 훌륭한 용사 중에는 '자자'라는 캐릭터가 있는데^^
저는 그 '자자'가 참 좋더라구요.
엉성한 캐릭터이지만...
상황에 따라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때로는 자신을 많이 낮추는 캐릭터입니다.

'자자'에게서 저는 많이 배워야 할 듯 합니다ㅠ.ㅠ
고맙습니다
 

 어제는 바깥 일을 보게되었다.

일을 마치고 나니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서 봄날이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안한 마음으로 돌아오는 데, 봉은사가 시야에 들어왔다. 아...그 이름이 유구한 봉은사로구나... 봉은사에 들렀다 가자...생각하고는

 

 

 

 

동료에게 봉은사로 방향을 틀자고 했다. 그랬더니 동료가 묻는다.

어구, 이거 놀다 들온거 누가 알면 눈총받아요~

걱정 말게나, 놀러가는게 아니라 봉은사로 공부하러가는 거라구^^ 했다.

그랬더니, 하긴요, 불자세요? 

아닐세...

아, 네... 절에는 자주 가시나요?

자네, 나를 인터뷰하나? 라고 물었더니 이 친구 썩소를 날린다. 머쓱한 모양이다.

 

기회가 되면 들르곤 하지만 자주 가는 편은 아니네... 사찰은 종교의 개념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우리 역사의 일부이고 우리의 문화로 인식하는 편이라네... 교과서에서도 불상과 불탑이 자주 언급되는 것을 보면 종교적 관점이 아니라 문화적 관점이 투영된 것이 아니겠는가....했더니,

듣고 보니 그럴 듯 한데요.. 라고 대꾸 했다.


그렇게 봉은사에 당도했다.

주차장 입구에서 안내하시는 분께서 말을 건넨다.

“보살님, 저~쪽에 주차하시면 됩니다”

순식간에 속세의 내 동료는 보살이 되고 말았다. 동료가 씩 웃으며 말한다.

저더러 보살이래요^^

보살이 어디 따로 있는 것이던가. 부처님을 찾아 뵙고 좋은 말씀을 배워 행하면 그 사람이 보살이란 말씀이겠지...

그러니 자네도 보살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이라 생각하시게나... 그리고 앞으로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면 되지 않겠나...하고 말해 주었다.


동료가 한동안 침묵을 지키더니 다시 말했다.

생각해보니 예수님도 사랑하라 말씀하셨고, 부처님도 자비를 행하라 하셨고, 공자님도 사랑하라 말씀하셨는데 그럼 모두 사랑하며 살라고 말씀하신 거네요?

 말을 듣고보니 동료의 말이 딱 맞는 말이다. 그래서 한마디 덪붙였다.

어이구, 자네가 참 그리 좋은 말을 해주다니... 자네 참 멋지구먼... 오늘은 자네가 나의 스승일세. 했더니 동료가 으쓱~한다.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그렇게 대웅전으로 향하다보니 쌀을 무인 판매하는 곳을 지나게되었다.

하여 작은 쌀 한봉지를 사서 부처님 앞에 올려 놓았다. 대웅전의 부처님 앞에는 많은 분들이 와서 정성을 들이고 있었고, 스님께서 중생을 위한 좋은 말씀을 하시는 중이었다.


해서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스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데, 스님께서 참 좋은 말씀을 해주신다. 말씀의 주제는 ‘살림살이’였다.


'살림살이'에 대한 스님의 말씀은 대략 다음과 같다.

‘살림’이라는 말은 ‘사람을 살린다’라는 말에서 왔다고 한다. 가정을 꾸리고, 가족을 먹여 살리는 일이 ‘살림’의 뜻이라는 것이다. 살림살이를 잘 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가족의 삶에 깊이 관여하기 때문인데, 이는 비단 가정에만 국한 된 것은 아니다. 사람은 늘 타인과 마주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타자를 어떻게 인식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렇게 우리는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또 다른 누군가를 '살림'하기 위해 존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님께서는 더불어 부처님 말씀에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씀이 있다고 하셨다. 이는 각 개인이 자신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해야 하는가를 일깨우는 말씀인 동시에, 타자 또한 ‘천상천하 유아독존임’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말씀을 내포하고 있는 뜻이라는 것이다. 내 스스로가 천하에 중요한 존재이듯이 타자 또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존재임을 잊지 말라는 말씀이었다.

 

 그러므로 살림이란 비단 가정 내에서의 의미를 넘어 타자의 존재를 늘 염두에 두고, 경우에 따라서는 타자를 살린다는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가라고 말씀 하셨다. 내것이 소중한 것이라면 타자의 것도 마찬가지로 소중한 것이니 그 타자의 소중함을 인정하며 조화롭게 살아가라는 말씀이지 싶다. 우리는 살림을 하면서 삶을 살아가는 인간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한동안 이 말씀이 떠나지 않을 것만 같다..


 참으로 마땅하고 또 마땅한 말씀이구나 싶고, 봉은사에 들르지 않았더라면 이런 말씀을 또 어디에서 들을 수 있었을까 싶다. 만에 하나 어제, 같은 시간에 봉은사에 들르셨던 알라디너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분께서도 같은 말씀을 들으셨을 것이라 믿는다.

 

그러고 보니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꼭 논리로만 살아가는 것은 아닌 듯하다. 논리를 따지자 면이야 못따질 것도 없을 것이지만, 논리 이전에 인간사는 나의 존중과 더불어 타자를 배려하는 데서 오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는 논리를 앞선 가슴의 문제인 듯도 하다. 냉철한 이성의 논리는 충분히 존중받아야 하겠다. 더불어 세상은 논리와 이성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성질의 것들이 훨씬 더 많아 보인다. 우리들의 이웃을 논리와 이성만으로 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던가... 이웃 사촌이라는 말은 논리의 중요성 이전에 ‘마음’의 중요성을 함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동료의 말이 새삼 다기온다. 나의 동료가 오늘은 정녕 나의 스승이 되어주었구나...부처님의 말씀이든, 예수님의 말씀이든, 공자님의 말씀이든 그 어느 분의 말씀이든 모두 귀중한 말씀이다. 이 귀중한 말씀을 따르고 행하며 살아간다면 그 어느 분의 말씀인가가 무엇이 중요하겠는가...부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이 보살이요,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행하는 사람이 크리스찬이고, 공자의 말씀을 행하며 살아간다면 유자인 것을... 시대를 앞서갔고 세상을 위해 모두 소중한 말씀을 남기고 가신 분들 중 그 어느 분의 유지를 따른들 세상에 해가 될쏘냐...이 모든 것이 마음이 없으면 행할 수 없는 것이고, 뜻이 없으면 이룰 수 없는 것이거늘...그러니 우리의 마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렇듯 오늘은 뜻하지 않게 봉은사에 들러 일생을 두고 잊지 못한 귀한 말씀을 게 얻게된 것이다. 비록 많은 분들은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 대단치 않은 깨달음 일지언정, 내게는 참으로 잊을 수 없는 말씀이며 비록 이제나마 깨달은 것이지만 소중한 가르침이지 않을 수가 없다.

 

  밖으로 나오니 세상이 달라 보인다. 그래....저기 길을 지나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과 자신 이외의 누군가를 위한 살림살이를 위해 저렇게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지...그리고 저마다 천하에 유일하고 고귀한 존재들인거지...그러니 세상의 모든 이들다 다 소중한 사람들 아니겠는가...

 

창밖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따스하다. 봉은사는 비록 도심 한 복판에서 빌딩으로 둘러쌓인 채 자리하고 있지만 결코 세상과 단절된 공간이 아니었다. 주변으로는 세상의 문명이 감싸고 있지만 사찰이라는 완전히 딴 세상처럼 느껴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깨달음을 얻는 붓다는 그러나 저 세상속의 모든 사람들과 그렇게 서로 어울려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좋은 가르침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싶어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워 즐거운 마음으로 짧은 방문기를 마친다...

 

 

 

봉은사의 정문을 나서면 바로 도회지의 빌딩들이 즐비하다. 바로 앞에는 삼성동 무역센타가 자리하고 있다. 멀지 않은 곳에 이름 모를 쌍둥이 빌딩이 높이 보인다.  

동료가 말을 건넨다. 이런 곳에 사찰이 있다니...놀랍군요. 빌딩의 한 복판에 자리잡고 잖아요?  라고 말하길래,  대꾸했다.

 봉은사가 도심 한 복판에 자리잡은 것이 아니라, 빌딩들이 봉은사를 둘러싸고 자리 잡은 것이라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늘바람 2012-04-27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봉은사 한번도 안 가보았어요
삼성동 무역센타 근처란 말이지요?
음 언제 가 보아야겠네요
저도 어제 종로에 불교 박물관이 있는 걸 보았어요 자세히 볼 시간이 없어 그냥 오긴 했지만.
삶과 책이 연결된 페이퍼 참 좋네요

차트랑 2012-04-27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하늘바람님,
삼성동 무역쎈타에서 바로 찾으실 수 있습니다.
경기 고등학교와는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위치하는데요
경기고 학생들은 부처님을 등에지고 공부를 하는 중입니다^^

매년 그러하듯이 봉은사에서도 4월 초파일에 멋진 행사를 합니다.
물론 부처님 오신날이 오기 훨씬 전부터 행사를 시작하는데요
볼거리가 좋습니다.

특히 학생들이 공부를 하는 커다란 공부방에서는
한지로 만든 작품들이 아주 다양하고 장관입니다.
안에서 불빛을 발할 수 있도록 등을 켜 놓았는데
이 장면은 쉽게 볼수 없는 장면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는 불자는 아니지만
몇 해 전 부처님 오신 날 봉은사를 찾아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본 모습입니다.

혹시 방문하실 기회가 되신다면
카메라를 준비하시는 것이 더 좋습니다.
쉽게 볼수 없는 장면들을
오래도록 추억에 담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아, 제가 좋다고 말씀드린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ㅠㅠ.)

저의 서재를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하늘바람님

카스피 2012-04-28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좋은 글이십니당^^
근데 저기 사진속 건물은 빌딩이 아니고 현대 아이파크 같은데요.커다란 부지위에 단 3동이 있다는...맨 위층에선 한강변이 보인다고 하는 곳은 매매가가 수십억이라는 ㅎ ㄷ ㄷ 한 아파트 단지에요

차트랑 2012-04-28 19:08   좋아요 0 | URL
저도 오우,
아주 유명하신 카스피님 아니세요?
이렇게 저의 서재를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카스피라는 닉네임을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행여 실례가 되지 않을까하여
그동안 글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와중에 이렇게 찾아주시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 건물이 현대 아이피크였군요, 무척 좋은 곳이네요^^
늘 눈에띄는 건물이건만 오늘에서야 건물의 정체를 알았습니다.
사실 저는 집 옆에 맥도날드 지점이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는데 5년이나 걸렸답니다
길치에다가 눈치 코치가 없어가지고
늘 직원과 동행을 해야 업무를 보러 다니는 실정입니다 ㅠ.ㅠ
그러니 오죽하겠어요

그리고
카스피님의 서재에 조만간 방문드리고 답례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편안한 하루 되세요

stella.K 2012-04-28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 이미지가 바뀌었네요. 누구시더라...?ㅋ

차트랑 2012-04-28 19:16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 안녕하세요
저의 서재를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서재의 이미지를 바꾸어도 되는 것이 줄 깨닫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서재를 관리하는 것이 참 어렵더군요.
다른 분들은 맨 위의 책장을 잘도 꾸미시던데
저는 영 안되더라구요.
다른 분들 다 잘하시는데 어떻게 저만 안되는거 같어요 ㅠ.ㅠ

언젠가 나비님께서 지적해주셔서
다시 어떻게 해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저로서는
할수가 없는 일이더군요.
그래서 이미지만 한 번 바꾸어 봤는데 글쎄..
그게 바꾸어지데요??

그렇다고 못난 제 사진을 내놓고 걸수도 엄고..^^
살짝 뽀샤샾해가지고서^^ 새로걸어 봤습니다.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스텔라님..

마음을데려가는人 2012-04-28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림의 뜻이 아주 멋지네요.
주부들이여, 자신을 가져라!!
나의 가족뿐 아니라, '너'까지 살림할 수 있다면, 행복한 사회가 되겠어요 :)

차트랑 2012-04-28 23:0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마음을 데려가는 人님,
행복한 사회는 모두가 바라는 사회일 것입니다.
말씀처럼 나의 가족, 그리고 너까지 살림할 수 있는
사회가 오기를....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마음을 데려가는 人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