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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글의 단초가 되어주신 글쓴이 1께 심심한 고마움을 전해드린다.


어느 글을 읽다가는, "위대한 일은 놀이처럼 되어야한다" (p140), 라고 쓴 인용문을 마주했다. 순간, 나의 시선은 마치 어둠의 정적을 만난듯 움직이지 못하고 한동안 그 문장에 머물렀다. 나의 시야에 그 문장 이외의 것은 들어오지 않았다. 어쩌면 그에 앞서 “하루의 3분의 2를 자신을 위해 쓰지 않는 사람은 노예다”(p77) 라는 인용문에 1차 충격을 받은 탓일지도 모른다. 이 대목에서 글쓴이 1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고 당시 자신의 놀란 심경을 밝혔는데, 그 제목을 본 내 가슴인들 무사했겠는가. 1차 충격을 받은 상태에서 연타로 2차 충격을 받은 셈이었던 것이다.



[[[ <<<<----- 글쓴이 1께서 읽은 책  ]]]


순간의 충격을 그나마 진정시켜준 것은 글쓴이 1의 생각이었다. 그 아래에, 글쓴이 1은 "좋아하는 일이거나 잘 할 수 있는 일이거나 그 일을 사랑하고 몰입하며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이 자신에게 있어 '위대한 일'이 아닐까" 라고 자신의 생각을 덧붙였다. 사실 이 정도의 견해도 내게는 충격이나 다름이 없지만 완곡한 어법이라 인식되어 비교 우위에서 오는 위로가 되었다는 뜻이다.


충격과 동시에 좋은점을 발견했다. 글쓴이 1의 글을 읽고 며칠의 시간이 지난 후 이다. 글쓴이 2 께서 '소년 동주'의 리뷰를 통해 윤동주의 생각을 전달하고 있었는데, 나로서는 니체와 윤동주가 서로 같은 사유를 했구나 싶었던 것이다. 다만 윤동주는 '잘 사는 삶' 이라 표현했고, 니체는 '위대한 삶'이라고 표현했는데, 나는 이 둘을 같은 의미의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이 점은 아주 좋은 발견이었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내게는 영원 불변과도 같은 뜨거운 사랑 윤동주와 그 이름도 찬란한 니체가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발견에 어찌 기쁨을 숨길 수가 있겠는가... 이렇게 좋은 발견을 주신 글쓴이 2께 이 자리를 빌어 깊은 감사를 드린다.


[[[ <<<<------- 글쓴이 2 께서 읽은 책 ]]] 



사실 평소 대로라면, 글쓴이 1 의 견해를 읽으며 나로서는 '음, 전적으로 동감이야!'  라고 생각하며 그 다음으로  넘어가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짧지만 강렬한 인용문과 글쓴이 1 의 사유가 만나 형성된 견해를 접하는 그 순간, 내 자신의 삶을 관통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피해갈 수 없는 자백의 시간을 만난 듯 말이다. 마치 죄를 지은 자가 자신의 죄를 실토를 해야하는 순간을 맞이한 상황 말이다.


글쓴이 2의 견해대로 아주 많은 사람들, 아니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생을 통해 해야할 일을 하면서 삶을 살았을 것이고 또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반대 급부로서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은 매우 긍정적이지만, 동시에 대척점도 분명 존재하게 되어있는데, 그 대척점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면서 일생을 살아간다는 뜻으로 균형을 잡고 있다.


'숙제'는 '해야하는 것'이다. '해야하는 일'은 흔히 즐거움을 수반하기 어렵다. 다행히 자신이 좋아하는 숙제를 만났을 때라면 그 숙제를 이행하며 즐길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 행함을 인내해야 하고 숙명처럼 혹은 운명처럼 묵묵히 받아들여야만 한다. 대부분의 삶은 그렇게 해야 할 일들의 연속이면서 숙제의 연속으로 점철된 삶이다. 나의 삶처럼 말이다.


마치 무언가에 쫒기듯 살아온 내 삶의 시간과 사건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흔히 이런걸 파노라마 라고 하던가. 그 인용문은 지금껏 그래왔듯 앞으로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지가 않은 나의 시간들에 더욱 선명한 생채기를 내는듯 했다.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살아온 나의 인생을 잠시 반추하는 순간, 마치 나의 지난 시간들이 움직일 수 없는 정적 속에 모두 갖혀버린듯 했다.



그러나 흐르는 시간을 멈춰 세울 수는 없는 법이다. 내 지난 그리고 현재의 시간이 멈추는 찰나 공간이 동시에 사라지기 때문이다. 즉, 나의 존재는 존재할 수가 없게 된다. 존재는 그 존재의 존재 기반을 상실해 버릴테니 말이다. 그러나 살아있기에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삶을 할퀴듯 지나가는 모든 해야할 일들은 설사 그가 '프리드리히 니체'라 하더라도 피해 갈 수는 없었을 것이라며 반발성 되뇌임을 떠올려본다.


 다행스럽게도 나의 삶이 해야할 일들로 점철된 것이라 할지라도 나에게 위안이 되어줄 수 있는 또 다른 여지를 니체는 남겨주었다. 채찍과 당근을 또는 병과 약을 남기듯, 니체는 질식해 죽을 처지에 놓인 자를 위해 숨구멍 하나를 만들어 놓았으니 말이다. 그리하여 니체 본인이 말 하기를, 인간의 위대함을 위한 나 자신의 공식은 'Amor Fati (운명을 사랑하라)이다' 라고 말했다. 천만 다행하게도 니체는 'Amor'에 특별한 단서를 붙이지 않았다.



'니체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니체의 'Amor'에 단서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 라고 누가 내게 큰 소리로 외친다해도 소용은 없다. 나는 이미 마음을 단단히 굳혔으니까. 모르쇠로 일관하기로! 그렇다면 나에게도 니체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Amor'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니 나도 'Fati' 좀 하겠다 이거다.


'Amor Fati'는 니체 철학의 어느 파편에 불과한 일련의 한 고리가 결코 아니다. 'Amor Fati'는 니체 철학의 결정체이자 최종 결론이나 다름이 없는, 지극히 구체적인 사상체이니 말이다.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니체의 철학이던가!!  그 속뜻이야 어찌되었든 표면적인 그의 발언을 빌어온다면 우리 모두는, 아니 나는 '프리드리히 니체'와 함께 아모르 파티로 가면 될 것 아니겠는가.


위대한 일이 때로 놀이처럼 되지 않더라도 면책의 틈을 내어준 니체에게 감사하고 이 글을 쓰도록 단초를 주신 분께 또한 다시 한 번 더 깊은 고마움을 전해드린다. 글쓴이가 덧붙인 자신의 견해가 또한 나의 '해야하는 삶'에 완곡한 위로가 되어주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여기, 나의 이런 나이브한 생각과는 달리!!!  정녕 니체가 해준 말(위대한 일은 놀이처럼 되어야한다)과 정확하게 맞닿아있는 한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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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 2025-12-09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트랑님, 글쓴이 1은 저를 가리키는 것 맞죠? 며칠 전 말씀 처럼 페이퍼를 쓰셨군요.
너무나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저도 몇 달 전 이 책을 읽고 반성도 했고 정신도 번쩍 뜨였거든요.
글쓰기로 함께 성장하는 훈훈한 공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새 한주도 좋은 시간 보내세요. 차트랑님.^^

차트랑 2025-12-09 17:22   좋아요 1 | URL
모나리자님께서 친정(親政)하시다니요!!
고맙습니다 모나리자님!

그렇습니다 글쓴이 1은 바로 모나리자님이십니다.
당황하실까 염려되어 미리 말씀을 드린것인데
이렇게 친정하시니 감사와 더불어
그렇게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인용해주신 문장은 모나리자님 못지않게 제게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모나리자님의 글을 읽어보기를 아주 잘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덕분에 다양한 분들의 글을 더욱 신중하게 읽게될듯 합니다.

한 해가 저물어갑니다.
편안하고 좋은 연말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모나리자님!!






모나리자 2025-12-09 17:27   좋아요 0 | URL
저도 감사합니다.

음악, 철학 등 다방면에 조예가 깊으신 차트랑님께서 제 글을 읽어 주시고
좋은 공감을 해 주셔서 너무나 영광이지요.

1년이 정말 눈깜짝할 새에 지나간 듯합니다.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건필하시길 바랄게요.

감사합니다. 차트랑님.^^

차트랑 2025-12-09 17:54   좋아요 1 | URL
과찬을 해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모나리자님.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저의 얼굴도 붉어졌답니다ㅠ

그럼 이만,
후다닥~~~


모나리자 2025-12-09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을 쓰는 중에 에러가 떠서 글이 등록되지 않았는데 두 개나 달렸네요.
그래서 하나는 삭제했습니다.^^

차트랑 2025-12-09 17:24   좋아요 1 | URL
알라딘 서재가 잠시 불안정한 상태였던듯 합니다.
반가움에 달려갔는데
열리지 않더라구요^^

편안하십시요~
 


과거 몇 권의 불교 경전을 사경한 적이 있다. (물론 옆에 해설서를 함께 놓고 그 뜻은 새기며 진행했다). 낳아주신 어머니를 위해 지장보살 본원경과 금강경을, 아버지를 위해 지장보살 본원경을,  서울로 유학 온 촌 놈이 입대하기 전까지, 2년 내내 기꺼이 보살펴주신 참으로 고마운 분을 위하여 금강경을, 마지막으로 친애하는 仲秋의 庚金에게 금강경을 각각 사경했던 것이다.


어머니 그리고 나를 자식처럼 돌봐주신 분께는 그 분들이 돌아가신 후 그 품 안에 전해드릴 것이고, 仲秋의 庚金에게는 아직 전달하지 못했다. 아버지께서는 돌아가셨고, 그의 아들은 누워 계신 아버지의 가슴에 정성드려 사경한 지장보살 본원경을 안겨드렸다.


최는 나는 지장보살 본원경을 다시 사경하기로 마음 먹었다. 사경을 한 후 지장경을 꼭 전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나는 친구 복이 너무나도 없었다. 친교를 다양하게 하지 못하는 성격 탓에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의 수가 많지 않았다. 아버지의 가르침도 큰 작용을 했다. 친구가 아무리 많아도 진정한 친구 한 둘만 못하느니라...


몇 안되는 절친 중 한 사람은 교통사고로 허망하게 세상을 등졌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와 함께할 일들을 상상하면 너무나도 아름다운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그 때 내가 참으로 박복한 놈이로구나 생각했다. 또 한 친구는 젊은 나이에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등졌다. 참담했다. 그의 미소는 세상에서 가장 싱그러웠다. 이제는 더이상 볼 수 없게 되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리운 그 친구들에게 직접 쓴 불경을 미처 전하지 못했다. 나이를 봐도 그럴 상대방이 아니었을 뿐더러 모두 내가 사경을 알기 전에 불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한 친구가 있다. 이 친구 마저 잃는 다면 나의 세상에 친구란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다행히도 그 친구는 건강하며, 흥미롭게도 불경을 수년에 걸쳐 사경을 해 온 사람이기도 하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그 친구 덕분에 나도 사경을 했던 것이다. 내게 이 친구는 죽어 환생을 해서라도 다시 만나고 싶은 친구이다. 그리하여 마지막 남은 그 친구에게 나의 사경을 전해주려는 것이다. 늦기 전에 말이다.




[[헐, 이제 되는군. 내 컴퓨터에 문제가 있어 안되는 줄~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음 ㅠ]]




물론 나는 지은 죄가 많아, 인간으로 환생할 확률이 아주 낮다. (생각 컨대, 윤회가 정말 있는 것이라면, 그 친구는 가뿐히 인간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라고 나는 장담할 수있다. 죄가 많은 나는 그 친구와 어긋 날 가능성이 높다. 한 번 어긋나면 또 억겁의 시간이라도 기다려야겠지만 말이다)


듣자니 송만공 스님의 전생은 소(丑) 였다고 만공스님 스스로 말씀하신 적이 있다. 스님도 까딱하면 소로 태어나는 마당에 내 자신이야 말할게 어딧겠나. 나는 인간으로 태어나기는 이미 틀렸지 싶다. 이럴줄 알았으면 내가 좀 더 일찍 철이 들었어야 했는데...후회가 막급이다.


만공스님의 전생 얘기나 나왔으니 말인데, 만공스님의 3전생은 기생이었다고 만공스님께서 직접 김일엽 스님께 말씀하셨다. 그 기생은 돈을 벌면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에게 식량을 보시하고, 절에 계신 스님들께 또 보시를 했다고 한다. 이 얼마나 갸륵한 일이던가. 기생으로 살면서 생전에 좋은 일을 아주 많이 하신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하나의 깨달음이 있었다. 직업에 귀천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직업의 귀천을 가르는 것은 직업 자체가 아니라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만공스님의 전생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잠깐 당황했던 것은 환생에 남녀의 구별이 따로 없다는 점이었다. 만공스님의 말씀으로 추정컨데,  男이 女로 태어나기도 하고 女가 男으로 태어나기도 한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환생시 고유의 성별은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 나를 미궁에 빠뜨린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인간으로 태어나 살다가 소로 환생하기도 하는 마당에 그깟 성별이 대수겠는가!
                                                                 


그러나 내가 미궁에 빠진 것은 만에 하나 내가 환생이라도 하는 날에는 이 친구를 지금 그대로 만나고 싶은데 성별이 달라지면 어쩌나 싶은 것이다. 내가 환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고 이미 지은 죄가 많아 그 결정에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겠지만 행여라도, 혹여라도 아주 작은 희망을 가지고 바래본다면 바로 이 친구와의 인연을 기대하는 것 뿐이다.
내가 사경을 하는 마음은 이러한 심정이다.


사실 나는 잘 알고 있다. 내가 제 아무리 수백, 수천, 아니 수만 번의 사경을 한다 한들 나의 환생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불경은 기복을 가르치는 경전이 결코 아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스스로, 자신의 무지를 깨달아 고(苦)를 멸하고 열반에 드는 가르침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흔히 네 글자로 압축한다. 고집멸도(苦集滅道)!  이 네 글자 안에 어찌 사적인 기복이 들어설 자리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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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5-12-06 0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아침, 나도 사경집을 꺼냅니다. 성불하세요.

차트랑 2025-12-06 06:53   좋아요 0 | URL
아, 그러시군요!!
반갑습니다 호시우행님,
나무관세음보살......

잉크냄새 2025-12-07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도에서는 갠지스 강가에서 화장을 해야 윤회의 고리가 끊어진다는 힌두교적 믿음이 있어 가난하건 부자건 갠지스 강가로 몰려든다고 합니다. 불교에서의 윤회는 무한 반복되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인가요 아니면 결국 윤회의 고리를 벗어나야 하는 건가요. 궁금하여 여쭈어 봅니다.

차트랑 2025-12-07 13:24   좋아요 1 | URL
잉크냄새님께서 ‘열반‘의 뜻을 모르지는 않으실듯 하지만
모르시는 듯 글을 남기시니 말씀드립니다^^

붓다의 가르침이 지향하는 궁극은 ‘열반‘입니다.
니르바나를 음역한 말이라고 하는데,
니르바나는 ‘불어서 불을 끈다‘ 는 뜻이라고 하더군요.
열반은 꺼진 불의 상태가 되겠네요.

나의 모든 것이 꺼져 사라지면 윤회를 하지 않는 다고 하네요.
반야경이 가르치고자 하는 ‘공‘의 단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적인 견해라 장담은 못드립니다)

붓다의 궁국의 가르침은 내가 가진 그 무엇하나도 세상에 남기지 않는 것이라고 하니,
걱정이 되기는 하네요.
아무것도 남지 않으면 썰렁하잖아요^^

어째든 부처님께서는 열반을 하셨습니다.
그러니 부처님은 환생을 하시지 않겠지요.
혹여 부처를 빙자하는 분이 계시다면
경계를 하셔야 합니다. 틀림없이 진짜는 아닐거에요~

그러나 저와 같이 열반에 들지 못한 사람은 인과를 끊어내지 못하고
환생할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소로 다시 태어나도 할 말이 없는 사람입니다만
잉크냄새님께서는 다시 사람으로 환생하시길 빌어봅니다.

아미타불......




잉크냄새 2025-12-07 14:48   좋아요 0 | URL
수박 겉핥기 정도의 수준이라 다시 한번 여쭈어 보았습니다. 설명 감사드립니다.

사람으로의 환생은 저도 이번 생은 글렀다 싶습니다.

차트랑 2025-12-07 18:05   좋아요 0 | URL
어찌 그런 말씀을....

건강하십시요 잉크냄새님~!!
 


어느 분야이든 관심을 가지게 되면, 조금씩 그 안으로 더 들어가게 되는 것은 자연스럽고도 흔히 있는 일 일것이다. 고전 음악도 이와 다르지 않아서 관심을 가지다보면 조금씩 더 그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물론 순서와 방법에는 각자 차이가 있을지라도 말이다.



어느 순간,  악기의 편성에 관심을 기울여 그 폭을 넓히게 되고, 악기를 구별하는 귀를 갖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생각에 이른다. 이는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어서 약간의 시간을 집중하면 모든 악기 소리를 잘 구별해낼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오케스트라가 2 파트의 바이올린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1바이올린과 2바이올린이 그것 이다. 1은 높은 음역대를 주로 담당하고, 2는 화음과 리듬 보강이 주 역할인데 이 역시 금방 친숙해질 수 있다. 각 파트가 연주할 때의 소리가 확연히 다르므로 금방 익숙해진다. 그 결과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그토록 풍성해지는구나 하는 것을 또한 알게 될 것이다.   



언뜻 보기에 서로 비슷하게 생긴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음색 구별은 처음에 약간 헷갈린다. 잘 구별해 들리다가도 오케스트라의 협음이 함께 어우러지는 순간이나 비올라가 약간 강한 음을 내기라도하면 간혹 헷갈림이 올 수 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차이점은 타오르는 아궁이에 넣었을 때 조금 더 오래 불타는 것이 비올라 라는 것 뿐이다" 라고. 비올라의 사이즈가 바이올린 보다 약간 더 클 뿐이라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 음색을 구별하는 것이 때로는 쉽지 않다는 함의를 가진다고도 볼 수 있다. 물론 약간만 익숙해지면 이 모든 것들은 특별할 것이 없다는 것을 곧 알게되지만 말이다.





[[ 이 영상은 김봄소리가 참가했던 2016 비에냐브스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의 준결승 장면이다.  김봄소리와 나란히 서서 연주하는 분은 Katarzyna Budnik-Gałązka (카타르지나 부드니크 가롱즈카 혹은 갈라즈카) 라는 분으로 폴란드를 대표하는 비올라이다. 이 영상은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음을 구별하기에 매우 적합한 영상이다. 또한 여러 악기들을 근접하여 보여주므로 다양한 악기들의 소리를 익히는데 꽤나 도움이 된다. 오보에 연주 장면도 아주 잘 잡아주었다.]]   



오보에와 클라리넷의 음색을 구별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물론 오보에와 클라리넷은 리드(reed)도 다르고 조성및 음역도 다르다. 금관으로 된 플룻은 그 음색이 너무나 또렷하여 구별하는 것은 확실히 더 쉽다.


흥미로운 것은 이 셋은 모두 목관 악기이지만 플룻을 금관악기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다. 물로 내 자신도 과거에는 그랬다. 금속으로 만든 플릇이 많아 오해를 사기 쉬운 것이다. 요즘은 플룻의 소재로 니켈, 금, 은, 백금 등이 혼합된 금속성을 흔히 사용하기 때문에 가격도 비싸지만 소리 또한 명징해서 꾀꼬리를 능가한다. 



다양한 악기들의 연주 소리를 구별하게 되면 음악을 듣는 즐거움은 훨씬 더 커지지만, 이는 음악에 관심이 있어야 말이되는 얘기이다.  관심 분야는 너무나도 다양해서 음악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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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레이블 DG(Deutsche Grammophon)와 전속을 맺는 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올해로 127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DG는 현재, 음반 제작의 자존심이며 클래식 레이블의 상징이고 흔히 노란 딱지라고도 불리는 그 벽이 높고도 높기 때문이다. 바이올린의 김봄소리는 그 거대한 벽을 허문 몇 안되는 한국인 중 한 사람이다.



동양에서는 중국의 82년생 Ning Feng (닝 펑)이 현역으로 DG의 전속이고, 일본계 미국인 미도리 고토가 DG의 전속이었는데 현역인지는 잘 모르겠다. 성악이든 악기이든 동양인이 DG와 전속 서명하는 일은 과거사를 돌아봐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 어려운 일을 김봄소리가 해낸 것이다.



김봄소리는 89년생으로 대한민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줄리어드에 가서 대학원 과정을 수학했다. 바이올린의 여제 정경화의 후배 되시겠고 이정도면 토종 되시겠다. 




하나마나한 얘기지만 김봄소리는 세계적인 각종 콩쿠르를 석권 했다. 그녀가 제패한 콩쿠르들의 이름을 모두 나열하면(비에냐프스키, 퀸 엘리자베스, 차이코프스키, 시벨리우스등등) 손가락 마디가 아프리라 예상되 그만 생략한다. 오죽했으면 닉네임이 '콩쿠르 헌터' 이겠는가. 


세계적인 최정상 연주자들만을 초청하는 페스티벌 참가 이력을 또 나열하다가는 손가락에 신경통이 올 것이다. 이 역시 생략한다. 협연으로 말하자면, 뉴욕, 프랑크푸르트 라디오, 바이에른 방송, 바르샤바, 모스크바등등 차라리 협연을 거치지 않은 최고의 심포니를 나열하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 내노라하는 세계적인 연주단체들이 김봄소리를 위해 땀을 흘렸던 것이다.






[[비에냐브스키 콩쿠르의 한 장면이다. 저 자신감, 저 당당함, 그리고 여유!! 콩쿠르에 참가한 사람의 모습이 아니다. 이미 수상을 따 놓은 사람의 표정이다. 이 모든 것들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김봄소리의 재능에 감동한 삼성 문화재단과 시카고 스트라디바리우스 재단은 그녀에게 1725년 산 '과르네리 델 제수 (Guarneri del Gesu)'를 사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 과르네리는 전설의 파가니니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먹을 때 사용한 악기였다. 물론 하이페츠와 크라이슬러 등이 사랑했던 악기이기도 하다. (5살 아래였던 하인리히 하이네는 파가니니 형님이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는 '공연중 발에는 사슬이 감겨있고 악마가 나타나 도와주고 있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후로 파가니니는 악마의 바이올리니스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설도 있고, 그게 아니라 파가니니 스스로 자신이 악마라고 말했다는 설도 있다) 


참고로, 과르네리 델 제수의 가격은 흔히 수십 억 원이지만 1741년 산 과르네리 델 제수 '비외땅 Vieuxtemps'은 1,600 만 달러, 오늘의 환율로 계산하면 235 억 원에 경매 낙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서워서 어찌 들고 다니나....후덜덜...

     




어째든,

대한민국 국민들은 정말 재능이 뛰어나다. 특히 여성들의 재능은 눈이 부시다. 다양한 분야에서 빛을 발하는 대한민국 여성들의 탁월한 재능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대한민국의 사내들이여!! 
대한민국의 여성들을 이렇게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다고 해서 삐질 필요 없다. 국가의 위상을 전 세계에 드높이고 있는 대한민국 여성들은 다름아닌 그대들의 누나이고 동생이다. 그 뿐인가, 때로는 그대들의 어머니이고 할머니이시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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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11-30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름에 소리를 품으신 분을 누가 견줄 수 있겠습니까...ㅎㅎ
왠지 바이올린이 봄의 선율일 것 같습니다.

차트랑 2025-11-30 12:07   좋아요 0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편안한 휴일 되십시요 잉크냄새님~
 


인터넷을 찾아 작곡가이자 연주가의 이름인 'Jia Peng Fang'을 어떻게 표기했는지 살펴봤다. 한글로 읽으면 가붕방(賈鵬芳), 중국 발음으로 하면 '지아 펭 팡'이라고 써있다. 58년 개띠라고 한다. 가붕방은 '얼후'에 관한 한 가장 이름을 널리 알린 음악가라  할 수 있다.


악기의 이름을 한글로는 이호(二胡), 중국어로는 얼후(二胡)라고 한다. 이호(二胡)는  '줄이 2개인 오랑캐 악기' 라는 뜻이다. 중국에서도 거침없이 오랑캐라는 말을 쓰는 것으로 보아 중국의 전통 악기는 아니라는 것을 살짝 짐작해 볼 수 있다. 한마디로 오랑캐 악기가 하나 있는데, 그 소리가 정말 마음에 들어서 가져다 쓴다는 말이겠다. 악기가 마음에 들었으면 좀 이쁜 이름을 붙여주던지 하지, 오랑캐라는 말을 꼭 붙여야했나 싶다...이참에 이름을 새로 지어보자면, 이금(琴) 이면 어떨까 싶지만 이는 월권이므로 지양... 우리도 호떡이라는 말을 하고 있으니 입이 열개라도 뭐...


[[우리의 해금(奚琴)에 대해서 좀더 알아보니, "해금은 원래 중국의 해족(奚 라는 민족)에 기원한다. 동북방 유목 민족인 호중 해부(胡中 奚部)가 즐겨쓰던 악기이다." 라고 써있다. 한마디로 이 역시 오랑캐가 쓰던 악기라는 것이다. 오랑캐의 악기지만 그 악기가 정말 좋아 우리도 가져왔다는 뜻이겠다. 그런데 우리 나라는 중국과는 달리 오랑캐의 악기에 대한 예우를 갖추어 이름을 붙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역시나 우리는 동방 예의지국의 품위를 잃지 않았다 ]]       


조선이나 중국이나 자신을 뺀 주변 민족을 오랑캐라고 칭했는데, 중국은 조선을 동쪽의 오랑캐라고 불렀다. 서로 상대방을 손가락질 하듯 오랑캐라고 부른 것이다. (서로 XXX라고 욕하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조선과 중국의 역사는 그 오랑캐들에게 탈탈 털린 경험들을 몇개 씩은 가지고 있다. 중국이야 말해 뭣하겠는가, 그 오랑캐가 중국에 와서 정치를 했으니 말 다했지 싶다. 어째든 대다수가 좋아하는 우리의 '호떡'도 '오랑캐 떡'을 뜻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데 진짜인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중국은 그 오랑캐 악기를 사랑했다. 좀더 따듯하고 포근한 음색을 가진 우리의 해금은 가슴을 울.리.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이와는 약간 다르게 이호의 현은 금속성이어서 소리가 투명하고 맑은 편이며 약간은 차가운 느낌을 준다. 해서 사람의 폐부를 파.고.드.는. 마.력.을 가진 악기이다. 얼후는 때로 칼로 폐부를 베어내듯 찌르고 싶어한다. 해금은 가슴, 즉 심장에 와 닿고 얼후는 폐부에 와 닿는 것이다. 이 또한 오행의 작용에 따른 것으로, 따듯한 기운(火 ,溫 )은 심장과 관련하고 차가운 기운(金, 冷) 폐와 관련하기 때문이다.       






어째거나
중국의 가붕방이 분위기 잡고 연주한 곡들이 내게는 꽤나 마음에 들어 여전히 듣고 있다. 요즘은 잊혀져 버린듯한 '얼후'의 음반을 검색해보니 모두 절판!! 찾는 이가 없다는 뜻이겠다.

입동(立冬)이 지났으니 계절은 맹동(孟冬)이다. 모두들 겨울 패딩을 입을 때이지만 아직도 밖은 단풍의 화사함과 가을의 쓸쓸함이 남아있다. 언제 들어도 좋은 음을 내주지만 이쯤이면 오랑캐 악기는 그 효과가 더 좋을 때인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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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11-23 0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주소리를 들으니 무협영화에서 자주듣던 호금소리네요.얼후는 호금의 한종류로 얼후를 개량한 싼후(줄3개), 몽골 전통악기인 쓰후(줄4개)가 있다고 하네요.

차트랑 2025-11-23 09:07   좋아요 0 | URL
무협영화를 좋아하는데,
얼후의 연주 소리 때문이 아닐까 잠깐 생각해봤습니다~^^
오랑캐라고 불리던 흉노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기도하군요.

그나저나 흉노는 신라 김씨의 조상이라던데....
이것이 진짜인지 모르겠습니다.

카스피 2025-11-23 16:37   좋아요 0 | URL
흉노족 왕자인 김일제가 신라 왕실의 선조란 이야기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등 공식적인 문서에는 없으나 문무대왕비에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김알제는 전한 무제시기에 한나라고 귀화하여 벼슬을 얻었는데 후손이 신나라 왕망의 외가가 되어서 후한의 시조 광무제가 토벌하면서 역사속에서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1961년 경주에서 발견된 비석(문무대왕릉비)에서 신라 김씨왕조의 선조에 대한 기술이 있다고 합니다.
「(5행)···그 신령스러운 근원은 멀리서부터 내려와 화관지후(火官之后)에 창성한 터전을 이었고, 높이 세워져 바야흐로 융성하니, 이로부터 □지(枝)가 영이함을 담아낼 수 있었다. 투후(秺侯) 제천지윤(祭天之胤)이 7대를 전하여···하였다.」
▶투후는 중국의 역사서에서 오직 김일제 한명에게 주어진 시호로 신라왕실은 자신의 선조를 김일제라고 인정했던 것이죠.
참고로 중국에서 발견된 대당고김씨부인묘명(大唐故金氏夫人墓銘)에서는 재당 신라인인 김씨가 자신의 선조로 김일제를 묘비에 기술하고 있다.(먼 조상 이름은 일제(日磾)이신데 흉노 조정〔龍庭〕에서 서한(西漢)에 귀순하셔서 무제(武帝)에게 벼슬하셨다. 명예와 절개를 삼가니 시중(侍中)과 상시(常侍)에 발탁하고 투정후(秺亭侯)에 봉하셨다.)

사실 김일제의 신라 왕실 선조설은 아직도 학계에서는 그 진위를 놓고 연구가 계속 진행중이라고 하는데 강단사학계는 이를 신라인들이 후대에 만든 관념이라고 아무런 근거 없이 주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차트랑 2025-11-23 17:24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자세한 설명 정말 고맙습니다 카스피님.

저는 역사를 좋아하는 편인데
오래 전에 역사스페셜을 보다가 듣게 된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왠지 저는 근거 있는 주장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상세히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카스피님~!!

잉크냄새 2025-11-23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떡이 ‘오랑캐 호‘ 자를 쓰는군요. 중국에서 호떡류는 보통 ‘삥‘이라는 말을 씁니다.
중국어 병음 ‘Jia Peng Fang‘의 가운데 발음은 ‘펭‘이 아니고 ‘펑‘이 정확할 것 같네요.

차트랑 2025-11-23 09:36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잉크냄새님,
오랫만에 인사드립니다.

호빵 호떡의 ‘호‘가 胡 인지는 저도 장담 드리지 못합니다^^

말씀해주신 Peng 에 관해서는 ‘펑‘ 으로 읽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중국어를 전혀 모르는 처지인지라 너른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잉크냄새님,
늘 건강하시고
좋은 하루 되십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