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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문단을 바라보면, 커다란 봉우리가 하나 서있다. 그 봉우리의 이름은 '톨스토이'이다. 그 봉우리 뒤로 안개속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지만 그보다 더 큰 산으로 이어져 있는, 끝이 보이지 않는 산맥이 있다. 바로 도스도옙스키 산맥이다. ㅡ앙드레 지드



사실 내게 도스도옙스키는 접근하기에 결코 쉬운 작가가 아니다. 그의 작품을 읽기에는 나의 능력이 모자란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때문이다. 그 깊은 산중으로, 아니 그 커다란, 잘 보이지도 않는 산맥 안으로 들어갔다가는 길을 잃을 것이고, 나는 분명 중간에 지쳐 쓰러져 버릴것이다. 이렇듯 나로서는 감히 엄두가 나지 않는 소설들이 특히 도스도옙스키의 것들이다. 도스도옙스키의 소설들이 아니어도 나는 모든 소설들이 어렵다고 느끼고 있었다. 부끄럽게도 도스도옙스키의 소설들은 물론 대부분의 소설들과 서먹하고도 소원한 관계를 지금껏 잘 유지해왔다. 



탐험은 본디 미지의 것이고, 그 무엇과 조우할지 모르는 아찔한 기대감, 혹은 심장을 조여오는 쫄깃한 긴장감을 즐기는 특성을 가진 것이기도 하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뜻밖의 발견은 어마어마한 덤이다. 때로는 그 뜻밖의 덤이 탐험가의 인생을 엉뚱한 곳으로 바꿔놓기도 한다. 발을 헛디뎌 낭떠러지로 떨어질 지도 모르는 가파른 산을 오르는 것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탐험은 단지 에베레스트를 오르내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다. 발견이 기다리고 있고, 미지성과의  조우가 기다리고 있다. 그 조우는 결코 단순한 노동의 댓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탐험은 스스로 해야 그 가치가 빛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비게이션과 전조등을 준비해 그 깊고 어둑한 곳으로 들어가보기로 했다. 자신이 없는 험난한 길을 떠날 땐 내비게이션, 뭐 이런 심산이다. 도덕경은 이런 곳을 '玄현'이라고 했다. 有와 無가 혼재하여 구분할 수 없고 아득하여 보이지 않는 경지가 바로 현(玄)인 것이다. 이런 현(玄)이 산(山)에 중첩되어 있으면 이를 유(幽)라고 한다. 유(幽)는 현보다 한 길 쯤 더 들어간다. 그리하여 유(幽)에는 삶과 죽음이 깃들어있게 된다. 유택(幽宅)은 그리하여 망자(亡者)가 머무는 거처이다. 내게 도스도옙스키로 가는 길은 '유곡幽谷'에 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유곡幽谷'은 생명을 거두어 들이는 곳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인가를 품어 태동시키는 곳이기도 하다. 정녕 신비로운 곳이 아니겠는가...



[[[ 도스도옙스키를 읽어보고 싶었지만 아직 그러지 못하신 분들 중에는, 1) 책이 겁나 두꺼워서  2) 왠지 어려울 것 같아서  3) 도스도옙스키가 뭐 대순가? 등의 이유가 있을 듯 하다. 그러나 이 책, '도스도옙스키 번역 일기'를 읽어본다면 도스도옙스키의 그 어떤 소설 하나는 꼭 읽어보겠다는 강력한 의지와 힘이 생기리라 믿는다. 나는 죄와 벌, 백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이 세 종류는 반드시 읽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를 뛰어넘는 전투력을 가지게 되었다. 다 읽기 전에는 결코 시들지 않을 전투력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도스도옙스키 번역 일기'는 도스도옙스키 낚시꾼이다. 이 책을 읽고도 낚이지 않는 자, 없을 것이라고 감히 추측해본다. ]]]



도스도옙스키의 '죄와 벌'을 처음 접한 것은 중학생 때였다. 경애하는 조부께서 돌아가시고, 쓰시던 사랑방이 비게되었다. 나는 고입을 준비하는 수험생이었으므로 공부방으로 할아버지께서 쓰시던 방의 사용권을 요구했다. 그렇다고 공부를 더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공부라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매사가 그러하듯 명분이 서느냐 이다. 그럴싸한 명분 앞에 뜻을 수월하게 관철시킬 수 있었다. 어렵지 않게 방의 사용권을 확보했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그 방 안에 있던 책들도 나의 것이 되었다. 사랑방에는 깡촌에서는 믿기 어려운 도서 목록들이 있었다. 셱스피어 전집, 죄와 벌, 신곡, 데카메론, 펄 벅의 대지 등등의 책들이 그것이다. 윤초시네 시골과 버금가는 곳 이었으므로 주변 수십리를 모두 찾아도 이런 목록을 가진 집은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비록 먼지만 쌓여가는 책들이기는 했지만. 그중 가장 흥미로운 책은 데카메론이었다. 약간은 선정적이며 성인들의 에로틱한 모습을 살짝 살짝 보여줬는데, 이는 중학생인 나에게 충분히 자극적이었다. 나는 고입 공부를 제껴두고 그 두꺼운 데카메론을 모두 읽었다. 완독의 힘은 다음 스토리에서 또 나올지도 모르는 기대감, 데카메론이 주는 야릇한 그 선정성에 있었다. 그리고 '말괄량이 길들이기'가 인상적이었다. 그렇다고 이해했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그냥 흥미롭게 읽었다는 것일 뿐.



그 귀한 '셱스피어 전집'과 '죄와벌' '데카메론'등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시골 촌 구석에 있게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경애하는 조부님께는 지극히 사랑하고 아끼는 친동생이 있었다. 그리고 경애하는 작은 할아버지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당숙께서는 도회지로 나가 사셨다. 그리고 이것 저것 닥치는대로 일자리를 찾아 다녔다. 그 일자리 중 하나가 고전을 방문 판매하는 일 이었다. 당연히 큰댁인 우리집에도 찾아 왔다. 말 하나마나 할아버지께서는 조카가 권하는 책을 모조리 들이셨다. 다양한 고전들은 물론 태권도 교본, 절권도 교본, 합기도 교본, 편지쓰는 법, 전예해행초서 쓰는 법 등등등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다양한 책들을 들이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책으로 무술을  배우는 것은 무협지에서나 있는 일이었다. (한가지 남은 것이 있다면 완독의 힘이 되어준 것이 무엇이었든, 그 두꺼운 데카메론을 끝까지 읽어냈다는 자긍심이다.) 경애하는 나의 의가 좋았던 조부님 형제께서는 분명 부처님 곁에 가 계실 것이다.




중학생인 나에게 죄와 벌은 무척 충격적이었다. 초장부터 사람을 죽이는 장면과 마주했기 때문이었다. 그때만해도 죽음이라는 단어는 내게 존재 했지만, 살인이라는 단어는 내게 있지 않았다. 그런데 주인공이 사람을 죽였다!! 마음이 벌렁거렸다. 그리고는 또 사람을 죽였다!!! 결국 나는 죄와 벌을 손에서 놓고 말았다. 아... 나의 이 소심하고 심약함이여!!!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조금 더 대범했거나, 조금 더 머리가 좋아 '죄와 벌'이 얼마나 위대한 작품인지를 알아봤다거나, 작품의 매력에 흠뻑 빠졌더라면, 지금의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누군가가 옆에 있어, '죄와 벌'을 알아보는 안목을 가지고는 조용히 말하길, "그 소설을 끝내는 읽어야 하리라" 라고 조언을 했더라면 상황은 꽤나 달라져 있을듯 하다. 그러나 내게는 그런 행운이 영 따라주지 않았다. 그 후로 나는 소설을 외면하고 살았다. 그러다가 다시 만난 소설이 하필 '파리대왕'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오만은 죄이자 벌이다. 나는 파리대왕을 읽고 이렇게 독후감을 썼다. '인간의 야만성은 지극히 본능적인 것일 수 있다. 저 어린 학생들의 야만성을 보라. 나이가 들어야만 인간이기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이 어린 사람들이 인간성을 상실하고 그 어떤 상태로 타락을 하든, 어른들이 있어 이들을 구제할 수 있다. 그러나 기성세대의 야만성과 타락, 폭력, 인간성 상실, 욕망, 그 잔인한 전쟁으로부터 그들을 과연 누가 구제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파리대왕'의 어린 학생들을 통해 저자가 기성세대의 문제점을 지적했다고 판단했고, 나름의 해석에 아주 만족해하며 자뻑을 날리고 있었다. 물론 이 독후감은 나의 것이기에 저자가 의도했던 것 과는 전혀 다를 수 있다. 해석은 독자의 것이라는 오만이 또 작동한 것이다. 


나의 우쭐함도, 오만도, 그리고 나의 선택도 알고보면 내가 지금껏 받아온 '죄'이며 '벌' 이였다. 나의 독후감이 나를 벌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소설을 홀대하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나의 이 건방은 나를 늘 곤란하게 했다. 그나마 때로는 이 건방이 보이지 않도록 뒤로 숨기려하지만 곧 들키고 만다. 건방과 오만은 도스도옙스키에 따르면 일종의 죄이자 벌이다. 건방과 오만은 신성함을 소홀히 하기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성함을 잃는 것은 죄이다. 신성함을 잃는 순간 살인 이라는 벌이 시작되듯 말이다. 

그렇게 양극단의 경험들은 나를 서서히 소설과 더 멀어지게 했다.




그런데 요즘은 서서히 소설을 향해 시선을 주기시작했다. 책의 두께!! 한 손으로 들면 버거울것만 같은 두께의 소설들의 사진을 알라딘 서재에서 만나면서 였다. 나는 책의 두께에 매료되기도하고 기가 죽기도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고민스러운 일이다. 과연 어떤 소설부터 두께감을 갖기 시작해야할까....

블로그의 힘은 확실히 영향력이 있다. 게시된 사진 중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들이 두터웠다. 게시해준 똘스또이의 '전쟁과 평화'는 무려 4권,  2988쪽, 무게 3.89kg. 너무 두껍고 기가 죽는다. 도스도옙스키의 '백치'는 상ㆍ하를 합하면 1,000 쪽이 넘었다. 역시 나의 기를 눌러 놓는다. 아련한 옛 추억이 떠올랐다. '죄와 벌'을 손에서 내려놓던 그 순간 말이다. 나는 지금껏 죄를 지었다. 행여 내게도 시베리아로부터 부활의 시간이 찾아 오려는가...



국립공원 앞에 산 전체 조망도를 보여주는 안내판이 있다. 나도 그걸 보고 가야겠다. 도스토옙스키는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안개에 가려진 산맥이라하니, 내비게이션과 전조등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구입한 책이 바로 '도스도옙스키 번역 일기' 이다.


스포에 해당하는 이 책은 미지 탐험의 짜릿함과 긴장감을 주지는 못하겠지만 나의 무능력을 보완해줄 수 있겠지 싶다. 물론 도스도옙스키의 매니아들이나 소설 매니아들은 나의 이런 절차를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현재의 나는 중학생 때의 소심함을 벗어났으니 이제 도스토옙스키에게 천천히 다가가려한다. 가다보면 앞서간 이들이 못보고 간 무엇인가가 하나 쯤은 내게 나타나지 않겠는가. 학부때 셱스피어에 관한 논문을 쓰고 박사가 된 사람들이 100여명이 넘는다는 말을 교수에게 들은 적이 있다. 속으로 '미쳤다', 생각했다. 셱스피어가 광산이라도 되나, 파고 파도 또 파낼 것이 있다는 뜻 아니겠는가. 셱스피어도 그정도인데 하물면 산맥인 도스도옙스키 선생이야 말해 뮛하겠는가. 그 깊고 깊은 산맥, 첩첩 산중, 안개에 가려 보이지않아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유곡(幽谷), 그 산맥속으로.. (Go for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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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 번역 일기
김정아 지음 / 샘터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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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 때, 어느 교수가 말했다. 셱스피어를 연구하여 학위를 받은 학자들이 100 명도 넘는다, 라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셱스피어가 광산인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파 낸걸 또 파내게? 이제는 좀 알 것 같다. 셱스피어는 탄광이고, 도스도옙스키는 끝없이 빛나는 금광 산맥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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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 번역 일기
김정아 지음 / 샘터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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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나! 이런 번역가와 이런 번역이 있단 말인가? 대한민국 번역史의 전범((典範)을 제시한 번역가에는 깊은 경의를!!! 그리고 도스도옙스키 선생의 소설들에게는, 굿모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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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 모리어티의 죽음 앤터니 호로비츠 셜록 홈즈
앤터니 호로비츠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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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서평에는 도서의 개요를 포함시켜야 하는 것이겠으나 이미 많은 독자 분들께서 앞서 잘 밝혀주셨기에 생략하기로 한다. 한 가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충격적인 반전이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는 점, 이 책을 읽는 독자 분들께서 경악을 금치 못할 대 반전 말이다. 그런 반전을 비록 원치 않는다 하더라도. 하여 「모리어티의 죽음」을 읽으면서 가지게 된 가장 인상적인 느낌을 중심으로 서평을 갈음하는 것이 낫겠다 싶다.

 

 

1. 움베르토 에코의 코난 도일에 대한 오마주,「장미의 이름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을 읽어보신 분들은 잘 아실 것이다. 기호학자 에코가 그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 등장시킨 주인공 윌리엄 수도사의 캐릭터는 코난 도일의 홈즈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인물이다.

 

 

비록 중세의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윌리엄 수도사는 외모, 체격 조건 그리고 지적 능력에서 홈즈와 너무나도 닮아있다. 사실 일치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윌리엄 수도사는 조사관으로서 관찰과 실험을 통해 홈즈 수준의 통찰력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더더욱 흥미로운 것은 윌리엄 수도사의 이탈리아식 이름은 굴리엘모(Guglielmo) 라는 것이다. 풀 네임은 「굴리엘모 다 바.스.커.빌.」이다 (이탈리아식 이름 굴리엘모 Guglielmo는 프랑스의 기욤 Guillaume, 독일의 빌헬름 Wilhelm, 영어로는 윌리엄 William). 코난 도일의 애독자라면 이미 짐작하듯이 가장 성공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 코난 도일의「바스커빌의 개 (The Hounds of Baskerville) 」를 대놓고 차용한 것이다. 이 뿐이 아니다. 사건의 중심지인 멜크 수도원의 견습 수도사인 ‘아드소’는 홈즈의 파트너인 왓슨을 너무나도 빼 닮았다. 아드소는 「장미의 이름」의 화자인 것이다.

 

기호 학자이자 철학자였던 움베르토 에코는 코난 도일의 작품을 십분 활용해 그 이름도 유명한 「장미의 이름」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표절이라는 이름을 그 누구도 말할 수 없게 하는 명작 중 명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하여 전 세계의 문학 비평계에 충격을 안겨주며 대 성공을 거둔다. 어쩌면 코난 도일이 없었더라면 지금의「장미의 이름」은 탄생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2. 홈즈의 죽음

 

어머니, 이제는 홈즈를 죽여야 할 때가 온 것 같아요, 코난 도일은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안된다, 애야! 절대로 그래서는 안돼! 제발 홈즈를 죽이지 말아줘!

 

코난 도일은 홈즈를 자기 손으로 죽여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열렬한 아들 코난 도일의 팬이었던, 아니 홈즈의 팬이었던 그의 어머니는 홈즈의 죽음을 받아드릴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러나 어머니의 간절한 애원에도 불구하고 코난 도일은 홈즈를 죽음으로 내 몰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독자들께서 잘 아시리라 믿는다). 그렇게 홈즈는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코난 도일이 그렇게 죽인 홈즈는 「모리어티의 죽음」이라는 과정으로 부활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한껏 불어 넣는다. 홈즈 부활의 전주곡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떨칠 수 없게 만드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하여 나는 내내 홈즈의 등장을 고대하며 읽을 수밖에 없었다.

 

 

3. 불가사의, 그 의문의 전설과 저자의 필법

 

작품은 폭포의 불가사의한 기운으로부터 시작한다. 코난 도일이 죽인 홈즈가 부활하는 모습을 독자들은 과연 목격할 것인가? 그렇다면 어떻게? 그것도 아주 극적이며 모두를 감탄케하는 방법은? 그것이 아니라면 홈즈를 능가하는 누군가를 새로이 탄생 시켜 또 다른 불가사의를 맛보게 할 것인가? 읽어가는 독자들에게 끊임없는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대목들이다. 왜냐면 홈즈의 죽음은 불가사의이고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의문은 소설의 전개 내용만큼이나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대 반전, 그 강렬한 폭발을 위한 전주곡의 에너지를 가열하며 증폭시키고 있다고나 할까...

 

게다가 저자의 문체는 섬세하고 정밀화를 그려내는 화가의 그것처럼 묘사적이다. 초장부터 문학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염두에 두었다고 여길만하다. 저자의 필력이 돋보이는 대목을 여러 곳에서 만날 수 있지만 다음은 그 중 일부이다. 우선 저자는 폭포의 느낌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마치 세상이 이곳에서 벼락처럼 쏟아지는 강물과 수증기처럼 피어오르는 물보라와 더불어 영원히 종말을 맞이하기라도 한 것처럼 새들은 무서워 달아나고 햇빛은 들지 않는다. 17 쪽 

 

폭포의 불가사의한 위상을 한껏 느낄 수 있는 대목이 아닌가 생각한다. 다음은 체이스가 존스경감의 변장한 모습을 알아보지 못하는 대목이다. 묘사는 마치 앞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듯 정밀하며 관조적이다.

 

내가 누구일까 궁금해 하며 냅킨을 내려놓고 식당 밖으로 나가보니 행색이 꼴사납기 이를 데 없는 남자 하나가 정문 옆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원 복장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지만 어떤 배의 선원으로 발탁되건 그 배의 이름에 먹칠을 할 만한 복장이었다. 빨간색 프란넬 셔츠는 캔버스 바지 위로 늘어졌고 도선사의 외투는 소매가 팔뚝 중간에서 끊길 만큼 작았다. 면도를 하지 않은 얼굴에는 여기저기 남색 얼룩이 묻었고 발목에는 지저분한 붕대를 감고 있었다. 260쪽

 

 

 

4. 뜻밖에 등장하는 동양의 전설

 

흔들리는 것이 깃발이냐 바람이냐의 논쟁에 대한 육조 혜능의 답인, “흔들리는 것은 마음이니라." 라는 선불교의 사유가 티베트를 거쳐 서양의 실존주의 작가 장그르니에의 「섬」 이라는 작품에까지 옮겨간다. “나의 밤은 향기로 물들었다.”는 인상적인 말을 남기고 있는 작품 인 그 「섬」말이다. 그리고 또 다른 동양의 전설이 놀랍게도 「모리어티의 죽음」에서도 등장한다.

 

옮긴이의 첨언에 의하면 ‘어빙’이라는 작가의 작중 인물인 ‘립 밴 윙클’의 나이에 관한 서양의 전설이 바로「모리어티의 죽음」에 등장하는 것이다. 물론 폭포에서의 죽음을 둘러싼 불가사의와 초장부터 가뜩이나 의문투성이인 「모리어티의 죽음」에서 전개 과정을 더욱 응축시키고자하는 방편일 것이다.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어빙’은 산에 올랐다가 낮선 이가 주는 술을 마시고 잠들었다 깨어보니 하룻밤 만에 20년이 흘렀더라는 이야기다. 어쩐지 익숙한 스토리가 아니던가. 동양의 무릉도원의 전설을 보는 듯말이다. 알고 보면 동과 서는 아주 오랜 세월을 두고 끊임없이 교류를 해왔으니 이상할 것이라고는 없지만 뜻밖의 조우인지라 내게는 흥미로운 일이었다.

 

 

5. 영국의 미국에 대한 애증

 

작품에서 나는 영국의 우월주의와 영국의 미국에 대한 애증을 엿볼 수 있었다.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미국은 이번에는 도리어 영국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어있다. 존스경감이 보스토니안을 급습했을 때 이점이 잘 드러난다. 모든 벽면의 그림들은 미국의 화가의 것들이고, 모든 장식은 물론 신문마저도 죄가 미국산이다. 영국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영국의 런던 한복판에 자리 잡은 미국의 영향력이다. 때는 에디슨이 영사기를 발명한 바로 그 즈음이다. 미국은 새로운 기회를 창줄하는 강력한 국가로 성장하고 있지만 경감의 부인과 체이스의 대화는 내게 영국의 본토 우월주의가 짖게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경감의 부인이 체이스에게 영국에 대한 소감을 묻자 미국 출신인 체이스는 대답한다.

 

 

“런던은 아주 마음에 들어요. 수많은 화랑과 박물관하며 근사한 건축물....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역사도 풍부하고요. 그게 부럽네요. 194쪽

 

 

사실 이들이 막아내려고 안감힘을 쓰고 있는 적은 미국인 악당 데버루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악당 데버루는 외교관으로서 면책 득권을 가진 인물이라는 점이다. 심지어 그 이름이 미국의 전설이 된 링컨의 후예가 비호하는 인물 말이다. 다름 아닌 미국의 영웅 링컨의 후예라니...이러한 설정은 양국의 서로에 대한 미묘한 애증을 드러내는 장면들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물론 근거는 전혀 없다는... ㅠ.ㅠ.

 

 

6. 반전, 대 반전

 

반전이다. 그것도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하는 대 반전 말이다. 반전의 대목을 읽으면서 나는 오래 전 보았던 영화 「The Others」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니콜 키드만의「The Others」는 그녀의 연기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반전이란 정녕 무엇인가’에 대한 사전적 정의를 담고 있는 영화라 생각한다. 이보다 더한 반전을 보여주는 영화를 본적이 없으니 그러하겠지만 말이다.

 

「The Sixth Sense」든 「The Others」든, 반전이 이루어지기 전에 공통적으로 몇 가지 단서들을 제공하고 있다. 이 둘의 차이점이라면 「The Others」가 제공하는 실마리로 미루어 반전을 눈치 챌 확률은 「The Sixth Sense」가 선보이는 실마리의 그것 보다 훨씬 더 은밀하다. 설마가 사람잡는다고 두 영화가 주는 단서에 대한 ‘설마’의 차이를 사적으로 크게 느꼈기 때문이다.

 

「모리어티의 죽음」에서도 분명 그 실마리를 초장부터 제공하고 있다. 더불어 코난 도일은 물론 홈즈에 대한 경외심과 존경심은 내용을 전개해가는 내내 잃지 않는다. 심지에 존스경감과 체이스의 관계는 홈즈와 왓슨의 관계와 동일하다.

 

나는 읽는 동안 그렇게 읽어갔다. 아니, 위에서 쓴 모든 이야기들을 그렇게 믿으며 말이다. 그런데 이 모든 나의 이야기들을 산산 조각내는, 경악을 금치 못할 대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추리물을 좋아하고 경험이 풍부한 독자들은 아마도 잘 알아차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전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었다. 마냥 홈즈의 부활을 기다리는 그 마음으로 말이다. 늘 그러하듯 단서들을 제공하고 있었건만, 아...나의 이 우둔함이여~! 나의 우둔함을 새로이 절감케 한 작품이 바로 「모리어티의 죽음」이었던 것이다. 대 반전은 그렇게 나를 몰아쳤다.

 

 

7. 출판 전,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내 눈으로는 오탈자를 발견할 수가 없다. 가제본인만큼 내가 할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더욱 꼼꼼히 읽었다. 번역은 상당히 매끄럽다. 영어로 지칭할 수밖에 없는 대명사가 없었더라면 이 곳 저 곳에서 나는 국내 소설로 착각할 뻔 했다. 외국어를 이토록 잘 번역해주다니... 우리 소설을 읽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번역이다. 또한 편집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역자와 편집자의 노고에 깊은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출판물은 자고로 이래야 하는 법, 오자가 다수 등장하는 타 서적과 대조되는 대목이다. 

 

(문맥상 오류로 의심되는 부분은 딱 한 곳, 176쪽 5-6줄에 걸친, “이발 한분?”이다. 제본은 물론 오탈자를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도서이므로 이 부분을 다만 의심할 뿐 자신은 없다. 문맥상 “이발 하실 분?” 이 아닐까 하는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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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jjoker 2015-06-24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dghdgh

차트랑 2015-06-25 10:0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방문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남겨주신 대글이 암호같아서 저로서는 풀수가 없군요
저는 암호를 기똥차게 풀어내는 셜록홈즈가 아니랍니다^^

저의 서재를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북극곰 2015-06-24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트랑님 오랜만이에요~^^ 장미의 이름에 그런 오마주가 들어있었군요. 전혀 생각도 못하고 읽엇었더랩니다. -,.-

차트랑 2015-06-25 10:04   좋아요 0 | URL
오랫만에 뵙겠습니다 북극곰님, 그동안 평안하셨는지요..
저도 모르고 있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행사 도서를 받고 리뷰를 쓰려다가는 깨달은 바입니다

그동안 찾아뵙지도 못했습니다.
북극곰님의 서재로 답방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북극곰님~
 
몽유도원 세트 - 전2권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소설을 읽었으니 간단하게나마 리뷰를 남기는 마음으로 이 글을 적는다...

 

소설은 몽유도원이라는 그림을 소재로 하고있지만 몽유도원이 소설을 지배해가는  구심력은 아니다. 몽유도원은 일제가 우리에게서 약탈해 간 문화재를 상징하는 언어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소설이 주고자 하는 상징성은 나름대로 마음에 든다.

 

소설은 일본에서 유학중인 역사학도의 눈을 통해서 일제가 우리 역사를 그 얼마나 왜곡시키고 있는가에 대한 작가의 의식을 전하고 싶어한다. 이러한 의식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는 역사의 뼈아픈 기억을 마음속에 담아두라는 뜻이 아니다. 역사가 한 국가 혹은 개인에게 그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 것인지를 말하려는 것이다.

 

의문의 죽음으로 사건을 전개시키는 이 소설은 우리의 역사해석에 지극히 중요한 호태왕비의 비문과 칠지도에 써있는 글자를 일제국주의가 왜곡하면서 벌어지고 있는 치열한 양국의 현대적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다. 말이 치열하는 것이지 실제로 왜곡된 정도는 이미 현대의 우리 사학계에서도 차마 힘주어 언급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아니 못하고 있는 것인지 안하고 있는 것인지 사실 판단이 서지 않는다.

  

  좋았던 점은 가즈오라는 인물을 통해서 작가가 전달하려고 하는 그 무엇이다. 소설을 이끌어가는 이는 박상훈이라는 역사학도이다. 그런 역사인식의 중요성이 박상훈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전달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표면적인 소설의 구성적 필요성 때문일지도 모른다. 소설을 이끌어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캐릭터나 그에 상응하는 동력을 가진 인자가 필요했기 때문 일 것이다. 이 동력이 박상훈인 것이다. 그러므로 소설을 지배라는 힘은 박상훈에게 있는 듯 보인다.

 

상대적으로 가즈오라는 인물은 매우 정적인 인물이다. 바깥 출입을 하지 않으며 정신 질환을 가진 인물로 등장한다. 그러나 조금 더 내면을 들여다보면 이 가즈오라는 인물이야말로 이 소설을 지배라는 원동력이자 그림자이다. 

 

가즈오는 자신을 키워주고 그토록 사랑을 주는 부모와 조부가 자신의 생물학적 조상을 배신하고 조국을 배신해 왔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부터 정신적 딜레마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인물이다. 행여양부에게 알려질까 한글을 혼자서 배우며 할아버지가 남긴 편지를 읽어내야 했던 가즈오...  양부의 죄를 스스로 떠안고가야만 했던 가즈오의 내면이 어쩌면 이 소설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 볼 수 있는, 보이지 않지만 독자들에게 드러나는 인자가 아닌가 싶다. 더구나 이것이 우리들의 역사였으니 말이다..

 

표면적으로 박상훈은 자신의 분노를 자신의 연구와 실력으로 보여줄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자신에 대해서 알고 있으면서도 막상 그 현실을 직면한 능력이 없는 가즈오는 무력해보인다. 그러나 그런 가즈오의 무력함은 그의 심적 갈등과 인간적 고뇌는 바로 우리들의 자화상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작가는 박상훈이라는 인물보다도 가즈오를 더 깊이 이해해주기를 바라며 이 소설을 썼는지도 모른다. 가즈오에게 그토록 안타까움과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보면 말이다. 

 

나아가 가즈오와 혼인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일본인 여성은 작가의 심적 투영의 매체일 것이며 어쩌면 일본인들의 양심을 바라는 소망일 것이다.

 

소설은 나름대로 유익한 면이 있다. 아마도 고등학생들이 읽어준다면 가장 좋지 않을까 생가해본다. 일제의 기억을 할 수 없는 현대의 젊은이들에게 역사를 제대로 아는 것이 왜 중요한 것인지 깨닫게하는데 부족함이 없는 소설이다.  

 

사실 이 책을 집어들게 된 것은 역사인식의 중요성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알라딘의 리뷰에서 읽어보거나, 홍보성 평가에는 미치지 못하는 소설이 아닌가 생각한다. 잘 읽기는 했는데 사실 쓸 말은 많지 않은 그런 소설이라고나 할까....딱히 깊은 인상을 주는 대목이라면 주인공 박상훈이라는 인물이 하코네라는 일본인 여성을 만나는 장면이다. 이들에게는 미묘한 러브라인이 형성되어있고 키스신이 딱 한 번 등장한다. 그 어떤 장면보다 인상적인 이유는 작가의 소설가적 재능이 가장 잘 드러난 부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작가의 다른 소설들을 읽어보지 않아 더욱 쓸 말이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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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4-23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하나 밖에 못 읽어본지라... ㅠㅠ
하지만 그때 정말 분개했던 기억은 나네요. 그리고 한동안 핵에 대해서 생각했구요.

김진명 씨의 소설을 몇권 가지고 있는데 아직도 못 읽었습니다.
네, 저 역시 고등학생들이 읽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교과서 외의 다른 부분을 볼 수 있게 하는 작가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달랑 한 작품 읽고 이런 말 하면 안 되는거죠, 저? 에공... ^^

차트랑 2012-04-23 20:01   좋아요 0 | URL
저 역시 마녀고양이님과 차이가 없어요^^
'무궁화 꽃이피었습니다'를 읽어 보고 이번이 두번째이니까요.

아, 그리고
작품 하나를 읽은 것으로로 충분히 말씀하실 자격이 있습니다.
그것도 충분히요..
논문을 쓰는 것도 아니고
그저 리뷰잖아요^^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마녀고양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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